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습격자(5)
*“어··· 어떻게?”
포스가 깨지고 말았다.
무구와 스킬들을 완벽하게 무효화시키는 포스가 말이다.
크라포스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뭘 어떻게야? 네 놈보다 능력치도 높은데, 공격이 안 통하잖아? 그래서 마지막으로 투박한 방법을 사용한 건데··· 보기 좋게 통했네?”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파훼법이 이렇게 간단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끝을 봤어야 되는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았다.
“자··· 잠깐! 네 놈이 나보다 능력치가 높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믿든, 말든 네 자유고.”
태현은 아예 검을 아공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유령검도 회수했다.
그저 주먹이면 충분했다.
퍼억!
“쿨럭!”
태현의 주먹이 크라포스의 복부를 강타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크라포스의 눈이 뒤집혔다.
그를 보호해줄 포스가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퍼억!
태현의 주먹이 이번에는 크라포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이상해! 이상해!’
그의 주먹은 너무 아팠다.
미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싶었는데, 그럴 수조차 없었다.
다리에 힘을 풀려고 할 때마다, 그의 발차기가 무릎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강할 리가 없는데?’
태현과 거리가 좁혀짐에 그의 레벨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잘 쳐줘도 300정도.
뒤에서 관전하고 있는 남자보다 100이나 낮은 레벨이었다.
그렇기에 손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태현의 주먹이 크라포스의 안면과 복부를 강타할 때마다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잇따랐다.
그의 주먹은 레벨이 500~600을 가뿐히 뛰어넘은 파워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저히 300이라고 볼 수 없었다.
“크악!”
크라포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저런 싸움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뒤에서 관전 중인 레오나르도가 침음을 흘렸다.
저건 싸움이 아니고 개 패듯이 패고 있는 거다.
릭 역시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허허··· 나를 사지로 내몬 놈을 저렇게 개 패듯이 패다니···.”
프레드는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태현이 강한 것은 인정하는데,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붙인 크라포스를, 저렇게까지 농락하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크라포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태현과 비무를 했어야 될 것이다.
순전히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서.
심지어 방송에 송출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크라포스가 아니었다면, 온간 쪽은 자신이 다 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맙네.’
두들겨 맞는 크라포스에게 측은지심이 살짝 생긴 프레드였다.
*“찌··· 찍고 있어?”
“어···.”
S급 연금술사가 직접 제조한 초고성능 카메라.
덕분에 100m가 떨어진 거리에서도 태현과 크라포스의 싸움을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선명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들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나머지, 일반 카메라로는 제대로 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카메라는 달랐다.
태현의 주먹이 크라포스의 복부와 안면에 강타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촬영되고 있었다.
“와··· 이게 뭔 싸움이냐?”
“무투가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조금 어설프긴 하네.”
무투가의 지식을 겸비한 에릭이 낮게 중얼거렸다.
태현의 움직임은 무투가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의 주먹은 하나같이 괴기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강하면, 상대편의 얼굴이 저렇게까지 구겨질 수 있을까?
에릭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계속 찍어야 돼요?”
기자가 카메라를 슬쩍 내렸다.
“판단이 왜 그 모양이야! 빨리 찍으라고!”
에릭이 답답함에 소리를 쳤다.
저 싸움을 안 찍겠다는 건,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겉보기에는 수준이 낮아 보일 수 있는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이걸 놓치는 건 병x짓이다.
“뭘 찍고 계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뒤에 들리는 목소리가 기자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거기에는 언제 왔는지 프레드가 서 있었다.
“어··· 어···?”
기자들은 프레드의 정체를 모르는 듯 했다.
워낙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헌터들 중에서도 위에 있는 인원이 아니라면, 프레드를 모르는 게 정상이었다.
“뭘 찍고 있냐고 묻잖습니까?”
프레드의 오른손에 구슬만한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그 구슬의 열기만으로도 몸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앞에 있는 인물이 베일에 쌓여있는 갓 급 헌터 중 하나.
알드레드 프레드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헉···.”
“으으···.”
기자들은 겁에 질려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나마 에릭이 유일하다시피 평정심을 유지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릭이 급히 일어났다.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프레드에게 거짓을 말하는 순간, 이후에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설명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요점만 간단하게 이야기했으니까.
“흠··· 그래서 기사에 실으려고, 촬영 중이었다는 건가요?”
기자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프레드의 목소리에 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의 마음을 언짢게 만든 모양.
“기사 실지 마세요.”
“네? 그··· 그렇지만, 살인자가 잡혀야 시민들이 안심을···.”
“잡았다고 기사 내세요. 공로는 저기 앞에 있는 S급 헌터 2명에게로 돌리시고요.”
“······.”
“영상 지우라는 겁니다.”
괜히 태현이 나섰다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독이 됐으면 됐지, 절대 득이 되지는 않는 기사가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에릭을 포함한 기자들이 카메라를 회수했다.
“카메라 줘 봐요.”
프레드가 손을 내밀었다.
기자들은 머뭇거리고는 카메라를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카메라는 총 4대.
쾅!
프레드는 망설임 없이 카메라 4개를 전부 폭파시켰다.
“헉!”
“아악! 이거 비싼 건데···.”
기자들의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런 기자들에게 프레드가 명함을 내밀었다.
대표로 에릭이 받아들고는 이게 뭐냐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중에 여기로 연락 주세요. 카메라의 비용을 3배로 지불할 테니.”
“아! 네!”
파손된 카메라를 전부 배상하겠단다.
그것도 3배로.
에릭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어쨌거나 5분 드릴 테니까 여기서 사라지세요.”
“5··· 5분이요?”
“왜요? 싫습니까?”
“아··· 아닙니다!”
에릭을 포함한 기자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프레드가 몸을 돌려 태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퍽! 퍽!
구타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세게 때리면,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이렇게 살벌하게 들릴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와 릭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관전 중이었다.
“크악! 제발 그만 때리라고! 그마아아안!”
크라포스가 애원하듯이 사정했다.
그러나 태현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네 놈이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몇 명인지 생각해라. 겨우 이 정도로 엄살을 피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것도 죄 없는 사람들이.
태현은 그들을 대신해서 크라포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진즉에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은 이유.
그건 바로 복수였다.
퍽!
“끄아악!”
태현이 크라포스의 멱살을 잡았다.
그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열심히 쳐봤지만, 태현의 신체능력치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넌 바로 안 죽일 거야. 극도의 고통을 준 뒤에 죽여주마.”
태현의 주먹이 크라포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얼마나 내렸는지 안면이 함몰된 크라포스.
그럼에도 태현은 계속해서 같은 곳을 때렸다.
“끄억···.”
상상 이상의 고통에 크라포스가 신음을 내뱉으며 의식을 잃었다.
그럼에도 태현의 주먹은 쉬지 않았다.
퍽! 퍽! 퍽!
주르륵.
크라포스의 머리가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피가 분수마냥 솟구쳤고, 뇌수가 터져 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비위를 상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태현이 주먹을 회수했다.
“어··· 어··· 끝인가?”
“끝났군.”
관전 중인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싸움이 끝났다.
살인자는 죽었고, 아군인 태현이 승리했다.
“잠깐만···.”
프레드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현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무표정으로 크라포스를 내려다보는 모습.
마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표정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주군!”
순간, 태현의 옆에 하나의 마법사가 소환되었다.
“설마···.”
프레드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다.
태현은 마법사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치료해.”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S급이었는지 무너져 내린 크라포스를 80% 가까이 회복시켰다.
“!”
프레드가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이대로 죽이는 게 아니라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헌터들 역시 얼마나 놀랐는지 시선을 돌렸다.
지금 태현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두려움이 그들의 몸을 지배했다.
“넌 아직 못 죽어.”
“크악!”
퍽! 퍽!
태현이 다시금 크라포스의 멱살을 잡고,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계속 되는 공격에 크라포스의 복원된 얼굴이 다시 함몰되었다.
구타는 30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마법사의 힐링만 5번.
프레드는 질렸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저런 사람과 싸우려고 했다니.’
갓 급이 되어서 처음으로 느낀 두려움이라는 감정.
각성 이래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심장소리에 반응했다.
머리까지 박동에 따라 울리는 듯 했다.
“이제 그만 죽어라.”
태현이 잡았던 멱살을 드디어 풀었다.
크라포스는 의식을 잃은 상태.
어느새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고는 크라포스의 가슴을 향해 내려찍었다.
쩍!
불쾌한 소리와 함께 크라포스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태현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곡괭이에서 검으로 바꾸고는 크라포스의 목을 베어 상황을 종결시켰다.
[크라포스의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레벨이 300이 되었습니다. 2차 각성의 요건을 갖추셨습니다.]
[‘초대 킹 가오스의 접견실’ 입장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끝났다.
자신의 존재를 의식해서 지구까지 찾아온 놈.
칭호의 효과로 인해 크라포스의 능력을 능가하면서 생각보다 쉽게 끝난 싸움.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어.’
이 곳 S급 헌터들만 하더라도 5명이 사라졌다.
몬스터를 박멸하는데 큰 전력이 되어주는 헌터가 사라진 것은 꽤나 큰 타격일 것이다.
태현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하나의 메시지가 추가로 들려왔다.
[‘크라포스의 과거’를 회상할 수 있습니다. 회상하시겠습니까?]
‘과거를 회상해?’
태현이 복잡한 얼굴로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크라포스의 과거를 회상한다면, 변종에 관한 실마리가 완전히 풀릴 수 있을까?
‘회상하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보를 획득하는 것을 꺼릴 필요는 없다.
태현의 고개가 주억여졌다.
[‘크라포스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눈앞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