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S급 레이드(7)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그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계단이로군.’
처음 동굴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
분명 바깥에는 커다란 나무였는데, 들어오고 나니 동굴처럼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주위로는 독을 뿌리는 꽃들이 자리했고, 원형 가운데에 계단이 떡하니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뭐야···.”
“뭐 이딴 경우가···.”
헌터들은 기껏 나무까지 도달했음에도 보스가 보이지 않음에 탄식했다.
“후우··· 지금까지 등장했던 S급 게이트보다도 크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지요.”
백승한와 성수연이 헌터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도록 한 마디씩 보탰다.
“주군!”
마침 수하들도 나무 밑까지 도달했다.
태현은 그들의 얼굴을 한 번씩 살폈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애를 먹었는지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직 싸울 수 있겠어?”
“당연합니다!”
“네!”
수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태현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열심히 싸울 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성수연 헌터님.”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힐러가 필요했다.
신성력으로 독을 해독할 수는 있었지만, 상처까지 완벽하게 치료하지는 못했다.
렌의 신성력으로는 아직 무리였기 때문.
“네. 치료말씀이시죠?”
“부탁드릴게요.”
성수연은 눈치 빠르게 수하들에게 다가가 힐을 시전했다.
다행이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 없었기에 상처의 회복은 순조로웠다.
‘힐러가 필요하겠어.’
마법사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힐은 미약한 수준이다.
전투마법에 최적화된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다 됐어요.”
성수연은 치료를 마치고, 다시금 뒤로 빠졌다.
아직 태현과 수하들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발락?”
“네! 주군.”
태현이 발락을 부르자, 그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눌러 쓴 후드를 그대로 벗었다.
“으악!”
“헉!”
헌터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불쾌하다는 듯, 이빨을 갈던 발락이 다시금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태현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후드를 눌러 써서 다들 몰랐나보네. 어쨌든 스켈레톤을 이용해서 정찰을 좀 보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발락이 쓰러지지 않는 이상, 스켈레톤들은 불사의 존재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물론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지는 못했지만, 다시금 재생에 몬스터의 발목을 잡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스켈레톤만큼 정찰의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해 줄 인물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지금 출발시켜서 정찰을 보내도록. 안 쪽 상황에 대해서는 곧바로 보고를 부탁한다.”
“네!”
다시금 동굴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무작정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찰을 통해 안의 상황을 살펴보고 들어가는 것이 헌터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망설임 없이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니까 말이다.
*-그게 정말이냐!?
전화를 받은 진도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신고센터장으로 찾아온 일반 시민.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신고가 들어왔다면서 그에게까지 연락이 닿았다.
-네··· 일단 나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여기 제보자분과 같이 있습니다.
-당장 나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곧장 센터장실을 빠져나가는 모습.
그가 향한 곳은 접수처였다.
도착하니 제보자로 보이는 남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확실한지는 모르기에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직원에게 다가갔다.
“아, 센터장님.”
직원은 진도윤을 발견하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인사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제보자는 지금 어디 있나?”
“아, 저기 앉아있습니다. 강민혁님? 센터장님 오셨습니다.”
직원이 남성의 이름을 부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제가 제보자입니다.”
“그렇군요. 신고센터장 진도윤 부장입니다.”
진도윤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강민혁이 그 손을 맞잡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잠시 센터장실로 가셔서 대화를 나누실까요?”
거짓 보고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진까지 가져와서 제출한 모습도 그렇고, 떨리는 동공을 보아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불안한 사슴마냥 바르르 떨고 있는 모습까지.
진도윤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차라리 눈앞의 남자가 관심을 사기 위해 거짓으로 보고한 것이었으면 했다.
“네··· 바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기자에게 제출하지 않은 사진도 몇 장 가지고 있거든요.”
“!”
진도윤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가 급히 강민혁을 센터장실로 데리고 갔다.
“센터장실에 커피 좀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진도윤의 지시에 직원이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센터장실에 도착하자마자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커피가 준비되었다.
그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강민혁 역시 찻잔을 입에 가져가고는 주머니에 있던 사진들을 꺼내놓았다.
직접 찍어서 현상한 사진이다.
“사진 쪽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얼핏 보아도 취미로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비싸보이는 카메라였다.
어깨에 둘러맨 장비를 보아하니 사진 쪽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네.”
그의 예상대로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진도윤이 찻잔을 내려놓고, 현상된 사진들을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넘길수록 그의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관리국에 인사과로 일하면서 타국의 헌터들의 정보까지 빠삭한 그다.
그러니 강민혁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지원단 헌터들.
그리고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먼 거리에서 확대해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질이 좋아 보는데 지장이 없었다.
“음···.”
“정말 맞습니다.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혹시나 싶어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헌터시군요?”
“네. D급이긴 하지만요.”
D급.
굳이 진도윤을 거칠 필요가 없는 등급.
그가 모르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여기 있는 사진 속에서는 S급 헌터를 찾을 수 없었다.
게이트 앞에 앉아있는 모습까지.
조작을 한 것치고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걸 신고하신 이유가 뭐죠?”
“네?”
강민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진도윤을 보았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죠. 미국이 저희를 버렸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걸 신고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겠죠.”
망설임 없는 대답에 진도윤이 살짝 놀란 눈이 되었다.
죽는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
“네. 그런데도 신고를 하시겠다고요?”
“당연하죠. 만약 최악의 상황에서 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미 한국은 끝났죠.”
“네. 그래서 신고를 하는 겁니다. 물론 레이드에서 헌터들이 죽는다면, 절망밖에 남지 않겠지만··· 그래도 타국에 지원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정도는 만들 수 있잖아요!”
강민혁의 말이 옳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연을 지키고 싶어서요. 아직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어 올린 손이 흔들거렸다.
“죽으면 뭐가 남죠? 그게 목숨을 걸만한 이유가 됩니까?”
“···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
진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믿어주세요. 저 같은 D급이 뭐 하러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겠습니까···.”
강민혁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곧장 국장실에 보고해서 정부와 미국에 접촉해보겠습니다.”
“타국에 지원요청도 보내야합니다! 들어보니까 이번 지원도 미국에서 맡은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만.”
“믿어주세요! 시간이 없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를 마칠 때까지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진도윤은 그 말과 함께 센터장실을 빠져나갔다.
직원에게 강민혁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지시와 함께 곧장 국장실로 향했다.
*“주군.”
발락이 태현에게 다가왔다.
스켈레톤이 정찰을 얼추 마쳤다는 것이다.
“말해.”
“몬스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그래?”
“스켈레톤이 몇 번이나 재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못하면, 재생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뻔 했습니다. 더 깊게 확인하기에는···.”
“알겠다. 그만 말해.”
불사의 존재인 스켈레톤이 소멸될 뻔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태현이 등을 돌려 헌터들을 보았다.
여기서부터는 B급 헌터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정찰을 보낸 결과를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통역도 확실하게 이루어졌겠죠?”
“네···.”
B급 헌터 데이지가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몬스터가 깔려있단다.
그것도 엄청난 녀석들이.
아마 B급인 자신들은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A급 중에서도 레벨이 낮은 인원은 빼고 들어갈 생각입니다. 괜찮겠죠?”
여기서부터는 쉽지 않은 싸움일 될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헌터들이 필요했다.
“네. 알겠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마음에 헌터들이 입술을 물었다.
살았다는 안도감 같은 건 없었다.
레이드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이트를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들어온 것인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비참했다.
“물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A급 헌터를 중심으로 여기 공간을 지켜주십시오. 다른 몬스터가 추가로 들어오면, 골치 아프니까.”
“···네!”
헌터들이 다시금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무런 일도 없이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비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몬스터는 없지만.’
이미 모든 몬스터를 잡아들였다.
그러니 남은 몬스터는 여기 안에 있는 것들이 전부라는 소리.
하지만, 할 일을 남겨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꺼내놓았다.
태현은 선별된 인원들을 한 차례 훑었다.
S급 헌터는 임지성, 천태도, 백승한, 성수연, 오지은, 최강식, 이도윤, 박준형.
A급 헌터는 채연화, 채민희, 임미정.
그 이외에는 150레벨 미만이었기에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태현은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채연화와 임미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채민희가 벌써 150레벨을 넘겼다니?
그의 생각을 눈치 챈 것일까?
채민희가 뾰로통한 얼굴로 태현을 노려보았다.
“흠흠··· 어쨌든, 슬슬 들어갑시다.”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곧장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선발된 S급 헌터, A급 헌터들도 그 뒤를 따랐다.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
5성은 제외되었고, 6성의 수하들만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따라나섰다.
슈욱! 슈욱!
태현이 내려가자마자 몬스터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의 화살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의 유령검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모든 화살들을 방어하는 모습.
‘훗, 최고다.’
태현은 유령검이 얼마나 사기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와··· 방금은 무슨 스킬이죠?”
백승한이 당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나 태현은 대답 대신 미소로 답을 대신 했다.
[포이즌로드 Type-A]
이제야 게이트에 걸맞은 몬스터들이 출현했다.
찬란한 녹 빛의 갑옷을 입고, 그에 따른 무기들을 갖추었다.
역시나 생김새는 이전에 만난 몬스터와 다를바 없었지만, 풍기는 기운 자체가 남달랐다.
태현이 턱짓으로 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심했다간 죽는 겁니다. 아시겠죠?”
꿀꺽.
헌터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그 말을 끝으로, 태현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