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나리유키 코타로(4)
*태현과 임지성이 안식처에 도착하자 수하들 모두가 태현을 반겼다.
“주군!”
“어서 오십시오!”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모습.
임지성은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지 조금 부담스러운 얼굴이다.
“지성아, 일단 성에서 좀 쉬고 있어. 할 이야기가 있어서.”
“알겠어.”
그 말에 쏜살같이 성으로 뛰어 들어가는 임지성.
수하들은 그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이내 태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태현의 눈은 수하들에게, 그것도 마족에게로 향해있었다.
“잠시 너희들은 나 좀 보자.”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훈련에 집중해. 따로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도 좋다.”
“알겠습니다!”
태현의 말에 마족들을 제외한 수하들이 곧장 성으로 들어갔다.
그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한 이안이 그들에게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마족들은 말없이 그의 말을 기다릴 뿐이다.
“제로스가 나타난 것 같다.”
태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마족들은 마기에 민감하다.
제로스의 힘의 원천이 바로 마기였으니 모를 수가 없는 것.
마족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우물쭈물거렸다.
태현의 눈이 살짝 빛났다.
“할 말 있나?”
설마 제로스가 부활했다고 다시 놈에게 붙으려는 속셈인가?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계의 왕이라는 칭호.
이게 있는 이상, 마족들은 배신할 수 없다.
“제로스를 처리하는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흐음?”
마족들의 대답은 조금 예상 외였다.
그 순간, 메시지가 울렸다.
<수하 마족들과 함께 제로스를 완전히 소멸시키세요.>
-제로스는 사악한 악마의 왕입니다.
-킹의 행보를 막아서는 자, 제로스를 처리하세요.
*보상
-마족 전 인원의 등급 1단계 승급.
‘뭐?’
갑작스레 등장한 퀘스트.
지금 눈앞의 마족들은 맹종의 뜻으로 말한 게 아닌, 자신들의 의지로 말한 것이다.
그것이 퀘스트의 요건을 갖춘 모양.
“그래.”
“···정말이십니까?”
자신들의 간청에 별다른 고민 없이 승낙하는 모습.
감동어린 눈동자로 태현을 보았다.
역시 이안의 말이 맞았다.
진작 자신들의 의견을 꺼내놓을 걸.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대책은?”
태현이 물었다.
자신들이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그만한 대책이 있어야한다.
마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앞장서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태현에게 아뢴 것이 아니니까.
“주군께서는 이전 주군의 기운을 느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태현이 고개를 저었다.
프레드나 임지성처럼 헌터들의 기운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계의 왕이라는 칭호를 획득하면서 마족들의 기운까지 덩달아 느껴졌다.
하지만, 나리유키 코타로는 아니었다.
만약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면, 프레드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곧장 코타로의 몸에 들어간 제로스를 찾아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로스의 몸에 들어간 이의 능력인 것 같습니다.”
“능력?”
“네. 아무래도 기운을 감추는 능력이 극에 달한 모양입니다.”
“흐음···.”
갓 급이라고 불리는 나리유키 코타로.
“이전 주군께서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제로스가 등장했는지 안 거지?”
“제로스의 영혼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리유키 코타로가 제로스의 힘을 받아서 갓 급이 된 게 아니라, 애초부터 헌터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제로스의 힘이 더해지면서 갓 급으로 우뚝 올라선 것이리라.
불분명 각성자라 불렸던 이유도 헌터의 힘이 먼저 각성했다기보다는 합쳐지면서 동시에 발현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바로 찾아오지 않았을까?”
“글쎄요··· 무언가 잘못된 게 있는 모양입니다.”
“흠···.”
어찌 되었든 자신이 아닌, 알드레드 프레드를 먼저 찾아간 제로스.
그리고 프레드를 처리하기 전에 고통스러운 얼굴로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다.
‘코타로의 몸을 확실하게 취한 게 아니군.’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상대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다.
“일단 너희들은 곧장 제로스의 근처에 맴돌도록 해. 아마 함부로 나서지는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현재 제로스의 위치는?”
“지금 미국 LA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움직임이 적은 것으로 보아 휴식을 취하는 모양입니다.”
“곧장 붙어.”
거리가 가깝다.
“알겠습니다!”
마족들은 태현의 명령에 곧장 안식처를 빠져나갔다.
‘코타로가 조금 더 버텨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이 싸움이 쉽게 끝날 테니까.’
적은 피해로 싸움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태현은 성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마족들의 뒤를 따랐다.
*“끄아악!”
고통이 섞인 비명이 비좁은 방을 울렸다.
소리의 증폭으로 인해 방을 뚫고 나가며 다른 이들에게까지 비명소리가 전달되었다.
쾅! 쾅!
“저 여기 주인입니다! 안에 무슨 일입니까!?”
좁은 여관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옆방의 사람들도 참지 못하고, 전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은 모두 잠옷 차림이었는데, 아무래도 자다가 깬 것 같다.
커플들도 보였고, 늙은 남성과 젊은 여인도 보였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일그러진 상태였다.
“하··· 진짜 참을 수가 없네.”
“여기 안에 누가 있는 겁니까?”
결국 화살은 여관 주인에게로 향했다.
주인은 안절부절하며 문을 두들기기 바빴다.
여기 안에 들어간 남성은 흑발의 동양인.
영어를 하지는 못하고,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돈을 지불하기만 할 뿐.
심지어 1인실의 금액보다 5배 많은 금액.
주인은 돈에 혹해 그 남자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지금 안 여시면, 문을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주인은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피를 토하며 신음을 흘리는 남자.
얼마나 많은 피를 토했는지 바닥이 피칠갑되어 정상적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꺄아악!”
끔찍한 광경에 일반 커플들과 젊은 여자가 급히 자신의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렸다.
“그··· 뒤처리는 알아서 해주십시오.”
늙은 남자와 혼자 방을 빌린 남자들도 머쓱한 얼굴로 방으로 돌아가려했다.
이런 일은 빠지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딜 가지?”
흠칫.
엎드려 신음을 흘리던 남자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주인은 질렸다는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돌연 남자가 포효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를 방해하려 드는 것이냐! 그냥 얌전히 내놓으란 말이야!”
마기가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는 음성.
그 음성을 듣는 이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방으로 돌아간 이들도 마찬가지.
얼마나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나를 건드린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살기가 짙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광경은 가히 공포였다.
“다··· 당장 나가! 돈은 돌려주겠다!”
주인이 발악했지만, 그럴수록 남자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해괴망측한 광경에 나머지 사람들이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후후.”
남자의 오른손이 검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주인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풀려버린 다리와 팔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 이대로 죽는 건가?’
주인은 결국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떻게 빠져나간다는 말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자, 지난 삶의 주마등이 눈앞에 보였다.
와장창!
순간, 주마등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만!”
“호오? 릴리인가?”
남자, 나리유키 코타로는 주인에게서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스터 등급의 마족, 릴리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마족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이제 그만해라.”
마족들은 어느덧 검과 창으로 나리유키 코타로를 겨누고 있었다.
“호오··· 상급 이상의 마족들이 전부 온 것인가?”
나리유키 코타로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당신을 처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나를? 네 놈들이? 하하하하!”
여관이 떠나갈 정도로 웃는 나리유키 코타로.
주인은 다리에 힘이 조금 들어가자 곧장 방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다른 방에 머물던 사람들은 여관을 빠져나갔고, 주인 역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조금은 안심이군.”
“뭐? 설마 인간을 지키기 위해 왔다는 건가?”
나리유키 코타로의 얼굴이 구겨졌다.
“응. 뭐 문제 있냐?”
문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코타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한태현···.”
“오랜만이다. 제로스?”
그곳에는 태현이 피식 웃으며 검으로 그를 겨누고 있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프레드의 말을 들어보면, 코타로가 의식을 가지고 저항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을 죽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마족들의 보고에 의해 하나의 집에 방문했을 때에는 2명의 남여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그리고 그건 코타로의 안에 있는 제로스의 짓이었다.
결국 구급차와 헌터관리국에 신고를 하고, 이후 제로스의 위치를 찾아 하나의 여관에 도달했다.
마족들은 창문을 깨고, 들어가 제로스를 포위했고, 태현은 유유히 문으로 들어가 제로스와 다시 만났다.
‘살기가 장난이 아니군.’
자신에게 죽었던 전과가 있었기에 그의 분노는 엄청났다.
“일단은.”
여기서 싸웠다간 주위에 많은 피해를 줄 것이다.
여관부터 시작해서 주위에 밀접한 건물들까지.
그러니 이곳이 아닌, 안식처로 들어가 승부를 본다.
“큭큭, 왜? 네 아지트에 데리고 가려고?”
“······.”
들킨 건가?
그렇다면 주변에 피해를 입힐 것을 각오하고 제로스를 상대해야 하는 것인가?
태현이 고민하고 있는데, 코타로가 피식 웃었다.
“좋다. 여기서는 나도 싸우기 협소하니까.”
“무슨 속셈이지?”
굳이 호랑이 소굴로 들어오겠다?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오는 자신감인지.
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싫은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여기서 결판을 볼 수밖에.”
코타로··· 아니 제로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좋다.”
태현은 나쁠 게 없었다.
제로스가 무슨 속셈으로 저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의 공간에서 싸운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제로스를 자신의 안식처로 끌어들였다.
순식간에 많던 인원이 사라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헌터들이 몰려들었다.
여관을 빠져나간 주인이 신고한 것이다.
“···확실히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네요.”
창문이 와장창 깨져있고, 주변이 어질러져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여관 주인의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그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태도만 보더라도 허위로 신고한 것은 아니리라.
그런데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 역시 당혹감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디 갔지··· 그 많은 사람이···.”
결국 헌터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인은 불안했지만, 수색을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이 없는 이상 말짱 도루묵이다.
“만약 다시 나타난다면,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그 말만을 남기고 사라진 헌터들.
주인이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주인은 여관문을 대충 잠그고는 근처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으러 발걸음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