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140화 (140/160)

34화 조건 충족(1)

*검붉은 구멍은 이윽고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2달이라는 시간을 주었음에도, 킹에게 붙었다는 말인가?”

벨루아였다.

그는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순간의 무능한 판단이 명을 재촉하는 걸 모르는 모양입니다.”

벨루아 뒤에는 3명의 남자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예를 갖추고 있었다.

“됐어. 어차피 대충은 예상한 결과였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당장 이 대륙을 파괴시키겠습니다.”

대충 나이가 대륙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는 1명의 남자가 제국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수준.

“아니. 아직은 아니야. 가능하면, 놈이 부리는 아이들을 최대한 처단하는 게 먼저다.”

겸사겸사 아레스까지.

벨루아가 말을 끊었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아레스를 최우선으로 처단하겠습니다.”

“부디 실망을 시키지 않도록 해라.”

“네!”

남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는 모습에 벨루아가 다시금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이들은 의문이 들었다.

당장 벨루아가 나서만 준다면, 이 대륙의 파괴는 단 30분조차 걸리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예전의 벨루아님은 기회 따윈 주시지 않았었는데···.”

“우리를 그만큼 믿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글쎄··· 무슨 이유가 있으시겠지. 우리들은 그저 명령에 따르면 될 일이다.”

남자들은 그 말을 끝으로 제각기 흩어졌다.

기운이 느껴진다.

킹의 수하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남자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주군! 나이가 대륙에 몬스터가 등장해서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진진과 비무를 마치자마자 수하들이 보고를 올려왔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태현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등급은 어느 정도지?’

‘A급 정도 됩니다. 저희들 힘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흠··· 너희들 대부분이 나이가 대륙에 있지?’

‘네. 레온과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나이가 대륙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대륙에는 에어로돈같은 드래곤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구경을 하겠답시고, 그곳에서 먹고 지내는 중이라고.

‘그럼 너희들은 계속 거기서 대기하다가 몬스터를 처리해주길 바란다. 여기는 안전한 편이니까.’

‘알겠습니다!’

게이트 사태는 종료된 지 한참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대륙에서 2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지 1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여유롭다는 소리다.

태현이 다시금 진진을 보았다.

“그러니까··· 각성하기 전에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는 거죠?”

“네. 이 힘을 통해서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지켜달라고요?”

진진의 말에 따르면, 각성하기 전에 어떤 목소리가 뇌리를 탁 쳤다고 한다.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힘을 가지고 지켜달라는 말이라고 했다.

“네. 저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몬스터로 인해 주변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힘이 너무 간절하던 때였죠.”

그 역시 가족들과 친구들을 잃었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몬스터로부터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달콤한 제안을 받았으니 수락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각성한 것이 불분명 각성자.

시간이 지나면서 스킬들이 발현되었고, 소환수 소환과 버퍼의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갓 급의 헌터가 되었다.

“흐음··· 그렇군요. 따로 추가적인 부분은 없고요?”

“네. 더 말씀드리고 싶어도··· 없네요.”

“뭐, 괜찮습니다. 대충은 예상이 가거든요.”

태현이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그 목소리의 정체는 에일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란 에일린은 가오스의 힘을 계승받았다는 데 있다.

어째서 진진에게 힘을 주었는지가 문제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스르륵.

스산한 기운과 함께 정체불명의 소리가 울렸다.

태현과 진진의 눈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검붉은 조그마한 게이트.

“이런! 몬스터입니다!”

진진은 당황하지 않고, 급히 소환수를 소환했다.

버프까지 걸어서 당장이라도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태현이 그것을 막아 세웠다.

“기다려요.”

“왜 그러십니까? 당장 들어가야 합니다. 보아하니 등급도 낮아 보이는데.”

게이트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사람 한 명이 꽉 채울 정도로 조그마한 크기.

하지만, 태현은 그 게이트가 일반 몬스터가 도사리는 게이트가 아님을 눈치 챘다.

일전에 아레스가 드나들었던 게이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저건 일반 게이트가 아니거든요.”

“네?”

“일단 지켜보세요.”

태현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게이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게이트 안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설마.’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검붉은 눈동자로 태현과 진진을 훑고 있는 소년.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적발과 새하얀 피부는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해 넘칠 정도였다.

오죽하면 태현의 어깨가 무의식적으로 떨릴 정도일까?

진진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님을 의식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소년은 기지개를 켜며 따분한 듯, 하품을 했다.

“하암- 오랜만이다?”

태현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 녀석.

“설마 벨루아냐?”

“오! 나를 알아?”

그 소년의 정체는 벨루아였다.

“알다 마다, 네가 온갖 차원을 다 부수고 다니는 파괴신이라면서?”

“큭큭, 내가? 파괴신이라는 칭호는 가오스껀데.”

가오스까지 언급했다.

저 놈은 확실히 벨루아가 맞다.

태현은 어느새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고는 곧장 벨루아를 공격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 상태.

도합 650레벨 수준의 힘이다.

그의 검에서 고스트 스톰이 작렬했다.

쾅!

“와···.”

진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비무를 할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힘은 보지 못했다.

즉, 봐주면서 비무를 했다는 소리.

쩌저적!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벨루아의 몸을 지키는 베리어에 금이 갔다.

“대단한데? 왜 아레스가 패배했는지 알 것 같군.”

벨루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증거였다.

분명 레벨은 400을 겨우 넘었을 텐데.

“뭐야? 겨우 그걸로 놀라면 쓰나?”

“후후, 어째서 가오스가 네 놈을 택했는지 알 것 같군.”

벨루아의 표정에는 어느새 만족감이 깃들어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그것이 불길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지금 죽이려고?”

태현은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벨루아의 힘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그것을 시험해보기 위해 전력으로 고스트 스톰을 시전한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

“어이 어이,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나는 충분히 시간을 줬잖아?”

“그래서 나이가 대륙에서 엘프들을 협박한 것인가?”

“그거? 큭큭, 이미 알고 있잖아?”

벨루아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반면, 태현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솔직히 처음 아르제를 만났을 때에는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했을 때, 조금씩 풀렸다.

“그래. 솔직히 확신은 없었는데··· 이제 알겠다. 단순히 빌미라는 거지?”

“후후, 그래. 이번에는 거기 차원을 부수려고 했거든.”

“왜 나이가 대륙이지? 뭔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음?”

벨루아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태현을 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는 것을.

태현은 곰곰이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굳이 왜 나이가 대륙일까 싶었거든. 왜 나를 이유로 삼아서까지.”

“궁금하네? 그 뒤에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하다는 것 치고는 벨루아가 태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쾅!

그러자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 뒤의 벽이 움푹 파여서는 아예 소멸되었다.

“더 안 들으려고?”

“······.”

“크라포스를 기억하나? 2대 킹. 네가 죽이고, 그가 지냈던 차원을 부쉈잖아?”

“그래서?”

“그 아버지를 살려주고, 다른 차원에서 지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했었지. 아마?”

“호오?”

“혹시 나이가 대륙에서 지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큭큭. 이야, 눈썰미 좋다? 어떻게 알았어?”

“정답인가보지?”

“정답이고 나발이고, 네가 크라포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한데? 가오스가 무언가 남겨놓은 모양이군. 그리고 네 힘이 아직 그 모양인 건, 완전히 계승을 받지 못한 것이고.”

정곡이다.

태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확신이 없었기도 하고, 찔러보자는 마음으로 찌른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하긴, 들키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힘의 척도부터 가오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벨루아는 다시금 손을 뻗으며 말을 덧붙혔다.

“시간을 그렇게 줬는데도, 가오스의 힘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면, 이제 가망이 없는 거지. 이제 기다리는 것은 끝이다.”

‘이거 위험한데··· 하필이면.’

벨루아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왔다.

그런데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태현이 진진을 보았다.

당장 도망치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벨루아의 공격이 훨씬 빨랐다.

슈욱!

그의 손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고, 태현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무의식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속도.

“커헉!”

태현은 피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 헌터님!”

진진이 급히 태현에게 다가갔다.

“흠··· 이제 킹은 끝났군.”

벨루아는 싱겁다는 얼굴로 태현을 내려다보았다.

“크··· 크윽···.”

의식이 멀어져간다.

태현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조차 없었다.

“아직 독기가 남아있군. 그건 인정해주마. 하지만, 이미 끝났어.”

벨루아는 어느새 손에 단검 6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는 태현에게 다가갔다.

“이 녀석이!”

진진이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소환수와 힘을 합쳐서 벨루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벨루아는 코웃음을 치고는 단검을 한 번씩 휘둘러 그의 소환수를 역소환시켰다.

마지막으로 진진의 가슴팍을 걷어차면서 그를 태현에게서 떨어트렸다.

“너무 아까워. 가오스가 아니라 내가 먼저 골랐다면, 살았을 텐데.”

벨루나은 그 말을 끝으로 단검 6자루를 천천히 태현의 몸에 꽂았다.

푸욱!

“쿨럭···.”

단검이 꽂힐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태현은 피를 토하면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지구는 일주일이면 끝날 거야. 천천히 지켜보고 있어.”

의식이 멀어져간다.

태현은 이제 죽음의 문턱에서 굴러 떨어짐을 실감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단검이 그의 심장을 정확하게 찌르면서 눈앞이 어두워졌다.

*태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포탈이 자리했다.

“죽은 건가?”

어째서 포탈 앞에 와있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미련이 남아서 잠시 들른 건 아닐 테고··· 아닌가?”

웃음이 나왔다.

미련이 남아서 포탈 앞에 떠돌다 사라지는 건가?

어이가 없을 노릇.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조건? 조건을 달성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메시지는 똑같았다.

조건을 달성했다고?

설마 벨루아에게 죽은 건, 꿈이었던 건가?

태현은 혹시나하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었다.

“사라져 간다···.”

성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이었다.

형체를 잃어가는 걸로 모자가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 역시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걸 마주하니 자신이 정말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방법이 없네.”

마지막 남은 것은 이 포탈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란 선택지였다.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시x, 들어간다.”

[‘시련의 관문’으로 입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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