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파괴신 한태현(3)
*태현이 만들어 준 게이트를 통해 빠져나온 진진은 주위를 살폈다.
몬스터를 통해 폐허가 된 집들이 지천일 정도였다.
“따라오세요.”
“헙!”
갑작스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진이 몸을 움찔 떨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태현의 소환수 하나가 서 있었다.
‘뭐가 이렇게 강해.’
태현에게는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면, 지금 소환수는 달랐다.
갓 급을 이미 넘어선 경지였다.
자신이 소환수를 전부 소환해서 버프를 사용해야 겨우 상대가 가능할까?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강자였다.
‘한 헌터···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잠시 못 보던 사이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 분명하다.
“빨리 안 오십니까?”
“아··· 갑니다! 그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까?”
“···왕국 길드 사무실로 갈 생각입니다. 주군께서 거기로 안내하라고 하셨거든요.”
그 수하는 뚱한 얼굴이었지만, 조곤조곤 설명했다.
아무래도 태현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
진진은 그런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가 고마웠다.
‘한 헌터··· 부디 무사히 귀한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응원밖에 해줄 것이 없다.
그는 상념에 사로잡힌 채로 수하의 뒤꽁무니를 쫓아갔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몬스터는 어떻게 됐습니까?”
“계속 물어보실 겁니까?”
수하는 미간을 좁힌 채로 진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풀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덧붙였다.
“게이트는 전 세계적으로 열렸습니다. 그래서 10~20명씩 묶어서 전 세계의 몬스터를 토벌하러 떠났죠. 총 1,122명이 말입니다.”
“아···.”
“토벌은 현재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갓 급 헌터를 보유한 나라는 그의 지휘에 따라서 움직여주었기에 한결 편했지만, 나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봐야 해서 피곤하다고 하네요.”
“그럼 중국은···.”
팡 린이 나서준 것일까?
수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거기도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봤습니다.”
“에? 갓 급 헌터가 또 있을 텐데요?”
“모릅니다. 중국으로 넘어간 녀석들 말로는 없었다는데요.”
“네!?”
진진이 당황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럼 팡 린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 의문은 왕국 길드 사무실에 가까워질수록 천천히 풀렸다.
‘린의 기운이 근처에서 느껴져··· 설마···?’
왕국 길드에 있는 것인가?
수하 역시 그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말한 헌터가 여기 있는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당신을 찾기 위해서 한국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어째서 만나러 왔는지 예상이 갔다.
약속 때문이다.
연락을 하겠다는 약속.
“진진!”
“···저기도 기운을 감지한 모양이군요.”
수하는 피곤한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사실 어째서 자신이 진진을 대접해야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그저 태현의 명령 때문이다.
친절하게 대하라는 말은 안 했지만, 알아서 잘 모시라고 답했다.
“감사합니다.”
진진은 수하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앞으로 달려가서는 마주 달려오는 팡 린을 한 번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팡 린이 진진의 배를 가격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야, 이 미x놈아!”
분이 안 풀리는지 진진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쥐고, 잡아 뜯으려고 했다.
“미안! 들어봐! 진짜 죽을 뻔했어!”
다급히 말하자, 팡 린이 머리카락을 놔주었다.
“무슨 일이었는데?”
“후우··· 이야기하자면 좀 긴데··· 일단 들어가서 말하면 안 될까?”
“···너 구라 칠 생각하면 죽는다?”
“절대 아니야! 목숨을 건다!”
진진의 멱살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수하, 덕배가 혀를 끌끌 찼다.
“벌써부터 잡혀 살면, 많이 피곤할 텐데.”
*쩍!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
물론 실제 유리가 아닌, 벨루아를 감싸고 있는 포스를 말하는 것이다.
크라포스가 물려받았던 힘은 가오스의 포스.
벨루아에게 포스가 없는 게 이상한 것이다.
“이 놈이!”
태현의 공격으로 인해 포스에 금이 가자, 벨루아가 태현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일반 주먹이 아니었다.
마력을 응집해 괴물같은 파괴력을 지닌 주먹이다.
쾅!
하지만, 그의 주먹은 태현의 포스를 뚫지 못했다.
레벨이 1만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과 400이 조금 넘었을 때에는 포스와 유령검이 아무런 방어를 해주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참··· 이상해. 그치? 가오스가 왜 네 놈한테 진 거지?”
“······.”
“어떻게 봐도 네가 나를 이길 수 없으니까 하는 말이야.”
가오스의 힘을 전부 받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벨루아는 결코 태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상했다.
지금 가오스에게 받은 일부분의 기억.
파괴신으로 불리며 많은 차원을 부수고 다녔지만, 한 명의 인간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고 차원을 지키려다가 벨루아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일부분의 기억이다 보니 이 사건의 전제를 알 수 없어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사실은 벨루아가 가오스를 쓰러트렸다는 점이다.
“후후···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지?”
“뭐···?”
“보아하니 띄엄띄엄 알고 있는 거 같은데.”
“······.”
벨루아가 피식 웃었다.
“그래. 확실히 가오스는 나를 능가했다. 그리고 내 손에 죽는 것을 자처했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
“궁금해? 알려줄까? 큭큭.”
“······.”
태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벨루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쩍!
쩌적!
벨루아의 포스가 완전히 깨어졌다.
그럼에도 그의 주먹은 쉬어지지 않았다.
퍽! 퍽!
“크악··· 이렇게 때리면 절대 안 알려줄 거다! 크악!”
벨루아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태현은 계속해서 벨루아의 얼굴을 때렸다.
간간히 왼손으로 권능을 사용해 그의 몸을 바닥에 강하게 찍어 눌렀다.
프레스기로 압착을 하는 것과 유사했다.
그러니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들어보라고! 들어봐!”
“싫어 개xx야.”
“크악! 모든 걸 알려준다니까!”
“아가리 꽉 물어. 이대로 즉사하기 싫으면.”
“크아아아악! 기다려보라고!”
지금까지 이런 고통을 겪어보질 않았는지 벨루아의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태현은 이대로 끝낼 생각은 죽어도 없다.
죽음의 고통을 맛보았는데, 어찌 이대로 끝을 낼 수 있을까?
“아, 맞아. 단검으로 나를 여섯 번 찔렀지?”
태현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단검 18자루를 꺼냈다.
그리고는 벨루아의 손부터 시작해서 강하게 찔러 넣었다.
“끄아아악!”
벨루아의 비명이 한층 거세졌다.
“아프냐? 응? 아프지? 나도 아팠어. 이 씹x야.”
푸욱. 푸욱.
단검이 쉬지 않고 들어간다.
중간에 죽어버려도, 쉬지 않을 생각인지 태현이 단검을 계속해서 찔러 넣었다.
그렇게 18개의 단검이 전부 벨루아의 몸에 꽂히는 순간, 그제야 태현이 벨루아를 놔주었다.
“크어억···.”
접전이 예상될 줄 알았지만, 생각 외로 너무 쉽게 끝났다.
태현은 그제야 벨루아의 뺨을 쳤다.
“말해.”
“크윽··· 이 자식이···.”
“말하라고.”
짜악!
태현의 손바닥이 벨루아의 뺨을 가격했다.
짜악!
“해.”
짜악!
“안 해?”
짜악!
쉬지 않고 움직이는 태현의 손바닥.
벨루아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단검 4개가 박힌 팔을 들어 그의 손을 어떻게든 붙잡았다.
“말할 시간을 달라고···.”
“그래. 말해.”
태현은 힐러를 불러 치료할 마음조차 없었다.
여기서 벨루아가 뜸을 들이면, 조금 더 고통을 준 뒤에 없애버릴 계획이다.
“가오스가··· 모든 걸 뒤집어썼다···.”
“뭐?”
벨루아는 힘겹게나마 말을 덧붙였다.
“사실 차원을 부수려던 것을 그만둔 건, 가오스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만둘 생각이었거든.”
“어디서 개수작이야.”
짝!
태현의 손바닥이 다시금 쉬지 않고, 벨루아의 뺨을 가격했다.
“크윽··· 진짜다. 생각해 봐. 내가 어째서 호구마냥 네 놈이 강해지는 걸 기다려줬을까?”
멈칫.
“왜 내가 먼저 나타나지 않고, 밑의 애들을 보냈을까? 왜 네 놈을 죽이고, 바로 이 차원을 부수지 않았지? 심지어 왜 G급 게이트가 아닌, S급 게이트로 위협만 했을까?”
“뭔 헛소리야.”
“사실 차원을 부수라고 명령을 내린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역을 저지르려다가 걸리고 말았지.”
“···구라 좀 적당히.”
“가오스는 나한테 부탁을 남기고, 일부러 내게 죽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우리 둘이 세운 계획의 시초였지.”
“······.”
“그리고 네가 가오스의 힘을 전부 받을 수 있도록 장치를 걸어둔 이유도 있다. 전수받는 조건은 내게 한 번 죽는 것. 너를 죽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끝?”
태현의 손이 다시금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손이 아니었다.
친히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들어 당장이라도 그의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속셈이다.
벨루아는 다급했다.
“그 계획에 대해서 아직 설명하지 않았···.”
“구라도 적당히 치라고. 약 잘못 팔다가 뒤지는 거야. 이렇게.”
태현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곡괭이에 마력을 가득 담아 벨루아의 목을 내리 찍었다.
콰직!
목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벨루아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끝났군.”
복수가 끝이 났다.
태현은 그제야 곡괭이를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목이 분리된 신체를 집어서는 구석에 던졌다.
이제 게이트가 전 세계에 있는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확인을 해야지.’
혹시 몰라 게이트를 만들어 지구와 나이가 대륙을 확인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아직도 몬스터가 활발히 쏟아진다고?’
몬스터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태현이 고개를 돌려 벨루아를 보았다.
미동도 없는데다가 기운 역시 완전히 소멸되었다.
확실히 죽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주르륵 뜨기 시작했다.
*왕국 길드 자체적으로 인수한 거대한 운동장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의자에 몸은 앉힌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태현이 내린 지시대로 헌터들의 피난소인 운동장으로 모인 것.
그 앞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비치되어있었는데, 그의 수하들이 몬스터를 학살하는 장면들이 LIVE로 송출되고 있었다.
“엄청나네.”
관리실에 앉아있는 임지성과 쌍둥이, 천태도와 백승한.
그 밖에도 각기 길드 대표들이 자리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뭐··· 상황은 모두 들었잖아요?”
백승한이 구석에 앉아있는 진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있던 팡 린이 미간을 좁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려했다.
하지만, 진진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면서 무산되었다.
“···잘못하다가 진짜 죽겠는 걸.”
천태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팡 린과 진진.
둘 다 중국의 갓 급 헌터다.
그런 그들과 같이 있으려니 제대로 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채연화와 채민희 역시 입을 다문 채로 몬스터가 토벌당하는 것만을 지켜볼 뿐이다.
“중국어 불가능하십니까? 제가 한국어는 못해서.”
진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승한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역시 중국어는 모른다.
그는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못 알아듣겠다는 말이다.
“후우··· 답답하네. 이 상황을 어떻게 전달··· 어?”
생각해보니 방법이 있다.
자신을 데려다주었던 덕배.
그가 있지 않은가?
진진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관리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론이 턱짓으로 도로 들어갈 것을 부탁했다.
“중국어 가능하신 분 없습니까?”
“여기 있는데?”
아론의 입에서 중국어가 술술 나왔다.
“어? 중국어 되십니까!?”
“안 될 게 뭐가 있어? 주군의 권능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가 못 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한 헌터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잠시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주군의 활약말인가? 아주 좋지!”
아론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태현의 소환수가 들어오니 자연스레 모두가 긴장했다.
팡 린 역시 긴장한 눈으로 조용히 응시했다.
“잠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진진의 말을 한국어로 통역해서 전달하자 헌터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한태현 헌터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지금 한 헌터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설명할 겁니다.”
그 말이 통역되어 나가자 헌터들이 눈을 빛냈다.
태현에 대한 이야기.
지금 그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는 데 어떻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진진은 모두의 눈이 한자리에 꽂히자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