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75화 (75/160)

18화 에일린의 과거(1)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악마들은 자신의 앞에서 예를 갖추었다.

마치 신하가 왕을 대하는 광경에 그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뭐지···?’

“새로운 마계의 왕께 인사 올립니다!”

그 말은 일전에 보았던 최상급 악마인 릴리에게서 나왔다.

그러자 나머지 악마들도 복명복창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갑자기 이렇게 나온다고?

심지어 그의 뒤에는 피투성이가 된 제로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그럼에도 악마들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분명 이렇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이다.

태현은 악마들을 뒤로하고, 잠시 정보를 살폈다.

‘설마···.’

정보를 살피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현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 정보를 살폈다.

[칭호 : 마계의 왕]

-마계의 왕으로 군림합니다.

-악마들은 당신을 왕으로 인정하고, 절대 복종할 것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칭호였다.

제로스를 처치하자, 보상으로 획득했던 칭호.

아무래도 이 칭호로 인해서 악마들이 자신을 복종하는 것이리라.

‘이거 참···.’

졸지에 악마들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태현은 이 사실을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쁘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역시 악마들이 악(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악(惡)의 왕이 된다는 것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악마들은 악(惡)한 모습을 일절 찾을 수 없었다.

‘잘만 관리하면, 괜찮은 인재가 되려나?’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악마들은 왕의 명령에 충실히 따를 뿐이다.

그러니 제로스의 힘이 약해졌음에도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지 않았을까?

[트랜스폼 물약을 사용한지 6시간이 되었습니다.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하필이면!’

태현이 이를 악물었다.

중요한 순간에 물약의 시간이 끝날 줄이야.

“헉!”

악마들은 정중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인간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덕분에 그들의 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왜? 문제 있냐?”

그러나 태현의 말에 다시금 평정을 되찾고 예를 갖추는 모습.

그가 인간이든, 악마든 왕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아닙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예의바른 저 말투.

도저히 일전에 보았던 악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어쨌거나 앞으로 잘 부탁하고, 새로운 동료들도 생길 거니까 트러블 없이 잘 지내도록 해라.”

“새로운 동료라면···?”

릴리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다. 너희들보다도 날 먼저 따르던 녀석들이.”

“아··· 알겠습니다! 잘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태현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자신의 명령이니까 큰 싸움 없이 지내기는 할 것이다.

그 때였다.

[마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마계와 안식처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휴··· 난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침상에 앉아서 푸념을 늘어놓는 이는 다름 아닌 박성호였다.

복지처가 완성된 지 벌써 한참이나 흘렀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안식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현이 안식처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드디어 탈출하나 싶었는데.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에 화병이 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 죽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 말은 태현의 앞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그와의 만남으로 두려움만 더 커지고 말았다.

“분명 악마였어··· 으으···.”

그의 눈앞에서 갑자기 피부가 검게 변하더니 목덜미와 얼굴에 이상한 문양이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심지어 눈동자역시 붉게 변했고, 이마에는 2개의 뿔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등에는 박쥐 날개와 흡사한 거대날개 4장이 달려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왜 그딴 짓을 벌여서는···.”

아직도 꿈에서 태현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만 한다.

가능하면, 2년 전으로 돌아가서 관리국에서 일하고 싶다.

그리고 태현을 만난다면, 그 누구보다 잘해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떠나간 배는 돌릴 수 없는 법.

특히 과거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박성호가 한숨을 낮게 쉬었다.

“땅 꺼지겠군.”

“헉!”

언제 들어왔는지 레온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성호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온 앞에서 얼 타면 그대로 고문 행이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고문을 가하는 놈.

소름 돋는 것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고문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다가오니 자동적으로 군기가 바짝 들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이제 널 건드릴 생각 없다.”

“···그게 진짜입니까?”

“그래. 네 임무는 복지처가 완료되는 시점으로 종료다. 더 이상 훈육시킬 필요가 없다 이거지.”

레온은 이 부분에서는 확실했다.

“그럼 이제 곧 돌아갈 수 있는 거겠지요?”

“물론이지. 아모스님은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태현이 그리워진 적은 처음이었다.

그 때였다.

쿠구궁!

난데없이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건 또 뭐야!?”

박성호가 흔들리는 지축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역시 등급이 낮지만, 각성자였다.

물론 레온은 아무렇지 않게 부동자세로 성 밖의 창문을 응시했다.

“돌아오셨군.”

“드디어 온 겁니까”

박성호의 얼굴은 어느새 상기되어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성을 빠져나오자마자 깨진 유리창마냥 박살났다.

“이··· 이게 뭐야···?”

어느새 성과 들판을 제외한 대지가 검게 물들어있었고, 그 앞에는 태현이 변했던 악마의 형상을 한 악마들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새로운 종자를 데려오셨구나··· 역시 아모스님!”

하얗게 질린 박성호와는 다르게 레온은 조금 흥분한 얼굴로 태현을 찾았다.

‘여기는 미쳤어! 미쳤다고!’

박성호가 소리 없는 절규를 토했다.

*대한민국 헌터관리국.

지금 관리국은 비상이었다.

수많은 직원들이 난잡한 태도로 업무를 수행했고, 관리국에 소속된 헌터들은 급히 대전으로 출장을 갔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S급 게이트.

지난 몇 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게이트.

향우 2~3년은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번 S급 게이트가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 발생했다는 것은 매우 뼈아팠다.

“S급 게이트라···.”

관리국장인 채병국은 자리에 앉아 각 과의 팀‧부장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보고가 계속 될수록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그토록 등장하지 않기를 바랐던 S급 게이트가 대한민국에 발생하다니.

수많은 헌터들과 비각성자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S급 게이트.

그것은 가히 공포였다.

헌터들이 G~E급 헌터로 등급이 나뉘어있다고는 하나, 그 게이트의 등급과 맞먹는 것은 아니었다.

A급 게이트 하나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A급 헌터들이 동원되어야하는 것만 하더라도, 답이 나왔다.

즉,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S급 헌터 30명이 필요하다.

여기서 G급 헌터가 있다면, 감지덕지.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그런 자원이 없었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일본 등 대한민국과 밀접한 나라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많구나···.”

채병국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 해답에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그것은 보고를 하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S급 게이트가 발생한지는 이제 4시간 째.

아직 몬스터가 출몰하지는 않았지만, 제한시간이 오버된다면 그대로 몬스터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똑. 똑.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누군가 국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채병국의 말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국장의 비서였다.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국장님··· 다름이 아니고, 국무총리님께서 관리국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국장실로 연결해달라고 하셔서···.”

“음··· 바로 받도록 하지.”

보고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전화는 비서실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돌려놓았다.

채병국은 다시금 전화를 돌려서 국무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네. 관리국 채병국입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국무총리 이세관입니다.

-네. 총리님께서도 S급 게이트에 대해 들으신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가장 먼저는 관리국에서 결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따르라고 지시를 내리셨습니다만··· 관리국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건지 궁금한 나머지, 전화를 드렸습니다.

채병국이 한숨을 내쉬었다.

최선의 수.

그들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관리국도 자신들과 같은 의견인지 확인 차 전화를 한 것이다.

어쨌거나 타국의 관리국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개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관리국이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먼저는 타국에 지원 요청을 보낼 생각입니다. S급 게이트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아마··· S급 헌터가 최소 15명 이상은 기용이 되어야 승산이 있을 겁니다.

-허어··· 그 정도인가요?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대통령님께 보고를 올리고, 지원을 요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가만 내어주시면, 관리국에서도 곧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결과가 나오면 뵙도록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어조로 전화를 끊은 채병국이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관리국에서 내릴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는 즉시, 타국에 헌터 지원을 요청하자.”

“음··· 일단 대한민국에서도 한 명이 있긴 합니다만···.”

말을 꺼낸 이는 다름 아닌 신고센터장, 진도윤이었다.

“한태현 헌터 말인가?”

채병국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일전에 만났을 때, 비무대회에 참가해달라고 부탁을 한 뒤로, 연락이 없다.

사실상 그가 거절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번 게이트 클리어에 나서준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타국보다 약세라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다.

“네. 어쨌거나 한태현 헌터의 목표는 몬스터 박멸입니다. 이번 게이트에 참가하지 않을 리가 없죠.”

진도윤은 확신했다.

그라면, 이번 게이트 클리어에 나서줄 것이 분명하다.

“음··· 그렇지만, 그 헌터는 A급 아닙니까?”

“불분명 각성자였다고는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 다른 팀‧부장들은 고개를 저었다.

태현의 힘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 가장 컸다.

그러나 채병국의 생각은 달랐다.

“당연히 한태현 헌터도 포함해야지. 분명 큰 도움이 되어줄 거야.”

“흐음···.”

“A급은···.”

S급 게이트는 상상을 초월한다.

팀‧부장들이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진도윤만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현이 집으로 돌아간 뒤, 안식처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서로를 노려보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결국 레온이 나서서 싸늘했던 분위기를 깨트렸다.

“뭐가 그만이라는 거냐? 저 놈들 얼굴 좀 봐. 아주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니까?”

레온의 말에 반박하는 것은 발락이었다.

그러자 다른 수하들 역시 발락의 의견에 동조했다.

확실히 악마들은 태현이 사라지자마자 수하들에게 행동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태현에게 고자질하기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진짜 뒤지게 처 맞아야 정신 차려. 저런 부류는.”

덕배(테이머) 역시 분노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턱짓으로 악마들을 가리키고는 이를 갈았다.

그러자 악마 가운데에서도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한껏 비웃었다.

그녀는 최상급 악마 릴리였다.

“겨우 인간들 주제에 어디서 기어올라? 흠··· 뭐 악마보다 못한 존재도 있군.”

악마보다 못한 존재.

발락을 저격한 것이다.

“뭐 인마?”

발락은 자신을 저격하는 말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악마들도 접었던 날개를 펴고, 그와 신경전을 벌였다.

“그만! 아모스님을 모시는 종자들끼리 싸움을 일으키면 어쩌자는 거냐!”

다시금 레온이 싸움을 중재했다.

태현의 이름이 언급됨에 악마들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들과는 동료가 되었으니까.

“쳇··· 알았어.”

결국 발락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휴. 하필이면, 저런 인간들과 동료가 되다니.”

악마들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러자 덕배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앓는 시늉을 보였다.

“나도 싫어. 저 날개 좀 봐. 바이러스 옮을 거 같아.”

“야!”

방금 말이 크리티컬이었는지 릴리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나머지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레온이 폭발했다.

“그만! 멈추지 않으면, 아모스님께 보고를 올리겠다. 마지막 기회야.”

“······.”

“그만하지.”

결국 기 싸움은 여기서 종료되었다.

그러나 악마들은 수하들과 상종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했다.

수하들 역시 그들에게 신경을 끄고, 각자 할 일을 위해 돌아갔다.

“후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태현이 악마들을 데리고 올 때만 하더라도, 전력이 증가되었다고 기뻐했는데.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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