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대응(3)
*회의가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몬스터가 쏟아지는 게이트가 생길 우려가 있었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게이트는 잠잠했다.
그저 평소와 똑같은 게이트만 출현했을 뿐.
그럼에도 헌터들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다.
헌터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인원들과 교대하면서 24시간 내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행인 점이라면, 태현의 수하들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에 조금 안심이 되는 점이랄까?
그리고 지금 시각, 태현은 일산에서 게이트를 순찰 중이었다.
“딱히 기운이 느껴지는 건 아닌데.”
게이트는 여전히 수십 개씩 생성되고 있었지만, 이른바 몬스터가 쏟아지는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계속해서 압박을 하지 않고,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는 걸까?
“뭔가 있는 게 확실해.”
그 말은 태현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태현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만하고 지성이한테 가라.”
“네? 왜요?”
“사장님 쪽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 같은데.”
“헛소리 하지 말고.”
그의 옆에 쫄랑쫄랑 따라오는 이들은 장은희와 장은아였다.
최근에는 학생들을 이끌며 잠잠하다 싶었는데, 오늘 또 이렇게 찰거머리마냥 옆에 붙어있다.
“단순히 보호해달라고 옆에 붙은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백승한 헌터님은 투시를 통해 게이트를 분별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 그건 처음 듣네.”
태현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임지성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백승한이 투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처음 듣는다.
“뭐야··· 부사장님 안 되겠네. 중요한 내용을 전달도 하지 않으시고.”
“어쨌거나 본론이 뭔데?”
“칫, 말 좀 끊지 마세요.”
장은희가 볼을 부풀렸다.
태현은 가소롭다는 얼굴로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볼에 있는 바람을 뺐다.
“빨리 말해.”
“알았어요. 사실 저도 투시를 사용할 수 있거든요.”
“네가?”
“네. 투시가 어떤 능력이냐면···.”
장은희의 설명이 이어졌다.
투시를 통해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태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붙었다고 한다.
“···너희들 그런 스킬이 있다고 나한테 말한 적 없지 않아?”
“물어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태연스레 말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물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태현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알았어. 그러면 일산만 빠르게 돌고, 양주로 넘어갈 테니까 조심히 따라와.”
“에이, S급 헌터를 걱정하는 건, 사장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럼 신경 안 쓰고 원래대로 움직일 테니까 따라와.”
“···죄송해요. 맞춰주세요!”
갓 급인 태현의 속도를 맞추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 분명하다.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러던가.”
그렇게 태현과 장은희, 장은아는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게이트 이외에도 평소와 다른 게이트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흘간 특이사항이 없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걸렸다.
*일산에 조그마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
그 안에서는 흑의를 걸친 한 남성이 유유히 빠져나왔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달빛에 비쳐 번들거렸다.
“흠··· 킹은 근처에 있는 모양이군.”
거대한 큰 산과도 같은 기운이 이 곳, 일산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일단 조금 지켜보도록 할까?”
섣부른 방심을 금물.
일단은 태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접근할 필요가 있다.
습격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면 더더욱.
“어? 대피하라는 명령 안 들으셨습니까!?”
계획을 정리하던 중, 갑작스런 목소리에 고개라 스르륵 돌아갔다.
그 곳에는 헌터 3명이 남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A급 헌터 3명.
“대피?”
남자가 반문했다.
“당장 대피하십시오. 비각성자는 대피소에 대기하라는 명령 못 들으셨습니까?”
헌터들은 이 남자가 비각성자임을 확신했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급 이상으로 보기에는 얼굴의 낯이 익지 않았다.
“내가 왜 대피해야하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헌터들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결국 헌터들은 좋게 타이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몬스터 때문이잖아요. 갑자기 위험한 일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가족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더더욱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셔야 돼요.”
“몬스터? 이걸 말하는 건가?”
남자는 왼 손을 가볍게 일자로 뻗었다.
그러자 그 손가락의 끝에서 조그마한 게이트와 함께 몬스터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헉!”
그제야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헌터가 급히 경계태세를 갖췄다.
“누··· 누구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헌터들을 보았다.
헌터의 눈에는 살기가 깃들어있었는데, 그것이 남자의 분노를 돋우고 말았다.
“설마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그의 몸에서 칠흑보다도 어두운 기운이 일렁였다.
헌터들은 그제야 남자의 몸에 서린 기운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잠잠했던 바다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기운에 헌터들의 사기가 일제히 떨어졌다.
“젠장···.”
“다··· 당장 한태현 헌터님께 보고를!”
“한태현··· 킹을 말하는 거로군. 그건 안 돼지.”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헌터들은 헉! 소리와 함께 몸을 굳혔다.
“뭐지··· 사라진 건가?”
“됐어. 일단 신고부터··· 끄억!”
갑작스런 단말마의 비명.
헌터들의 고개가 돌아갔고, 남자는 단검으로 가운데 있던 헌터의 목을 꿰뚫은 뒤였다.
“태호야!”
“시끄러워.”
그는 목에 박힌 단검을 빼내고, 다시금 사라졌다.
헌터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임을 깨닫고, 급히 몸을 돌려 도망쳤다.
“최대한 빨리 가야 된다! 여기 일산에 한태현 헌터님이 계실 거야!”
태현이 일산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헌터는 마지막 남은 희망을 가지고, 급히 도망쳤다.
“소용없는데.”
“억···!”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복부에서 뜨거운 고통이 뒤따랐다.
헌터가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어···.”
헌터는 혹시나 싶어 자신의 복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있었다.
자신이 복부를 꿰뚫렸다는 것을 눈치 챔과 동시에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기까지는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뭐지··· 겨우 이걸로 의식이 날아간다고···?’
헌터는 어떻게든 태현에게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려고 해보았지만, 그의 몸은 돌이 된 것 마냥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아예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발악하지마라.”
남자는 복부에 꽂힌 단검을 빼고, 그대로 헌터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제 마지막은 반대편으로 도망친 헌터.
남자의 몸이 다시금 사라졌다.
“끄아악!”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반대편에서도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휴대폰을 들고 있는 천태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저희 A급 헌터 3명이 당했습니다···.
-몬스터의 소행인가?
-그건 아닙니다.
-뭔데.
-자상입니다···.
-자상이라고?
-네.
칼에 찔려서 죽었단다.
그것도 A급 헌터 3명이.
그렇다는 건, A급 3명을 한 번에 상대할 실력자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리.
-젠장··· 일산이라고 했지?
-네.
-한태현 헌터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아직은 모릅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발견했고, 곧장 사장님께 보고를 올리는 겁니다.
-···알았어. 곧바로 한태현 헌터에게도 보고해.
천태도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을 쇼파로 집어던졌다.
그의 구겨진 얼굴만 보더라도, 얼마나 분노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당했답니까?”
“다 들렸습니까?”
끄덕.
맞은편에 앉아있던 백승한이 고개를 주억였다.
천태도가 주위를 보았다.
최강식, 성수연 너나할 것 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A급 헌터 3명이 당했답니다. 전부 자상으로.”
“사람의 짓이라는 거군요.”
“하필이면 이런 민감한 상황일 때···.”
“A급 3명의 목숨을 단번에 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S급 이상의 헌터가 벌인 짓일 겁니다. 태호나 성환이 지혁이 모두 레벨이 170을 넘은 강자니까요.”
레벨 170.
채연화나 채민희보다도 20레벨 낮은 수치였다.
그만큼 강자라는 소리다.
한국에 그런 강자들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이 자리에 있는 자신들과 태현밖에 없다.
그러나 태현이 그런 일을 벌일 리는 없다.
분명 누군가 술수를 부린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G급 게이트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임지성의 물음에 대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사상 최초의 G급. 그런데 몬스터가 나오기는커녕 순식간에 사라졌다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만, 그게 무슨 문제지?”
G급 게이트는 이렇게 사라졌다고들 알고 있다.
물론 비슷한 시간대에 한 명의 헌터가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기사까지 있었지만, 그건 뒷전이다.
“그럼 비슷한 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것도 아시겠군요?”
“잠깐만···.”
눈치가 빠른 백승한이 임지성의 말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끄덕.
“사람들을 죽였다고 알려진 헌터. 네. G급 게이트에서 나온 놈이었다고 합니다.”
“!”
대표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해한다.
자신도 태현에게 그 사실을 들었을 때에는 너무 놀라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놈을 처리한 건, 한태현 헌터였습니다.”
“음···.”
“저는 이 상황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한태현 헌터도 비슷한 생각을 할 테고요.”
임지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의 게이트에서 A급 3명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강자가 출현했다고 봐야한다.
채연화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생각에 잠겼다.
이걸 몬스터라고 봐야할까?
“사람이 아니에요. 그들은 몬스터라고 봐야합니다.”
“몬스터와 같죠. 정상인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임지성의 명쾌한 답.
채연화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부분은 제가 나서겠습니다.”
천태도였다.
“네? 위험합니다!”
백승한이 급히 만류했다.
하지만, 천태도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죽은 사람은 제 길드원입니다. 복수도 제가 하는 게 맞고요.”
“A급 3명을 자상으로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강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그래도 복수는 제 손으로 직접 합니다. 나머지 대표들께서는 여기서 헌터들의 보고를 계속 받아주십시오.”
“···후우. 같이 가드립니까?”
“하하, 백 헌터는 생성되는 게이트들을 모니터링 하셔야지요. 어디를 가시려고 합니까?”
“···무사히 귀환하십시오.”
결국 백승한이 백기를 들었다.
“그럼 무사히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천태도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각 대표들은 무거운 얼굴로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제가 뒤에 붙겠습니다.”
임지성이었다.
그러나 최강식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만류했다.
“아니요. 이건 천태도 헌터에게 맡깁시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그래도 천태도 헌터가 하겠다고 나선 일입니다. 길드원의 복수라고 하지 않았소.”
“······.”
대표들도 같은 생각인지 말없이 모니터만 응시했다.
결국 임지성도 자리에 도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