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엘프의 숲(1)
*시간은 약 48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관리국에서는 프레드가 회복에 전념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국가 최대의 전력인 프레드가 위험에 노출되지 못하도록 정예 헌터만을 뽑아 그의 호위까지 설 수 있도록 했고, 헌터들 역시 마다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주었다.
그리고 48시간 전인 지금, 미국 관리국에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관리국 지하 6층.
몬스터에게서 획득한 무구들을 보관하고, 기록 및 관리하는 공간에 새로운 게이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프레드는 관리국의 보고에 곧장 지하 6층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그를 맞이했다.
개 중엔 S급 헌터 레오나르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게이트 조사는 완료했나?”
그의 물음에 헌터 하나가 손을 들고 조심스레 답했다.
“네. 완료했습니다만··· 평소와는 조금 다릅니다.”
“달라?”
“이 게이트는 마력량이 검출되지 않습니다.”
마력을 측정할 수 없는 게이트!
프레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이트길래 마력량이 검출되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G급을 넘어서는 건 아닙니다.”
그 목소리는 레오나르도였다.
“···제대로 얘기해 봐.”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제가 여기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
들어갔다 나왔다고?
프레드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게이트는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들어가는 순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기에 본래 지구로 돌아오려면 보스를 처리해서 비틀어진 차원을 원래대로 돌려야만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레오나르도가 몬스터를 처리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게이트는 아직까지 그대로 열려있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크기.
프레드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에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몬스터가 없어?”
“네. 정확하게는 몬스터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에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그러나 그 역시 S급 헌터.
게이트의 크기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는 크기여서 마력량을 검출하기도 전에 게이트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처음에는 들어온 것을 후회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넋을 잃었다.
지구에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한 울창한 숲.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자리 잡은 수많은 집.
거대한 가지들이 집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게 또 안정적인 균형을 자랑했다.
신기한 마음에 걸음을 옮기려던 레오나르도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멈췄다.
투둑.
밟고 있던 돌무더기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이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거대한 나무의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냐?”
그리고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레오나르도의 고개가 다시금 들어졌다.
“어···?”
얼마나 놀랐는지 얼빠진 채로 그 존재를 응시했다.
“그래, 그게 누군데?”
그의 경험담을 듣고 있던 프레드는 짜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풍경같은 게 아닌, 그 안의 존재가 누구인지 간략하게 설명하면 될 것을···
굳이 그렇게 길게 늘여야겠냐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은 자신이 엘프라고 밝혔습니다.”
“···뭔 개소리야?”
엘프?
프레드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프레드의 설명은 간략하게 이어졌다.
그 역시 게이트를 출입해서 확인해본바 확실히 레오나르도의 말처럼 엘프들이 그를 반겼다.
그들은 싸울 의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극비사항이라고 한 거냐?”
“그래. 이런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해질 테니.”
“흐음···.”
태현은 고민했다.
몬스터가 아닌 다른 존재.
이전에 여러 차원이 파괴되어 소멸되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다른 차원과 연결되어 새로운 존재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쨌거나 이 사실은 관리국의 헌터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밖에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겠지. 괜히 유출시켜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일단은 내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곧장 관리국으로 가자.”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아니. 일단은 가서 생각한다.”
임지성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결국 프레드의 집에서 관리국으로 목적지가 변경되었다.
마침 관리국은 이 근처였기에 도착하기까지 30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프레드의 차량을 알아본 관리국 직원들은 급히 경례했다.
모든 직원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대우가 좋네?”
한국 관리국에서 저런 대우는 없었는데.
E급이었을 때,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조금 많았던지라 오히려 지금은 두려움에 인사만 할 뿐, 시선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뭐야? 너도 이런 대우를 받는 거 아닌가?”
프레드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 한태현 헌터가 불분명 각성자일 때, 무시하던 사람들이 조금 있었거든요.”
태현 대신에 임지성이 답변했다.
“그래?”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설마하니 불분명 각성자 때, 그런 일이 겪었을 줄이야.
“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부터 차근차근 말씀드릴게요.”
임지성은 이때다 싶었는지 그동안 태현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미국 관리국 윌슨이 발표했던 내용까지 첨가해서.
“더러운 놈들!”
쾅!
반응은 아주 좋았다.
“진정해. 차 부셔진다.”
결국 태현이 그를 말렸다.
왜 말했냐는 얼굴로 임지성을 보자, 그는 고개를 돌려 아예 시선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저 녀석 일부러 그런 거다.
다혈질인 프레드를 자극할 줄이야.
그러나 프레드는 태현의 앞이다 보니 불같이 화내지는 않았다.
“크흠··· 하마터면 실수할 뻔 했군.”
차 정도야 다시 사면 그만.
돈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으니까.
하지만, 태현의 얼굴이 구겨지는 모습에 이상할 정도로 불안해졌다.
괜히 그와 트러블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화가 싹 가라앉았다.
“됐어. 누가 내 입장을 생각한다면, 정상이지.”
특히 프레드는 더욱 화가 날 것이다.
불분명 각성자인 태현이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잊힌 것은 미국 관리국 윌슨의 입김이 작용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내가 나중에 관리국을 통해 보상하지. 윌슨은 가만두지 않겠어.”
현재 윌슨은 관리국에서 쫓겨난 상태다.
한국에 거짓으로 헌터들을 지원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도착했습니다.”
프레드의 차는 지하주차장 중에서도 VVIP만이 주차할 수 있는 지하 5층에서 주차했다.
역시 미국의 갓 급다웠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귀빈석의 문을 열어주었고, 태현은 편하게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고마워요.”
“아··· 아닙니다! 헌터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기사에게 감사를 한 번 표하자, 그가 경직된 얼굴로 크게 외쳤다.
‘영광까지야···.’
등급으로 인해서 서열이 갈리는 건,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E급으로 최악의 대우를 받았던 기간이 길어서일까?
태현은 등급으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자자, 어쨌든 빨리 갑시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임지성이 태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그들은 지하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지하 4층 이하로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한 대였다.
VIP전용 엘리베이터.
그마저도 5~6층은 극소수로 허가된 인원만이 내려갈 수 있었다.
“바로 들어갈 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프레드가 조용히 물었다.
태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바로 들어가야지. 네가 들어갔을 때에는 별 말 없이 킹을 찾았다 이거지?”
“그래. 싸울 의지는 없고,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단지 우리들과 할 이야기는 없다고 못을 박더군.”
“흠···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
프레드의 성격상 한바탕 했을 건데.
역시나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냥 넘어갔겠어? 한바탕 하려고 했지.”
“···그럴 줄 알았다.”
“물론 생각을 바꿨지만.”
“왜?”
“놈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더군. 괜히 덤벼봤자 다구리에 버티지 못할 거 같아서 말이지. 목숨은 소중하니까. 그럼 타자고.”
대화를 살짝 나누다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관리인이 보였다.
프레드와 태현, 임지성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관리인은 가볍게 목례하고는 지하 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천천히 내려갔다.
1층이다보니 엘리베이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고, 문이 열렸다.
그제야 넓은 공간이 그들을 반겼다.
밝은 전등 때문에 주위가 환하게 보였는데, 벽에 걸려있는 수 천 개의 무구들이 태현의 눈을 사로잡았다.
“엄청나군.”
“훗, 나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 똑같은 반응이었어.”
“호오··· 못해도 A급 이상들의 무구들만 모아놨네.”
“눈썰미가 좋네. 맞아. 여기는 A급 무구들만 한 가득이지. 간혹 S급 무구들도 있는데, S급 게이트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만 나타났다보니 기껏해야 2~3개가 전부야.”
“이 정도로 수집한 것만 해도 놀랍다.”
이 정도 무구를 수집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게이트를 클리어 해야 할까?
보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희박한 확률로 무구를 드랍하기 때문에 무구의 가치는 엄청났다.
암시장에서도 A~B급 무구 하나가 5~100억 사이로 거래되고 있으니 지금 이 수 천 개의 무구들의 가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A급들만 모아놨다고 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물론 태현이야 킹의 상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너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게이트는 저기 방 안에 있다.”
프레드가 하나의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철로 이루어진 문.
무구들 중에서도 최상급만 선별해서 모아놓은 창고였다.
마법으로 이루어져 외부인이 손을 대면, 외부인에게 강력한 저주가 내려진다.
“레오나르도!”
프레드가 레오나르도의 이름을 부르자,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레오나르도가 걸어 나왔다.
그러다 태현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급히 허리를 굽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그보다 여기서 일하시네요?”
S급 헌터인줄은 알았지만, 여기서 일할 줄은 몰랐다.
“감시자로 일하는 거야. 혹여나 여기 무구를 빼돌리려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프레드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철문에서 몇 명의 헌터가 추가로 걸어 나왔다.
S급 헌터 1명과 A급 헌터 5명이었다.
이 S급 헌터 역시 면식이 있는 이였다.
릭 도르만이라고 했었나?
당시 크라포스를 상대할 때, 뒤에서 구경하던 헌터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들의 인사는 태현에게 향해있었다.
그 인사에 태현도 가볍게 응수했고, 프레드는 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건 게이트가 아니군.’
들어와서 직접 대면하니 알 수 있었다.
게이트와는 똑 닮았지만, 몬스터가 존재하는 게이트라고는 볼 수 없는 그것.
“흠··· 네 말대로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네.”
“그렇지? 어떻게··· 지금 들어갈래?”
“그래야지. 잠시 다녀온다.”
궁금했다.
그리고 프레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엘프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여기 문을 열어둔 것이 분명하다.
태현은 게이트 안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에 임지성도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인데요.”
헌터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프레드 헌터님, 어떡하시겠습니까?”
“뭘?”
“들어가실 겁니까?”
“흠··· 아니, 나는 안 들어갈 거다.”
곧장 따라 들어갈 줄 알았던 프레드가 거절하자, 레오나르도가 진심으로 놀란 눈이 되었다.
“평소와는 다르십니다···?”
“뭐 인마?”
“아··· 나쁜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 왜 안 들어가십니까?”
“나는 이미 거절당했잖아.”
프레드는 이미 저 게이트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대화조차 거부당한 채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일말의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 그건 저도 그렇네요.”
레오나르도 역시 거절당했다.
그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어쨌든 잘 하고 나오겠지. 지구 최강의 헌터가 들어갔으니.”
프레드가 낮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