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78화 (78/160)

18화 에일린의 과거(4)

*임요한과의 통화를 마치고, 오후가 되자마자 진도윤은 고구려로 향했다.

문자를 통해 오후에 대면을 하기로 결정됐다.

고구려는 이미 전달을 받았는지 진도윤이 도착하자 그를 친절하게 안내했다.

‘···?’

진도윤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들의 안내를 받아 임요한이 앉아있는 사무실로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사실 친절이라고 말하기에는 일반 길드에서 할 법한 행동이지만, 고구려는 달랐다.

이런 기본 예절 조차 되지 않고, 오히려 시비를 걸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S급 헌터가 마스터로 떡하니 앉아있는데, 함부로 제재를 가할 수도 없었다.

S급 헌터 자체가 국가의 귀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시죠.”

헌터의 말에 진도윤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차를 마시며 앉아있던 임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진 부장님.”

임요한은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진도윤은 그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별 일 없으셨죠?”

“후후, 파란만장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들이죠.”

진도윤이 임요한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확실히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인상.

일단은 그런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이번 S급 레이드지, 고구려가 왜 변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실까요?”

임요한은 눈치 있게 진도윤을 자리에 앉혔다.

이야기가 꽤 길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

“감사합니다.”

진도윤이 자리에 앉자 그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차를 내왔다.

임요한은 탁자위에 놓인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턱을 어루만졌다.

운을 떼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챈 진도윤은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임요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혹시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알고는 있습니다만···.”

저런 말을 꺼내기 위해 고민을 했다는 것인가?

진도윤은 임요한이 무슨 뜻으로 운을 뗀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 것일까?

임요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이시네요.”

“크흠···.”

진도윤은 부정하지 않았다.

“원래 저는 S급 헌터가 아니었습니다.”

“네?”

“아시죠?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요.”

“···그렇죠.”

“당시 제가 비각성자일 때, 악마와 계약을 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진도윤은 그가 살짝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임요한의 얼굴은 너무도 진중했다.

“음··· 일단 계속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들으시라고 꺼낸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 악마가 상당히 강했던 모양입니다. 단숨에 S급 헌터의 경지까지 올라갔으니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요?”

“자아를 잃고 말았죠. 그 덕분에 아들까지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면···?”

“네. 길드원들 모두 악마의 영향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태현 헌터와 아들은 제가 계약한 악마가 적대하더군요.”

“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도윤이 복잡한 얼굴로 턱을 어루만졌다.

“이번에 왕국 길드와 길드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가 패배했지만, 그 덕분에 계약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네··· 속박에서 벗어난 대신, S급의 힘까지 사라졌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부분의 힘을 잃었죠. 지금의 저는 겨우 A급 정도 될까 말까합니다.”

“허어··· 이거 참, 믿기 어렵군요.”

“그렇겠죠? 정 믿기 힘드시면 휴대용 측정기를 가지고, 시험해보셔도 괜찮습니다.”

임요한은 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헌터를 불러서 휴대용 측정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진도윤이 그것을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믿어주시는 겁니까?”

“믿지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임요한 헌터님께서 제게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이라면, 뭐 하러 자신을 여기까지 불러서 대화를 나누고, 휴대용 측정기로 보여준다고 나오는 것일까?

이전의 임요한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달라진 게 맞다.

태현이 길드전을 마무리 지었다고까지 말했으니 임요한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S급 헌터 1명이 공석이 된다는 뜻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네. 그래도 A급 헌터이니 레이드는 참여하겠습니다만··· S급은 아니니 그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게 좋겠습니다.”

“헌터님의 공석을 채울만한 헌터가 없다는 게 문제지요···.”

“왜 없습니까? 잠시 기다려주세요.”

임요한은 그 말과 함께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헌터에게 S급 헌터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그 모습에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진도윤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지시를 받고 들어온 헌터는 다름 아닌 임지성이었다.

그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임지성 헌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왕국 길드 부마스터 임지성입니다.”

“헌터님이 S급이라니요···?”

“그게··· 다시 한 번 재각성을 했거든요.”

“억···?”

진도윤이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임요한을 보았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싸움이 끝나고, 고구려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다시 한 번 재각성을 하더군요. 휴대용 측정기가 박살난 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게 무슨···.”

임요한의 쐐기에 진도윤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라진 희망이 다시금 싹트기 시작했다.

*챕터 2가 시작되었다는 메시지.

태현의 눈앞에 배경이 바뀌었다.분명 성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눈앞에는 납골당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성 주위로 밀집되어있던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다.

“내가 죽었어야 되는데! 어흐흑···.”

납골당에는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현이 천천히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눈물을 삼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론··· 결국 이렇게 됐구나.’

납골당 가운데에는 수많은 기사들과 마법사, 자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결국 이들은 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몬스터로 인한 죽음들이었다.

에일린의 몸에 들어와서 직접적으로 접하면서 레벨이 3이 올랐고, 군주 경험치도 획득했다.

그럼에도 그닥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에일린도 몬스터로 인해 자신의 사람들을 잃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태현은 결국 몸을 돌려 납골당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카만 동굴로 배경이 바뀌었다.

“후우··· 적응 안 돼. 미칠 것 같네.”

계속 휙 휙 바뀌어버리는 상황에 머리가 돌 것만 같았다.

납골당을 빠져나오니 동굴이 나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태현은 어지러움을 살짝 느끼고는 그대로 비틀어 동굴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힘을 원한다면, 동굴의 안으로 들어와라.]

‘힘?’

태현이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기자, 그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통제하기 위해 몸에 힘을 잔뜩 쥐었음에도 에일린의 몸이 동굴로 향했다.

과거 회상이다 보니 전체적인 통제는 불가능했다.

‘신기한 느낌이네.’

어쨌거나 에일린의 몸에 들어왔음에도,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에일린의 몸은 동굴의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몸치고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적만 같은.

그렇다.

자신이 각성을 했을 때에도 이런 비슷한 동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계속 들어가다 보니 하나의 커다란 문이 나오면서 말이다.

‘이 문···.’

에일린의 몸이 문 앞에 섰다.

그제야 통제가 불가능했던 몸이 움직여졌다.

“이 사람도 나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힘을 얻은 건가?”

왠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태현이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가고는 조심스레 손을 문에 붙였다.

그리고는 조금씩 힘을 주어 문을 밀어보았다.

“쉽게 열리네?”

생각보다 문은 쉽게 열렸다.

이제 여기 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다음 메시지가 그를 막았다.

[Chapter 2.가 완료되었습니다.]

[레빌이 5 올랐습니다.]

[군주 경험치 400을 획득하셨습니다.]

‘어? 야! 여기서 멈추면!’

*거의 반강제로 돌아온 안식처.

수하들은 그의 분노한 얼굴을 보고는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주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분명 포탈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혹시나 태현이 어디 부상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곁눈질로 살폈다.

그러자 태현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깨를 한 번 돌렸다.

“아픈 곳 없으니 그런 눈길은 보내지 말아주겠어?”

“죄··· 죄송합니다!”

“별 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네!”

태현의 말에 수하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그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성에 조금 더 머물고는 싶었지만, 슬슬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한다.

그렇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S급 게이트보다도 에일린이 힘을 얻게 된 과정의 끝이 너무 궁금했다.

‘다음 챕터는 250이 되어야 개방된다고 했지?’

포탈 밖으로 나가면서 뜬 메시지다.

태현은 Chapter 2.가 끝나자, 곧장 Chapter 3.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메시지가 그것을 막아버렸다.

레벨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레벨이 8이나 오르고, 모으기 힘든 군주 경험치도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면,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 씻겨 내려갔다.

일단은 250을 달성하고, 그 다음 과거를 회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집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삐삑.

드르륵.

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인마, 누가 보면 네 집인 줄 알겠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내가 좀 오래 있었지?”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임지성이었다.

아무래도 고구려와의 일은 원만하게 해결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추가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퀘스트의 보상.

‘조력자의 재각성.’

아마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임지성은 분명 더 강해졌으리라.

그 증거로 겉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보다 강해졌다.

“일단 들어와라.”

태현이 등을 돌려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았다.

임지성 역시 그를 따라 쇼파에 앉았고,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알고 있었어?”

“뭘?”“우리 가족이 변했던 이유가 악마 때문이라는 거.”

“음··· 솔직히 고구려 길드 앞에서 눈치 챘다. 그 전까지는 전혀 몰랐고.”

퀘스트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임요한을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정말 예전 모습 그대로더라. 왠지 안심이 되니까 눈물이 쉬지 않고 나오더라? 얼마나 창피했는지···.”

임지성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제 10년이다.

10년 만에 원래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태현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어쨌거나 다행이네. 그래서 넌?”

“응?”

임지성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앞으로 어쩔 거냐고.”

“아아··· 그 부분은 고민할 것도 없지. 계속 왕국에 있을 거다.”

“그래도 되겠냐? 가더라도, 난 상관없는데?”

태현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어차피 수하들도 많았고, 길드를 돌아가게 만드는 데에는 인력 면에서도 충분했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가족들도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그도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그러나 임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너무한 거 아니냐? G급 밑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영광인데? 심지어 이 반지 봐. 이런 귀한 것도 받아먹고 배신하라는 건, 좀 아니지.”

에일린의 반지를 그에게 보여주면서 단언하는 모습.

태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배신은 아니다만···.”

“어쨌든!”

“뭐··· 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따로 할 이야기는 없어?”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의 물음에 임지성은 혀를 내둘렀다.

“와··· 너 진짜 귀신이야?”

“됐고, 뭔데?”

“나 이번에 재각성했어. S급이다!”

“축하하다.”

역시 그의 예상이 맞았다.

태현의 축하에 임지성이 뚱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그게 끝?”

“응. 뭘 더 바라냐?”

“아니··· 그래도 부마스터가 S급이 되었는데, 엄청 기뻐해야 되는 거 아니야? G급이 마스터인데, 부마스터가 S급. 엄청난 거라니까!?”

“알았다고··· 그러면 이번에 S급 레이드 들어가겠네?”

S급 게이트로 많이 시끄러운 상태다.

관리국에서는 S~A급 헌터들을 대거 기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S급이 되었다면, 임지성 역시 참석하는 것이 필수일 터.

임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럼 정해졌네.”

“뭘?”

“S급 레이드. 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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