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마계 : 제로스의 성(1)
*태현은 성에 마련된 방에 앉아서 귀를 후볐다.
‘젠장···.’
호기롭게 말하고서는 히든 스테이지로 향한 것이 불과 5분 전이다.
그럼에도 그가 들어가지 못하고 방에 앉아있는 것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마계는 마기로 뒤덮여있어 입장이 불가합니다.]
갑작스런 메시지에 적잖이 당황했다.
마기로 뒤덮여있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주군··· 그래도 입장하시기 전까지는 멋있었습니다.”
이안은 그의 옆에 앉아서 손뼉을 쳤다.
호기롭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태현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크흠··· 죄송합니다.”
이안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때였다.
“주··· 주군!”
6성으로 승급한 궁수와 테이머, 발락은 태현의 방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신이 예를 갖출 필요 없이 편하게 출입하라고 했기에 출입했는데.
태현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당황한 것이다.
특히 궁수, 아론의 반응이 가관이었다.(6성으로 승급한 인원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키··· 키사마(너)! 도대체 주군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안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얼굴을 잔뜩 구기는 녀석.
그러나 이안은 아론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론.”
“어이! 뭘 잘했다고 웃는 거냐?”
“사실 아까 들어오기 전에 네 방을 한 번 봤다. 정말···.”
“미안하다. 화해하자.”
이안의 말을 급히 저지하고는 손을 내미는 아론.
“아론?”
그러나 그 옆에는 태현이 앉아있었다.
“네! 주군!”
아론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적당히 보라고 했을텐데?”
적당히 보라고 하긴 했다.
명령은 아니었고, 그냥 흘러가듯이 말했다.
그래서 아직도 저렇게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번에 꼭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아론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취미생활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말투는 어떻게 좀 해라. 계속 그러면 취미생활도 막아버린다?”
“히익!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아론이 식겁하고는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안과 테이머(덕배), 발락이 히죽 웃었다.
‘그럼 계획을 변경해야겠네.’
지금 현재 마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원래 계획이었던 시크릿 에피소드인 ‘에일린의 과거’로 가면 될까?
아니다.
마기로 뒤덮여있다는 것이니까 그 마기를 버틸만한 아이템이 있으면, 입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보자.’
업적 포인트도 많이 쌓였다.
업적 등급을 올리는 것도 있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입해서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성장에 몰두한답시고 수하들에게 조금 소홀했었는데, 아이템이라도 구입해서 녀석들에게 챙겨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추가로 검과 궁에 대한 스킬도 구입하고 싶었다.
물론 가장 우선시되어야할 아이템은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아이템이다.
“주군!”
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덕배(테이머)가 급히 그를 불렀다.
“왜?”
“저··· 얘는 왜 아론이고, 저는 덕배입니까?”
약간 불만이 서린 목소리다.
태현은 의아했다.
“덕배 싫어?”
“그··· 간지가 안삽니다.”
“간지···?”
“예. 조금 좋은 이름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히어로라던가? 길가메시라던가?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호오··· 그래서 지금 내 작명센스가 구더기라는 거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군의 작명센스는 제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덕배(테이머)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리고르모의 훈육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면서 기뻐하던 녀석.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몬스터에 대한 덕질이 2배로 늘었다싶어서 덕배라는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그런 작명센스를 감히 무시해?
“그럼 덕배로 할래? 말래?”
태현이 은근히 물었다.
덕배는 식은땀을 흘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아이템 정비만 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
“네!”
태현의 말에 자리했던 인원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운 내라. 덕배!”
태현이 집으로 돌아가자, 아론이 그를 격려했다.
“넌 닥쳐···.”
“키사마! 격려해줘도 지랄이고.”
“···미친놈들.”
발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덕배가 그에게 일침을 놓았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다. 뼈다귀!”
“으아아!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이 개새x가!”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결국 이안이 싸움이 날 것만 같은 광경에 끼어들었다.
여러모로 피곤한 동료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태현은 곧장 킹의 상점을 이용했다.
업적 포인트 3,000점을 사용하기 전에 가지고 있는 잔액으로 아이템을 구입하기로 했다.
[8,980,655,750원]
‘진짜 대박이네···.’
잔액은 89억 원이 찍혀있었다.
태현이 혀를 내둘렀다.
게이트에만 신경을 썼던 터라 돈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흠··· 그렇다고 다 쓸 수는 없고.”
어쨌거나 이 돈은 길드 자금으로 쓰일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돈을 아껴서 써야했다.
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마기에 저항할만한 아이템이 있냐는 게 문제겠지.”
태현은 아이템을 구석구석 뒤졌다.
“찾았다.”
그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특수 탭.
그곳에는 신기한 아이템들이 즐비했다.
그 중에서도 태현이 고른 것은 하나의 물약이었다.
[트랜스폼 물약 : G]
-약 6시간동안 원하는 종족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6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종족으로 돌아옵니다.
*단 이 물약은 중복해서 마실 수 없습니다. 효과는 단 1회만 나타납니다.
*다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365일이 지나야 합니다.
-가격 : 1,000,000,000원(한화 기준)
“이거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마계니까 악마로 변한다면 출입이 가능할 것이다.
마땅히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아이템은 없었다.
그러니 유일한 희망은 이 물약 하나였다.
그렇지만 1회라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괜히 함부로 들어갔다가 겨우 빠져나온다고 해도, 트랜스폼이 풀리면 다시 재입장이 불가능해진다.
“흐음··· 어쩐다.”
어떻게 보더라도 답은 정해져있었다.
일단은 성장을 거듭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들어가도 클리어가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퀘스트는 등장한 적이 없었기도 하고, 마치 자신이 성장해야할 길을 인도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자.”
태현은 망설임 없이 물약을 구입했다.
그 다음으로는 장비 탭으로 넘어갔다.
이제 6성으로 승급한 녀석들에게 줄 선물을 고를 차례.
물론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 녀석들은 제외다.
‘이 정도면 되겠지?’
태현은 빠른 속도로 아이템들을 구입했다.
장비 아이템은 총 14개.
19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아이템을 구입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았던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수하들을 조금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다음은 업적 포인트를 이용해서 전력을 보강하는 일이다.
[골드 등급]
-전투부대 확장권(+20)
-랜덤 소환권(히든 포함)
-성장 시도권(1~6성)
‘흠··· 주요 아이템은 언제 봐도 괜찮단 말이지.’
처음에는 마스터리북을 고를 셈이었는데, 지금 주요아이템들을 보니 소환권과 확장권을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왔다.
‘일단은 마스터리북부터 확인하자.’
태현은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업적 포인트야 많이 있기도 하고, 마스터리북을 확인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태현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스터리북을 하나 골랐다.
[얼음 화살]
-화살과 얼음의 기운이 융합한 화살을 만들어냅니다.
-화살에 맞은 이들의 몸이 5초간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파괴력은 약하지만, 움직임을 묶어 추가 공격에 용이한 스킬입니다.
-가격 : 1,000P
검을 다루는 스킬 중에서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지만, 궁은 달랐다.
얼음 화살.
빙결효과가 있는 스킬이기에 전투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1,000포인트라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투자할 가치는 충분한 아이템이다.
태현은 마스터리북을 곧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나머지 2,000포인트는 랜덤 소환권에 전부 투자했다.
인원 확장은 500명으로 늘어났기에 당분간 필요 없었기에 구입하지 않았다.
‘등급을 올리려면 업적 포인트가 더 필요한가보네.’
3,000포인트를 투자했으니 등급이 오를 줄 알았는데, 골드 등급은 바뀌지 않았다.
태현은 컴퓨터를 종료하고, 다시 안식처로 돌아갔다.
수하들에게 줄 아이템.
그리고 마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안식처에 들어온 태현은 곧장 수하들에게 장비 아이템을 착용시켰다.
“주군··· 감사합니다!”
“주군께서! 미천한 저에게 선물을 주시다니!”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얼마나 기쁘면 저럴까?
“저··· 한태현 헌터님?”
마침 박성호도 그에게 다가왔다.
태현이 완성된 복지처를 힐끔 보았다.
확실히 100% 완공된 모습.
“약속은 지킵니다.”
태현의 말에 박성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러면 지금 바로 나가볼 수 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내보내달라는 듯, 그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태현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일단 할 이야기도 있고, 제가 급히 다녀와야 될 곳이 있어서요.”
“네···? 여기서 조금 더 있으라고요?”
만개했던 웃음꽃이 시들어졌다.
1초도 여기서 있고 싶지 않았다.
박성호는 당장이라도 내보내달라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었지만, 태현의 얼굴이 너무 진중했다.
지금은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네. 늦어도 6시간 이내에는 돌아올 테니, 성에서 조금 쉬고 계세요.”
“아··· 네.”
태현은 수하들에게 박성호를 괴롭히지 말고,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는 ‘트랜스폼 물약’을 꺼냈다.
무려 10억짜리 아이템이다.
‘일단 마셔볼까?’
태현이 단단히 잠겨있는 뚜껑을 열고, 순식간에 들이켰다.
그러자 하나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어떤 종족으로 변화하시겠습니까?]
‘악마.’
[‘악마’로 변화합니다. 제한시간은 6시간입니다.]
메시지와 함께 그의 몸이 변화했다.
수하들과 박성호는 눈을 부릅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간에서 악마로 변화하는 과정.
하얗던 피부가 검게 묽들었고, 악마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양들도 신체 곳곳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2개의 붉은 뿔이 솟았고, 등에는 박쥐날개와 흡사한 날개가 펄럭였다.
“됐군.”
태현은 무사히 변화를 마침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주군!”
“아니, 이게 무슨!”
“히이익!”
박성호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그만! 이건 아이템으로 잠시 변화한 것뿐이다.”
태현은 안심하라는 말과 함께 물약에 대해 설명했다.
그제야 수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박성호는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놀란 것이었다.
“어쨌거나 여기는 나 혼자 갈 수밖에 없어.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주군! 저희도 가면 안 되겠습니까?”
“마기가 가득 차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는 나 혼자 가야 돼.”
마기로 막아놓았다는 것은 외부의 침입을 전력으로 막고 있다는 소리다.
태현은 수하들을 뒤로 하고, 포탈로 다시 들어갔다.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포탈에 온 몸을 맡겼다.
다만, 인간의 모습과 악마의 모습이라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
그러나 그런 차이가 입장 유무를 바꿔놓았다.
[‘마계 : 제로스의 성’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훗, 단순히 외형만 변한 게 아니었군.’
트랜스폼 물약은 그 안의 내용물까지도 완벽하게 악마로 바꿔주었다.
그러니 마기가 태현을 친숙한 존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태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마계 : 제로스의 성 입구’에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