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갓 급과의 만남(2)
*챙!
프레드와 태현의 단도가 맞부딪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태현이 싸늘한 어투로 물었다.
“와우, 정말 놀라운데?”
반면, 프레드는 만족한 얼굴로 단도를 회수했다.
갑작스런 기습에 응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가볍게 막아낸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상한 놈.’
사실 태현은 프레드가 단검이 쥐기 전부터 약간의 살기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손쉽게 응수할 수 있었다.
“감탄사를 내뱉으라고 한 적 없는데 말이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훗, 나랑 동등한 등급을 가진 녀석을 처음 봐서 흥분했어. 미안하게 됐다.”
“······.”
“아~ 그리고 관리국장 윌슨 알지? 그 녀석이 덮으려던 거, 내가 개입했다는 것만 알아둬.”
히죽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놈이긴 해도, 그가 개입했기 때문에 손쉽게 풀렸다는 것은 납득이 갔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윌슨이 모든 걸 자백했을 때에는 무슨 꿍꿍이 속인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프레드가 난입했다면,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다.
“슬슬 여길 찾아온 용건을 말해줬으면 좋겠군. 참는데도 한계가 있거든.”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반면, 프레드의 얼굴은 살짝 굳었다.
“···보시다시피 미국 헌터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이지? 잘못을 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난 거에 감사해야 할 판국에?”
“그래. 미국 관리국이 잘못을 하긴 했지. 그런데 그게 우리 헌터들까지 욕을 먹고 있는 게 문제지.”
“그래서?”
“관리국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우리까지 욕을 먹게 만들 필요는 없었지 않나?”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그렇지만 그 잘못이 드러나게 만든 것은 태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태현이 싸늘한 눈으로 프레드의 눈을 응시했다.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찾아왔다는 말이 된다.
태현은 화를 꾹 눌러 담으며 물었다.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프레드가 씨익 웃었다.
“한 판 붙지.”
“···뭐?”
태현은 잘못 들었다는 눈으로 프레드를 보았다.
“귀가 먹었나? 한 판 붙자고.”
난데없이 한 판 붙자는 말에 자동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어째서 자신이 그와 한 판을 붙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프레드의 조건.
미국 헌터들을 위해서 제시한 조건이라기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가져다 붙인 변명에 가까웠다.
“흐음···.”
“거절은 없다. 거절할 시에는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프레드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고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다.”
“훗.”
태현이 순순히 승낙하자, 그제야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짓는 프레드.
그러나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뭐지?”
“비무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은데.”
“방송이라면? 공중파 방송을 말하는 건가?”
끄덕.
“받아들인다면, 기꺼이 비무에 응하도록 하지.”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직 자신이 갓 급이라고는 하지만, 나라 자체가 헌터 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알드레드 프레드에게 승리를 따낸다면?
뭐가 되었든 간에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선택은 프레드의 몫이다.
태현은 잃을 게 없으니까.
프레드는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 비무가 방송에 송출이 된다?
아무리 태현과의 비무를 목적으로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굳이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는 것은 꺼려졌다.
그가 괜히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갓 급은 신비로운 존재라고 불린다.
자신은 포함한 모든 갓 급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흐음··· 그래도 나서는 게 사람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데 도움이 되겠지.’
그 역시 잘못은 바로잡고 가야하는 주의였기에, 윌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윌슨의 만행으로 헌터들이 욕을 먹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프레드는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좋다.”
“!”
태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갓 급이라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득이 충분히 주어질만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방송을 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프레드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반대의 대답이 나왔다.
“조건을 받아들이지. 대신에 비무 일정은 내가 정하고 싶은데···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겠지?”
“일정도 내가 정한다. 싫으면 말고.”
“···에라이. 치사한 자식!”
결국 프레드의 목소리가 커졌다.
태현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비무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걸 알아 둬. 갑은 당신이 아니고, 나야.”
“···후우, 알겠다. 그럼 번호를 남겨둘 테니 일정이 정해지면 여기로 연락을 줬으면 좋겠군.”
프레드는 자신의 지갑에 명함을 꺼냈다.
갓 급 헌터에게 지급되는 특별 제작된 명함이다.
“좋아. 그럼 여기로 연락을 주지.”
“···알겠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프레드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태현의 시선이 명함으로 향했다.
‘알드레드 프레드.’
미국의 갓 급 헌터.
그 명함을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설마 내가 프레드와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올 줄이야.’
1년 전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심지어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그가 자신과 비무를 하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간 것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성장했구나.’
여러모로 괜찮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사무실을 빠져나온 임지성은 근처 편의점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이를 갈고 있었다.
S급 헌터가 되었기에 조금 거만한 점이 없지 않았는데, 오늘 그 생각이 완벽하게 깨졌다.
‘너무 강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S급을 진즉에 뛰어넘은 G급.
S급 레이드에서 전력을 다해 상대했던 태현보다도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유지아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계산하고, 1개를 앞에 내려놓았다.
“좀 마셔.”
“······.”
“괜찮아··· 태현이가 잘 해결해줄 거야.”
“···하아.”
임지성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유지아가 커피를 홀짝이며 저 멀리 보이는 사무실을 힐끔 보았다.
“도움이 못 되서 그래? 아니면 실력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져서?”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죽을 것 같은 얼굴이길래 물어봤어.”
“신경 꺼···.”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선을 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거 알아? 그 기분은 나도 진즉에 느꼈다는 거?”
“응?”
갑작스런 고백에 임지성이 눈을 껌벅였다.
유지아는 조금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고는 볼을 긁적였다.
“같은 C급으로 파티에 참가한 게 약 1년 전인 거 기억해?”
“응.”
“그 때는 같은 C급이었는데··· 지금은 격차가 비교할 수도 없이 벌어졌잖아? 그래서 지금 네 기분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이야.”
“아···.”
전혀 몰랐다.
설마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럼에도 유지아는 그런 내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기운차리라고.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대신에 다른 부분으로 태현이를 도울 생각을 하면 되지 않겠어? 나처럼 말이야.”
유지아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지금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고맙다.”
임지성이 감사를 표했다.
왠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때마침, 유지아가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는 프레드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나온다.”
“···들어가자.”
임지성이 얼굴을 굳히고는 커피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레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태현이 자리에 앉아 다과를 입에 넣고 있었다.
“야! 너 괜찮냐?”
임지성의 물음에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용건이래?”
“흠··· 그건 잠시 나갔다 와서 알려줄게. 이야기 하자면 조금 길어서.”
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어디 가는데?”
“헌터 관리국.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
“관리국?”
“어. 잠시 다녀온다.”
그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태현이다.
임지성은 볼을 긁적였다.
“이거 참··· 별 일 없어서 다행이긴 하네.”
“그럼 업무나 마저 볼까?”
*헌터관리국 국장실.
이 자리에는 채병국, 진도윤과 태현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네요.”
진도윤의 인사에 태현이 가볍게 응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채병국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번에 비무대회에서 나서주지 않았다면, 관리국의 힘이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닙니다.”
태현이 고개를 저었다.
관리국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을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채병국은 연신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태현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살짝 진 것을.
오늘 관리국장실에 온 것도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오게 된 것이다.
태현은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눈치를 채신 것 같군요··· 진 부장.”
채병국이 진도윤을 부르자 그가 미리 준비했다는 듯, 리모컨을 조작했다.
거대한 TV의 리모컨이었다.
TV가 켜지자 화면에는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목은 ‘최초로 등장한 게이트’
“최초로 등장한 게이트?”
태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1시간 전, 게이트가 1개 생성되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채병국은 꽤 곤란한 얼굴이었다.
“한국입니까?”
“아니요··· 미국입니다.”
“미국이요? 겨우 그것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단지 이번 게이트가 S급 게이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S급 게이트가 아니라고요?”
채병국의 얼굴은 너무 어두웠다.
옆에 앉아있는 진도윤 역시 마찬가지.
태현은 지금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마력 방출량으로 보아··· G급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사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G급 게이트.
게이트가 일어난 이래 최초로 등장한 G급 게이트였다.
“미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은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엄청난 게이트의 크기에 피신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죠.”
채병국은 그 말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의 다음 장을 넘겼다.
그러자 사진이 하나 등장했다.
거대한 게이트가 떡하니 찍혀있는 사진.
태현이 들어갔던 S급 게이트보다도 약 3배정도 컸다.
“확실히··· 대충 넘어갈 상황이 아니군요.”
갑작스레 등장한 G급 게이트.
한국에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G급이라니?
무언가 흘러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설마···.’
태현은 ‘이계의 존재’와 관련된 게이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출할 테니까요.”
“돕자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채병국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윌슨이 너무 괘씸했다.
자신이 G급 가까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포이즌 킹에게 목숨을 헌납했을 테니까.
“···그래도 이번 게이트를 막으려면, 갓 급 헌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진도윤이 간절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G급을 클리어하지 못해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한국도 무사하지 못한다.
조금 멀리 내다보면,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부디 생각을 다시 해주셨으면 합니다···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면··· 지상은 지옥과도 같이 변할 겁니다.”
진도윤의 눈동자는 진심이었다.
국가의 이익을 떠나서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
“고민해보죠.”
태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번 G급 게이트.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으니까.
“···죄송합니다.”
진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사과는 나중에 받겠습니다.”
태현은 프레젠테이션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병국과 진도윤은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정말 저 분에게는 신세만 지는구나.”
태현이 사라지고, 채병국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지끈거리는 것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괜찮을 겁니다··· 누구보다 몬스터의 박멸에 앞장서고 계시는 분이니까요.”
진도윤은 그가 원하는 게 있다면, 자신의 선에서 최대한 도울 생각이다.
물론 평생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전부 갚지 못하겠지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