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나이가 대륙(3)
*목적지는 4층 구조로 되어있는 거대한 목조저택이었다.
이 나이가 대륙의 대부분의 저택은 이처럼 목조건축형식을 따르고 있다.
중요한 건 면적이었다.
얼마나 넓었는지 대학교 운동장 3개는 합쳐놓은 수준의 크기였다.
저택의 옆에는 그보다 작은 목조건물 2개가 들어서 있었고, 우측에는 예쁘게 가꾼 정원이 있었다.
보통 집사가 책임지고 관리하는지, 제초작업에 열을 올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바이아드 공작님이 거처하시는 저택이십니다.”
기사단 중,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이가 간단한 소개를 마치자 저택의 문이 열리면서 중년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이아드 공직님께 검례!”
“충!”
아무래도 저 자가 바이아드 공작인 모양이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수염과 긴 머리를 묶어 올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예복과 공작의 칭호가 새겨진 로브가 그의 기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있었다.
“대단하구만.”
발락은 자신이 입고 있는 로브를 만지작거렸다.
낡고 해진 것이 바이아드와 비교하면 볼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주군께 말씀드려서 최고의 로브를 마련해야겠어.”
렌은 안타까움이 물씬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발락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입는 로브는 특수제작을 해야만 한다. 비용이 어마무시하지. 그걸 주군께 부탁드릴 수는 없어.”
발락은 네크로맨서다.
남들과는 다르게 흑마력을 토대로 스켈레톤을 부린다.
특히나 발락은 8성 네크로맨서이기도 하고, 그의 특성상 흑마력이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이 바로 지금 입고 있는 로브였다.
“그래도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거 같다. 자칭 주군의 오른팔이 이런 해진 걸 입고 다녀서야 되겠어?”
“···조금 그렇다? 자칭?”
발락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그러나 그건 바이아드 공작이 다가오면서 사라졌다.
“반갑네.”
미첼 바이아드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법사를 통해 상황을 모두 전달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렌과 발락을 보더라도, 기사단원들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반갑다.”
“반갑습니다.”
렌과 발락은 그의 손을 한번 씩 맞잡았다.
그러나 발락의 용모에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발락과 잡았던 손을 손수건으로 가볍게 문댔다.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가?”
조금 기분 나쁘다는 어투가 발락의 입에서 나왔다.
“크흠··· 무례를 용서하시오. 이런 경험은 없었던 것이라 그렇소.”
미첼 바이아드는 헛기침과 함께 사과했다.
어찌 되었든 이들은 몬스터를 소탕하고, 영지의 주민들을 지켜주었다.
어쨌거나 은인이라는 뜻이다.
“이번만 넘어가겠어. 다음에는···.”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발락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 자리에는 주먹을 쥔 렌이 눈빛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렌이 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모양.
“끄응···.”
하지만, 지금 선을 넘으려 한 것은 그였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역시 무례했던 점을 용서해주십시오.”
렌이 사과했다.
“허허··· 아닙니다. 일단 저택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감사합니다.”
성기사의 포스가 물씬 풍기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기사단원들이 감탄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저렇게 겸손할 수 있다니?
그들의 눈에는 어느새 렌에 대한 동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 마법사들은 옆에 있는 발락을 힐끔거릴 뿐이었다.
*“크아악!”
퍼억!
마룻바닥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어나시죠?”
태현은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진진.
둔탁한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진진이었다.
몸이 붕 떴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충격이 상당했다.
사실 충격보다도 태현의 물리적인 타격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끄응··· 한 헌터님, 이제 그만 끝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온 몸이 비명을 질렀다.
“모든 능력을 보여 달라고 했을 텐데요?”
태현의 입에서 싸늘한 어투가 튀어나왔다.
그걸로 하여금 진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직 그가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제 소··· 소환수는 전부 역소환 당했는데. 그게 전부입니다!”
진진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역소환의 부작용과 태현의 공격에 죽을 맛이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서로 거래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능력을 보여주는 대신에 저는 만남을 응한 것이고요.”
이제 겨우 소환수만 보았을 뿐.
소환사가 소환수를 소환하는 것이 최고의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태현은 진진이 아직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갓 급이다.
S급 소환수를 소환할 정도면, S급 능력자지.
갓 급 능력자로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끄응··· 진짜 보여드렸습니다. 제 소환수에 이상한 점 못 느끼셨습니까?”
털썩.
힘에 부치는지 도로 주저앉는 진진.
확실히 그의 얼굴에서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태현은 공격을 잠시 멈췄다.
“소환수요? 흠··· 글쎄요?”
“···사실 제 진짜 능력은 소환수에 버프를 부여하는 겁니다.”
“버프?”
“네.”
소환사가 소환수에게 버프를 걸어준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소환사로 각성한 헌터들 중에서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어떤 버프입니까?”
“아까 보셨다시피 공격력 강화와 치명타 강화 버프가 있고요.”
“···버프를 쓰셨습니까? 몰랐는데.”
“너무 빨리 역소환되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버프가 맞습니다.”
태현은 안식처로 도로 들어간 레온과 아론을 소환했다.
아론의 손에는 아까 보았던 키린이라는 피규어가 쥐어져있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자.
“주군을 뵙습니다!”
“그래. 레온. 아까 소환수를 상대했던 것 기억하겠지?”
“물론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어?”
태현의 물음에 레온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이상한 점일까?
“있었긴 합니다. 갑자기 힘이 강해지더군요.”
“갑자기?”
“네. 다행이 저희들보다는 약했기 때문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진진을 보았다.
결백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는 모습에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버프라··· 확실히 괜찮은 능력이군요.”
일종의 버프.
소환수의 한계를 잠시나마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재밌는 사실은 그 버프를 시전 했다는 것을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는 점.
‘확실히 갓 급은 맞군.’
일반 소환사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이다.
태현은 그제야 납득했다.
“휴우··· 저는 진즉에 다 보여드렸다고요.”
“오해할 수도 있는 거죠. 어쨌거나 비무는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에 다른 능력이 까발려지는 순간··· 아시죠?”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하자, 진진이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좌우로 열렬히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정도 능력만 보더라도, 일반 S급 헌터들은 맥도 못 추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치료해드리죠.”
태현은 8성 힐러를 소환해서 진진을 치료할 것을 지시했다.
힐러는 우렁차게 대답하고, 진진을 빠르게 치료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의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부러졌던 갈비뼈들도 전부 붙었는지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이야··· 소환수가 힐링까지. 정말 대단합니다!”
진진의 눈은 어느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소환사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 역시 강자를 보면 동경심이 싹튼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물어볼 게 아직 남았어요.”
“네? 또 있습니까?”
계속되는 질문에 앓는 소리를 내는 진진.
하지만, 태현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거부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결국 그의 고개가 주억여졌다.
“각성했던 계기를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계기요?”
끄덕.
에일린이 소환해서 부리던 병사와 매우 흡사했다.
자신의 수하들도 얼추 비슷하길 했지만, 정확하게는 가오스의 접견실에서 보았던 병사들과 흡사했다.
에일린의 병사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어째서 소환사로서 병사를 부릴 수 있는 것인지를.
“에··· 이야기하면 조금 긴데, 여기서 말씀드릴까요?”
진진이 볼을 긁적였다.
이야기가 매우 길어진다는 소리.
“여기서 하세요. 괜히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 귀에도 들어가니까.”
“그럼 짧게만 말씀드릴게요.”
대서사시를 쓰기에는 태현이 너무 무서웠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핵심만을 이야기한다.
진진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태현은 묵묵히 들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엘프의 숲.
숲에는 엘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도 같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태현의 수하들.
처음 보는 종족들이 신기한 마음에 접근했는데, 태현의 수하다보니 엘프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주었다.
“훗, 좋은 걸 보여주지.”
거대한 나무 아래, 덕배가 라이그틸로를 소환했다.
엘프들은 순간 겁을 먹었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말과 함께 ‘솜사탕!’을 외쳤다.
그러자 라이그틸로가 몸을 둥글게 말았고, 덕배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구오!”
“와··· 신기해.”
“신기해요.”
엘프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분명 저런 몬스터들은 전부 사람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놈들밖에 없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라이그틸로는 아니었다.
친근감이 물씬 풍기는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귀여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혹시 만져보실래요?”
덕배가 웃으며 물었고, 엘프들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덕배!”
그렇게 엘프들이 조심스레 라이그틸로에게 다가가는데, 저 멀리서 덕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엘프들은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쳇···.”
덕배가 혀를 찼다.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은 다름아닌 이안.
“한참 찾았잖아.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는 조금 분노했는지 이마에 혈관이 미세하게 튀어나온 상태였다.
“곧 가려고 했어.”
“곧은 무슨··· 몬스터가 출현했다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떡하나?”
“진짜야··· 이제 가려고 했다니까?”
이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여성 엘프 3명이 서 있었다.
“얼씨구? 심지어 여성 엘프들만 모아서 같이 놀러 나왔네?”
“크흠···.”
“이걸 주군께 뭐라고 보고를 드려야 할지 걱정이군.”
“!”
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태현에게 보고를 한다고?
덕배가 급히 이안의 어깨를 잡았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주군께 보고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말 그대로지. 더하거나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겠다.”
“제발 용서해주면 안 될까?”
“용서? 왜 나한테?”
“···지금 바로 몬스터를 소탕하러 가겠어.”
“아니야. 다들 움직이고 있는데, 곧 끝날 거 같네? 너는 여기서 마저 놀아. 나는 주군께 보고를 드릴 테니까.”
이안은 덕배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어깨로부터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 이런··· 우리 조금 있다가 놀아요. 오케이?”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낀 덕배가 라이그틸로를 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곧장 이안을 뒤따라갔다.
“우리도 그만 가자.”
엘프들은 아쉽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스르륵.
그 때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엘프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빤히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뭐 해? 안 갈 거야?”
“아··· 가야지! 같이 가!”
결국 엘프들은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스산한 공기가 갑자기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서 검붉은 구멍이 천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