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136화 (136/160)

32화 엘프의 숲(3)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 충격적이었다.

‘굳이 직접 나를 해하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 협박을 가할 줄이야.’

생각보다 더 악질이었다.

그러면서도 눈앞의 아르제가 이해되지 않았다.

죽이라고 협박을 받았음에도,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반기다니.

태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아르제는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엘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간혹 소수의 엘프들은 좋지 않은 감정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엘프들은 태현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음···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르제는 첫 운을 어떻게 떼야할지 고민했다.

생각의 정립이 아직 온전하지 않았는지, 머리의 회로를 돌리는 것이 태현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태현은 묵묵히 기다렸다.

어쨌거나 엘프들이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굳이 벨루아가 아닌 자신을 택했는지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는지 반드시 듣고 싶었다.

“사실 처음에는 킹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봐봐!”

결국 임지성이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일단 앉아.”

탁.

태현의 말에 도로 앉은 임지성.

괜히 같이 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괜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아르제는 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태현의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임지성이 아닌, 태현이 화를 못 참아야 정상이다.

킹인 그를 처리하려고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아르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태현은 한없이 침착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계속 말씀하세요.”

태현이 손짓했다.

계속 말해보라는 말에 아르제가 잠시 목을 가다듬기 위해 앞에 마련된 티폰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저희가 살고 있는 곳을 지키고자 일면조차 없는 이를 처리하는 건, 역시 못할 짓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죄책감이 상당했던 모양.

아르제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차라리 킹에게 힘을 보태고, 벨루아라는 자를 처리하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한테 힘을 보탠다고요?”

“네. 벨루아는 저희들을 위협했습니다. 상대하는데 죄책감 따위는 없습니다.”

아르제의 눈빛은 진중했다.

“지금 그 말이 진실인지 어떻게 믿죠? 저를 사지로 몰아놓으려는 거짓말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태현은 가벼운 시험을 출제했다.

과연 어떤 답이 튀어나올까?

“대엘프신 아르미스님을 섬기는 엘프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종족입니다. 저주가 내려지거든요.”

그의 눈에서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태현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들은 자신에게 붙겠다는 것을 표명했다.

“여러분들의 선택이 옳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게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목숨을 부지하자고 악의 축에 서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생을 마감하더라도 선의 축에서 살다 가고 싶습니다.”

“모두들 같은 의견인 겁니까?”

“예. 이미 회의를 마치고, 차원문을 가동시킨 것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도와주실 생각이죠?”

이야기의 끝이 서서히 다가왔다.

태현과 아르제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고, 그 대화는 2시간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쾅!

창고에서 게이트를 지켜보던 프레드가 벽에 촘촘히 자리 잡은 타일을 주먹으로 깨부쉈다.

그걸 지켜보던 헌터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니, 시x!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나올 기미가 안 보이는데?”

“지··· 진정하십시오. 곧 나오겠지요.”

“그냥 들어가?”

“음··· 그랬다간 한 헌터님이 싫어하실 수도···.”

레오나르도가 머리를 긁적였다.

반면, 프레드는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사흘이나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일 수가 있지?

그의 머리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장이라도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태현의 반응을 생각하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짓.

그래서 고민 중인 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태현과 사이가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올라왔으니까.

“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헌터 하나가 게이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덩달아 고개를 숙였던 프레드의 고개가 순식간에 올라왔다.

헌터 말대로 게이트 앞에는 태현이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임지성과 일전 게이트 안에서 보았던 엘프 2명이 서 있었다.

“다녀왔어.”

“태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난리법석을 떠는 프레드 덕분에 태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헌터들에게 설명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레오나르도가 태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신호를 보냈다.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설명해주세요.”

“먼저 헌터님께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3시간이요.”

“역시···.”

레오나르도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시간 축이 많이 틀어진 모양이죠?”

태현은 눈치가 빨랐다.

프레드의 반응이나 헌터들의 반응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여기의 시간이 꽤나 흘렀다는 것을.

그들의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씻지 않아 꾀죄죄한 얼굴.

사흘 동안 갈아입지 않아 특유의 구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네··· 사흘 지났습니다.”

“사흘씩이나···.”

태현은 코를 막은 채로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엘프의 숲의 3시간이 여기서는 3일이라니.

“이렇게 시간 축이 틀어진 건, 처음입니다···.”

“처음이라고요?”

분명 프레드나 레오나르도 역시 엘프의 숲을 다녀왔는데 처음이다?

“네. 저는 10분을 들어갔었을 때 30분이 지나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레드 헌터님은 30분을 안에 있으셨는데 1시간 30분이 흘렀고요.”

“흐음···.”

“계산대로라면, 헌터님께서 3시간을 있다 오셨으니 9시간이 지났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의 축은 많이 틀어졌죠.”

“심각하네요. 시간 축이 일정하지 않다는 뜻이니까···.”

아무래도 엘프의 숲을 자주 들어가는 건, 조금 어려울 듯싶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지구가 엘프의 숲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째서 2달 동안 벨루아가 잠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엘프의 숲에서 보냈던 시간이 지구의 시간보다 느리기 때문에 한동안 평화로울 수 있었다는 것.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력한 가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보다 뒤에 엘프분들은 왜 따라 왔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는 프레드다.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프레드에게 벨루아에 대해 말해줄 수도 없고.

“구경을 하고 싶다길래 데리고 왔어. 조금 쉬었다가 도로 돌아갈 거야.”

“에? 구경? 킹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서 겨우 구경이 목적이었다고?”

구경을 위해서 킹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는 건가?

“너··· 킹이 뭔 줄 알고 말하는 거냐?”

“뭐긴, 지구 최강의 헌터를 지칭하는 거 아닌가?”

음···

말을 말아야겠다.

태현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숨으로 털어냈다.

그보다 화가 나는 건, 프레드가 착각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때문이다.

“···그거 맞는데, 가장 강한 헌터의 강함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결과가 이거지.”

“오··· 역시.”

태현은 말 같지도 않은 자화자찬에 부끄러운 나머지 귀까지 붉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남성 엘프 하나와 여성 엘프 하나.

말 그대로 당분간 태현과 함께 다닐 예정인 엘프들이다.

아르미스의 가호를 받은 최강의 엘프 탄과 제니.

그나마 이들이라면 충분한 전력이 될 것이다.

하나같이 프레드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프레드 역시 그것을 눈치챘는지 엘프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어쩔 계획이지? 이 게이트는 그대로 둘 생각인가?”

그가 손가락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태현은 게이트를 힐끔 보고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게이트는 당분간 계속 가동될 것이다.

차원문이기도 하고, 함부로 닫았다간 다시 여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구의 좌표를 찾은 것도 기적에 가깝다고.

물론 운이 좋게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열렸다지만, 한국에서 지낼 걸 생각하면 위치가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게이트의 위치를 바꾸는 건 불가능한가?”

태현이 엘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합니다.”

“응? 가능하다고?”

분명 아르제의 말에 따르면 게이트를 닫았을 때, 다시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정해두었던 좌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똑같은 좌표로 입력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좌표는 계속해서 바뀐다고 했다.

즉, 이 게이트가 닫히면 지구의 좌표가 바뀌고 다시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가능하다고?

“네. 게이트를 닫고, 다시 여는 건 아닙니다. 이 차원문은 위치를 바꾸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죠.”

“아, 위치를 바꾸는 게 가능한 거였군.”

순간 게이트를 닫았다가 다시 열겠다는 소리인 줄 알았다.

“왜? 그냥 여기 두지 그래?”

프레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됐어. 당분간 한국에서 지낼 거라 위치를 바꾸려고 해.”

위치는 태현의 안식처.

그곳이라면, 사람의 눈에 띄는 일이 없다.

걱정거리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당분간 한국에서 있어야겠군.”

“뭐?”

당당하게 말하는 프레드의 얼굴을 보니 할 말을 잃었다.

“평화롭기도 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그럼 그러던가.”

“좋군! 바로 가자고!”

당장이라도 출발하려는 듯, 프레드가 태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가 프레드의 손을 뿌리쳤다.

“일단 하루만 쉬었다 가자.”

“에이~ 무슨 소리야? 시간은 금이라고. 여기 엘프분들도 같은 생각 아닐까?”

“···눈치 좀 채라. 지금 네 몸에서 냄새 장난 아니라고.”

“···진짜냐?”

미간을 좁힌 태현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3일 동안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냄새가 나나 싶어서 직접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익숙해서 그런가? 싶어 레오나르도에게 냄새를 맡아보라며 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끄아아악!”

냄새에 민감한 레오나르도가 발작했다.

아무래도 많이 심한 모양이다.

프레드가 그를 놔주었고, 레오나르도는 급히 구석으로 가서 헛구역질을 했다.

“썅, 기분 나쁘네?”

레오나르도를 흘기다 이내 쑥쓰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 태현 역시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일단 하루만 쉬었다가 한국으로 가자. 그래도 되겠지?”

“네.”

“네.”

의견이 통일되었고, 지하 6층을 지키는 헌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레드의 저택으로 향했다.

*안식처는 평화로웠다.

레온과 수하들 모두가 회복을 마쳤고, 수련에 돌입했다.

그 중에서도 수하들에게 검술을 지도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아레스였다.

“아레스, 조금 쉬었다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어느새 아레스와 부쩍 가까워진 레온이 그에게 음료를 건넸다.

이안의 냉장고에서 꺼내온 탄산음료였다.

“이건 뭐지?”

“사이다라고 들어봤나? 이게 시원하게 톡 쏘는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치이익- 탁-

레온은 캔뚜껑을 따고는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레스 역시 똑같이 따라하려고 했지만, 캔뚜껑이 마음대로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손에 쥐고 있던 악력이 강해지면서 캔이 터져버렸다.

“이··· 이런! 조심해야지··· 아까운 걸.”

“음··· 손에 묻은 게 어찌 찐득하군. 느낌이 이상해.”

“이번에는 조심하게.”

주머니에서 사이다 한 개가 추가로 나왔다.

도대체 몇 개를 가져온 거지?

이안이 노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레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캔뚜껑을 따고, 아레스에게 천천히 건넸다.

그제야 아레스도 사이다를 입에 들이부었다.

꿀걱- 꺼억-

“가스가 들어있는 건가? 신기하군. 트림이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하하, 그게 바로 사이다의 묘미라네. 사람들은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 마시기도 한다더라고.”

“호오··· 이거 참 괜찮은 맛이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 때였다.

“게이트가 나왔어! 당장 나와 봐!”

발락의 목소리에 수하들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특히 아레스는 경직을 넘어서서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을 물씬 풍겼다.

“당장 가지.”

아레스를 필두로 수하들이 곧장 성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 하나가 들어갈 크기의 게이트.

“엇! 잠깐 기다려! 저건 몬스터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던 수하들을 말리는 것은 다름 아닌 8성 마법사.

그는 태현의 부름에 엘프의 숲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게이트가 엘프의 숲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법사의 간략한 설명에 수하들이 그제야 무기들을 거뒀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기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음··· 그런데 저게 왜 여기에 생긴 거지?”

의문이었다.

어째서 그 게이트가 여기에 생긴 것이란 말인가?

“그건 내가 설명해주마.”

익숙한 목소리에 수하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자리에는 태현이 서 있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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