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S급 레이드(8)
*“조심하세요!”
헌터들 너나할 것 없이 몬스터들의 공격에 열세를 보였다.
당연했다.
그러나 태현과 수하들은 침착하게 몬스터들을 상대해나갔다.
“주군! 바깥의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레온이 소리쳤다.
확실히 이전에 상대했던 포이즌로드 주니어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실력 면에서도, 지능 면에서도 훨씬 뛰어났다.
그럼에도 태현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끄어억!”
태현의 검이 포이즌로드들을 사정없이 베어나갔다.
공격을 버티지 못한 몬스터들은 녹색의 피를 토하고는 그대로 절명했다.
“크윽!”
헌터들 역시 몬스터들을 천천히 처리해나갔다.
“옆이야!”
“헉!”
맹독의 기운이 서린 단검으로 백승한의 옆을 노리는 몬스터.
그는 궁수였다.
그렇기에 근접공격에 취약했다.
심지어 다른 몬스터에게 신경이 팔린 터라 커다란 빈틈이 나오고 말았다.
“괜찮아. 내가 막아주지.”
최강식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포이즌로드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주먹을 내질러 백승한에게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후우··· 감사합니다.”
몬스터의 기습에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이 풀렸다.
백승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최강식에게 감사를 표했다.
“됐어. 그것보다도 나머지 녀석들을 처리하자고.”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몬스터에게 바싹 붙었다.
무투가답게 근접공격에 매우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공간도 좁은 편이라,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몬스터들에게는 취약하다는 게 그의 싸움에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덕분에 다른 S급 헌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 뛸 수 있었다.
물론 S급 헌터에 비해서였지, 태현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서걱.
유령검으로 인한 절대방어.
능력치 보정으로 인한 압도적인 검격.
다른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베어내고, 또 베어낸다.
“더럽게 많네.”
바닥에는 몬스터의 시체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몬스터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유령검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박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압도적인 숫자에 헌터들도 질린다는 얼굴로 몬스터를 상대했다.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빨리 끝내야 될 텐데.’
유령검의 유일한 단점.
바로 지속시간이다.
스킬 레벨이 오르면서 지속시간 역시 많이 올라왔지만, 그것마저도 슬슬 한계였다.
이제 곧 유령검 없이 상대를 해야 한다.
불리한 싸움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많이 처리해야만 한다.
“사냥 속도를 올린다!”
“넵!”
수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주군! 렌과 함께 공격으로 밀어버릴 테니 한 번에 베십시오!”
목소리의 주인공은 레온이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몬스터를 구석으로 밀어버린다면, 유령검으로 베어내기가 조금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자 포이즌로드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검을 들고, 수하들을 덮쳤다.
단검을 쥔 포이즌로드는 자객이 맡아서 상대했고, 방패를 들고 탱킹을 하는 포이즌로드는 기사와 테이머가 힘을 합쳐서 상대했다.
그리고 이안의 지시에 따라 레온과 렌이 가지고 있는 고유스킬을 이용해서 남아있는 포이즌로드를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잘했다.”
태현은 그 말을 남기고는 레온과 렌의 만들어 놓은 작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레 내몰리자, 포이즌로드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이미 반응하기에는 늦었다.
태현의 검과 유령검이 몬스터들을 사정없이 베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끄억!”
“쿠웨엑!”
30초도 되지 않아서 30마리를 넘게 사냥했다.
확실히 이런 사냥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계속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는데, 그 옆에는 헌터들도 있었다.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태현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봐···.”
국장에 앉아있던 채병국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손으로 관자놀이를 강하게 눌렀다.
“지금 미국이 저희의 뒤통수를 노리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유는?”
“이걸 보십시오.”
“사진?”
진도윤이 내려놓은 것은 강민혁이 현상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방문한 헌터들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헌터들의 낯빛이 썩 좋지 못한데다가 처음 보는 헌터들이었기 때문이다.
채병국 역시 국장으로 S급 헌터들의 정보는 낱낱이 꿰고 있었는데, 이건 좀 이상했다.
“국장님이 보시기에도 어떻습니까?”
“···S급 헌터가 보이지 않는군. 그래서 이게 어쨌단 거지?”
“그게 답니다. S급 헌터는 없었다는 거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채병국이 중간에 말을 삼켰다.
진도윤의 얼굴이 무척이나 진중했기 때문이다.
“국장님, 그래도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흠··· 겨우 이걸로 정부와 미국에 항의를 하자고?”
관리국에서도 서열이란 게 존재한다.
헌터의 힘이 있는데도 왜 굳이 정부의 말을 따르겠는가?
왜 미국 관리국에 반항 한 번 못하고, 고분고분 따르겠는가?
헌터들에게는 관리국이 큰 힘을 발휘하지만, 관리국에 배당되는 자산은 정부에서 관리한다.
그리고 미국 관리국은 계속해서 한국 관리국을 압박한다.
이것만 하더라도, 헌터 관리국이 힘을 못 쓰는 이유가 충분했다.
힘이 전부인 시대라지만, 애석하게도 현 상황이 이렇다.
“그래도 이 사진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딱 봐도 한국을 먹겠다는 속셈이 아닙니까?”
“···이것만 들고 따지기에는 너무 위험해. 아직 레이드도 안 끝났잖아.”
쾅!
진도윤이 참지 못하고, 책상을 그대로 내려쳤다.
“국장님!”
갑작스러운 태도에 채병국의 미간이 좁혀졌다.
“도윤아.”
“정말 확인해봐야 합니다. 만약 이 사진이 사실이라면, 저희 헌터들은··· 전부 사망하고 말 겁니다.”
“이것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잖아.”
채병국이 생각에 잠겼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사진만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고, 정부와 미국에 따지고 드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이상했다.
“···국장님의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이게 저희 관리국의 일이라고요!”
진도윤이 이렇게 간절히 애원하는 게 몇 년 만인가?
참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후우··· 알겠다.”
“···정말이십니까?”
고민 끝에 내린 결정.
채병국의 눈에서는 더 이상 망설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일단은 알아봐야지. 그게 우리 일이니까.”
관리국은 헌터들을 위해 존재한다.
국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헌터들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감사합니다!”
“그래. 바로 위에 보고부터 하자.”
*끈임 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
벌써 200마리를 넘게 잡은 것 같은데도, 몬스터는 쉴 틈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100마리를 가까이 추가로 사냥해서야 슬슬 끝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 가!”
“네!”
중간에 유령검이 제한시간을 초과한 나머지, 사라지고 말았을 때는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일 대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수하들과 합을 맞추며 전투를 벌였기에 위험한 순간은 다행이도 쉽게 피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유령검의 쿨이 다시금 돌았고, 곧장 사용했다.
다시금 4개의 유령검이 소환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침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메시지도 들려왔다.
‘벌써 레벨 업만 몇 번째지?’
태현이 피식 웃었다.
벌써 220레벨을 돌파했다.
S급 레이드에서 벌써 이 정도 성과를 낼 줄이야.
참여했다는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고(高)렙 구간이라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크아!”
동료들을 잃은 포이즌로드가 분개하더니, 들고 있던 검으로 태현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에게 털끝 하나 건들지도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언제 공격했는지는 몰라도, 태현의 검이 놈의 가슴팍을 꿰뚫어버렸기 때문이다.
“네 놈들이 마지막이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포이즌로드를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숫자는 6.
그 많고 많던 포이즌로드는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얼마나 많았는지 바닥에는 포이즌로드의 시체가 가득해서 놈들을 밟아야지만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태현은 놈들이 판단을 내리기 전에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놈들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휴···.”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자, 헌터들이 그제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아··· 내가 시체들을 깔고 앉아야 하다니.”
천태도가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체력이 다 떨어졌습니다. 좀 앉아서 쉬세요.”
백승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마 이 상황에서까지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몬스터는 제가 거의 다 잡았는데, 뭘 그리 앓는 목소리를 냅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태현이었다.
헌터들은 머쓱한 얼굴이 되어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헌터님은 갓 급이십니까?”
내내 조용히 있던 박준형이 그에게 물었다.
S급 탱커.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S급 탱커였다.
“뭐, 그렇게 되겠네요?”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분명 각성자.
지금 현재로 보면, 그만 레벨제한이 없다.
무한성장이 가능하다는 소리.
G급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와···.”
“그동안 숨기신 이유가 궁금하긴 하네요.”
대한민국 G급 헌터.
그것만으로도 감탄이 쉬지 않고 나오는데 충분했다.
S, A급 너나할 것 없이 말이다.
“하하,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저라고요?”
천태도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래서 그 때 일이 잘했다는 겁니까?”
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흠··· 그게 아니라요··· 죄송합니다.”
결국 천태도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됐어요. 어쨌거나 기억하시죠?”
“네? 아···.”
태현이 무엇을 원하든지 천검에서는 3가지를 들어줘야만 한다.
설마 지금 원하는 걸 말할 속셈인가?
천태도가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은 아니고요. 잊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아, 네. 당연합니다. 천검은 한 번 한 약속은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여기서 5분만 쉬고, 바로 안쪽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몬스터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몬스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보였다.
아마 안으로 들어가면, 다음 몬스터가 등장할 것이다.
그게 일반 몬스터가 될지, 보스 몬스터가 될지는 모르는 일.
“괜찮아요. 바로 들어가죠.”
성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원들을 치료했다.
사실 상처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휴식을 취하자고 말했던 것인데.
굳이 저렇게 나온다면, 쉴 필요는 없었다.
“다들 동의하십니까?”
“네.”
“바로 가도 됩니다.”
역시 S급과 그에 준하는 A급 헌터들다웠다.
정신상태가 똑바로 박혀있었다.
“그럼 바로 가죠.”
태현은 그 말을 남기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넓어지기 시작했는데, 몬스터는 추가로 등장하지 않았다.
“몬스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찰병으로 스켈레톤을 보낸 발락이 보고했다.
그 때였다.
태현이 걸음을 옮기는데, 땅이 꺼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메시지까지 울렸다.
[보스 : 포이즌 킹 Type-X의 입장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입장에 수락할 시, 포이즌 킹이 머물고 있는 방이 열리게 됩니다.]
‘설마 이게?’
태현이 발을 떼었다.
그 자리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버튼 같은 게 있었다.
“아무래도 보스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임지성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다들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이미 준비 완료입니다.”
헌터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수하들 역시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싸울 준비는 완료된 상태.
‘그래.’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 포이즌 킹 Type-X의 방이 열립니다. 입장방법은 통로 끝에 있는 문에 들어가면 됩니다.]
역시 통로 안쪽이 보스방인 모양.
물론 이렇게 버튼을 밟지 않았다면, 문을 열기까지 시간을 또 잡아먹을 것이다.
“보스방은 안쪽 끝에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태현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