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하늘 위의 하늘(2)
*나이가 대륙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수많은 게이트.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위의 귀족들 역시 갈팡질팡했다.
종말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안일한 대처.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나이가 대륙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여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족.
여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악마의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
엘프들은 그들의 정체가 태현의 소환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반 귀족이나 백성들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몬스터가 아니냐는 말과 함께 공포 속에 떨 수밖에 없었다.
“무서워하는 걸 보니 괴롭히고 싶네.”
마족들의 본성답게 공포에 젖은 인간들을 바라보며 시시덕거리는 모습.
그러나 태현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그 생각은 깡그리 지워졌다.
“크흠··· 바른 생각. 바른 생각.”
상공을 가르며 질주하던 마족들이 일제히 헛기침을 토했다.
다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
“몬스터나 계속 잡아들이자.”
슬슬 끝이 보인다.
계속되는 몬스터 대학살로 인해 일반 사람들의 피해는 극소수였다.
다만 몬스터는 마족들에 의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보스 몬스터들도 버티지 못하고 마족들의 손에 갈려나갔다.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종료되었고, 마족들은 그 자리에서 안식처로 돌아갔다.
*엘프의 숲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몬스터로 인해 가득했던 울창한 나무가 대거 파손되면서 흉한 모습이 비춰졌지만, 엘프들은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평화를 가져다 준 은인.
태현은 아르제 앞에 앉아 찻잔을 들고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르제가 빙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숲은 나이가 대륙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의 은인인 태현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믿음에 보답을 했을 뿐이니까요.”
태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엘프들은 자신을 믿어주었다.
벨루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도 킹이 아니셨다면 저희는 발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을 겁니다. 감사를 표하는 건 당연하지요.”
“뭐··· 그러면 그 감사는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아르제가 은근히 물었다.
몬스터가 잠시 사라진 지금, 마족들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런데 태현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에 볼일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끄덕.
정답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태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용무가 남았죠.”
“어떤 용무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별 거 아닙니다. 아마 게이트는 계속해서 등장할 겁니다. 몬스터가 쏟아지는 게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죠.”
“음···.”
예상하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태현을 바라보던 아르제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엘프들을 전부 물렸다.
“굳이 내보낼 필요는 없었지만, 뭐 배려는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말은 아르제가 듣고, 필요한 부분만을 엘프들에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계속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별 건 아닙니다. 앞으로 몬스터는 더욱 강한 놈들이 튀어나올 겁니다. 그것에 대비할 방법을 제시하러 온 거죠.”
아르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대비말씀이십니까?”
“네. 보시다시피 지금 상대했던 몬스터들은 등급이 S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S급 몬스터.
S급 헌터들도 쩔쩔맨다는 그 S급 몬스터를 말한다.
“음··· 훨씬 강한 몬스터라 하심은?”
“갓 급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를 말하는 거죠.”
S급을 넘어선 G급.
몬스터 역시 G급이 존재할 것이다.
벨루아까지 사라졌으니 기다리다보면 알아서 상위 존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전에 게이트를 열어 이 차원을 박살내려는 시도를 하겠지.
놈의 작전이 눈에 선히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태현이 나이가대륙에 방문했다.
이 게이트들도 자신이 선점하기 위해서.
“그러시면···?”
아르제는 눈치가 빠르다.
대충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조심스레 묻는 모습.
“여기 몬스터들은 제가 전부 맡을 겁니다.”
“!”
“너무 놀라시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보냈던 수하들이 선두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여기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후미에서 안전하게 싸울 수 있던 것 아닙니까?”
그렇다.
마족들이 선두에서 싸우고 있을 때, 나이가 대륙의 사람들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다.
힘이 있는 이들은 마족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소수의 몬스터들을 겨우 겨우 처리하면서 피해를 줄이는데 일조했다.
물론 도움은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흠··· 그렇다고 각 국의 나라가 이것을 받아들일지가···.”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다.
아르제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은인인 태현을 문전박대할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많은 사람들이 제 수하들을 두려워하더군요?”
기사나 마법사 너나할 것 없이 마족들을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바라볼 때마다 화가 났다.
자신의 수하를 공포의 대상으로 비춘다는 것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허허··· 설마 힘으로 누르시려는 것입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게 될 겁니다. 물론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말이죠.”
“음···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나··· 공포를 심어주고 얻어내는 건, 그닥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르제의 말이 맞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태현이 씨익 웃었다.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르는 게이트.
당장 내일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각 국에게 신뢰를 주어 신임을 받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사실 말없이 게이트를 선점하려고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거든.’
태현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마족들을 나이가 대륙에 배치할 생각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 백성들이 마족들을 오해하고 적대한다면 곤란하다.
“음··· 알겠습니다. 킹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따라야지요.”
“감사합니다.”
아르제는 품에서 새하얀 종이 하나를 꺼냈다.
마력으로 코팅되어 있는 특수 종이.
그는 책상 옆에 있는 검은 붓을 들어 종이에 휘갈겼다.
그렇게 1분가량 휘갈기고서야 붓을 내려놓고, 태현에게 건넸다.
이게 뭐냐는 얼굴로 바라보자 아르제가 빙긋 웃었다.
“제이드 공국에 드워프 마을이 있습니다. 촌장 로웰에게 보내는 서신이지요. 이걸 본다면, 군말 없이 허가해줄 겁니다.”
드워프.
마족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기껏 몬스터에게서 목숨을 구해줬더니 여기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별로 강한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눈에서 굳은 심기가 느껴졌다고.
결국 드워프 마을을 방문했던 마족들은 감사인사도 받지 못한 채로 그 곳을 빠져나왔다.
“흠··· 이게 꼭 필요할까요?”
사실 드워프 마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힘으로 누를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아르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드워프는 외부인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 정도죠. 그래서 몬스터를 처리해서 마을을 구해주었음에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문전박대를 당했을 거라 봅니다.”
“정답입니다.”
“···이해하십시오.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판단이 흐린 터라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본래 악한 이들은 아니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르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서신 하나를 건네주면 알아서 허가하겠다는데 문제될 건 없다.
“감사합니다.”
“대신 이걸로 프리패스가 되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죠?”
태현이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르제가 고개를 주억였다.
“네. 이 서신으로도 안 된다면, 킹께서 생각하신 방법으로 가십시오.”
끄덕.
“좋습니다. 그럼 마저 일을 끝내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태현은 서신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살펴가십시오.”
“그럼 일이 끝나게 되면 놀러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태현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리에 남겨진 아르제는 우두커니 서서 그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의 입은 떡 벌어져서는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 강하다··· 나이가 대륙 하나정도는 우습게 파괴시킬 수 있는 분이야.”
일전에 벨루아를 선택하지 않고, 태현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엘프의 긍지를 버렸다면 그 죄로 인해 태현에게 목숨을 바쳤어야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제이드 공국.
드워프 마을.
마족들에게 이미 보고를 받은 상태기에 위치정도야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태현은 텔레포트라는 권능을 사용해서 단숨에 드워프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주위에 풀숲에서 움찔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입구를 지키는 드워프가 갑자기 나타난 태현의 모습에 놀란 것이리라.
‘일단은 서신을 밝히는 게 좋겠군.’
솔직한 마음으로는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몬스터를 없애기 위한 힘이지.
일반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한 힘이 아니었으니까.
“아르제 장로님의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태현의 우렁찬 음성에 드워프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렇게 10초동안 움직임이 없다가 한 명의 드워프가 풀숲을 헤치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왔다.
키가 1m 20정도 되어 보이는 땅딸보였는데, 얼굴과 피부는 6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주름이 가득했다.
“아르제의 서신이라고?”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태현의 위아래를 훑던 드워프가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 그의 얼굴을 겨누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힘이라면, 드워프들을 없애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요.”
“뭐라!?”
드워프가 역정을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왜? 믿지 못하겠습니까?”
태현은 감추었던 기운을 조금 개방했다.
“흐읍!”
그러자 드워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고, 풀숲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드워프들 역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아득한 기운에 눌린 것이다.
태현은 가볍게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뛰어난 효과에 기운을 빠르게 회수했다.
“정말입니다. 여기 아르제 장로님의 서신입니다.”
그 말과 함께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르제가 건넸던 종이를 꺼냈다.
그 종이를 발견한 드워프는 그제야 경계심을 풀었다.
“정말 서신이로군···.”
“종이만 봐도 알 수 있는 건가?”
“그래. 그건 우리가 제작해서 아르제 장로님께 선물로 준 것이니까 말이야.”
“흐음.”
이 서신에는 아르제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드워프들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촌장님께 안내하겠네. 경계한 것은 용서해주게.”“괜찮습니다.”
태현이 사과를 받자, 드워프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총 14명으로 구성된 인원.
그들은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하고는 풀숲을 헤치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인파로 인해 북적북적한 마을이 등장했다.
‘신기한 마을이네.’
몬스터들에 의해 대부분의 풀숲이 훼손되고 말았지만, 그 안에 있는 마을은 건재했다.
모두 1m 20이 넘지 않는 신장을 가지고 있어 높이가 크지 않은 건물들.그 중에서도 중앙에 있는 건물은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기가 촌장님이 머무는 곳인가 보죠?”
태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오, 똑똑한 친구일세. 어떻게 알았지?”
드워프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어째서 아르제가 걱정했는지 알겠군.’
처음에는 친히 서신까지 써준 것이 의아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마 말로 해결하려고 했었다면 힘으로 굴복시켰어야 했으리라.
태현은 드워프들의 안내에 따라 촌장이 있는 건물까지 다이렉트로 직진했다.
중간 중간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드워프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태현을 견제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서신을 발견하면서 그 눈빛이 순식간에 친근하게 변했다.
여러모로 적응이 되지 않는 종족이다.
그러다 태현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흠··· 굳이 촌장 집까지 갈 필요는 없겠어.’
촌장은 이미 집에서 빠져나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반 드워프들과는 보다 강한 기운을 소유하고 있으니 확실했다.
“오, 저기 촌장님이 오시는군.”
태현에게 단검을 겨눴던 드워프가 호탕하게 웃었다.
“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서신을 건네주기만 하면 허가를 받는다고 그랬다.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힘으로 받아내도 무방하다는 말과 함께.
태현은 드워프들을 뒤로하고, 촌장에게 다가갔다.
일반 드워프들과 마찬가지로 1m 20정도의 신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은 100세가 넘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웰 촌장이십니까?”
“맞네. 거대한 기운이 느껴져서 나와봤는데, 적이 아니라 손님이었군.”
로웰이 껄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서신을 건네 달라는 뜻이다.
태현은 그에게 서신을 건넸고, 로웰은 그 서신을 펼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긴 말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제이드 공국에 등장하는 게이트는 제가 다 처리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보았던 날개 달린 녀석들이 맡아줄 거고요.”
적대하지 말라는 소리다.
“허어··· 적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이거 미안하게 됐구먼···.”
“그래서 답변은?”
“좋네. 우리 마을을 지켜주겠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소? 아르제가 이렇게 칭찬을 써놓을 정도면 믿을 수 있지. 암!”
‘단순하군.’
태현이 피식 웃었다.
서신 하나로 이렇게 쉽게 끝날 줄 알았으면, 엘프들을 통해 건넬 걸 그랬다.
“그러면 알아들은 걸로 하고··· 저는 가보도록 하죠.”
“차라도 한 잔 어떠신가? 아니지! 손님이신데, 우리가 만든 무구들 좀 보여줄까?”
“무구요?”
“그래! 이 무구의 거대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이제야 나타났는데,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