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에어로돈의 성소(2)
*‘둥지···?’
포탈을 타고 들어온 곳은 거대한 나무 위의 둥지였다.
길게 쭉 뻗은 나무였는데, 가지들이 무성했다.
이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태현이 주위를 살폈다.
둥지는 하나만이 아니었다.
무성한 가지들 사이로 수백 개의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일반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거대한 새들이 모여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가지들 사이로 둥지들이 밀접해있었다.
태현이 앉아 있는 둥지 역시 다른 둥지들과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주위를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높군.’
아파트로 따지면 40층 정도는 되려나?
설마하니 이런 곳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성소라면서?’
이름만 들어서는 거룩한 성 같은 느낌이다.
태현은 조심스레 둥지들을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부화되지 않은 알들이 자주 보였는데, 그것으로 보아 여기도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몬스터가 서식하는 공간은 맞아. 그렇다면 몬스터는 전부 어디로 갔을까?’
몬스터의 행방이 모호했다.
태현은 둥지들을 수색하는 작업에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둥지를 돌아다닌 끝에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둥지를 돌아다닐 때만 하더라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에 가까이 접근하니 눈에 훤히 들어왔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군.’
나무는 계속 뻗어 올라갔고, 구름이 그것을 가리고 있어 끝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에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한다는 소리다.
구름에 가리어져 있었긴 하지만, 둥지와 비슷한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에 무조건 올라가야했다.
“성소··· 위에 있다는 소리로군.”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가 빠르게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나 높았는지 끝도 없이 올라가야했지만, 예상 외로 금방 도달했다.
구름을 헤치고 나아간 결과, 드디어 성소라고 할 만한 것이 나타났다.
‘허어··· 여기 숨어있었군?’
거대한 제단.
구름이 받치고 있는 제단은 현실적인 것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태현이 나무에서 떨어져 구름을 밟았다.
역시 구름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지탱했다.
“아··· 구름이 아니구나.”
밟고 나서야 지금 제단을 받치고 있는 것이 구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마법이었다.
나무를 타고 올라오기 전에는 구름에 가려져 있던 것도 마법 결계 때문이다.
태현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제단 입구에는 횃불이 놓여 있었다.
외부인이 출입해서일까?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제단의 입구에서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릉.
“도마뱀인가···? 아니네. 날개가 달려있네.”
도마뱀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하다.
[신성룡 : 병사 Lv.222]
게이트가 아니었기에 몬스터의 이름과 레벨이 정확하게 표기되었다.
태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그의 입가는 어느새 귀까지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이 정도 레벨이면, 레벨 업이 얼마야?’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222레벨보다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서 아쉽기만 했다.
크릉?
자신들의 등장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는지 몬스터들이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태현은 어느새 검으로 형태 변화 시키고는 유령검과 함께 새로 얻은 스킬들을 난사하기 시작했으니까.
꾸웩!
몬스터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태현은 입구에 있던 횃불을 들고, 제단 안으로 진입했다.
‘흐흐, 아주 좋다.’
진입하는 와중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입구 밖으로 빠져나온 몬스터만 해도 100마리 남짓.
전부 잡아 족치니 레벨이 2가 추가로 올랐다.
또한 안으로 진입하는 와중에도 몬스터들을 추가로 처리하면서 레벨이 1이 올랐다.
3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레벨이 3이나 오른 것이다.
확실히 200레벨 초중반급의 몬스터를 대량으로 잡다보니 레벨이 금방 올랐다.
크르릉.
[신성룡 : 파수꾼 Lv.241]
끝도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태현의 눈이 다시금 빛났다.
멀리서 볼 때에는 몰랐지만, 제단은 상상 외로 넓었다.
몬스터 약 100마리가 쏟아져 나와도 공간이 많이 남을 정도.
“끝도 없이 나오면 나야 좋지.”
태현은 들고 있던 검을 궁으로 형태 변화시켰다.
그리고 앙헬 세르게이를 괴롭혔던 스킬인 ‘스트라이크 샷’을 사용했다.
세르게이때와는 다르게 지금 투사체들은 태현이 전력으로 사용한 상태다.
크아악!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몬스터들은 소수였다.
70마리의 몬스터 중 겨우 화살을 피한 몬스터는 단 6마리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태현의 얼음 화살에 움직임이 봉쇄당했다.
이후에는 유령검에 의해 단번에 숨통이 끊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와 함께 태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S급 게이트보다도 효율성이 뛰어났다.
이 정도로 레벨 업이 스피드하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고 다시금 사냥감들이 태현을 덮쳤다.
역시나 100마리에 가까운 몬스터들.
차례차례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영역을 침범할 때마다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순서를 지키면서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게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
마치 단계별로 클리어 해나가는 미니게임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현은 자신을 덮치는 몬스터를 향해 고스트 스톰을 시전했다.
에일린의 과거에서 얻었던 스트라이크 샷과 함께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령검이 몬스터들을 사정없이 베어나갔다.
크아악!
이번에도 몬스터들을 처리하는데 1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그의 레벨은 275.
241레벨의 몬스터 100마리를 상대한 것 치고는 심각하게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태현의 레벨이 275라고는 하지만, 능력치는 400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압도적인 능력치가 밑바탕 되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천공의 핵’을 획득하셨습니다.]
‘천공의 핵?’
이번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아이템이 드랍된 모양이다.
그런데 일반 몹에서 이런 아이템을 뱉어낸다고?
태현은 곧장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서 아이템을 확인했다.
[천공의 핵 : 소모품]
-‘천공의 신 : 에어로돈’을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가운데 붉은 제단에 천공의 핵을 올려놓으면, 에어로돈이 나타날 것입니다.
“소환하는 거였구나.”
마지막 남은 징표.
에어로돈.
과연 어떤 몬스터일지 기대가 되었다.
태현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르릉!
역시나 일정한 거리가 되자,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넓기는 너무 넓은 제단이다보니 몬스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이 몬스터들 모두가 아래층에서 보았던 둥지에 서식하는 녀석들이리라.
어째서 제단에 전부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걸 생각하기 전에 에어로돈을 소환하는 것이 먼저였다.
태현이 다시금 궁을 들었다.
그가 시위를 당기고 놓자, 수많은 투사체들이 몬스터를 덮쳤다.
“어서 와! 내 레벨 업의 제물들아!”
*태현이 갓 급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관리국의 힘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단 3가지의 질문 받겠다고 했을 때.
마지막에 나왔던 질문이 바로 앞으로의 행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였다.
갓 급이 되었으니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태현의 대답은 심플했다.
‘관리국의 결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게이트 클리어에 앞장서겠다.’
관리국의 결정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건 말 그대로 관리국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덕분에 정부에서도 관리국을 대하는 것이 이전보다 조금 달라져있었다.
정부가 태현이 나서줄 것을 희망하더라도, 관리국에서 No를 외치면, 태현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허허··· 이거 한태현 헌터께 감사를 표해야겠군요.”
채병국은 관리국에 대한 대우가 달라짐에 태현의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태현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이번 S급 레이드 사건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느꼈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대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그 덕분에 관리국에서 헌터가 다시금 몰리고 있습니다.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관리국에 소속되길 희망하는 헌터들이 증가했습니다.”
진도윤은 기쁘다는 듯이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판도가 이렇게 뒤바뀔 줄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한태현 헌터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나?”
채병국이 가볍게 물었다.
갓 급 헌터라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말이다.
“아마 게이트 클리어와 길드 업무로 바쁜 것으로 보입니다.”
“음, 큰일을 벌였는데도 담담하다니··· 참 신기한 분이야.”
“특별한 분이지요.”
진도윤이 조용히 웃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
현재 비무대회로 인해 모든 초점이 태현을 향한 상태다.
그런데도 너무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걱정되나?”
채병국은 그의 얼굴을 통해 생각을 읽어내고는 피식 웃었다.
“하하, 들켰습니까?”
진도윤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자네와 함께한 게 몇 년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후후, 국장님은 못 당하겠습니다.”
채병국은 그런 진도윤을 말없이 보았다.
분명 태현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그의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진도윤의 표정은 늘 한결같았으니까.
그런 진도윤이 태현을 만나고부터는 180도 변했다.
지금만 보더라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다리를 떨고 있지 않은가?
‘나쁘지 않군.’
예전 진도윤도 좋았지만, 이렇게 사람다운 진도윤도 좋았다.
채병국이 속으로 웃었다.
똑. 똑.
때마침,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채병국의 말에 국장실의 문이 열렸다.
“국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손님을 갑자기 국장실 안까지 데리고 들어온다고?
그가 미간을 좁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누구기에 국장실을 다이렉트로 들어온다는 말인가.
“손님을 국장실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나!?”
결국 진도윤이 호통을 쳤다.
비서실장은 바르르 떨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고, 두려운 듯한 눈빛으로 일관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문 밖으로 향해있었다.
이상함을 감지한 진도윤이 채병국을 보았다.
그 역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들어오시라고 해. 손님을 밖에서 기다리게 만들었군.”
“아··· 알겠습니다.”
채병국의 말이 끝나고,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국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문에는 비서실장이 아닌, 손님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손님의 입에서는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채병국과 진도윤은 조금 놀란 눈으로 손님을 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적발, 그리고 적발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적안까지.
“네. 관리국에는 무슨 일로?”
진도윤이 영어로 말하며, 손님에게 다가갔다.
“한태현이라는 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적안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을 보아도 아무런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누구지? 적발과 적안··· 너무 희소한데, 이런 사람은 한 명뿐인데···.’
미국의 갓 급.
알드레드 프레드.
S급 게이트에서 미국을 구해낸 영웅.
그의 얼굴은 직접 본 사람은 당시 S급 레이드를 뛰었던 헌터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태현 헌터는 어째서 만나려고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갓 급이 맞나 확인하려고요.”
“죄송하지만, 갓 급 헌터를 함부로 만나실 수는··· 헉!”
거절 의사를 밝히려고 하자, 손님의 적안에서 흉흉한 살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B급 헌터다.
그런데 가벼운 눈빛 하나로 이렇게까지 위협을 느끼다니?
진도윤이 가슴을 부여잡고, 뒷걸음질 치자 그제야 손님의 적안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두 번 말 안 합니다. 한태현이라는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신원확인도 되지 않은 분께 저희 헌터들의 정보를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채병국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
신원확인.
그제야 손님은 자신이 잘못했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갑에 있는 헌터 등록증을 꺼내 채병국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신원확인이 될 거라 봅니다. 당장 말씀해주시죠.”
채병국은 등록증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등록증에는 익숙한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알드레드 프레드.
그제야 채병국과 진도윤이 멍한 눈으로 알드레드 프레드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