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S급 레이드(6)
*그를 포함한 전투형 S급 헌터들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헌터들은 아니었다.
치유계 S급 헌터 성수연과 오지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좀 위험한 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이것도 임지성이 ‘축복의 노래’를 시전 해주었기에 이 정도지.
‘축복의 노래’마저 없었다면, 오지은은 진작에 쓰러졌으리라.
‘축복의 노래라고 해도··· 여기까지군.’
임지성은 버퍼가 아니었다.
전투형 마법사였고, 치유계 스킬이 축복의 노래였다.
그렇기에 S급 맹독에 저항할 버프는 걸 수 없었다.
‘축복의 노래’ 역시 이들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독되었지만, 죽지 않을 정도.
딱 그 정도였다.
‘후우··· 발목만 붙잡고 있으니 원.’
지원단 헌터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몹시 차가웠다.
무려 95명이다.
그런데 맹독에 저항할 수 있는 인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지은의 힘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것도 일시적이다.
벌써 게이트에 들어온 지 17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동안 오지은이 스킬의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밖에.
‘무슨 방법이 없을까?’
태현의 머리가 천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킹의 상점을 이용한다면, 이들을 치료하는 것은 금방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상점을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번뜩 하나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잠깐만··· 굳이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내 계정이면?’
휴대폰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물론 상점을 이용할 일이 없었던 것이 컸다.
태현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헌터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들어가면··· 됐어!’
정말 됐다.
이렇게 간단하게 되다니.
왠지 허탈한 기분도 들었다.
태현은 상점에서 곧장 해독제와 해독 버프로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고, 괜찮다 싶은 아이템들을 대거 구입했다.
[S급 해독제] * 10
[대천사의 축복.] * 5
대천사의 축복은 1개만 사용하더라도, 이들에게 해독 버프 작용이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S급 힐러와 버퍼의 일이 대폭 줄어들 게 된다.
“자, 오지은 헌터님, 성수연 헌터님 이리로 오세요.”
태현의 부름에 오지은과 성수연이 힘든 걸음을 이끌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S급 해독제 2개를 꺼내서 각각 1개씩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뭐죠?”
그녀들은 이런 해독제를 처음 본다.
당연할 것이다.
이건 태현만 이용할 수 있는 킹의 상점의 아이템이었으니까.
“해독제니까 마시세요.”
“해독제!”
오지은과 성수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이냐는 눈으로 태현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빨리 마시라며 손으로 제스처를 취했다.
“마셔요. 얼른!”
“네.”
“알겠어요.”
태현의 말에 의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애초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여기서 모두 죽는다.
그녀들에게는 의심을 하든, 안 하든 먹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해독제는 청량한 음료수마냥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그러자 중독되었던 몸이 깔끔하게 정화되었다.
“와···.”
성수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먹은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나타난 변화.
그녀가 놀란 눈으로 태현을 보았다.
“뭐 하세요? 빨리 헌터들을 치료하셔야죠.”
“아··· 네!”
태현이 성수연과 오지은을 치료한 이유는 그녀들의 힘으로 헌터들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력까지 회복했으니 남은 헌터들을 치료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그 증거로 중독되어 새파랗게 질린 헌터들의 안색이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하나는 해결, 그 다음은.’
이번에는 [대천사의 축복]을 꺼냈다.
하나의 작은 물약.
그러나 이 물약의 효과는 지금 환경에서 아주 최적화되어있다.
태현은 물약의 뚜껑을 열고는 그대로 마셨다.
[대천사의 축복]
-모든 상태이상을 회복합니다.
-상태이상에 따른 저항 능력 75% 상승.
-물약 복용자의 반경 200m내의 모든 종족들에게도 같은 효과가 부여됩니다.
-지속시간은 6시간입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태현이 복용했으므로 헌터들에게도 똑같이 효과가 적용된다.
물론 아군, 적군 관계없이 동일한 효과가 부여되기 때문에 독이 될 수도 있는 물약이었다.
그렇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음···? 뭐지?”
물약의 반응에 반응한 것은 오지은이었다.
S급 버퍼답게 새로운 버프가 적용되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오지은 헌터께서 버프를 쓰신 겁니까? 아까의 버프와는 조금 다르군요.”
곧이어 S급 헌터들도 버프의 효과를 느끼고는 오지은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버프를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아니에요.”
“네···? 그럼 성수연 헌터께서?”
“저도 아니에요.”
성수연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지금 버프 역시 S급에 준하는 버프였다.
S급 헌터인 이들이 아닌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임지성도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제가 걸었습니다.”
그 말에 모든 헌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한태현 헌터님께서요···?”
“그게 무슨···.”
헌터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그들의 시선을 가볍게 일축하고, 커다란 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빨리 갑시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현재 수하들도 흩어져있는 상황.
그러니 각 그룹마다 대표들에게 [대천사의 축복]을 넘겨줄 생각이었다.
태현이 걸음을 옮겼다.
“······.”
헌터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서로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군, 여기에는 보스 급 몬스터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챙이들만 가득합니다.’
‘잔챙이들 실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진할 때마다 간간히 들려오는 수하들의 보고.
이로써 보스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에 숨어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현재 얼마 남지 않은 지점.
대천사의 축복덕분에 오지은이 버프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평상시와 같았다.
‘이대로 계속 가도 되겠어.’
태현이 앞에 있는 가시덩굴을 제거했다.
“힘들진 않아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채민희였다.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옆에 서서 걷고 있는데, 우물쭈물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헌터들은 각자 임무에 충실한 상황이다.
대화를 나눠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수초가 흐르고, 채민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전에 기억하세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아, 혹시 게이트?”
“네. 그때 같이 대동하셨던···.”
“아.”
아무래도 레온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녀와 함께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임지성과 레온이 대동했었다.
당시 레온을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이번에 소환수로 등장했으니 궁금한 것도 당연하지.
“네··· 소환수인가요?”
“맞습니다.”
어차피 들킨 거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신기하네요··· 인간이 소환수가 될 수 있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소환하는 자신도 신기했다.
소환권으로 병사들을 소환하는 것도 그렇고, 소환수마냥 인간들을 불러내는 것도 그렇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았지만, 초창기만 하더라도 머리가 조금 복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 진짜 궁금했던 걸 물어봐도 될까요?”
“하세요.”
정말로 궁금했던 것.
아마 이것 때문에 레온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일 테고, 그만큼 뜸을 들인 것이리라.
“옛날 의문의 사나이라고 불리던 복면인을 아시나요?”
“······.”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의문의 사나이.
당시 보험이랍시고, 각성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신원을 감추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자연스레 잊혀 진 이름.
채민희가 진중한 눈으로 태현을 보았다.
“그 때, D급 게이트에서 복면을 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봤어요.”
2성 자객.
E급 게이트를 들어가겠답시고, 2성 자객을 D급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도록 유인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을 본 모양.
그런데 용모가 달라졌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아까 소환수에게서 그 당시 복면인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거든요.”
“······.”
“솔직히 헌터님께서도 비슷한 오오라가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에 소환수를 통해 확신했어요.”
슈욱!
마침 몬스터에게서 화살이 날아왔다.
태현은 자연스럽게 그 화살을 손으로 잡고, 부러트렸다.
대충 어떤 말인지 알겠다.
“일단 이 이야기는 끝나고 할까요?”
“···네.”
지금은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기에 군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태현은 검을 들고, 그대로 몬스터를 덮쳤다.
[포이즌로드 주니어 Type-T]
나무 근처에 도달해서 그런지 이전보다 더욱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태현의 검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미 300 중반을 넘어선 능력치와 추가 보정된 능력치까지 합치니, 몬스터들이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그의 검에 썰려나갔다.
“곧 도착입니다. 조금만 힘내죠.”
“네!”
그의 말에 헌터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처음에 숲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절망에 휩싸였는데 그가 선두에 지휘를 하기 시작하고, 해독제와 버프까지 넘겨주면서 희망으로 바뀌었다.
*“도··· 도착했다!”
나무 앞에 당도하자 A급 헌터 하나가 울먹였다.
도착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나무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흠··· 진짜 여기에 보스가 있을까?’
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숲을 헤치고 나아올 때만 하더라도, 커다란 나무에 보스가 숨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숲의 패턴이 너무 단조로웠다.
몬스터들의 공격은 화살을 날리거나 빈틈을 노리고 뒤를 치는 것이 주였다.
S급 게이트의 몬스터가 이렇게 단조로울 수가 있나?
왠지 걱정이 되었지만, 현재로 보면 이 커다란 나무에 보스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제 보스만 남은 건가···? 이렇게 쉽게?”
“글쎄··· 아직은 모르겠네요.”
그래도 S급 헌터라고,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들은 S급 레이드의 유경험자였다.
아무리 숲이 난이도가 높다고 하지만, 기존의 S급 게이트를 뛰어넘는 크기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니 이정도로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 생각에는 긴장을 좀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서 대기하고 계실 분?”
태현이 물었다.
“······.”
헌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들이 다시금 얼굴을 굳혔고, S급 헌터들은 태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없으신 걸로 알고 바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책임은 못 집니다.”
가능하면 초반에 생각했던 루트대로 보스가 도사리고 있었으면 했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태현이 걸음을 움직여 나무 아래에 빈 공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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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의 1지점을 통과한지 다시금 5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