15화 인내와 시련의 방(4)
*콰직!
일전에 보았던 수많은 병사들.
태현이 곡괭이로 병사들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평소 같았으면, 스킬을 사용하거나 이번에 얻었던 유령검을 사용해서 훨씬 수월한 사냥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고, 능력치까지 너프 된 상태였다.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네.’
자신의 능력치가 너프 된 만큼, 병사들의 능력치 역시 현저히 떨어졌다.
4~5성이었던 병사들은 기껏해야 2~3성정도.
그럼에도 물량이 많은데다가 태현 혼자 상대하려니 힘에 부쳤다.
‘진짜 빡세다!’
태현이 병사들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해내며 곡괭이로 잡아냈다.
적어도 윈드밀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사냥을 하는 동안에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콰직!
그렇지만, 곡괭이의 능력치는 너프되지 않았다.
황금 곡괭이.
내구도 불괴와 그에 따른 공격력을 갖춘 무기.
이 곡괭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물론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도 하고.
“작작 나와라.”
태현이 짜증을 부리며 곡괭이질의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다르게 병사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사냥에 집중하다보니 사냥속도가 올라간 것이다.
*“후우···.”
태현은 녹초가 된 몸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 많이 움직인 탓이다.
그래도 병사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사냥에 지쳤지만, 이번 시련을 완벽하게 클리어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인내와 시련의 방 : 두 번째’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165 -> 200]
[봉인석(구르카의 기억 : 일부분)이 지급되었습니다.]
[랜덤 소환권(6성 : 히든)(+2)이 지급되었습니다.]
[군주 스킬 경험치 200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2000을 획득하셨습니다.]
[품위 능력치가 40 -> 100으로 상승합니다.]
[칭호 2단계 오픈 조건이 공개되었습니다.]
[군주 스킬 Lv.3 -> Lv.4로 상승합니다.]
‘좋았어!’
역시 클리어의 조건은 병사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태현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군주가 Lv.4가 되었다.
타 스킬들과는 다르게 상승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 흠이었는데, 지금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심지어 랜덤 소환권 중에서도 6성 히든만 2개를 획득했다.
추가로 봉인석까지.
물론 봉인석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르카의 기억으로 보아 멀지 않은 미래에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태현이 군주 스킬을 열람했다.
[군주 Lv.4]
-왕의 안식처로 즉시 이동 가능.
-왕이 원하는 위치로 즉시 이동 가능.(24시간 3회 사용 가능.)
-전투 부대를 운용한다. 명령어를 지정해야 호출이 가능하다.(병사는 왕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아모스의 영토에 성이 건설됩니다.(레벨이 오를수록 성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킬 레벨 이외에도 업그레이드 가능.
-군주 고유스킬 : 대지 분쇄 사용 가능.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효과 증가.
-전투부대 가용인원이 500명으로 확장.
-(봉인) 스킬의 레벨이 부족합니다.
‘500명!’
말도 안 되는 숫자에 태현의 입이 벌어졌다.
일반 던전과는 다른 인내와 시련의 방.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상이 너무 파격적이었다.
태현은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가 볼까?”
기분이 좋아진 그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가운데의 문 너머에 있는 황금색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기까지 아무런 함정도 없었다.
이게 끝이라는 증거.
그가 문을 당겼다.
그러자 하나의 문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를. 시련은 계속될 것이다.]
“선물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수고.”
태현의 말에 문구는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안식처로 향했다.
*‘음···? 저 사람은?’
안식처에서 사무실로 이동한 태현이 눈을 반짝였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임지성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그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임요한.
고구려 길드 마스터인 임요한이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의 사무실에 방문했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좋은 말 할 때, 원래대로 돌려놔.”
차갑게 미소 짓는 것과 별개로 주먹을 꽉 쥐고 이야기하는 모습.
눈에는 미약한 살기마저 느껴졌다.
레벨이 S급에 도달하지 않았으면, 느껴지지 않았을 기운.
그 모습에 태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솔직히 자신이 낄 자리라고는 느껴지지는 않지만, 대놓고 저렇게 나온다면 그 역시 똑같이 나갈 생각이다.
“싫은데요. 아저씨.”
결국 태현이 임요한에게 다가갔다.
임요한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태현 헌터인가?”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얼굴 못 본 지 10년 넘었죠?”
“···오랜만이구나.”
옛날에는 얼굴을 뵌 적이 있긴 하다.
그 때도 쌀쌀맞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뭐지···? 저 녀석 A급이 맞는 건가?’
반면, 임요한은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태현은 분명 A급이라고 발표가 나왔다.
그렇기에 욕심을 냈던 것인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A급이 아니었다.
최소 A급 후반.
아니면 그 이상이다.
“그보다 싫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시겠어요?”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의 말씀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결국 참다못한 정길주가 나섰다.
임요한은 그에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허락인 줄 알고, 정길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너무하시네. 비서 놈이 날뛰는데 저지도 안하시고. 생각보다 더 답이 없으신 분이군요?”
태현이 임요한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사실 임지성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욕하고는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임지성은 그가 제때 나타나줌에 입모양으로 감사를 표했다.
“사장님을 욕하지 마라!”
결국 정길주가 폭발하고는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마침 칭호의 효과도 나타났다.
인간이나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 얻게 되는 버프.
태현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왼 손으로 정길주의 목을 낚아챘다.
“컥!”
정길주가 주먹을 내지르려다가 갑자기 목을 잡힘에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태현의 손아귀 힘이 조금씩 강해졌다.
“커어억···.”
정길주는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태현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 손은 바위마냥 꿈쩍하지 않았다.
“적당히 끼어들어. 새끼야.”
태현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고는 오른 손으로 정길주의 뺨을 후려쳤다.
짝!
기절하지 않고, 단순히 제압할 정도의 힘만 주었기에 정길주는 그 고통을 그대로 느꼈다.
“끄어억···.”
정길주의 핏물이 흘러나와 그의 소매를 적시자 태현이 계속해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짝!
‘뭐가 이리 아파! 제발··· 제발 그만 해 줘··· 제발!’
정길주는 지금 미칠 것 같았다.
무슨 손이 이렇게 매운 건지, 의식을 잃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서 태현은 괴물로 보였다.
“좀 까불지 말고 살아라.”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그의 턱주가리를 세게 쳤다.
퍼억!
그 주먹에 정길주의 몸이 벽에 날아가 그대로 처박혔다.
기절했는지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길주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조금 적당히 하지··· 어머 벽 어떡해···.”
유지아는 정길주 때문에 벽이 간 금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방금 행동은 어떻게 책임질 거지?”
앉아있던 임요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길주가 쓰러졌음에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살기가 더 짙어졌다고 해야 할까?
“허···.”
저런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째서 임지성이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괜찮아. 죽지는 않았어. 빨리 치료하면 돼.”
임지성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길주에게 다가갔다.
어쨌거나 여기서 정길주가 잘못된다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됐어. 그냥 둬.”
하지만, 태현이 임지성의 행동을 저지하면서 정길주의 치료가 무마되었다.
“응? 야··· 그래도 이건 좀.”
“뭘? 힘 조절했다. A급 헌터란 놈이 저거 맞고 뒤질 거 같으면, 헌터 그만둬야지.”
어차피 잘못되는 건, 고구려다.
천검과 연화가 돕는 이상, 지지를 받는 것은 왕국이 될 테니까.
“후후,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임요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설마하니 정길주를 저렇게 만들고 방치할 줄이야.
슬슬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겨우 이 정도로 폭발하시면 곤란한데.”
태현은 이를 드러내며 웃을 뿐이었다.
“정말 끝까지 나를 화나게 만드는구나.”
임요한이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임지성은 긴장한 눈으로 그를 보았고, 유지아는 하얗게 질려서는 책상 밑으로 숨어버렸다.
반면, 태현은 여유롭다는 얼굴로 임요한을 응시할 뿐이다.
‘레벨이 200에다가 능력치 보정을 받으니까··· 그렇게 강해보이지도 않네.’
솔직한 평가다.
레벨이 200이 되었고, 원래 능력치 역시 200을 상회했다.
여기서 30% 상승버프까지 받으니 임요한이 저렇게 나와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태현이 쓰러져있는 정길주를 한 번 흘겼다.
저 놈을 포함해서 고구려 길드원들 대거가 임지성을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릴 정도였는데, 당하는 본인 입장은 오죽할까?
“여기서 붙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태현이 손을 저으면서 거부하자, 임요한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나오는 것일까?
“길드전 합시다. 깔끔하게 그걸로 끝내죠.”
“!”
임요한은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이냐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길드전.
당시 길드끼리 서열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물론 안정화가 되기 전에 이루어졌던 것이기에 지금은 거의 사라진 추세다.
몬스터를 잡기 위한 힘을 사람에게 사용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현이 꺼낸 제안은 임요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데 충분했다.
‘감히 고구려에게 길드전을 제안한다고?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길드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눈앞에 있는 태현이 자신과 동등, 혹은 그 아래라고는 하지만, 길드 전체로 따졌을 때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태현의 눈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상태다.
“고구려 길드 마스터와 왕국 길드 마스터의 싸움. 심지어 왕국 사무실에서 벌어졌다.”
“······.”
“이게 기사로 나오면, 어떤 평가가 내려질 것 같나요? 지금 시국에?”
임요한은 할 말을 잃었다.
정길주를 저렇게 만든 것으로 모자라서는 자신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은 왕국을 지지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고구려는 인식이 매우 나빠진 상태.
만약 이 싸움이 기사로 퍼진다면, 고구려가 왕국을 건드렸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는 힘과 관계없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잘못 판단했어···.’
임요한은 자신이 직접 움직인 것을 후회했다.
길드 마스터가 겨우 20대 중반인 것으로 보아 생각이 짧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만큼 임지성을 무시했기도 하고.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설마 길드전을 언급할 줄이야.’
A급 헌터라길래 힘을 보여주고, 기사를 지우도록 만들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고구려의 위신을 생각하다가 제대로 망했군.’
임요한이 두 눈을 살짝 감았다.
그것을 본 태현은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
확실히 당황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길드전을 철회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구멍을 만들 것이 자명하다.
‘그냥은 못 가지. 왕국은 잃을 거 없거든.’
태현이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물론 거절은 없습니다. 거절하면 바로 기사에 실을 생각이거든요. 길드가 생각보다 좁잖아요? 소문은 금방 퍼질 텐데.”
“이 놈이···.”
“선택하시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