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습격자(4)
*“한태현 헌터··· 하하.”
죽음을 목전에 뒀는데, 웃음이 나왔다.
“왕···.”
남자가 조용히 읊조렸다.
순간, 레오나르도와 릭의 몸이 움찔 떨렸다.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프레드는 갓 급답게 목소리의 살기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저 녀석이 이계의 존재인가.’
이질감이 가득한 기운.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기운이 남자의 몸에서 느껴졌다.
태현은 직감적으로 그가 이계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찾기 위해서 어지간히 사람들을 죽인 모양이군.”
태현의 말에 헌터들의 몸이 다시금 떨렸다.
그의 목소리에도 살기가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엄청나다···.’
프레드는 놀란 눈초리로 태현을 힐끔 보았다.
저렇게까지 강했었나?
예상외의 압도적인 기운에 프레드 역시 살짝 기가 눌렸다.
탁.
프레드를 옥죄던 힘이 사라졌다.
“내 일을 방해한 죄. 똑똑히 치르게 해주마.”
남자의 두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주먹은 또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극도로 분노했다는 증거였다.
더욱 강해진 기운에 태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위험하군. 지금 여기서 에어로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브레스로 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프레드에게 공격을 가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에어로돈의 공격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태현은 에어로돈의 소환을 해제하고는 바닥에 착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방해했다는 거지?”
은근히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2m 20은 되는 것 같았다.
키에 따른 근육량도 어마어마했는데, 외형보다는 그 안에 잠재된 힘의 척도를 잴 수 없다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심어둔 바이러스를 제거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변종?”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심어둔 바이러스.
그 바이러스를 태현이 가장 많이 없애버렸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반면, 태현은 그 대답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99%의 확신이 100%로 변하는 순간.
그의 몸에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몬스터가 생성된 것도 네 놈 짓인가?”
태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얘기해주자면, 아니다 라고 답해주지.”
“···그럼 누구 짓이지?”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태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해!”
프레드가 급히 외쳤다.
이미 저 장력에 한 번 당했기에 얼마나 위력적인지 몸소 느낀 뒤였다.
태현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남자가 손을 뻗었음에도 태현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남자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호오? 벌써 이 정도까지 성장한 건가?”
태현은 침묵했다.
아니,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대답할 겨를 따윈 없었다.
<이계의 존재, ‘크라포스’를 처치하세요>
-몬스터에 변종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준 극악무도한 범죄자, 크라포스를 처치하세요.
크라포스의 목적은 초대 킹의 힘을 계승한 후대 킹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보상 : ‘초대 킹 가오스의 접견실.’ 입장 열쇠.
[모든 능력치가 33.3% 상승합니다.]
아모스의 칭호 덕분에 능력치가 33.3%가 추가로 증가했다.
레벨 297까지 상승하면서 보정된 능력치.
아모스의 칭호, 마계의 왕 칭호가 합쳐서 현 능력치에서 53.3%의 추가 수치가 부여되었다.
그렇기에 태현에게 크라포스의 장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다음 포탈로 향하는 열쇠인가보군.’
태현이 고개를 주억이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유령검을 소환하고, 천천히 크라포스에게로 발걸음을 놀렸다.
“위험···! 프레드 헌터···.”
레오나르도가 급히 외쳐려던 말을 삼켰다.
언제 왔는지 프레드가 그들의 사이에 껴서 태현의 전투를 관람 중이었으니까.
“됐어. 지켜봐. 저 헌터는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그의 말대로 자세히 보니 태현이 직접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살짝 동요하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프레드를 상대할 때만 하더라도, 얼굴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남자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역시 강하군··· 왕이란 원래 이렇게 강한 존재였던가?”
우뚝.
태현의 빠른 발걸음이 순식간에 정지했다.
마치 왕을 처음 보는 듯 한 말투.
“왕을 처음 보는 건가?”
“그렇다.”
“선대 왕들을 만나본 적은 없나 보군.”
“그렇다. 내가 나타나기 전에 알아서 목숨을 다했다.”
태현은 당혹스런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선대 킹들이 크라포스에게 도달하기 전에 죽었다고?
“그럼 나보다 약했다는 건가?”
“바로 그렇지.”
“······.”
머리가 복잡했다.
레벨제한도 없고, 성장의 길이 계속 열렸을 텐데.
어째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패배했던 거지?
쾅!
순간, 크라포스가 주먹을 쥐었고, 그 자리에 폭발이 일어났다.
정확하게는 태현의 눈앞에서.
파스스.
‘유령검이 방어해줬군.’
유령검 1개는 크라포스의 폭발과 함께 소멸되었다.
현재 남은 유령검은 총 3개.
“정말 굉장하군! 크하하!”
광기가 가득한 웃음.
크라포스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웃음 멈춰라.”
태현이 낮게 읊조리고는 크라포스를 향해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쾅!
금속이 출동하는 마찰음과 함께 태현의 검이 살짝 튕겨져 나왔다.
‘방어막인가?’
전력으로 공격한 것인데, 크라포스에게 타격을 주긴 커녕 오히려 자신이 밀려났다.
태현이 천천히 심호흡했다.
“이 날만을 고대해왔다. 넌, 반드시 찢어 죽여주마.”
크라포스가 스프링마냥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주먹과 태현의 유령검이 충돌했다.
쾅!
다시금 울리는 마찰음.
“너도 포스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크라포스는 유령검의 정체를 모르는 듯 했다.
반면, 태현은 그의 말에 자신의 검을 방어했던 것이 포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크라포스가 태현의 유령검을 부수기 위해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럴 때마다 유령검에 의해 공격이 막혔고, 태현은 그 틈을 노려 반격을 꾀했으나 그 역시 번번이 실패했다.
‘포스를 어떻게 해야 깰 수 있을까?’
반격에 실패한 것은 크라포스의 몸을 두르고 있는 포스.
몸에서 검은 오오라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저것이 포스인 것이 분명하다.
쾅!
태현의 유령검이 계속해서 크라포스의 주먹을 막았다.
얼마나 강한 힘이면, 유령검이 강하게 진동할까?
에어로돈의 공격에도 멀쩡하던 유령검이었는데.
쩌억!
그 순간, 유령검 1개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태현은 다급했다.
‘유령검이 깨질 정도면···.’
때마침, 크라포스가 공격을 멈추고 거리를 벌렸다.
손을 뻗어 아까와 같이 장력을 시도하려는 모습.
그러나 장력은 태현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없었다.
크라포스는 흥미롭다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흐음··· 포스가 깨졌는데도, 통하질 않다니. 뭔가 다른 게 있는 모양이군.”
태현의 힘을 시험하기 위해 움직인 행동.
그것이 그를 더 열 받게 만들었다.
태현은 검에서 궁으로 형태변화시키고, 화살 한 개를 걸고는 시위를 당겼다.
‘일단은 저 놈의 포스부터 깨는 게 먼저다.’
방금 읊조린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포스가 모든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주고 있다는 소리였다.
사실 장력은 크라포스보다 태현의 능력치가 조금 더 강했기 때문에 통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크라포스는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태현이 시위를 놓자, 스트라이크 샷이 발동되면서 300개의 투사체가 크라포스를 덮쳤다.
*쾅!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온다.
추가로 태양과도 같은 열기에 시민들은 급히 집으로 피신했다.
요즘 들어 사건사고들이 많이 터져 나오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시민들은 소수였는데, 그 소수마저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기 마련.
“빨리 가자고!”
“와··· 에어컨을 이렇게 틀었는데도 뜨겁네요.”
“에릭씨!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중형 SUV차량에는 4명의 남녀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언론사의 기자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그만 칭얼대! 지금 이 건수를 잡으면, 100% 날아오를 거라고!”
에릭의 말에 2명의 기자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운전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조금 조용히 좀 해주세요!”
안 그래도 더워서 신경이 날카로운 마당에 서로 말다툼을 하니까 폭발할 지경이다.
에릭 역시 그걸 알고는 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후우··· 그래. 무사히 들고 돌아가서 실기만 하면, 수당도 넉넉히 챙길 수 있으니까.”
요 근래 건수를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했다.
지금 건수를 잡겠답시고, 들어가는 행동은 목숨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임질 가정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지금.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야만 했다.
“슬슬 도착한 거 같은데?”
챙! 챙!
금속이 부딪치는 마찰음이 강하게 들렸다.
근처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리다.
분명 헌터와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와 맞붙는 것이리라.
S급 헌터 포벨까지 살인자에게 당했다.
기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하자고.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최소한 500m는 떨어져서 주차해야한다.
괜히 가까이 다가갔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 이거 진짜 아닌데.”
“도착하고보니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네요. 아티팩트 아니었으면, 진즉에 타죽었겠는데.”
남자 기자 하나가 손목에 찬 팔찌를 들어보였다.
나머지 기자들도 착용 중이다.
S급 연금술사가 제조한 아티팩트.
“가자···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냐?”
에릭이 턱짓으로 앞으로 가리켰다.
“후우··· 진짜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에릭씨를 저주할 겁니다.”
“나도 동감이야.”
“···알겠으니까 빨리 가자고!”
*콰지직!
‘뭔 놈의 포스가 이런 공격에도 끄떡없냐?’
태현은 답답했다.
스트라이크 샷을 두어 번 연달아 사용했음에도 크라포스의 포스에는 생채기조차 만들지 못했다.
반면에 크라포스는 자신의 유령검 1개를 추가로 부수는데 성공했다.
간간히 장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실패.
“뭐지? 내 공격을 포스로 막는 건, 아닌 모양이군.”
크라포스가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거리를 좁혀 유령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계속되는 공격.
태현은 다시금 검으로 형태변화 시키고는 고스트 스톰을 시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크라포스의 포스는 건재했다.
“큭큭.”
크라포스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어째서 통하지 않지?’
검, 궁, 곡괭이.
모든 무기를 사용해서 크라포스의 포스를 부수기 위해 공격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무용지물로 돌아갔다는 것.
‘장력을 무시할 정도였다. 그렇다는 건··· 크라포스를 능가했다는 건데.’
능력치면에서는 태현이 우위를 점한다.
그런데 포스에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
“죽어라!”
크라포스가 다시금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태현의 몸을 폭발시킬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2개의 유령검이 그의 곁을 꼿꼿이 지켰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도대체 네 포스는 무엇이지?”
크라포스가 인상을 구겼다.
분명 포스는 진즉에 박살났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자신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모습.
반면, 태현은 생각에 잠겨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있다. 파훼할 방법이.’
포스가 공격을 방어해주긴 하지만, 약점 역시 존재할 것이다.
“무시하는 건가!?”
크라포스가 다시금 태현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유령검 하나가 자동적으로 그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했다.
그 때, 무언가 하나의 생각이 태현의 뇌리에 꽂혔다.
‘설마···.’
태현은 유령검이 방어하지 못하도록 컨트롤했다.
방어해야할 유령검이 슬쩍 옆으로 빠졌고, 태현이 크라포스의 주먹을 향해 똑같은 주먹으로 응수했다.
쾅!
콰직!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
태현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이런!”
크라포스가 이전과는 다르게 당황하더니 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태현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크라포스에게 바짝 붙었다.
“이제 알았다. 네 파훼법.”
씨익 웃으며 주먹을 다시금 내질렀다.
맨손 공격으로 크라포스가 두른 포스를 집중 공격했다.
콰직! 콰지직!
효과가 있다.
무구가 아닌, 순수 능력치로 무장된 맨손 공격에 포스가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깨어져갔다.
콰직!
결국 태현의 주먹을 버티지 못하고, 크라포스의 몸을 두르고 있던 검은 포스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