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조건 충족(4)
*태현의 죽음.
그리고 진진의 실종.
CCTV로도 확인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진진의 행방을 추적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다.
쾅!
콰직!
“젠장!”
임지성은 분노했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자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이 박살났다.
갑작스런 비보를 믿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말을 건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태현은 병상에 누워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은희, 장은아, 유지아 등등.
“한 헌터!”
문이 열리며 급히 들어오는 헌터들.
각 길드의 마스터들이다.
천태도와 채연화, 채민희를 제외하고는 전부 S급 레이드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이건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의 채민희가 그의 얼굴을 한 번 어루만졌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헌터들 역시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천태도, 백승한은 씁쓸한 얼굴로 도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여기서 더 있다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으니까.
백승한은 건물을 빠져나와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았다.
“불 드립니까?”
그 말과 함께 라이터를 건네는 이는 천태도였다.
백승한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타이밍이 맞았다.
“고맙습니다. 후우···.”
“백 헌터가 담배 피는 걸 다 보네요.”
“이게 뭐 진귀한 경험이라고···.”
“···도대체 누굴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한 거고요.”
갓 급 헌터를 저렇게 만들 사람은 별로 없다.
동등한 갓 급?
만약 그랬다면, 수련장이 아예 파괴되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마치 강자에게 당한 하수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즉, 태현을 저렇게 만든 이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인물이라는 소리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들의 힘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게이트가 안정화되었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로만 보더라도 앞으로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백승한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쉬고 싶네요.”
위잉-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헌터 워치가 울리기 시작했다.
헌터 워치가 사이렌소리로 울린다는 것은 비상사태라는 것을 의미했는데.
“저한테도 왔군요.”
그 신호는 천태도의 워치에도 동시에 울렸다.
그가 급히 헌터 워치를 열어서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천태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주 심각한 일인 모양이군요.”
백승한도 피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곧장 워치를 확인했다.
“S급 게이트가 한국에만 10개가 등장했다고···?”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아··· 안 돼···.”
백승한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있었다.
“호··· 혹시?”
천태도는 불안한 얼굴이 되어 그의 답을 기다렸다.
부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렸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예상과 적중한 답이 떨어졌다.
“이거··· 몬스터가 무차별하게 쏟아졌던 게이트와 똑같습니다···.”
“젠장! 당장 모두에게 알려요!”
천태도가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백승한은 급히 길드원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S급 게이트인 이상, 따로 흩어져서 상대했다가는 죽음이다.
‘젠장! 한 헌터만 있었더라도!’
이미 떠나간 태현이 너무 그리웠다.
그가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공항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새로운 S급 게이트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그 많던 사람들이 전부 피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긴 거리에도 유유히 걸어 나오는 이가 두 명 있었다.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리듯, 남녀 한 쌍이 전통의상을 입은 채로 공항에 입국했다.
특히 치파오라 칭하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수려한 용모는 사람들을 매혹시킬 정도였는데,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것이 청초한 미를 뽐내는데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하··· 진진 이 새끼가 왜 연락이 없는 건데?”
그러나 그녀의 입은 아름다움과는 상극이었다.
그 옆에는 쩔쩔매는 남성.
남성이라기엔 아직 어렸기에 소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린님, 일단 진정하세요··· 하하···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에요.”
“···무슨 모양? 그런 놈이 24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
매혹적인 향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는 중국의 갓 급 헌터인 팡 린이다.
그녀가 이곳 한국에 방문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연락을 하기로 약속한 진진이 연락두절 되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정도는 애교지 않습니까···?”
샤오펑은 모르겠다는 어투로 물었다.
평상시에는 1달 간 연락을 안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24시간동안 연락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건지.
여러모로 팡 린은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후우··· 아니야. 진진은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네?”
팡 린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안 한 적은 없었거든.”
1달 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진진이 연락을 하겠다고 확답을 주지 않아서다.
그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타입으로, 지키지 못할 것은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달간 연락이 없어도 걱정을 안 해도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분명 진진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국에 도착하고, 태현을 만나게 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지금 그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먹통이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갓 급 헌터가 일이 생기는 게 이상하다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린님.”
그 때, 샤오펑이 어두운 얼굴이 되어서는 그녀에게 헌터 워치를 건넸다.
그녀는 곧장 받아들고 워치를 살폈다.
“위치가 추적이 안 돼?”
“네··· 한국인데도, 위치가 추적이 되지 않아요.”
진진의 위치가 추적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했다면, 필히 위치가 추적될 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새끼··· 한국에 도착 안 한 거 아니야?”
각 국가마다 마력의 경계선이 그어져있다.
그렇기에 다른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위치 추적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건 아닙니다. 분명 도착했다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보냈다.
그녀와 샤오펑 모두에게.
그러니 한국에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일단 움직여보자. 어딘가 단서가 있을 거야.”
팡 린은 그 말을 남기고, 곧장 뛰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샤오펑은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서는 그녀를 뒤쫓아갔다.
“제발 천천히 가세요! A급의 능력으로는 못 따라간다고요!”
갓 급인 그녀를 쫓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제야 팡 린이 멈춰서는 그에게 다가왔다.
“업혀.”
“네?”
“업히라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남자가 여자에게 으헉···!”
결국 샤오펑의 말을 무시하고, 가볍게 안아들었다.
팡 린이 피식 웃었다.
“자존심은 알겠는데, 상황이 상황이니까 이해 좀 해.”
“으···.”
샤오펑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 팡 린은 그제야 다시 걸음을 옮겨서는 공항을 빠져나갔다.
*1,000명의 병사의 힘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오우···.”
태현은 고스트 스톰과 스트라이크 샷을 절묘하게 섞어가면서 병사들을 상대해나갔다.
그러나 확실히 병사들은 강했다.
“주군!”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병사들은 오직 그만을 공략하고 있는 점이었다.
레온과 렌, 발락이 나서려고 하면, 병사들이 간단하게 제압했다.
물론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공격대상은 오로지 태현이었으니까.
“젠장···.”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수하들은 죽을 맛이었다.
섬기는 주인이 다구리를 당하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급기야 레온이 눈물을 흘렸다.
“주군!”
자신의 무력함이 너무도 한심했다.
“괜찮으니까 구경하고 있어!”
이건 그의 싸움이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10성.
8성인 그들이 돕는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건 직접 해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다구리는 너무한 거 아니냐?”
1,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합동공격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호흡은 또 어찌나 잘 맞추는지.
태현이 병사들을 하나 둘 처리할 때마다 호흡을 맞추어 그를 옥죈다.
아무리 그가 갓 급을 초월했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10성 병사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게 당연했다.
‘음? 조금 이상한데?’
갑자기 병사들의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태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병사들을 처리하는데 열을 올렸지만, 이상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병사들의 호흡은 너무 완벽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흐트러지는 거지?
‘설마···.’
방금 전 툴툴거렸던 것이 떠오른다.
다구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입 밖으로 뱉었던 그 말.
이유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것 때문이라면?
“다들 공격을 멈춰!”
태현이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태현을 공격하던 병사들의 움직임이 정지되었다.
“···이게 무슨.”
이안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태현의 뒷모습을 쫓았다.
설마 주군의 명령을 저들이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지략가라고는 하지만, 난데없는 상황에 머리가 회전하지 않았다.
그 때, 가오스가 사라졌던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스르륵 올라왔다.
그 연기는 형상을 이루었고, 익숙했던 형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오스.”
태현은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가오스가 놀랍다는 얼굴로 손뼉을 쳤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어떻게 알았지?”
“뭘 어떻게 알아요?”
“그 힘은 본래 내 것이다. 당연히 내 힘을 가지고 있는 네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소리지.”
“······.”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맞아 떨어진 상황덕분에 손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 뿐.
“훗,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선택?”
“그래. 내 남은 힘을 모두 넘겨주겠다.”
더 이상 가오스는 그를 시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태현이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넘겨주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음?”
“당신이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뭡니까?”
“계기?”
“네. 파괴신 가오스가 어째서 벨루아를 대적하고, 부수던 차원을 지키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알려주지 않았잖아요?”
벨루아가 차원을 부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어째서 가오스가 부수던 차원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한참 지난 과거로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가오스가 이내 결심을 내리고는 말을 덧붙였다.
“말로 하면 너무 길어. 힘과 함께 기억을 같이 넣어주지.”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저 병사들은 자네의 병사가 될 거야.”
가오스가 10성 병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병사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태현의 명령을 들었다고는 하나, 원래는 가오스를 섬기던 수하들이다.
“됐습니다. 제 수하들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렇지?”
뒤에 수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은 얼떨떨한 눈으로 태현을 바라보다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보셨죠?”
자랑스러운 얼굴이 된 태현의 모습에 가오스가 껄껄 웃었다.
“고맙네. 내 아이들을 넘겨준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웠거든.”
“그런가요···.”
“모든 힘을 넘겨주지. 물론 내 수하들을 데리고 갈 정도의 힘만 빼놓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벨루아는 제가 반드시 처리하죠.”
“···그럴 수 있다면.”
“네?”
가오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구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1,000명에 가까운 병사들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도 가오스와 함께 떠난 것이리라.
“주군··· 끝난 겁니까?”
레온이 주위를 살피다가 태현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엄청난 힘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끌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현 역시 말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메시지가 그의 눈앞에 자리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