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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116화 (116/160)

26화 습격자(6)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미국이 아닌, 푸른 평원 가운데 서 있었다.

‘이번에도 유령인가.’

에일린의 두 번째 과거를 볼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첫 번째는 에일린의 몸에 들어가서 회상했다면, 두 번째는 이처럼 유령이 되어 에일린을 지켜봤었다.

그리고 이번 과거 회상도 마찬가지로 유령이 되어 크라포스의 과거를 엿보는 것이었다.

마침 눈앞에 과거의 주인공인 크라포스가 보였다.

일전에 상대했던 크라포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젊었다.

이제 겨우 10대 중후반정도 되었을까?

그런 크라포스는 이 넓은 평원에서 열심히 체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다소 자세가 엉성하지만, 기본기가 되는 근력이 탄탄했기에 흔들림은 없었다.

“크라포스! 이제 그만 돌아오너라!”

평원 저 멀리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지금 갑니다!”

크라포스는 수련을 멈추고는 풀숲에 놓은 허리띠를 다시 동여맸다.

태현은 그런 크라포스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인가?’

가까이서 보니 목소리의 주인은 크라포스의 아버지인 듯하다.

닮아도 너무 닮았으니 확실하다.

“오늘은 진전이 좀 있었느냐?”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하면 된다.”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아버지께서 이루신 경지까지 올라갈 겁니다!”

“하하, 기대하고 있으마.”

“네!”

크라포스가 포권을 취했다.

미소가 떠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운 모양.

‘생각보다 멀쩡하네?’

광기에 젖은 눈동자를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크라포스의 눈은 초롱초롱했고, 순수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태현이 생각에 잠기자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이전 에일린 때 면역이 생겨서 버틸 만 했다.

‘······.’

태현은 말없이 주위를 살폈다.

바람에 풀과 꽃이 나풀거리던 푸른 평원은 어두운 불모지가 되어있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짓밟은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버지!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으흐흑···.”

그 평원 한가운데 크라포스가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한 명의 남자가 안겨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의 아버지였다.

몬스터에 의해 온 몸이 뜯겨나간 흔적들.

‘몬스터때문에 아버지를 잃었구나.’

크라포스의 절규가 그의 가슴에 사무쳤다.

구슬프게 우는 모습이 예전의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답답하다···.’

가슴에 추를 달아놓은 것 마냥 무거웠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 때, 난데없는 목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하나 열렸고, 가면을 쓴 남자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 뒤로는 수많은 몬스터의 군대가 그를 호위했다.

“슬픈가?”

“이 새끼···.”

우드득.

크라포스의 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후후, 가오스의 힘을 계승받으면 무엇 하리. 결국 네 놈도 가오스처럼 실패작일 뿐이야.”

가오스.

태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 초대 킹이라고 했는데.

왜 그 이름이 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으아아! 도대체 목적이 무엇이냐!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별 다른 건 없다. 단순한 유흥일 뿐.”

가면을 쓴 남자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태현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단순한 유흥이라고···? 겨우 그런 이유로 사람들을 죽여!?”

크라포스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가면을 쓴 남자가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태현은 알 수 있었다.

저 가면 사이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좋았잖아?”

“뭐···?”

“희망이 생겼지 않았나? 힘이 생겼으니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잖아?”

“닥쳐! 전부 살려내라고!”

가면을 쓴 남자가 손짓하자 몬스터들이 크라포스를 에워쌌다.

“조건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가오스의 힘을 버리고, 내 밑으로 와라.”

“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아버지만큼은 살려주지.”

“지x하지마··· 전부 살려내라고!”

당장이라도 저 놈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분노.

그렇지만 그는 지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품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

분명 나선다면, 아버지의 시신을 훼손될 것이 틀림없다.

“잘 들어라. 차원을 파괴하는 건, 순전히 내 역할이야. 결국 이 차원은 파괴되어야 한다.”

“크윽···.”

“그런데 너는 차원과 함께 사라지기엔 아까워. 그래서 제안을 하는 거야. 어때? 아버지만이라도 살리고 싶지 않나?”

움찔.

크라포스의 몸이 순간 떨렸다.

가면 쓴 남자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를 살려주고, 다른 차원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

“젠장··· 웃기지마. 차라리 죽여라. 죽어서 아버지를 뵙겠다.”

“그건 무리야.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 영혼은 내가 직접 소멸시킬 거라서.”

남자의 손가락이 크라포스가 안고 있는 시신으로 향했다.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래.

크라포스가 입술을 세게 물었다.

‘신인가···? 사람을 살리고, 다른 차원으로 보낸다는 건···.’

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과율이 어긋나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알겠다. 받아들이지.”

‘!’

태현이 놀란 눈으로 크라포스를 보았다.

“하하! 좋다. 대신에 너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겠다. 지금까지의 기억은 고스란히 소멸되어야 마땅한 법.”

“···아버지만큼은 기억할 수 있게 해 줘.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부탁이다.”

“훗.”

가면 쓴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었을 뿐.

“으아악!”

순간, 크라포스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억을 없애는 작업인 모양이다.

‘······.’

태현은 말없이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크라포스가 감정이 없는 눈으로 가면 쓴 남자에게 걸어가는 것과 그의 아버지가 소생해서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열어 집어넣는 모습까지.

마지막으로 밟고 있던 평원이 순식간에 어둠에 집어삼켜지기까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크라포스의 과거’의 회상을 종료합니다.]

[‘비전 : 포스’를 획득하셨습니다.]

[‘마스터리북 : 패왕권’을 획득하셨습니다.]

‘······.’

메시지와 함께 다시금 시야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끄응.”

태현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에는 호화로운 방이 그를 반겼다.

몸이 찌뿌둥했다.

“일어났나?”

“!”

익숙한 목소리에 태현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진정해,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프레드 헌터··· 당신이 왜 나를?”

어떻게든 쓰러트리고 싶다고 할 때에는 언제고, 지금은 침대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집은 프레드가 거주하고 있는 곳인 모양이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 데리고 왔더니 굳이 그렇게 말해야겠나?”

“······.”

아무래도 과거를 회상한답시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모양이다.

태현이 이마를 짚었다.

찜찜했던 크라포스의 과거.

결국에는 지구에도 일어날 일을 실제로 마주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어디 많이 안 좋은가 보군?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인가?”

“좋을 대로 생각해.”

말할 기운도 없었다.

자동으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그···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뭔데?”

프레드가 살짝 머뭇거렸다.

무언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비춰졌다.

“비무··· 없었던 걸로 해주면 안 되겠나?”

“갑자기?”

“···그래. 내가 경솔했어. 함부로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크라포스를 쥐어 패던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크라포스를 반 죽였으니 당연하겠지.

“알겠다.”

“저··· 정말인가?”

프레드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태현은 담담했다.

어쨌거나 의식을 잃은 자신을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게 해줬으니.

만약 프레드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비무를 취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 그보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었지?”

“5일이다. 꽤 긴 시간동안 누워있었어.”

“5일···.”

태현이 침음을 흘렸다.

‘다들 걱정하겠군.’

연락이 닿지 않은지 5일이다.

“어어? 방금 깨어났는데, 일어나려고?”

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프레드가 급히 만류했다.

아무리 그래도 5일이다.

갑자기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능력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태현은 부작용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움직여도 상관없다.

“됐어.”

“···휴대폰은 따로 보관해뒀어.”

“연락 온 건 없나?”

“모르겠군··· 휴대폰의 전원이 꺼져있었다. 그래서 충전기에 꽂아두기만···.”

“···연락 좀 대신 취해줄 순 없었나?”

“···생각이 짧았군. 사과하지.”

“사과할 것까지야··· 어쨌든 5일 동안 신세졌어. 고맙다.”

어쨌거나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다.

프레드는 집사를 시켜 태현의 휴대폰을 가져올 수 있게 했다.

예상대로 휴대폰의 전원을 켜니 엄청난 양의 통화와 문자들이 쇄도했다.

“끙··· 큰일났군.”

태현이 한숨을 내쉬자 프레드가 피식 웃었다.

“당신 같은 괴물도 한숨을 다 쉬는군.”

“그거 칭찬인가?”

“당연하지.”

“···어쨌거나 나는 이만 가보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고.”

“그래. 다음에는 선물을 가지고 사무실에 방문하도록 하지. 물론 싸우는 건 절대로 아니다!”

일전에는 태현의 길드원들에게 너무 많은 겁을 줬다.

그러니 그 일을 사과할 겸, 태현과 추가적인 대화도 나눌 겸 해서 약속을 잡았다.

“그러든가. 대신에 모두에게 사과해라. 잔뜩 겁을 줘놓고 넘어갈 속셈은 아니겠지?”

“다··· 당연하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간다는 거다.”

“알겠다.”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프레드의 집을 빠져나갔다.

*“태현아!”

“인마! 너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연락이 안 돼!?”

크라포스의 건으로 인해 미국에 방문했다가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걱정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장은아, 장은희 역시 걱정했는지 촉촉해진 눈망울로 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생각 외로 강한 놈을 상대하느라···.”

“···살인귀때랑 같은 유형이었냐?”

임지성이 조심스레 물었고,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갓 급 능력자였다는 소리구나?”

“뭐 그런 셈이지.”

“완전히 잡았냐?”

“그래. 이제 안심해도 돼.”

태현이 피식 웃었다.

그제야 임지성이 한시름 놓았는지 자리에 풀쑥 주저앉았다.

“하아··· 진짜 5일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유지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안하다. 그리고···.”

태현이 장은아와 장은희에게 다가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너희들도 걱정 많았지? 미안하다.”

“······.”

“······.”

평소 같았으면, 이 손을 뿌리쳤을 텐데 지금은 말없이 소매로 눈물을 닦는 그녀들.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태현이 민망함에 볼을 긁적였다.

“네가 미국으로 간다는 걸 들었나 봐.”

G급 게이트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런 사건사고에 게이트를 오갈 수 있는 살인귀가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태현이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5일 동안 연락두절.

걱정을 안 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거 참···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정말로.”

태현은 다시금 그녀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제야 그녀들이 태현의 손을 뿌리쳤다.

평소와 같은 반응에 태현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속은 웃을 수 없었다.

‘크라포스··· 설마 너도 킹이었을 줄은···.’

그의 과거가 잊히질 않는다.

‘다음은 접견실인가?’

초대 킹 가오스의 접견실.

크라포스를 처리하면서 얻은 입장 열쇠.

그 곳에 가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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