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습격자(1)
*“흐흐, 드디어 피가 끓어오르는 비무를 할 수 있겠군.”
프레드는 휘파람을 불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미국 관리국, 윌슨의 잘못으로 새로운 갓 급의 헌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자국이 욕을 먹는다는 이유로 밀어붙여서 성사시킨 비무.
덕분에 자신이 갓 급으로서 얼마나 올라왔는지 시험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놈들은 행방이 너무 묘연해서 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고.”
프레드가 표독스럽게 웃었다.
길가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그의 웃음소리에 자리를 피했다.
띠링~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뭐야.”
그 전화는 프레드의 것이었다.
그는 상념에서 깨어나고는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인은 애드워드 윌슨.
순간 프레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보통은 중요한 용무가 아니고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 윌슨이다.
-어? 프레드 헌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윌슨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챈 프레드가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지금 미국에 큰일이 발생했어··· 게이트··· 게이트야!
S급 게이트인가···?
프레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최근 한국에 S급 게이트가 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S급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주기로 S급 게이트가 또 나타나다니?
여러모로 이상했다.
과거에도 이렇게 주기가 짧았던 적은 없었는데.
-S급 게이트인가? 알겠어, 곧장 미국으로 가지.
S급 게이트가 나타난 이상, 비무는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윌슨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그··· S급이 아니야.
윌슨의 목소리는 심히 떨리고 있었다.
프레드가 조금 짜증났는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 뭔데? 설마 A급 가지고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G··· G급 게이트야···.
-뭐···?
순간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S급도 아니고. G급 게이트라고?
-한국에서 발생했던 게이트보다 3배정도 크다고 하네···.
-···바로 가지. 일단 공격대를 만드는데 힘을 써.
프레드는 순간적으로 태현의 사무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겠어···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그 미안하지만, 이번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윌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알겠으니까 그만 끊어.
프레드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시선은 태현의 사무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 고민의 순간.
“휴··· 일단 돌아가야겠어.”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재촉하는 프레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필이면 갓 급이라니.
태현과 비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후우··· 고민이군.’
태현은 말없이 길을 걸었다.
평소 집으로 가는 길과는 반대되는 방향.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때였다.
‘갓 급의 게이트라면··· 설마 내가 생각하는 이계의 존재가 맞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한태현 헌터님··· 한태현 헌터님!”
움찔!
생각에 빠져있는데,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몸이 움찔 떨렸다.
어느새 채민희가 옆에 서서 같이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 같이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채민희 헌터님이시군요. 언제부터 계셨던 건가요?”
“2분정도 됐나? 불러도 대답이 없으셔서 잠시 같이 걷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원래 이쪽으로 가십니까?”
채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여기 근처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그보다 어떤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시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다른 의도 없이 궁금하다는 것을 내비치는 눈빛이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G급 게이트가 등장한 거 아십니까?”
“···알고 있어요.”
G급 게이트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미국같은 강대국에서 G급 게이트라니.
특히나 많은 국가들이 이번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해서 제한시간을 초과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갑자기 G급 게이트가 등장해버리니 조금 복잡해져서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태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지 입으로 술술 나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고민을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헌터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네?”
“사실 저는 헌터님의 그런 점이 좋아요.”
게이트 클리어에 앞장서면서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 남자.
처음에는 의문의 사나이로 오해도 샀지만··· 그 모든 것이 몬스터를 없애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자신 역시 몬스터에 의해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일까?
그가 하는 일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싶었다.
반면, 갑작스런 고백에 태현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고백입니까?”
“아··· 그··· 그게 아니고요.”
그제야 채민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막상 입으로 내뱉고 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훗, 장난이에요. 그보다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하네요?”
“···그냥 물질이나 권력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우선순위를 두는 점이 좋았어요.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뜨끔.
왠지 양심이 찔린 느낌이다.
몬스터의 박멸을 우선순위로 둔 것은 맞지만, 돈이나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글쎄요··· 저 그렇게 착한 놈 아닙니다.”
“후후, 그런가요?”
이 여자, 믿지 않고 있다.
태현은 그녀를 설득시키려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에 일전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전에 휴게실에서 약속하셨던 거 기억합니까?”
“네. 잊어버릴 리가 없죠.”
약속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도 하고.
다이어리에 미리 메모해두었기에 잊어버릴 일은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앞에 있는 카페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제대로 만나는 건, 데이트라기보다는 편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였다.
“좋아요. 카페 다니는 거 좋아하거든요.”
채민희 역시 그걸로 만족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길드에 들어 온 예비 길드원 학생들은 항상 똑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훈련장 – 사무실 – 숙소.
이런 로테이션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의지가 강해서였기도 하지만, 장은아와 장은희가 앞장서서 학생들을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합!”
학생들은 각자 자신들의 특성들을 이용해서 홀로그램으로 영상화되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왕국 길드에서 많은 예산을 투자해서 만든 기계들.
물론 그 예산은 천검이 100% 도맡은 것이지만.
“후우··· 잠시 휴식!”
장은아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말에 행동을 멈추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구석으로 향하는 학생들.
그러나 학생들이기에 구석으로 들어가자마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한 명이 떠들기 시작하자, 알아서들 입을 트기 시작했다.
“맞다. 소식 들었어?”
“G급 게이트 말이지? 갑자기 이게 무슨 소식이야···.”
“하아··· 미국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글쎄다··· 미국이라도, G급 게이트를 막기는 힘들 것 같은데.”
학생들의 주제는 지금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갓 급 게이트.
게이트가 발생한 이래, 최초로 등장한 갓 급 게이트기에 전 세계의 눈이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미국에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갓 급 게이트이기에 S급 헌터를 보내는 순간, 전멸할 것이라는 결과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말이다.
“미국에도 갓 급 헌터가 있잖아?”
“무슨··· 갓 급이 1명인데, 1명이 어떻게 게이트를 클리어 할 수 있냐?”
“그치만 선생님도 S급 게이트를 혼자서 처리하셨잖아?”
“그건 소환수가 많았으니까.”
미국의 갓 급 헌터가 태현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선생님은 미국을 도와줄까?”
사장님이라는 단어보다도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친숙하기도 하고.
“사장님이 그럴리가 없잖아?”
그러나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도 있었다.
장은아와 장은희.
이 둘은 태현과 함께 미국의 비무대회를 견학할 겸, 방문했었다.
“포이즌 킹을 상대했을 때, 사장님이 갓 급이 아니었다면 전멸했을 거라는 말··· 기억하지?”
끄덕.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관리국장이 한국의 S급 헌터를 전멸시킬 속셈으로 거짓으로 지원했다는 것도 알고?”
끄덕.
“그럼 답이 나왔잖아? 고민할 거 있어?”
장은희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렇지만··· 가만히 놔두면, 전 세계가 피해를 볼 게 분명해.”
최악의 상황에는 몬스터들이 제각기 흩어져 일반 시민들을 덮치는 것이다.
G급 수준의 몬스터.
S급 헌터가 총동원해도, 막을 수 있을까?
보스는?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맞아. 그렇게 되면, 갓 급 헌터들이 전부 모여서 어떻게든 해주겠지.”
태현이 앞장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S급 레이드도, 비무대회를 통해 밝혀진 윌슨의 만행도.
전부 그가 나서주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어? 이거 봐봐!”
순간, 학생 하나가 소리쳤다.
나머지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어느새 휴대폰을 반대로 돌려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게··· 게이트가 사라지고 있어?”
“무슨 경우야···.”
엄청난 크기의 G급 게이트의 크기가 사라져간다.
학생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질 못했다.
*미국 LA.
하나의 차량이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차에는 제임스와 아들.
그리고 새끼 강아지 1마리가 타고 있었고, 아들은 강아지가 귀여웠는지 품에 안은 채, 얼굴을 부볐다.
“하하, 그렇게도 귀엽니?”
“네!”
아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강아지를 사주길 잘했어.’
독자로 태어나서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오늘 생일을 맞이했고, 선물로 스피츠를 분양받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좋아할까 걱정도 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앞으로 동생한테 잘해줘야 한다. 알겠지?”
“네! 무조건 잘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하하. 집에 갈 때, 피자라도 사갈까?”
“피자 좋아요!”
제임스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집으로 돌아가면, 와이프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을 것이다.
미리 피자도 사가겠다고 메모를 남겨뒀으니 사가도 문제될 건 없다.
‘여기서 좌회전.’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 때였다.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면서 그대로 차와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다.
쿵!
“헉!”
“악!”
뒤에서 웃고 있던 아들 역시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다.
“후우··· 뭐야.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게 무슨 경우지?”
사람이 이렇게 불쑥 튀어 나올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차에서 내려서 자신이 친 게 무슨 동물인지 확인했다.
“어?”
그러나 차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라이트를 켜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알 수 없는 검은 오오라를 풍기는 건장한 남성 하나가 서있었다.
“누··· 누구?”
“왕은 어디 있나?”
“왕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 계획을 망가트리는 여섯 번째 왕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제임스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섯 번째 왕이라니?
“모르나?”
“···모르겠는데요.”
“알겠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창문에 손을 가져갔다.
쾅!
손이 창문에 닿자마자 차는 그대로 폭발했다.
“아아악! 애덤!”
제임스가 급히 차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어느새 제임스를 향해있었다.
“헉!”
쾅!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제임스의 몸은 그대로 폭발해버렸으니까.
순식간에 일어난 일.
남자는 주위를 살폈다.
차량도, 사람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섯 번째 왕이여··· 어서 빨리 만나고 싶구나.”
남자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