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S급 레이드(5)
*태현이 20분 정도 숲을 천천히 훑었다.
‘흐음··· 아무래도 수하들을 부르지 않으면 힘들겠는데.’
그렇게 내린 결론이다.
넓어도 너무 넓은 숲이다.
짙게 깔린 독 안개.
정확하게는 맹독이 가루가 되어 흩날려서 안개를 형성한 것이다.
지금 이 인원으로 숲을 밀고 간다고 하더라도, 사망자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위험한 환경이라는 것이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증거였다.
‘후··· 수하들을 소환하는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자신이 수하를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확히 임지성밖에 알지 못했다.
물론 그의 뒤에 있는 고구려 길드원들은 수하들과 면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수하들이 자신이 소환하는 소환수임은 모르고 있다.
그저 태현이 숨겨놓은 비상전력이라는 것만 알 뿐.
그렇기에 이 레이드도 수하들을 대동하지 않고, 순수 혼자만의 힘으로 클리어하려고 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나온 동굴마냥 좁은 길목이었더라면, 혼자서 잡아나갈 생각이 변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준비 됐나?’
태현이 수하들에게 물었다.
‘당연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수하들의 실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갑자기 미소를 짓는 모습에 헌터들이 살짝 당황한 것이 보였다.
태현이 등을 돌려 헌터들에게 물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킬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되겠죠?”
스킬!
헌터들의 눈이 빛났다.
그럼 아까까지 사냥을 했을 때에는 제대로 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가?
이런 무시무시한 숲에 대비할만한 스킬이 있는 건가?
“네!”
“무조건 헌터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태현이 스킬까지 사용한다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지금 이 S급 레이드의 희망은 오로지 태현이었다.
그가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이 붙어 있느냐, 떨어지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네. 그럼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태현이 헌터들의 눈빛들을 한 차례 훑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5성 이상들은 전부 나와.’
S급 레이드.
물론 5성은 A급에 해당하는 실력자였지만, S급 레이드인만큼 숫자 역시 중요했다.
태현이 명령을 내리자 그의 앞에 검은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헌터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고, 임지성은 익숙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검은 포탈에서 수많은 인원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헉!”
“저게 뭐야···?”
“설마 저거 스킬은 아니지···?”
헌터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자신들이 보는 광경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군!”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명이 훌쩍 넘어가는 수하들이 태현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그 모습이 헌터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래. 어떤 명령을 내릴지는 알고 있겠지?”
“네. 여기 있는 몬스터를 처단하면 되겠습니까?”
이안이 대표로 말했다.
지략가인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맞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몬스터를 처단하는데, 힘을 쏟아 붇는다.”
“알겠습니다!”
“렌.”
이번에는 팔라딘-렌을 불렀다.
성기사인 그가 신성력을 다량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독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 증거로 소환되자마자 수하들을 해독시키고 있었다.
“네. 주군.”
렌이 대답했다.
“신성력으로 인원들을 전부 보호할 수 있겠나?”
“보호할 수는 있지만··· 여기 있는 모두를 지키기에는 다소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 있는 모두.
헌터들을 전부 포함해서다.
태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소환한 녀석들만 한해서 묻는 거다.”
“그 정도라면, 꽤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렌의 입에서 만족스런 대답이 들려왔다.
태현이 히죽 웃었다.
S급 레이드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수하들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대폭 감소될 것이다.
“좋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자.”
“네!”
“네!”
그의 말에 크게 대답한 수하들이 이안의 전략에 따라 흩어지기 시작했다.
넓은 숲이다 보니 다 같이 모여 이동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하들이 떠나고, 태현이 등을 돌려 헌터들을 보았다.
그들의 입은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 몰랐다.
임지성만 빼고.
“설마··· 저게 다 소환수?”
“그럼 이전에 봤던 게··· 전부 소환수였다는 거야? 숨겨놓은 헌터가 아니고?”
고구려 역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앞으로 이동하죠.”
태현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수하들이 옆을 헤집고, 나아갔기 때문에 자신은 앞으로만 이동하면 된다.
이 역시 이안이 만들어놓은 작품이다.
‘정말 좋은 녀석들이야.’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거기까지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면 된다.
물론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를 족히 걸어야 도달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천태도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연신 흥분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 태현의 옆에 섰다.
“왜 옆에 계십니까?”
굳이 자신의 옆에 설 필요가 있나?
태현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자 붉게 상기된 얼굴을 태현에게 바짝 붙였다.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뭐가요?”
“왜 계속 A급이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A급 맞는데요?”
“······.”
태연한 얼굴로 A급이라고 단언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천태도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빨리 출발합시다.”
수하들이 이미 떠났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커다란 나무에 자리 잡은 꽃들이 독을 흘리고 있었다.
계속 해독버프에 의지할 수는 없는 상황.
태현은 렌에게 수하들에게 집중적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기에 여기 전력은 성수연의 힐과 S급 헌터 오지은의 해독 버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가죠.”
“그럽시다.”
태현이 출발하자, 헌터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반면, 지원단 헌터들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여기서 살아나간다고 하더라도, 범죄자들을 한국에 보냄과 동시에 거짓을 일삼은 미국 관리국의 만행을 퍼트려야만 한다.
그랬다간 자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복수합시다.’
그럼에도 이들이 버티는 이유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B급 헌터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빨리 가자.”
“후우··· 정말이지···.”
결국 지원단 헌터들도 앞서 출발한 한국 헌터들의 뒤를 따랐다.
*지금 대전의 거리에는 헌터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가게.
기차도 운행이 중지되어 역도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많은 인원들로 인해 시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트에서도 떨어져서 거주하는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 거주해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하는 것을 보는 게 최선이었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뭐 해?”
집안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푸념에 그 옆에 앉아있는 여성이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그만해요. 도현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후우. 나도 알고 있어.”
“지금은 레이드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지원단 헌터들이 들어갔다고 말한 지 10시간이 지났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알고 있어요. 만약 레이드가 실패로 끝난다면, 이대로 죽는 걸 기다려야겠죠.”
여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두려운 것은 매한가지.
그럼에도 태연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
“···이거 봐봐.”
남성이 건넨 휴대폰에는 기사들이 잔뜩 실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S급 레이드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지원받은 헌터들은 S급이 맞는지 의문.]
“이게 뭐야?”
그녀가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남성은 고개를 떨어트릴 뿐이었다.
“······.”
여성이 불안한 얼굴로 기사를 클릭했다.
-이번에 지원단으로 온 헌터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급하게 찍은 거라 화면이 많이 흔들리는 바람에 인물을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여기 지원단 헌터들 중에서 S급 헌터로 보이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 국가에서도 S급 헌터들은 귀중한 인재로, 하나같이 유명인사들입니다.
그런데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각 나라의 S급 헌터들의 얼굴과 대조해보았을 때, S급 헌터로 보이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같은 헌터 강국에서 지원 부분을 속일 리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현재 제보자는 헌터 관리국에 신고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합니다.
ㄴ아니 미x!
ㄴ구라치지마··· 한국 혼자서는 S급 레이드 절대 못 깨.
ㄴ목숨이 걸린 일이다. 거짓말로 선동하지 마라.
ㄴ잘 보이지도 않네. 저거 구라일 확률 높다.
ㄴ에효··· 살기 싫은데, 이 참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ㄴ저런 놈이 몬스터 앞에 서면 살려달라고 오줌 지릴 놈이야.
“아닐 거야···.”
여성은 그대로 기사를 꺼버렸다.
괜히 불안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괜히 이것 때문에 불안해져서···.”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을 거야. 관리국에 갔다니까 결과가 제대로 나오겠지.”
관리국이라면, 해답을 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콰직!
레이드는 순조로웠다.
태현이 선두에 서서 대량의 몬스터와 독을 풍기는 가시덩굴, 꽃들을 제거했기에
뒤의 헌터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태현아! 뒤!”
임지성 역시 가만히 구경만 하지 않았다.
그가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최선의 서포트를 선보였다.
나머지 헌터들 역시 뒤를 기습하는 몬스터들이나 태현이 처리하지 못한 가시 덩굴들을 제거했다.
‘주군, 여기에는 보스로 보이는 놈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큰 나무로 보이는 곳까지 이동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수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숲의 3분의 1지점.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도달하려면 멀고도 멀었다.
슈욱!
때마침 태현을 향해 화살 하나가 쇄도했다.
그러나 그 화살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잘못 겨냥한 게 아니다.
그가 순식간에 피해낸 것이다.
태현은 화살을 피하고는 날아온 방향을 향해 얼음 화살을 쏘았다.
끄악!
화살에 관통당한 채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몬스터.
“빨리 마무리 짓도록 하지!”
최강식은 이번에도 몬스터가 쓰러지자마자 달려들어서 처리했다.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을 가로채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보상은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오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너무 넓어.’
태현이 미간을 좁혔다.
주위에는 독을 품은 풀과 나무들이 즐비했다.
9시간 가까이를 이동했는데도 겨우 3분의 1지점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몬스터들은 등급이 올라갔는지, 커다란 나무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한 놈들이 등장했다.
물론 아직까지 사냥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지만 등 뒤에 있는 헌터들이 문제였다.
그 중에서도 오지은.
S급 버퍼다.
지원단 헌터들이 오기 전에도 많은 인원들에게 해독 버프를 걸었는데, 지금은 지원단 95명이 추가되면서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들에게 해독 버프를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레벨이 높고, S급의 헌터라고 하더라도, 이 많은 인원들에게 버프를 9시간이나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 증거의 오지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지 오래였다.
“괜찮아?”
성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힐을 계속 주었지만, 힐은 컨디션과 상처들을 회복하는 용도였지.
버프를 길게 유지하도록 만들어주는 능력은 아니었다.
“네···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오지은이 애써 웃었다.
‘흐음··· 어쩐다?’
차라리 렌을 불러들여 인원들을 분담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렌 역시 지금 있는 인원들을 회복하는 데에도 벅찼다.
그런 상황에서 렌에게 인원을 늘려주는 것은 미친 짓이다.
“속도를 더 올리겠습니다.”
현재로써는 최선의 방법이다.
9시간에 걸쳐 3분의 1지점에 왔으니 인원을 선별해서 되돌려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전진만이 살길이라는 것.
“네.”
“네.”
헌터들 역시 태현과 같은 생각인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