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135화 (135/160)

32화 엘프의 숲(2)

*프레드의 말대로 게이트 안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가 받치고 있는 수많은 집들.

아마 저것이 엘프들이 거주하는 공간일 것이다.

“와··· 대박이네?”

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임지성 역시 놀란 눈으로 풍경을 감상했다.

“너도 들어왔어?”

“왜? 안 될 거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태현이 바닥을 살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하나의 가지였다.

한발자국만 앞으로 내디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 정도로 나무는 높았다.

“그보다 엘프들은 안 보이네?”

임지성의 말대로 주위에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나 프레드처럼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엘프가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일단 움직여보자.”

지구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무리 거대한 나무라도, 이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히 다른 차원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한발자국을 내디뎠다.

바닥이 없었지만, 문제 될 건 없다.

태현이나 임지성이나 모두 비행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너 비행이 가능하냐?”

임지성이 놀란 눈으로 비행을 펼친 태현을 힐끔 보았다.

그는 각성하면서 비행 스킬을 얻었지만, 태현의 경우는 달랐다.

킹의 상점을 이용해서 획득한 스킬.

“그래. 마스터리북 알지?”

“알지. 설마 비행 마스터리북?”

끄덕.

“미x··· 얼마 썼냐? 비행 마스터리북은 워낙 희귀해서 값을 정할 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임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샀지?

길드 자금으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싼 금액일 텐데?

“뭐라냐. 몬스터 잡고 얻었다.”

“···와, 진짜?”

“그래.”

“천운이네··· 천운이야··· 나는 왜 그런 운이 안 따라주냐···.”

자괴감 섞인 음성에 태현이 볼을 긁적이며 위로했다.

“운이란 말이다. 없는 놈한테는 더럽게 없단다.”

“···그게 위로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에라이.”

“잠깐.”

임지성이 시동을 걸자, 태현이 급히 그를 막았다.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고, 그 역시 이상함을 감지하고 정면을 보았다.

그 앞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수 십 명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험한데···.”

임지성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태현의 의해 봉쇄되었다.

“괜찮아.”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레오나르도와 프레드의 말처럼 그들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지.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프레드가 말한 엘프가 확실하다.

나뭇잎을 엮어서 옷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촘촘히 엮었는지 남성, 여성 따질 것없이 노출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래서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구지? 우리는 킹을 찾고 있다.”

엘프 중에서도 가운데 있는 거구의 남성이 말한 것이다.

이들 중에서는 그가 서열 1위인 듯하다.

태현은 그를 빤히 바라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먼저 질문 하나만 하자.”

“뭐지?”

“킹을 찾는 이유가 궁금하다. 굳이 여기까지 차원문을 열어서 접근하려는 의도가 뭐지?”

“그건 킹을 만나면 알려주겠다.”

“웃기는 소리하지마라. 내가 뭘 믿고 킹을 네 놈들에게 데려와야 하는지 설명해 봐.”

“···진정 싸우자는 것인가?”

“감당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싸워주마.”

“이놈이!”

거구의 남성이 분노했다.

그러자 수 십 명의 엘프가 어느새 활을 들고, 태현과 임지성을 겨누고 있었다.

임지성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방어막을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아까까지는 살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명백히 있었다.

당장이라도 화살이 날아들 것만 같았다.

반면, 태현은 냉정했다.

오히려 비소가 섞인 미소를 지은 채로 여유를 부렸다.

“대화할 생각이 없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나?”

“······.”

“당신들은 킹에게 해를 가하려고 밖에 보이질 않아. 용건조차 말해주지 않고, 킹만 찾는다? 답이 나오지.”

“우리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소리인가?”

“적으로 돌리는 건 아니다. 단지, 당신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다. 내가 뭘 믿고, 킹을 데려와야 하지? 확신을 준다면, 생각을 고치도록 하겠다.”

“······.”

거구의 남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팔을 한 번 들어올렸다.

그제야 엘프들이 들고 있던 활을 내렸다.

진하게 느껴졌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임지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수많은 화살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확신을 줄 생각인가?”

“···어떻게 주면 되겠나?”

“이야기가 통해서 좋군. 그럼 다시 묻겠다. 굳이 차원문을 열어서 킹을 만나려는 의도가 뭐냐?”

“꼭 말해야겠나?”

거구의 남성이 조금 망설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모양이다.

“벨루아 때문인가?”

“그걸 어떻게···!”

엘프들 모두가 당황했다.

설마하니 눈앞의 남자에게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군. 맞나?”

“···그렇다.”

“그래. 그래서 킹을 찾아가서 벨루아를 처리해달라. 뭐 이런 건 아니겠지?”

“···맞다.”

“···예상했어.”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 정도 일이 아니고서야 굳이 지구에 연결해서 킹을 찾을까?

아무래도 이들도 피해를 받을 예정인 모양이다.

아직 차원이 파괴되지 않았으니,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지.

“그럼 이제 킹을 만날 수 있게 해줄 건가?”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들은 킹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애초부터 레오나르도와 프레드를 해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지만, 조금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

“눈앞에 있잖아.”

“···뭐?”

“내가 킹이다.”

태현은 증거로 수하 하나를 소환했다.

비행이 가능한 마법사로.

갑작스레 소환된 수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반면, 엘프들은 경악한 눈으로 태현을 응시할 뿐이다.

“방금 일은 사죄하겠습니다···.”

거구의 남성의 음성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뭐, 일단 대화할 장소로 가시죠.”

상대방이 존대하니, 태현 역시 존대로 응했다.

거구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엘프들은 그제야 이들에게서 멀어졌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벌써 12시간이 지났다.

프레드는 조금 초조했는지 헌터 워치와 게이트를 번갈아 보는 것을 반복했다.

“프레드 헌터님, 조금 쉬고 계십시오. 괜찮을 겁니다.”

레오나르도였다.

그는 계속 서서 게이트를 응시하고 있는 프레드의 모습에 내심 불안했다.

괜찮다면서 자신들을 쉬게 하고, 꿋꿋이 게이트를 지킨 프레드.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나?”

“죄··· 죄송합니다.”

비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인데, 12시간을 같이 있으려니 정신병이 올 것 같았다.

“이상해··· 네가 들어간 지 10분이 되었을 때, 여기 시간으로 30분이 흘렀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그리고 내가 들어가고 30분이 지났을 때, 여기 시간으로는 1시간 30분 정도가 흘렀다는 거고?”

“네.”

“그럼 한 헌터가 들어가고 거기서 4시간이 흘렀다는 소리가 되잖아?”

“네.”

그게 뭐가 문제지?

“이상하지 않나? 한 헌터 실력으로 그 놈들을 조지는데 4시간이나 걸린다고?”

“···조진다기보다는 대화를 나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화가 4시간이나 이어져? 지금 나랑 장난하나?”

아니 뭘 어쩌라고?

레오나르도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왜 계속 자신한테만 지x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일단 기다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후우. 그래. 화내서 미안하군. 앉아서 쉬어.”

“헌터님은 괜찮으십니까?”

“나는 멀쩡하다. 여기서 사흘은 더 있어도 멀쩡할 것 같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식사?”

생각해보니 12시간동안 아무것도 입에 집어넣은 게 없었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배도 딱히 고프지도 않았다.

반면,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A급 헌터들은 허기가 지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 주저앉아있었으니까.

“여기 헌터들은 식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뭐? 설마 나 때문에 애들 밥도 안 먹인 건 아니겠지? 죽을라고?”

“···그래도 헌터님이 안 드시는데 저희가 어떻게 먹습니까?”

“됐고, 당장 애들 밥 먹으라고 올려 보내.”

“아···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저녁 좀 먹고 오겠습니다.”

프레드가 지키고 있으니 교대로 식사할 필요가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인원들과 함께 창고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넌 어디 가냐?”

“네? 저도 식사 좀 하고 오려고 합니다.”

“누구 마음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먹는 건 건드리는 게 아니다.

“그래? 그러면 가 봐. 다녀와서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테니까.”

“···저 그럼 굶습니까?”

“아니. 애들 먼저 먹고 오라고 하라고. 다녀오면 우리 둘이 먹으러 갈 거니까.”

“굶는 건 아니군요.”

그건 다행이다.

“그래. 밥 먹으면서 둘이서 긴 대화 좀 나눠보자.”

“······.”

레오나르도는 피가 마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시간의 축은 심각하게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여기에 들어온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거구의 남성, 베인은 그들을 가장 큰 집으로 안내했는데, 접대용으로 쓰이는 집인지 인테리어가 매우 깔끔했다.

항상 관리하는 모양이다.

“이제 곧 장로님이 오십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러죠.”

기다리는 것 정도는 익숙하다.

“차는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베인의 물음에 순간 커피라고 답할 뻔 했다.

임지성도 마찬가지였는지 급히 입을 다무는 모습.

“여기에서 유명한 차가 뭡니까?”

“세계수 잎을 말려서 우려낸 차가 아주 좋습니다. 원기 회복에도 좋고, 속이 허할 때 회복이 아주 빠릅니다.”

“그럼 그걸로 주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주아! 여기 티폰 차 3잔 좀 부탁하지!”

태현은 차가 마련되자 천천히 홀짝였다.

맛은 일반 녹차와 다를 게 없었지만, 훨씬 깔끔하고 청량한 맛이 느껴졌다.

마음에 쏙 드는 맛이었다.

임지성도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런 얼굴로 차를 홀짝였고, 5분정도가 지나자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노인이 천천히 들어왔다.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턱수염과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리에 앉은 노인은 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킹이 오셨다지? 반갑습니다. 아르제라고 합니다.”

“한태현입니다.”

“킹의 존함이 한태현이었군요.”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요? 목적은 벨루아의 처단이고?”

태현은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네. 그래서 억지로나마 킹과 만나고 싶어 차원문을 열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르제가 정중히 사과했다.

태현은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세계를 지키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목적은 저랑 같네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럼 차원문을 연 이유부터 들어볼까요?”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어집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엘프의 숲.

더 나아가서는 나이가 대륙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였고, 지구와는 다르게 각 왕국과 제국이 있어 신분제도가 엄격한 사회였다.

엘프는 그런 인간들과 섞이지 않고, 숲에서 결계를 쳐서 생활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최근 들어서 이상한 게이트가 발생하더니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국와 왕국, 공국은 혼란에 빠졌고, 신속히 비상사태에 대응했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엘프들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몬스터를 대거 처리했을 때, 엘프의 숲에서 벨루아를 만날 수 있었다.

기운만으로 압도하던 모습.

그들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싸우기도 전에 깨달았다.

그래도 숲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불사르기 직전, 벨루아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지키고 싶은가? 그럼 킹을 죽여라. 좌표를 주지. 기간은 석 달.”

“뭐···?”

“석 달이 지나도 킹이 살아있다면, 이 차원은 소멸될 것이다.”

엘프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벨루아는 모습을 감추었다.

몬스터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아르제의 설명이 끝났다.

“뭐··· 함정을 파다니!”

임지성이 소리를 빽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태현의 손이 그의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너를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저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아니, 그건 아닐 거야.”

태현은 갓 급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그들의 기세를 느낄 수 있었는데, 딱히 공격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

임지성은 평정심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제야 그의 팔을 놓아주고, 아르제의 두 눈을 응시했다.

“그럼 말씀하시지요. 굳이 죽이는 게 아니라 대화를 선택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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