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마계 : 제로스의 성(3)
*“빚? 지금 네놈에게 빚을 진 기억은 없다만?”
제로스가 턱을 어루만지며 태현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에 있는 그에게는 빚을 진 기억이 없었다.
초면인데다가 이렇게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임요한.”
태현은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제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계약을 끊은 게, 네 놈 짓이었나?”
“그렇다면 어쩔 거지?”
태현이 그 말과 함께 시위를 당겼다.
곡괭이가 어느새 궁으로 변한 모습에 제로스가 감탄했다.
“호오? 그건 구르카가 사용하던 능력인데··· 네 놈도 쓸 수 있는 건가?”
“궁금한 게 있다. 순순히 말해준다면, 네 처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지.”
“네 궁금증을 내가 왜 풀어줘야 하지? 웃기는 놈이군!”
제로스가 분노했는지 주먹에 서린 마기를 태현에게 쏘았다.
콰지직!
마기는 태현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그러나 그가 빠른 움직임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는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얼음 화살.
화살은 제로스의 가슴에 직격했다.
“커헉! 이게 무슨!”
아무리 힘이 약해졌다지만, 제로스는 태현의 레벨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200~220사이.
힘이 약해졌다지만 자신은 240이다.
태현이 혼자서 들어오는 짓은 미련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현은 여유롭게 피하고는 화살까지 자신에게 직격했다.
‘설마 레벨을 숨긴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화살은 또 뭐란 말인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은 느낌이다.
“당황했나보네?”
태현은 히죽 웃으며 유령검 3개를 소환했다.
능력치 30%가 추가로 상승한 것은 모르는 눈치다.
그리고 얼음 화살의 능력인 빙결 5초.
제로스가 몸을 제어할 수 없자,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태현이 이번에는 일반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이번 화살 역시 제로스에게 직격했다.
“크흑! 이 놈이!”
능력치게 맞게 보정된 화살이었기에 제로스에게 타격을 주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도우러 오는 이는 없었다.
태현이 다시금 얼음 화살을 만들었다.
마스터리북의 설명에는 적혀 있지 않았는데, 얼음 화살은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번 사용했으면, 일반 화살로 적을 명중시켜야만 다시금 생성이 가능했다.
“말 할 생각이 없으면 빨리 끝내자.”
어차피 추궁해도 입을 열 생각이 없다면, 그대로 끝을 보면 된다.
“자··· 잠깐!”
제로스는 그제야 손을 들어 급히 입을 열었다.
태현은 시위를 당긴 상태로 행동을 중지했다.
“뭐지?”
“마··· 말하겠다. 잠시 들어봐!”
“흠, 좋아. 그럼 말해봐. 다만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 화살은 다시 네 놈을 맞출 거야.”
능력치 자체만으로 제로스를 뛰어넘은 뒤다.
그렇기에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좋다··· 먼저 어떤 것부터 대답하면 되지?”“임요한과 계약한 이유부터 말해.”
“알았다. 그렇다면, 계약을 하게 된 배경부터···.”
“본론만.”
태현이 말을 싹둑 자르자, 제로스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하지만, 여기서 반항한다면 저 화살이 다시금 날아올 것이다.
결국 이번 대화에서 을은 자신이라는 소리다.
제로스가 침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힘을 되찾기 위해서다.”
“힘을 되찾아?”
“그래···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내 힘의 3분의 2가량이 다른 놈에게 넘어간 상태다.”
“누구한테 넘어간 거지?”
“너와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다.”
“그래?”
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흥미가 생겼다.
태현은 겨누고 있던 화살을 회수했다.
그제야 제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힘으로 태현을 건드릴 수 없다면, 그의 비위를 맞춰서 이 상황을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계약을 통해, 그 놈을 처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제로스는 혹여나 태현이 마음을 바꿀까 싶어 급히 입을 열었다.
“그 인간이 누군데?”
“나리유키 코타로. 찢어죽일 놈이지.”
나리유키 코타로.
태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리유키 코타로는 현재 갓(G)급 각성자로 어둠의 힘을 다룬다고 알려져만 있다.
물론 그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다.
그가 싸우는 것을 가까이서 본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서 인간에게 힘을 주게 되었지?”
“······.”
제로스의 말문이 턱 막혔다.
“대화는 여기까진가보군.”
태현이 다시금 제로스를 겨누고 시위를 당겼다.
당장이라도 얼음 화살을 쏠 것만 같은 모습.
“자··· 잠깐! 처음 계약했던 인간이 나리유키 코타로였다.”
“힘을 준 이유는?”
“···몬스터를 처단하려는 인간들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없애려는 이유는?”
태현은 쉬지 않고 질문했다.
어차피 죽일 거, 뜯어먹을 건 확실하게 뜯어먹자는 심리였다.
제로스는 그것도 모르고, 그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주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다른 차원에서 몬스터가 넘어온 지가 얼마나 됐지?”
“질문은 받지 않아.”
“일단 들어봐···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큰 위기가 닥칠 거다.”
“위기?”
“그래. 희망을 주고,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거지.”
“일정한 시기라···.”
제로스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했다.
왠지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에 인내와 시련의 방에서 보았던, 구르카의 회고록 때문이다.
그 역시 힘을 키우면서 희망을 얻었지만, 끝내 좌절하고 말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지구에서도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그 일정한 시기는 지구로 따지면 15년 정도일 거다.”
“흠? 지구의 시간을 알아?”
“계약을 통해 엿봤다. 어쨌거나 나리유키 코타로는 쉽지 않은 녀석이었다. 내가 넘겨준 힘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계약을 파기시키고, 내 3분의 2가량 되는 힘을 가져갔다.”
“그렇군. 그럼 네 놈은 내 적이라는 소리군? 방해하려는 게 목적이라면서?”
임지성은 임요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죽임을 당할 위기가 수차례 있지 않았던가?
어떻게 봐도 제로스는 그의 적이었다.
“그렇다. 그렇지만, 원하는 질문에 전부 답하지 않았나? 공격은···.”
“알겠어.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태현은 그의 말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알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게 뭐지?”
“몬스터가 출현하는 건, 누구 소행이냐?”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된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궁금했다.
어째서 이런 힘이 생겼는지.
몬스터가 왜 출현하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제로스는 그가 원하는 답을 꺼내놓지 않았다.
“모른다고?”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어 반문했다.
“그래. 나는 그저 흥미를 돋우는 녀석과 계약을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 뿐이고.”
“···알겠다.”
“질문에 모든 것을 대답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지 않겠나?”
제로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3분의 2의 힘을 빼앗긴 것이 커다란 타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임요한이 S급으로 각성했던 것은 9년 전이다.
그렇다는 것은 균열이 일어나자마자 코타로가 계약을 했고,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제로스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소리인데.
‘생각보다 엄청난 괴물인 모양이군.’
태현의 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러면서 그가 시위를 놓았다.
얼음 화살은 그대로 제로스의 가슴에 직격했다.
“커헉!”
제로스의 몸이 다시금 굳었다.
빙결 효과로 눈동자밖에 굴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5초.
태현은 여기서 끝을 볼 생각이다.
그가 일반 화살을 소환해서는 다시금 쏘았고, 얼음 화살을 소환해 쏘는 식으로 반복해서 공격했다.
“크악! 어째서냐!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나!”
바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놈 때문에 내 친구가 9년 동안 개고생 했거든. 그러니 방금 질문은 그 보상이라 생각해라.”
“뭣!?”
“그리고 내가 여기 들어온 것은 네 놈을 죽이기 위해서였고. 알아듣겠어?”
“이 찢어 죽일 놈이!”
제로스가 굳어진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무리였다.
방금 얼음 화살로 다시금 5초간 몸이 얼어붙었다.
태현은 궁을 검으로 형태 변화 시키고는 제로스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가차 없이 베었다.
서걱.
태현의 검과 유령검의 합동공격으로 제로스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마계의 왕 : 제로스를 처치하셨습니다.]
‘쉽네.’
태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제로스의 떨어진 목을 내려다보았다.
코타로가 아니었더라면, 이 싸움이 성사되려면 한참이나 더 걸렸으리라.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도 3이나 올랐다는 메시지가 울렸다.
[‘마스터리북 : 마기 제어’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포인드 5,00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군주 경험치 2,000이 지급되었습니다.]
[군주 Lv.4 -> Lv.5로 상승합니다.]
[‘마계의 왕’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메시지 울리는 거 봐.’
태현은 질색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어쨌거나 그만큼 보상이 후하다는 것이었으니까.
보상에 관련된 메시지라면, 100개든 1,000개든 떠도 상관없다.
‘보상은 전부 확인했고, 나머지는···.’
태현이 등을 돌렸다.
보스인 제로스를 잡아들였다.
그렇지만, 아직 밖에는 악마들이 수두룩했다.
지금 상태라면, 악마들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마스터리북에 있었다.
[마스터리북 : 마기 제어]
-마계에 둘러진 마기를 제어합니다. 제로스가 사용하던 가장 강력한 스킬입니다.
*단, 사용할 수 있는 주체는 악마입니다.
설명은 이게 전부였다.
짧고 굵은 설명.
태현은 마음에 들었다.
그는 곧장 마스터리북을 사용했다.
‘지금의 난 악마라고?’
물론 트랜스폼이 풀리면,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지금 마스터리북은 사용이 가능했고, 그의 스킬 란에 마기 제어가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좋아. 이제는 봉인했던 마기를 풀어버리면 끝이지.”
봉인된 마기를 풀어버리면, 수하들이 포탈을 이용해 마계로 진입이 가능해진다.
[봉인을 해제하시겠습니까?]
힘이 약해지고, 마계를 봉인하는데 많은 마기를 사용했던 제로스와는 다르게 태현은 곧바로 봉인 해제가 가능했다.
힘이 약해졌기에 마계를 지키기 위해 마기로 봉인해놓은 것들.
이제는 해제할 것이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봉인했던 마기가 흩어집니다. 악마들의 능력치가 해방됩니다. 그들의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20% 상승합니다.]
“어? 이건 아닌데?”
태현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악마들을 처리할 생각으로 마기의 봉인을 해제했던 건데.
설마 그 봉인이 악마들의 힘을 억제하고 있었을 줄이야.
“조졌다···.”
조졌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수하들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악마들의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20%가 상승하면, 싸움이 꽤 어려워질 것이다.
일반 몬스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여기 있는 악마들 역시 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쾅!
탁탁탁!
쾅!
탁탁탁!
슬슬 악마들이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제로스의 방으로 몰려드는 중이었다.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태현은 검으로 변한 곡괭이를 쥐고는 악마들을 기다렸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처리하고, 왔던 포탈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수하들을 부르자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악마들을 처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자신이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다.
“왔다.”
바로 앞까지 들려오는 발소리.
태현이 유령검가지 소환해서는 악마들에게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네놈들은 여기서 죽는다.”
그 말과 함께 태현이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를 본 악마들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마계의 왕을 뵙습니다!”
“응?”
어이가 없는 광경에 태현의 몸이 순간 굳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