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파괴신 한태현(2)
*몬스터들의 침공.
비각성자는 이미 피난소에 피신을 마친 상태였지만, 일반 헌터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헌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피신을 했다가는 차후 헌터라는 보직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많은 돈을 받아가면서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다.
“으아악!”
그런 호의호식을 하던 헌터들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태현의 명령대로 몬스터들을 상대하지 않고, 각자 길드끼리 피신을 했어야 하는데, 한 발 늦은 것이다.
“젠장··· 하필이면···.”
이들도 피신을 하고 싶었다.
S급 몬스터들을 상대할 힘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러나 몬스터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헌터들의 길목을 막았고, 이들을 사지로 내몰기 시작했다.
결국 상황은 극에 다다랐고, 무너져가는 건물에 몸을 숨긴 소수의 헌터들이 숨을 헐떡이는 중이다.
“괜찮을 거야. 괜히 피신을 하라고 한 건 아닐 거니까.”
“한 헌터님이라지? 갓 급이니까 믿어보자고.”
태현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희망의 불씨였다.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 한 마디의 영향이 이렇게까지 클 줄이야.
헌터들은 새삼 자신들의 마인드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우워워-
우르르. 툭.
거대한 짐승 형 몬스터가 건물을 밀어버릴 때마다 건물들이 조금씩 무너져내려갔다.
천장들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끙··· 일단 싸워봐야겠지?”
헌터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각자 장비를 착용했다.
비록 등급이 B등급이지만, 발악조차 못하는 건 사절이다.
“자- 가자!”
용기를 채우기 위해 소리를 한 번 질러주고 건물을 빠져나가는 헌터들.
그러자 거구의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횡사했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몬스터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헌터들은 이내 그 뒤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 자리에는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있었다.
“뭐지? 아직 피신하지 않은 것인가?”
“주군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군.”
그들은 태현의 수하들.
명령에 따라 지상을 휘젓고 다니는 몬스터들을 박멸하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 아직 남아있는 헌터들을 보니 기분이 나빴다.
분명 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텐데, 아직까지 피신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모르는 헌터들은 그들에게 다가가 연신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빨리 피신하게. 여기 있다간 위험하니.”
수하들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는 레온은 헌터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발락은 그것이 기분이 나빴지만, 괜히 사고를 일으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서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우워워-
때마침 몬스터들의 비명을 듣고, 지원을 나온 몬스터들이 보였다.
거구의 짐승들이 돌진하자, 감사를 표하던 헌터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억! 내가 저런 놈들을 상대하려고 했다니.”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분명 눈앞의 수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내가 처리하지.”
겁먹은 그들을 뒤로 하고, 아론이 활을 꺼내들어 화살 3개를 걸었다.
그리고는 곧장 몬스터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쐐애애액-
쾅!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머리에 직격하면서 터지는 폭발음.
몬스터들은 화살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1발에 1명.
아론이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에 헌터들은 입을 벌린 채로 감상할 뿐이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이런 강자들이 나서주니까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구나.
뼈저리게 느껴진다.
“빨리 피신하세요. 몬스터들은 우리들이 맡고 있으니 걱정 말고 대피하면 될 거요.”
레온의 말에 헌터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은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도와주는 것임을 알고 있다.
헌터들은 마지막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그 자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넌 너무 착해서 탈이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발락이 레온에게 다가왔다.
뚱한 얼굴이다.
레온은 피식 웃었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하지?”
“···뭐 죽이는 건 아니더라도, 혼 정도는 낼 수 있지 않나?”
주군의 명령대로 움직이질 않았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발락은 머릿속에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레온의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주군이 그걸 좋아하시겠나?”
“···할 말이 없군.”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몬스터를 박멸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들에게 벌을 내리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알았다고.”
아무리 발락이라도 태현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레온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현의 명령을 다시금 상기시킨 것이다.
“자, 그럼 계속 가자!”
모두가 흩어져서 몬스터를 박멸하고 있는 이 때, 가만히 서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레온의 명령에 수하들 모두가 몬스터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의 여인이 도로 위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소년 하나와 캐리어 2개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는지 여인의 속력은 멈출 줄 몰랐다.
“조금 쉬었다가 가시는 건 어떠신지···?”
벌써 1시간째다.
팡 린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은 여러모로 고역이었다.
반면, 팡 린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그의 제안을 가볍게 일축했다.
“무슨 헛소리야? 너 지금 안겨 있잖아. 힘들지도 않으면서 왜 그러는데?”
안고 뛰는 것은 자신이다.
그럼에도 샤오펑이 먼저 제안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진진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샤오펑이 무슨 연유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눈치 챌 수 없었다.
“끙···.”
“됐고, 이쪽으로 가는 거 맞아?”
샤오펑이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는 길도 그가 안내하는 대로 가는 것이다.
“네! 분명 한 헌터를 만나러 갔다고 하니 서울로 향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진진이라면, 분명 태현이 있는 왕국 길드에 방문했을 것이다.
“오케이!”
팡 린이 속력을 더 올렸다.
지치지도 않는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모습에 샤오펑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갓 급다웠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진진은 왕국 길드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태현의 수하들이 몬스터들을 박멸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벨루아?
아니다.
그는 바로 진진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고, 도시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라며 조그마한 게이트를 열어서 그의 머리맡에 놓은 벨루아 덕분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는 벨루아가 성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러고 있으려는 거지?’
몇 시간이 지난 건지 모르겠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벨루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래도 한 헌터가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분명히 태현은 살아있다.
그의 소환수가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녀석을 상대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진진은 태현이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길 원했다.
이대로 벨루아를 상대했다가는 저번처럼 무자비하게 당할 것이 뻔하다.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고, 영원히 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벨루아는 어느새 눈을 뜨고 게이트를 열어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호오, 괜찮군.”
씨익.
벨루아의 저 미소.
진진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도통 예상이 가지 않았다.
“···한 헌터를 죽일 셈인가?”
“흐음, 나한테 말을 걸었다는 건, 생각을 정리했다는 증거라고 봐도 되겠지?”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벨루아는 성좌에서 일어나 진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는가?”
“···내 대답은 똑같아. 네 밑으로 들어갈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
진진은 죽음을 각오했다.
지금 목숨을 부지하자고 많은 사람들을 희생하고, 살아남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같이 죽는 것을 택하는 게 낫다.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흐음···.”
하지만, 벨루아는 그를 공격하기는커녕 게이트를 조작해서 화면을 전환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게이트는 팡 린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
진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째서 샤오펑을 안아들고 저렇게 뛰고 있는 거지?
아니지, 애초에 저기는 중국이 아니지 않은가?
“어때?”
“!?”
“내 밑으로 들어오면, 저 여자랑 남자아이도 살려주마.”
“뭐···?”
진진의 눈빛이 세차게 떨렸다.
처음으로 갈등하는 것이다.
“진심이다. 뭐, 아레스를 잃었기도 하고, 그 자리를 네가 채워줬으면 하는데?”
벨루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제안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거절한다면 팡 린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걸 알고 있기에 진진이 갈등하는 것이다.
“누가 누굴 채워?”
저벅 저벅.
성좌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벨루아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한태현···.”
“오랜만이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태현이었다.
“한 헌터님!”
진진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 마냥 태현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었다.
그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덕분에 금방 찾았어요.”
태현이 피식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의 희미한 마력을 찾아서 들어온 곳이 바로 이 게이트 안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진진의 덕이 컸다.
“···그런데 왜 오셨습니까? 여기는 정말 위험합니다!”
어느새 어두워진 얼굴로 태현을 나무라는 진진.
빠른 태세전환에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그러는 분이 참 반갑게 맞아주시네요?”
“···크흠.”
진진의 상태는 양호했다.
솔직히 진진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력을 탐지하는데 있어서 그가 살아있다는 것과 벨루아가 그를 잡아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벨루아?”
태현의 시선이 벨루아에게로 향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작정 공격해오지 않았다.
“어떻게 가오스의 힘을 완전히 받을 수 있었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태현의 위아래를 훑는 벨루아다.
“궁금하면 직접 쓰러트려서 캐 봐.”
태현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하자 벨루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손을 뻗었다.
일전에 벨루아가 자신을 공격했던 방법.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서다.
주위의 흩어진 마력을 이용해 원거리에 있는 상대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기초적인 권능.
그러자 벨루아 역시 양 팔을 벌려 태현이 움직이는 마력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웬 춤?”
진진은 벨루아가 양 팔을 벌렸다가 접었다가 벌리는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만? 지금이면 한 방 먹일 수 있나?’
갑자기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소환수를 소환해 벨루아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어디를!”
그러나 벨루아는 덮치는 소환수를 향해 끌어당길 수 있는 남은 마력을 이용해 제압했다.
“잘했어요.”
콰앙!
태현이 움직이는 마력을 저항하던 균형이 깨어지면서 벨루아는 그대로 마력폭발에 말려들었다.
이 공격은 저번에 당했던 것과 같은 계열의 공격.
물론 몇 배나 더 강력한 위력으로 돌려주었다.
“···어째 더 강해지신 거 같아요?”
부상을 입은 소환수를 돌려보낸 진진이 감탄하며 물었다.
태현은 그를 속박하고 있던 무형의 사슬을 전부 끊어버렸다.
그제야 진진은 몸을 일으켰다.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아직 볼 일이 남아서.”
태현이 턱짓했다.
그 자리에는 분노한 채로 그들을 노려보는 벨루아가 서 있었다.
겨우 그 정도 마력폭발로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몸은 깨끗했다.
“하··· 하지만.”
혼자만 빠져나가기에는 태현을 두고 도망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태현의 얼굴은 진중했다.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같이 상대하는 게 더 위험해요.”
사실이다.
진진이 갓 급이라고는 하지만, 벨루아는 그런 개념을 초월했다.
레벨이 1만까지 상승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만, 놈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결국 진진은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태현이 열어준 게이트를 통과했다.
“나를 병풍 취급해!?”
벨루아가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언제 다가왔는지 태현이 그의 손목을 세게 쥐었다.
“나랑 끝을 봐야지. 어디에 시선을 두는 거야?”
“···후우. 좋다. 내가 잠시 흥분했군.”
‘호오?’
태현은 벨루아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까지 흥분했던 그가 한순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쉬운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 바로 죽여주마.”
태현은 자유로운 한 손을 이용해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아모스의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검으로 형태변화를 시키고, 고스트 스톰을 벨루아의 얼굴에 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