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S급 레이드(4)
*지원단 헌터가 게이트를 들어갔다는 소식이 한국과 미국에 보고되었다.
“흠··· 결국 들어갔군.”
보고를 받은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S급 레이드가 대실패로 끝나기만 기다리면 된다.
레이드가 실패했다는 소리는 안에 있는 헌터들이 전부 죽었다는 말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클리어하지 못하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살아있는 지옥.
S급 게이트.
“일단 길어야 6~12시간이면, 레이드가 종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략분석팀장인 미켈 스미스가 분석한 자료들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보고했다.
“6~12시간?”
시간 간격이 왜 6시간이나 차이가 나지?
윌슨이 설명해보라는 눈빛으로 스미스를 보았다.
“그래도 한국 S급 헌터가 8명입니다. 그것을 감안하고, 온갖 전략을 사용해서 전투를 벌인다는 가정을 두게 되면, 그 정도 시간이 나옵니다. 물론 결과는 어떻게 보더라도 패배로 끝날 테고요.”
“그래야지. 패배로 끝나야지.”
한국이 S급 레이드를 성공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S급 게이트보다 월등히 큰 크기를 자랑했다.
그 정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최소한 G급 각성자 1명, S급 각성자 20명 이상이 모여 있어야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G급 1명이 S급 40~50명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
겨우 S급 헌터 8명으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싸움이 된다는 소리다.
“흐음··· 그렇게 되면, 한국은 끝장이로군요.”
윌슨이 다과 하나를 입에 넣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으니까.”
“만약 한국 측에서 이 일을 떠벌리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극비사항이다.
그렇지만 레이드에 지원을 보낸 헌터가 A~B급의 떨거지들이라는 것이 들킨다면?
미국의 입장이 꽤나 난처해질 것이다.
윌슨은 피식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괜찮아. 그런 일이 있다면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죽이면 돼.”
S급 헌터도, A급 헌터도 대거 잃은 한국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미국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민들을 선동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없고서야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선동을 한다면, 그 사람들을 본보기로 죽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알아서 조용해질 테지.
‘뭐, 깨끗하게 가려면 S급 헌터를 지원해주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되면 미국 역시 S급 헌터를 잃게 될 것이 자명하다.
헌터 강국인 미국이 한국을 돕자고, S급 헌터를 희생한다?
미친 짓이다.
그렇기에 헌터 강국을 유지시켜야할 의무가 있는 관리국의 국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빠지기로 결심했다.
물론 최소한의 지원을 통해 미국도 손을 썼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 12시간이 지나면, 다른 나라에 전파해. S급 몬스터에 대해 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와! 드디어 지원단이 왔구나!”
헌터 한 명이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그들의 눈앞에는 이번에 레이드 지원으로 온 헌터 95명이 자리했다.
그들의 등급을 모르는 한국의 헌터들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물론 S급과 그 등급에 근접한 A급 헌터들을 제외하고.
태현 역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뭐죠? S급 헌터는 어디 갔어요?”
태현이 나서려고 하자, 그의 옆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채민희였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천태도와 백승한이 급히 막아섰다.
어찌되었든 S급 레이드에 지원을 온 것이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됐어요. 헌터님들도 다 아시잖습니까?”
그러나 태현은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봐도 A급 헌터는 잘해야 20명.
그 외에는 전부 B급이었다.
S급 레이드에서 이런 등급을 지원이랍시고 해줬다는 건가?
“음···.”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천태도를 비롯한 모든 S급 헌터들이 입을 다물었다.
S급 헌터기에 상대방의 기감을 보고, 대충 등급을 알 수 있었다.
태현이 지원단 헌터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신 겁니까?”
그러나 그의 언어는 한국어.
외국인으로 구성된 지원단 헌터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현의 말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지··· 지원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딱 한 명 있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B급 헌터.
통역 담당이 필요할 테니 넣어둔 헌터일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쉽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A~B급으로 구성되었는지 설명 좀 해주시지요?”
S급 15명, A급 90명을 보내준다는 것은 거짓이 분명하다.
이상한 조건을 내걸 때부터 대충 눈치를 챘는데, 설마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저희는 지원요청을 받아서 참가한 용병입니다. 위에서 한국 헌터님들을 최대한 서포트하라고 명령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저희들은 S급 15명, A급 80명을 지원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태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의 분노에 B급 헌터가 몸을 움찔 떨었다.
이들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 부분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단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B급 헌터는 결백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B급 헌터가 뭐가 아쉬워서 S급 레이드에 참가했을까?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왜 지원요청에 응하셨죠?”
“···네?”
갑작스런 물음에 B급 헌터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있었겠죠? 호화로운 생활 보장? 거액의 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못 알아들은 척 하지 마시고요. 그런 제안에 응했다는 건, 헌터의 자격이 없으신 분들이겠네요? A~B급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답니까? 그것도 S급 레이드를?”
“······.”
정곡을 찔렸는지 할 말을 잃어버린 표정이다.
“제 말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B급 헌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S급 게이트에 들어오면, 살아나갈 확률이 적다.
한국이 헌터 약국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증거겠지.
태현이 헌터들을 스윽 살폈다.
전부 하나같이 절박한 얼굴들이었다.
‘자격을 잃었다면 범죄자라는 소리지.’
솔직히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범죄자인 것은 둘 째 치더라도, 이 지원단에 참가한 이유 역시 돈 때문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목숨을 거는 짓은 하지 않겠지.
“여러분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태현이 손가락 2개를 펴고는 말했다.
헌터들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손가락 1개를 접었다.
“여기서 죽는다.”
“!”
B급 헌터가 깜짝 놀라며 반문하려했지만, 그가 나머지 손가락을 빠르게 접었다.
“여기서 클리어하는 것을 돕고, 이번 만행을 전부 퍼트린다.”
“그··· 그···.”
정확히 두 가지 선택지.
만약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면, 태현이 직접 이들을 죽일 것이다.
“통역.”
태현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B급 헌터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하고 있는 헌터들에게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고, 이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태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쏟아내었다.
“···시끄럽게 만드네.”
시끄러운 나머지, 태현이 헌터들을 향해 궁의 시위를 당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항의는 끊이질 않았다.
결국 시위가 놓여졌고, 그 화살은 선두에 있던 헌터의 배를 꿰뚫었다.
“커헉!”
A급 헌터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고 나서야, 주위가 고요해졌다.
태현이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계속 떠들어 봐. 통역.”
그의 싸늘한 어투에 헌터들이 입을 다물었다.
통역까지 완료되자 그들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땅으로 내리깔았다.
그제야 태현이 궁을 회수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들을 살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두 가지 선택지를 내민 건, 지금 만행에 대해서 모든 시민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죠.”
통역을 담당하는 헌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국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S급, A급 너나할 것 없이 태현의 행동을 조심스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돈은 죽어도 포기하기 싫다 이건가?’
목숨이 중요했다.
하지만, 돈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내민 선택지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태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거기 B급 헌터님.”
“네··· 네!”
“먼저 대답해보세요. 어쩌실래요?”
“···이대로 돌아가 봤자 죽음뿐입니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죽음뿐이라고요?”
B급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S급 레이드 클리어에 기여만 한다면, 호화로운 삶이 보장되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말해보세요.”
“사실 저희들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던 죄인들입니다.”
고개를 떨어트리고, 천천히 말하는 모습에 나머지 헌터들 역시 숙연해졌다.
비록 언어는 한국어였지만, 그의 목소리 톤이나 떨림만 보더라도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반면, 태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명령 불복종입니다.”
“···뭐?”
*잠시 멈췄던 레이드가 다시금 진행되었다.
지원단 헌터들은 일단 합류해서 한국의 헌터들을 서포트하는 것으로 임시 결정되었다.
“뒤!”
천태도가 소리쳤다.
“네.”
백승한은 빠르게 활의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콰직.
날카로운 화살에 포이즌로드 주니어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마무리는 내가 하지!”
최강식은 몬스터가 쓰러지자마자 놈에게 다가가 갑옷을 부수고, 녀석의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는 이후 백승한이 쓰러트린 몬스터들을 하나 둘, 깔끔하게 처리해나갔다.
이번 사냥도 얼추 마무리되자, 성수연이 최강식에게 다가와 몸에 묻어있는 오물들을 깔끔하게 제거해주었다.
“투박한 걸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투박하다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아··· 알았어요.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성수연이 귀를 막고,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최강식이 피식 웃었다.
S급 레이드 치고는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의 중심에는 태현이 있었다.
“지성아, 호흡 좀 맞춰봐라. 뭐 하냐!”
몬스터를 때려잡고 있는 태현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네가 생각 없이 들어가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의 말에 지지 않고 반항하는 임지성의 모습.
그렇지만 그의 요구에 순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역시 마스터를 따르는 부마스터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포이즌로드 주니어 Type-3]
안으로 진입하면 할수록 몬스터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바뀐 형태가 나타날수록 이전 형태의 몬스터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자랑했다.
아직까지는 상대하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지금보다 몇 배로 강해진다면 상대하기가 꽤나 어려워질 것이다.
괜히 S급 게이트가 아니었다.
서걱.
태현이 마지막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굿.”
같이 호흡을 맞췄던 임지성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도 굿.”
태현도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임지성이 마법으로 서프트해주니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S급으로 재각성을 했다고 하더니, 지금은 꼭 필요한 전력이 되어주었다.
“자, 그럼 계속 들어갑시다!”
태현은 헌터들이 재정비를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직은 안심하기는 이른 단계.
일단은 이 던전에 대한 조사를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이 더 급했다.
최소 B급 이상의 헌터들만 모여 있었기에 재정비할 틈을 주지 않아도, 아직 컨디션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정말··· 이상한 곳이야.”
채민희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전진했다.
독 안개를 발사하는 꽃들이 가득한 것은 둘 째 치더라도, 꽃의 숫자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아까는 보이지 않던 가시 덩굴들도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런 가시에도 독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저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보이는 군요.”
“에? 그럼 여기 동굴이었던 거야?”
“뭐야··· 동굴느낌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동굴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태현은 알고 있었다.
여기가 동굴로 이루어진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조사를 늦출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여기 밖에만 한 번 들여다본 뒤에 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태현의 말에 헌터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미 그가 레이드의 지휘를 맡고 있었다.
천태도는 눈물을 머금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힘내세요. 천태도 헌터.”
“···아까부터 힘내고 있어요.”
백승한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고는 태현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동굴 밖을 바라본 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들 왜··· 으음···.”
궁금함에 다가갔다가 이내 동굴 밖을 바라보자 자연스레 침음을 흘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하나의 나무였다.
그 나무에는 동굴 안에서 보았던 독 안개를 뱉어내던 꽃.
그 꽃이 만개해있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즐비했고, 독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이 그들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