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하늘 위의 하늘(4)
*닷새는 빠르게 흘렀다.
국제헌터회의는 한국헌터관리국 옆 건물에 위치한 대강당에서 진행이 될 예정이다.
수련장 겸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회의를 위해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고, 많은 인원을 수용해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다.
태현은 리모델링이 완료된 대강당을 가볍게 훑고는 관리국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그를 발견한 모든 직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일전에 예의에 관해서 언급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생 많으십니다. 진 부장님은 어디 계시죠?”
직원들의 인사를 받고, 진도윤의 위치를 물었다.
“센터장실에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 하나가 익숙한 발걸음을 놀려 센터장실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그러자 5초도 되지 않아 진도윤이 나와서는 태현을 맞이했다.
“한 헌터님!”
“회의 준비는 잘 마무리 된 것 같네요.”
어제까지 철야작업으로 인해 진도윤의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와 있었다.
오늘이야 관리국 간부들이 공항으로 나가 타국의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을 터다.
물론 신고 센터는 24시간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니 진도윤은 손님을 맞이하는 인원에서 제외되었지만 말이다.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잠시 졸고 있었는지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된 상태다.
태현은 그것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센터장실을 가리켰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라도 대접해주시겠습니까?”
아직 회의까지 6시간이 남았다.
그 때까지는 잠깐의 휴식정도야 취할 수 있다.
“괜찮으십니까? 많이 바쁘신 것 아닙니까?”
“괜찮아요. 제가 할 일이 크게는 없으니까요.”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지요.”
진도윤은 직원 한 명에게 커피 2잔을 부탁하고 안으로 들어섰고, 태현은 센터장실에 들어와 쇼파에 앉았다.
커피는 금방 준비되어 탁자 위에 올려졌다.
“제가 일전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아 게이트 독점권에 대해서 말씀이시죠?”
끄덕.
“사람들의 목숨과 자연을 생각한다면, 이 방법이 최선인 것을 다들 알고 있을 텐데요.”
고(高)등급 게이트가 등장할 것이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S~G급의 게이트가 떼거지로 쏟아지겠지.
벨루아를 삭제시킬 정도의 강자가 지구에 있다는 것을 상위 존재가 알아차렸을 테니까.
“맞습니다. 일단 저희 관리국에서는 헌터님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당연한 결과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들이 좌절을 겪을 때까지는 손을 놓고 지켜볼 생각이었다.
나이가 대륙이야 면식도 없는 이들이기에 힘으로 굴복을 시켰지만 지구는 아니었다.
이들은 몬스터에 대한 대처에 익숙해진 상태다.
위기가 닥치지도 않았으니 태현에게 손을 내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터님 덕분에 간부들 중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이들도 색출할 수 있었습니다.”
“흐음?”
그 부분은 생각지 못한 일이다.
“국장님 명령으로 헌터님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간부들의 뒷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길드들에게 뇌물을 받고, 각종 정보를 빼돌리는 비리를 저질렀더군요.”
“심각하네요.”
설마 간부들이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사실 권력에 취한 인간들 중에 청렴결백한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힘을 이용해서 만든 권력을 그런 썩어문드러진 짓을 저지르다니.
화가 났다.
“헌터님은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시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지만, 그의 눈은 어느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역시 헌터님이십니다. 사실 헌터님께서 그런 제안을 하셨을 때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죠.”
“저기··· 부장님?”
“헌터님의 혜안은 가히 본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말을 말아야겠다.
괜히 여기서 무슨 말을 꺼내도 진도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귀찮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보다 오늘 회의는 향후 게이트의 대처가 메인 주제라고 들었습니다. 맞죠?”
“네. 맞습니다.”
“저는 관리국에서 제안했던 내용을 그대로 말할 생각입니다. 물론 S급 이상의 게이트만을 독점하는 것으로요.”
사실 이 부분은 입 밖으로 꺼냈음에도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한국의 게이트야 독점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다르다.
모든 게이트를 독점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그러니 S급 이상의 게이트가 출몰할 시에는 태현의 수하들이 그것을 처리한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거라면 모두가 받아들일 거라고 봅니다.”
진도윤이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S급 이상의 게이트를 독점해서 몬스터가 출몰하기 전에 게이트를 닫아버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태현이 피해를 최소화하고, 게이트를 닫아버린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좋습니다. 그럼 조금 쉬었다가 회의에 참석하죠.”
“허허··· 그럼 저도 잠시 휴식을 취할까요?”
은근히 묻는 모습에 태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생각으로 여기 왔습니다.”
사무실에 있어봤자 이렇게 휴식을 취하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마스터라는 놈이 누워서 쉬고 있으면 이 얼마나 좋지 못한 모습인가?
물론 안식처에서 쉬는 방법도 있었지만, 오늘은 진도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눌 겸 온 셈이다.
*공항에는 레드카펫이 크게 깔려있다.
귀빈도 그냥 귀빈이 아닌, 각 국의 관리국 대표들이 방문하는 것이니 당연한 처우다.
미국부터 시작해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등.
수많은 나라의 관리국장과 S급 헌터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한국 관리국장 채병국과 관리국 간부들은 그들을 반기느라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갓 급 헌터라 불리는 진진과 팡 린.
러시아 갓 급 헌터 알리나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희귀하다는 불분명 각성자에서 갓 급까지.
신비주의 컨셉인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들을 구경하는 일반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갓 급이··· 프레드 헌터님인가?”
기자 하나가 중얼거렸다.
태현을 제외한 갓 급을 모두 놓고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프레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먼저 도착한 것 같은데? 아니면 참석하지 않는 것일 수도.”
결국 프레드를 찍는 것은 포기하고, 나머지 갓 급 헌터들과 각 국의 대표들을 찍는데 집중했다.
“크으··· 내 생애 갓 급이 3명이나 모인 것을 보게 될 줄이야.”
갓 급의 소환능력을 가진 진진.
마찬가지로 검을 다루는 팡 린까지.
마지막으로 갓 급의 빙결계열의 마법사인 알리나까지.
아마 이 사진을 기사로 내보내면 많은 이목을 끌 것이 분명하다.
인터뷰까지 진행한다면 금상첨화.
하지만, 헌터들과 대표들은 서로 간단한 통성명을 나눈 뒤에 곧바로 회의장소로 이동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그들의 뒤를 쫓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물론 관리국의 저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태현은 공항에 입국한 귀빈들이 대강당으로 이동 중이라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그만 가보죠.”
“네.”
잠시 눈을 부치면 진도윤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킨다.
2시간이지만, 회복이 많이 되었는지 다크써클이 조금 옅어졌다.
“푹 주무신 모양이네요.”
“감사합니다. 헌터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꿈도 못 꾸죠.”
원래 업무시간에 잠을 자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태현이 있었으니 가능했다.
그가 손님으로 센터장실에 앉아있는데, 누가 감히 들어올 수 있을까?
국장과 간부들 모두가 관리국을 비운 상태이니 당연히 들어올 이는 없다.
“갑시다.”
태현은 센터장실을 빠져나가 옆 건물인 대강당으로 향했다.
아직 인원들이 도착하기 전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지정된 상석으로 향했고, 진도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많은 인원들이 대강당 안으로 입장했다.
“엇!? 설마 한태현 헌터님인가!?”
태현은 권능을 이용해서 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네.”
그렇게 수많은 귀빈들과 악수를 나누며 간단히 스캔을 마쳤다.
“오랜만입니다.”
뒤이어 진진과 팡 린과도 인사를 나눴다.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 진진의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고, 팡 린 역시 태현을 호의적인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인물도 보였다.
“당신이 갓 급 헌터인가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이 인상적인 여인이다.
“그렇습니다만 설마 당신도?”
태현이 다소 과장된 태도를 취하며 답했다.
‘갓 급이네. 호오··· 진진과 팡 린보다도 강하네.’
갓 급이라고 다 같은 갓 급이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알리나의 눈에는 태현의 모습이 영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갓 급 헌터 알리나에요.”
결국 그녀는 한 발 물러나기로 하고 손을 내밀었다.
태현 역시 손을 맞잡으며 소개했다.
“갓 급 헌터 한태현입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렇다.
알리나가 보기에는 태현은 그저 일반인에 불과할 정도로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상했다.
“저는 잘 느껴지는데요.”
태현은 피식 웃고는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계속 들어오는 귀빈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다.
뒤이어 프레드와 임지성도 등장했고, 미국 관리국 대표와 간부들은 급히 프레드에게 다가가 불편했던 점이 없었냐는 말과 함께 그의 몸을 살폈다.
물론 프레드가 그들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마무리되었지만.
어쨌든 귀빈들의 입장이 마무리되었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갓 급 헌터들이 상석에 먼저 앉았다.
그 모습에 각 귀빈들도 자리에 착석했고 어느덧 진중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있는 A급 헌터들이 전부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제헌터회의.
시청자수는 벌써 500만 명을 돌파했다.
가히 압도적인 숫자.
회의가 진행될수록 숫자는 더욱 늘어 3,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 오늘 회의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채병국이 마이크를 들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회의의 주제가 앞으로 게이트 사태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에 대한 만큼 좋은 사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먼저는 각 국의 대표들의 소개가 이어질 예정이고, 그 뒤로는 서로의 의견들을 나눠볼 생각입니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한 헌터님?”
그는 한태현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마이크를 들었지? 라는 얼굴로 태현을 응시하는 수많은 이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S급 게이트 사태를 잠재운 게 누구라고 보십니까?”
“······.”
알 수 없다.
수많은 갓 급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몬스터를 처리하고는 유유히 사라졌으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그거 제가 한 거니까요.”
“!”
ㄴ뭐라는 거야?
ㄴ이번 게이트 사태를 한태현이 했다는데?
ㄴ에이··· 무슨 소리야. 그 많은 인원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뭐라고 하게?
ㄴ일단 계속 들어보자.
채팅창이 뜨겁게 타오른다.
특히 이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닌, 헌터들이다.
500만 명이 넘어가는 이들 모두가 회의를 지켜보는 일반 헌터라는 이야기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태현은 수하 하나를 소환했다.
그는 레온이었다.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나타나자 대표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특히 알리나는 경악에 휩싸인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소환수가 갓 급이라고···?’
심지어 그녀는 상대도 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어째서 태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갓 급을 초월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었어···.’
하늘이라고 불리던 알리나다.
그런데 태현은 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큭큭.”
“벌써부터 본론이야? 태현답군. 하하.”
프레드와 진진은 숨죽여 웃었다.
이래야 자신들이 인정한 한태현이지.
“저··· 정말이었어?”
“갓 급이다··· 소환수가 갓 급이야···.”
레온의 기량을 눈치 챈 이들은 아연실색한 눈동자를 굴리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애꿏은 침만 삼킬 뿐이었다.
채팅창 역시 불타올랐다.
“미x··· 저 분은 도대체.”
촬영 중인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그 주인공인 태현은 태평한 얼굴로 레온을 다시 돌려보냈다.
“저는 이런 소환수를 10,000명이 넘는 숫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 명!”
경이로운 숫자에 모두가 당황했다.
“제가 이 힘을 먼저 공개한 이유를 말씀드리죠. 게이트는 앞으로 계속 등장할 겁니다. 이번 S급 사태는 약과에 불과하죠. 앞으로 G급의 사태가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G급 게이트를 누가 처리합니까? 갓 급이요? 겨우 5명으로 수 백 개의 게이트가 나타나면 뭐 어쩌실 생각입니까?”
이 회의는 쓸모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챈 대표들은 그의 시선을 피해 침음만 흘릴 뿐이다.
태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덧붙였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게 뭐지요?”
마이크를 들고 있는 채병국이 물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태현이 말해주길 바란다는 말이다.
“S급 이상의 게이트는 앞으로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
그 한마디에 모두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