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헌터 비무대회(3)
*비무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 헌터들은 결국 16강도 진출하기 전에 전부 탈락하고 말았지만, 태현과 임지성은 끝내 살아남았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헌터들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들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 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임지성 때문에?
아니다.
바로 태현 때문이다.
[16강에 진출한 A급 헌터? 그 이름은 한태현, 왕국 길드 마스터!]
-1차 예선전부터 호각을 다투는 헌터들을 쓰러트리고, 끝끝내 16강에 진출한 한태현 헌터가 임지성 헌터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왕국 길드 마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그가 비무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A급 헌터가 16강에 진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운이 좋게도, 태현이 만난 헌터들은 전부 A급이었다.
물론 마지막 16강을 결정짓는 비무에서는 S급에 근접한 A급을 만나기는 했지만, 승리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ㄴ와? 불분명 각성자에서 A급 되더니 미쳐 날뛰네.ㄴ신기하네. A급치고는 너무 잘 싸우는데?
ㄴ마! 이게 대한민국 A급 헌터다!
ㄴ불분명 각성자라더니··· A급 아닌 거 아니야?
ㄴ그럴 가능성도 있지.
베스트 댓글은 온통 태현의 이야기뿐이다.
그가 A급 헌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는 이들.
“A급 아닌 거 맞는데.”
휴대폰으로 기사를 뒤적이는 장은아가 히죽 웃었다.
그는 A급도 S급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겠지만, 그녀 자신이 뿌듯한 감정을 양껏 느끼는 중이다.
“뭘 그렇게 보냐?”
16강 경기 전, 헌터들은 다시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한국 헌터들 역시 비록 탈락하기는 했지만, 태현과 임지성이 남았기에 대기실에서 지켜볼 예정이다.
“뿌듯해서요.”
장은아가 자랑스럽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태현 역시 그 기사를 보고는 볼을 긁적였다.
그것이 쑥스러워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장은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건 쑥스러움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비무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되어 신기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부끄러운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칫.”
태현이 못을 박았다.
장은아는 혀를 차고는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저···.”
마침 채민희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보니 아까 말을 하려다가 메튜 때문에 끊어진 것이 떠올랐다.
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채민희 헌터님. 다름이 아니고요. 잠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을까 해서요.”
“네.”
“그럼 잠시 휴게실로 가시죠.”
그 말과 함께 태현이 대기실을 잠시 빠져나가려고 하던 찰나,
장은아와 장은희가 당황한 얼굴이 되어 그를 붙잡았다.
“뭐··· 뭐예요?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여기서 하면 곤란한 건가요?”
“그래. 곤란한 이야기니까 부마스터랑 같이 있어라. 지성아 못 움직이게 감시 좀 부탁한다.”
“칫.”
다시금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채민희와 함께 휴게실로 향했다.
일전에 S급 레이드가 끝나면 나누기로 했던 대화.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 경기가 시작되는 상황이니 대기실에서 똥줄 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태현이 먼저 자리에 앉았고, 이어 채민희도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대충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는 예상하고 있을 테지만, 확실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S급 레이드가 끝나면, 나누기로 한 대화가 있었죠?”
“···그랬었죠. 바쁘신 것 같아서 일부러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어요.”
“배려는 고마워요. 그보다 그 이야기는 마저 끝을 내야할 것 같아서.”
“···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네.”
“헌터님은 의문의 사나이라고 불렸던 복면인과 동일인물인가요?”
태현이 입을 다물고, 턱을 어루만졌다.
당시에는 어떤 대답을 꺼내놓아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레이드가 끝나고 나서라는 말로 미뤘다.
“네. 동일인물입니다.”
그는 천천히 준비해두었던 답을 꺼냈다.
“···고마워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던 그녀기에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그에 따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냥 공유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그녀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다.
태현이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 임지성이 감시를 잘하고 있는 듯, 채민희 말고는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하게요?”
“네. 보시다시피 지금의 저는 갓 급 수준에 근접한 상태입니다.”
“······.”
채민희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은 전부 빼고, 자신이 성장형 헌터라는 것만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레벨 제한이 없다는 것도 뺐다.
갓 급까지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러니까 복면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로 해주십시오.”
“···어차피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요. 저밖에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확실하게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태현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냥 눈치껏 말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채민희가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가 비밀로 해달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복면인의 능력으로 인해서 몬스터라고 오해를 받았던 것이 크다.
바로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게이트가 닫히는 것.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단지, 튜토리얼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하다가 일어난 일일 뿐.
“감사합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화는 여기서 종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걸로 끝인가요?”
채민희는 조금 아쉽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일단은 경기가 있으니까요. 다음에 제대로 만나는 건 어떠신지?”
“···좋아요!”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일단 마음에 걸리는 걸, 털어냈다.
채민희라면 약속을 했으니 지켜줄 것이다.
*16강부터는 태현을 제외하고, 전부 S급들로 구성되었다.
현재로는 그가 유일하게 A급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그가 16강이 한계라고 입을 맞췄다.
‘흠···.’
태현은 16강 경기에 참가하기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의미로 박수를 쳐주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은 간신히 참고, 맞은편에 서 있는 상대방을 보았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S급 헌터였다.
그 얼굴에는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태현의 입에서 유창한 러시아어가 흘러나왔다.
S급 헌터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줄어들었다.
“뭐야?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건가? 흠··· 뭐 좋아, 그런데 방금 그 말은 기분이 좀 나쁘군?”
“기분이 나쁘다?”
“S급이 A급을 비웃는 게 뭐가 문제지?”
“힘을 가졌으면, 숙이는 자세도 필요한 법을 모르나 보군?”
“모르겠는데. 큭큭, 너 같은 사람을 위선자라고 하는 거다. 힘이 없는 놈들 특징인가?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쯧쯧. 힘이 있었어봐? 네놈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걸?”
“아닌데.”
“뭐?”
“알아들었으면 되 묻지 마. 뇌에 우동사리만 가득 찬 새끼야.”
“이 새끼가!”
16강부터는 상대방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비무가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태현의 행동은 가히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있었다.
러시아어를 알아듣는 시민들은 경악에 휩싸인 눈으로 태현을 보았다.
“저 새끼 미쳤어?”
“좋게 봐줬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와··· 아무리 16강 진출자라지만, 켐벨한테 저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생각이 없는 거지··· 에라이.”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태현은 그런 시민들을 무시하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냈다.
미리 곡괭이에서 검으로 형태를 변화시켰다.
“넌 뒤졌어.”
켐벨이라고 불린 S급 헌터가 건틀렛을 착용했다.
“비무 시작!”
양 쪽의 준비가 끝나자, 경기장을 관리하는 S급 진행요원이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켐벨이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태현을 덮쳤다.
태현의 얼굴이 보이자,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스킬, ‘강철건’을 사용하면서 주먹의 파괴력이 5배까지 상승했다.
쾅!
그러나 태현의 검이 그 주먹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그의 몸이 한 바퀴를 돌아 켐벨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뭐··· 뭐야?”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생각으로 사용한 스킬이 무용지물로 돌아가자, 켐벨의 얼굴이 구겨졌다.
반면, 태현은 그를 비웃듯이 바라볼 뿐이다.
그를 비난하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방금 움직임은 A급 헌터가 움직였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켐벨의 주먹에 실린 힘을 완벽하게 뒤로 흘려보냈다는 증거가 되니까.
“좀 치네?”
태현의 한마디에 켐벨이 이를 갈며 다시금 가까이 붙었다.
쾅. 쾅. 쾅.
켐벨의 주먹과 태현의 검이 맞부딪혔다.
계속 되는 경합에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왓? 저게 A급이라고?”
“웃기지 마··· 저런 A급이 어디 있어. 켐벨은 S급 중에서도 중상위에 속하는 헌터란 말이야!”
쾅. 쾅. 쾅.
요란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5분이나 지속되는 경기.
결국 켐벨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벌써 지쳤어?”
반면, 태현은 숨소리 하나 바뀌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마치 하수를 상대하는 것 마냥.
그제야 켐벨의 태도가 바뀌었다.
“당신··· 도대체 누굽니까···.”
“왜? 아까처럼 덤비지.”
“···내가 좀 바보 같은 면이 있어도, 이 정도면 충분히 깨달았소. 아까 전의 만행을 용서해주시오.”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기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현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사실 그에게 빈틈을 보여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해보라는 듯이 공격을 받아주었다.
큰 산.
켐벨에게는 태현이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보니 전투의지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대로 항복해도 괜찮나? 비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실망할 텐데?”
“사람을 상대로 미련한 짓은 하고 싶지 않소. 그 정도 힘을 가지고도 숙이는 자세에 감탄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라오.”
켐벨이 조금 다혈질이기는 하나 미련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S급 헌터였으니까.
“흠···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여기까지만 하죠.”
태현이 검을 회수했고, 켐벨은 그대로 항복선언을 외쳤다.
“한국, 한태현 승!”
8강 진출을 성공항 태현은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반면, 태현을 비난했던 화살은 켐벨에게로 향했다.
“에라이! 겁쟁이 새끼야! 사라져!”
“이 봐! 겁쟁이씨! 우리가 이런 소리했다고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켐벨이 강약약강이겠어? 큭큭.”
온갖 비난에도 켐벨은 묵묵히 건틀렛을 정리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태현은 그런 켐벨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대기실로 돌아갔다.
*뚜벅. 뚜벅.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는 조용했다.
그런 복도를 걸어가던 켐벨이 우뚝 섰다.
“할 말 있어?”
그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자 한 인영이 불숙 튀어나왔다.
켐벨과 같은 S급의 기운을 흘리는 헌터였다.
“오~ 다혈질 켐벨이 고개도 숙일 줄 알아?”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니까.”
“보기보다 약았어. 너도.”
“···그렇게 볼 수 있겠지.”
“그래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네 욕하는 건 알지?”
“괜찮아. 내 업보니까.”
켐벨이 등을 돌려 자신이 돌아온 복도를 보았다.
정확히는 태현이 있는 대기실의 복도를.
엄청 강했다.
그런 사람에게 헛소리를 늘어놓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태현 헌터라고 했나···?’
왠지 친해지고 싶었다.
어느새 켐벨의 마음에는 태현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