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대응(1)
*“와··· 이게 무슨.”
헌터 한 명이 중얼거렸다.
나머지 인원들 역시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악. 놀라움. 흥분.
등등 여러 감정들이 겹겹이 쌓인 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앞에 있는 수하들에게로.
채민희 역시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소환할 수 있었나?’
일전에 보았을 때에는 잘해봤자 100명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1,000명을 거뜬히 넘어서는 인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강해졌어···.’
그것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이미 갓 급을 초월한 태현은 수하들의 보고를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주군, 몬스터의 소탕을 완료했습니다.’
마침, 수하들에게서 몬스터의 소탕이 끝났다는 보고를 들렸다.
‘주변에 피해는 어느 정도야?’
‘동구에 있는 건물들 40%정도가 훼손되긴 했지만, 복구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망자는··· 저희들이 난입한 이후부터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부상자는 있나?’
‘네. 부상자들도 발생했습니다만 힐링으로 치료를 마쳤습니다.’
8성으로 승급한 힐러계열 마법사의 힐링.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상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힐링이라고 한다.
이번 8성 소환권에서 획득한 힐러 계열 마법사.
태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울산의 상황은 다행이 종료되었다.
“끝났습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채민희에게 말했다.
그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주억였다.
그 많은 인원이 몬스터를 처리하러 들어갔으니 쉽게 끝날 것임을 예상했으니까.
예상했던 결과라는 소리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태현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울산에 없었다면,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시점으로 몬스터들을 격퇴해야 했으리라.
그러나 채민희가 운이 좋게도 울산에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최소한으로 발생했다.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데에는 충분했다.
“아니에요. 헌터님이 아니었으면, 사망자 숫자가 대폭 늘어났을 거예요.”
“그럼 서로 윈윈으로 하죠? 채민희 헌터님 아니었으면, 피해가 더 심한 상황에서 몬스터를 사냥했을 거니까요.”
“헌터님 감사합니다!”
채민희 뒤에 있던 헌터들이 허리를 굽혀 우렁차게 인사했다.
목숨을 구해준 것과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
그리고 방금 그의 말에서 느껴졌던 진정성이 합쳐서 그들을 감동케 만들었다.
“저기··· 앗!”
채민희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급히 다물었다.
그것을 눈치 챈 태현이 반응하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딴청을 부리는 모습에 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뒤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디 가시려고요?”
“게이트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헌터 워치.”
태현이 헌터 워치를 가리켰고, 헌터들이 일제히 워치를 들여다보았다.
그들 모두 알림음이 폭주했고, 조작할 때마다 얼굴빛이 180도 달라졌다.
“허··· 대전에 몬스터가 2,000마리 가량··· 서울은 10,000마리? 이게 무슨···.”
서울, 대전뿐만이 아니다.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이미 바다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폭주하는 몬스터들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울산은 발화점일 뿐이다.
“최대한 제 능력을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처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민들을 대피하는데 주력하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많은 지역을 감당하겠다는 말에 헌터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태현을 보았다.
물론 그가 갓 급의 헌터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순전히 그가 모든 짐을 떠안겠다는 말에 순수하게 걱정이 일은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는 여러분들이 걱정이 되네요.”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조건 시민들을 대피하고, 저희들도 무사히 있을 테니까.”
“훗, 그럼 서로 걱정하지 말기로 하죠.”
“···저도 같이 갈까요?”
방금 말은 채민희의 것이다.
“아니요. 헌터님은 따로 할 일이 있으시잖아요?”
“그건 그렇죠···.”
아쉽다는 듯이 수긍하는 모습에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왜요?”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말을 더듬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뒤에 헌터들은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태현과 그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억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같이 성묘라도 가실래요?”
“성묘요?”
“곧 기일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네.”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태현의 가족과 채민희의 어머니는 기일이 같았다.
심지어 묘지의 장소까지 같았으니, 같이 가자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는 건데··· 혹시 싫으신가요?”
“아니요. 싫은 건 아닌데···.”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헌터들은 살짝 불안했는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사장님! 밀당하지 마시고, 그냥 당기십쇼!’
‘갓 급 헌터를 잡으셔야합니다!’
‘아니야··· 부사장님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어. 이 타이밍에 밀당은 아니잖아요!’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을은 자신들이기에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은 속으로만 앓을 뿐이었다.
“시간 없는데···.”
태현이 헌터 워치를 보는 척 했다.
그러자 채민희가 조금 다급했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래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
“그··· 성묘도 하고, 다른 것도 했으면 좋겠는데···.”
“다른 거라면?”
“오!”
헌터들의 감탄사에 채민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귓불이 붉은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
“풉.”
결국 태현의 입에서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단순히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헌터의 일에 대해서 대화를 좀 나누고 싶어서!”
채민희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오해 안 했어요. 어쨌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상황을 보고 약속을 잡도록 하죠. 괜찮죠?”
“네. 그렇게 해요.”
“그럼 저는 이만.”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에어로돈을 타고, 다시금 상공을 질주했다.
비행 스킬도 있었지만, 에어로돈을 타고 이동하는 게 훨씬 시간적으로 절약된다.
수하들 역시 각자 흩어지게 만들어서 몬스터들을 토벌하도록 지시를 내린 상태.
“부사장님···?”
태현이 사라지고, 채민희는 그 자리에서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헌터 1명이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왜 그러시죠?”
채민희가 반응했다.
그녀의 귓불은 아직까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저··· 주제넘은 말씀이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다소 진중한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채민희 역시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
“말씀하세요. 화 안 낼테니까.”
“정말입니까?”
“네. 뱉은 말은 지켜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태현 헌터님을 마음에 들어 하십니까?”
“···네.”
채민희가 고개를 주억였다.
다소 솔직한 모습에 헌터들이 그럼 그렇지! 라는 얼굴로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음··· 부사장님? 제가 볼 때에는 그렇게 하시다간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봅니다.”
“헙!”
방금 말을 크리티컬이다.
채민희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고, 말을 뱉은 헌터는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느끼고 손으로 집을 막았다.
‘잘 가.’
‘아무리 부사장님이 사람이 좋다고는 하지만···.’
헌터들은 막말을 한 헌터를 측은하게 보았다.
“죄··· 죄송···.”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헌터가 급히 허리를 굽히려고 하자, 채민희가 불쑥 말했다.
“예···?”
화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문을 구하자 헌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저 이런 건 젬병이거든요. 앞에 서면 말이 잘 안 나와요. 머리도 하얘지는 거 같고.”
그녀도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모르겠으면 자문을 구해야지.
괜히 자존심을 지킨다고, 다른 걸 잃을 수는 없었다.
그냥 굽히고 들어갈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부사장님?”
“방금 제 자존심을 구기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니 그 값을 치르셔야죠?”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헌터는 그제야 자신이 꽤나 잘못했음을 직감했다.
‘후우··· 막아낼 수 있을까.’
한편, 태현의 얼굴에 방금까지 자리 잡았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앞으로 몬스터들의 습격이 더욱 심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몬스터들은 최고 등급이 A급 정도.
보스 몬스터 역시 A~B급 이상은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벨루아가 간을 보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은 애들 장난이라는 소리지.’
태현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떼거지로 쏟아지는 몬스터들, 그 가운데 한 줄기 희망 ‘헌터’]
[갓 급에 준하는 헌터들이 몬스터들을 토벌.]
[몬스터를 토벌한 헌터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일정한 게이트가 등장하고, 다시 잠잠해진 세상.
그 가운데 한국의 피해는 미미했다.
유럽,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헌터들이 나서준 것도 있었지만, 태현의 수하인 마족들과 에어로돈, 포이즌 킹이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하하, 정말 대단하군.”
관리국장 채병국이 자리에 앉아 감탄했다.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때만 하더라도, 죽음의 문턱으로 끌려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줄 것은 생각도 못했다.
“대단하군요··· 설마 한태현 헌터 능력은 아니겠죠?”
간부 1명이 태현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 말은 부정당했다.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다룬답니까? 아마 새로운 헌터들이 대거 등장한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나서 몬스터를 처리했다고 하더군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분명 소환수입니다. 그만한 소환수를 다루는 헌터는 한태현 헌터말고는 없다고요.”
“아니요. 있긴 합니다. 중국의 갓 급 헌터 진진이 있지 않습니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채병국이 의자 손잡이를 탁탁 두들겼다.
그제야 간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옆에 앉아있던 진도윤은 게이트에 집중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을 보는 게 더 급합니다. 벌써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것만 십여 차례입니다. 앞으로도 방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음··· 그렇다면 길드나 관리국이 더 바빠지겠군요.”
“맞습니다. 일이 추가된 셈이겠지요···.”
“헌터들이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아무리 신체능력치가 보통 인간을 초월했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니까요.”
“이 부분은 교대 근무형식으로 경계를 세워야 될 것 같습니다. 지휘관은 S~A급으로만 선발해야 될 듯 하고요.”
“미성년자라도 B급 이상의 헌터들은 전부 투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나이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헌터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라고요.”
간부 한 명을 시발점으로 각기 자신들의 의견을 어필하는 간부들.
채병국 역시 진중한 얼굴로 의견들을 수렴했다.
그들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으니까.
언제 몬스터들이 기습해서 시민들이 죽어나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단 이 부분은 고민을 해보자고.”
“국장님.”
“음?”
국장을 부른 건, 다름 아닌 진도윤이다.
“이 안건은 저희들만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헌터들의 대표격을 한 사람 불러서 의견을 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표격이라면··· 한태현 헌터를 말하는 건가?”
끄덕.
태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간부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무언의 동의.
채병국 역시 진도윤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치부했다.
“한태현 헌터라면, 다른 길드들도 동의할 겁니다. 그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 그렇게 하자고. 다들 이의 없겠지?”
“네.”
간부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다. 이 부분은 한태현 헌터의 일정에 맞춰서 다시 회의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