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게이트의 정체(2)
*“젠장··· 빨리 대피시켜야 돼.”
진도윤과 함께 거리로 빠져나온 임지성은 급히 길드원들에게 게이트 사실을 알렸다.
길드원들 모두가 진즉에 눈치 챘겠지만,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헌터 워치를 조작하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임지성이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진도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하늘로 돌아갔고,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슥.
“게이트가 사라지고 있어···?”
하늘을 가득 채워 빛을 가렸던 어두운 게이트의 범위가 좁혀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임지성은 혹시나 싶어 태현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역시나 통화권 지역 이탈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들어간 모양이네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한숨이 나왔다.
“일단 대피는 중단하지 말고 진행하는 걸로 하죠.”
게이트가 서서히 사라지고는 있다지만,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언제 게이트가 커지고 몬스터가 쏟아져 내릴지 모른다.
아무리 태현이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안심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도록 하죠.”
그렇게 대화를 마칠 때 즈음,
저 멀리서 2명의 헌터가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아, 천태도 헌터님과 백승한 헌터님이시군요.”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가 서둘러 길드원들을 통솔하기 위해 빠져나갔던 두 명이다.
“지금 게이트가 사라지는 것을 보셨죠?”
임지성이 물었고, 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였다.
“일단은 평소처럼 움직여야 될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갓 급 헌터들이 모여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것 같거든요.”
갓 급 헌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태현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네. 혹시나 도망친 거 아닌가 싶어 확인했지만, 그건 아니더라고요.”
천태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짜 확인해본 겁니까? 대단하신 분이네.”
백승한이 어이없는 웃음을 토했다.
“아까 회의 보셨잖아요? 이번 S급 사태를 종식시킨 게 한 헌터님 능력이라고 하던데 반응이 영···.”
불만스러움을 내비치는 천태도의 모습이 공감이 된다.
S급 이상의 게이트가 등장하면 태현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말을 거부했으니까.
그건 자신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알아서 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거기에 어폐가 있다.
이번 회의는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사람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들이 그 방안이 나왔음에도 자존심을 지키겠답시고 거부했다.
“나도 언짢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결국에는 모두가 허락했으니까요.”
그 부분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백승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천태도가 미간을 좁혔다.
“끙··· 그래서 나보고 뒤끝이 길다고 돌려 까는 건 아니죠?”
“알아서 생각하세요.”
“응? 진짜였어?”
“글쎄요? 일단은 한 헌터님께서 게이트를 들어가셨다고 하니 저희도 움직이죠.”
사실 이 둘이 대강당으로 돌아가려던 이유가 태현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번 게이트를 진입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
그러나 태현은 이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다.
게이트가 사라지고, 푸른 하늘과 함께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끄덕.
“그러도록 하죠.”
그들은 사라지는 게이트를 뒤로 하고,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게이트에 들어온 태현과 갓 급 헌터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어디지···?”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은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주위는 마치 우주를 보는 듯 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
그렇지만 시야를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 보일 지경이다.
“신기한 곳이네.”
태현은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갓 급 헌터들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
30분을 걸었는데도 주위는 그대로였다.
바닥을 밟고 있는 하얀 대리석들 역시 마찬가지.
“방향감각을 상실했어.”
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마땅히 출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주의 공간 아래 떠돌아다니는 듯하다.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심각하네.”
“그러게.”
진진과 팡 린 역시 이런 게이트는 처음 겪는 것인지 떨떠름한 얼굴로 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반면, 프레드는 낙천적인 얼굴로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잠시 앉아서 쉬자. 움직여봤자 답이 안 나오잖아.”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이 태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태현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괜히 움직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프레드의 말이 맞아. 일단은 생각을 좀 하고 움직이자.”
태현이 자리에 앉자 나머지 이들도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수하들을 대거 소환해서 주위를 경계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다.
더불어 돌아다니며 특이점이 없는지 살필 것을 지시했다.
“오··· 역시.”
진진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는지 자신의 소환수를 대거 소환해서 태현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태현은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손이 늘어난 것이기도 하고, 이 공간이 심각할 정도로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진진이 하는 일은 대환영이다.
“여러분들에게 해두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태현의 진중한 목소리에 헌터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알리나 역시 지금은 그를 믿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는지 고분고분하다.
“먼저 우리가 왜 이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제대로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갑작스런 물음에 헌터들이 당황했지만, 이내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태현이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 나는 답을 모르면 그냥 회피해버리거든.”
프레드가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너답다.”
태현이 피식 웃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답이 없는 걸 고민할 여유가 없었기도 하고, 그래서 뒤로 제쳐뒀어요.”
알리나 역시 솔직하게 말했고, 뒤이어 진진과 팡 린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당연하겠죠. 저 역시도 이런 부분을 심도 있게 고민해본 적은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까?
뺄 건 빼야 한다.
태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말을 덧붙였다.
“이 게이트가 더더욱 높은 등급들로 도배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멸망하겠죠. 물론 그만큼 등급이 높은 헌터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알리나의 말에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럼 지금 상황과 대입해볼까요?”
“······.”
“S급 게이트 사태.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G급을 예상하는 게이트. 아니죠? G급을 넘어서는 게이트일지도 모릅니다.”
“설마···.”
이제야 태현의 말뜻을 이해한 헌터들이 눈을 부릅떴다.
“네. 이대로 가다간 세상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멸망의 때가 도래한다는 건 확실하다.
“···단언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
“그럼 단언하지 않을 이유가 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없죠? 솔직히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으면 안 됩니다.”
태현의 말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오늘 등장한 게이트.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이대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는 말이야?”
그 말을 꺼낸 건, 프레드였다.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희망의 불씨를 직접 만들어야지.”
“어떻게?”
“뭘 어떻게야. 게이트가 등장할 때마다 바로바로 닫는 거지.”
그래야지만 그의 존재를 의식하고 정체를 드러낼 테니 말이다.
조금의 실마리만 찾게 된다면, 곧장 쳐들어가겠지만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을 꺼냈던 거군.”
S등급 이상의 게이트를 전부 맡겠다는 말.
그 말이 어째서 나왔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셈이지. 독식해서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
피식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프레드가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
“나보다 심한 놈은 처음 본다니까. 그냥 독식해도 괜찮다. 옆에서 모기마냥 빨아먹으면 되니까.”
“내가 그걸 허락할까?”
“주군!”
때마침 수하 하나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의 보고를 받았다.
“말해.”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거라고?”
“네. 일단 같이 가셔서 직접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나머지 분들도 같이 가시죠.”
수하가 지정한 곳에 다다르기까지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주위는 그대로였고, 아직도 주위에는 길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정말 지x났네.”
프레드는 참지 못하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입 밖으로 배출했다.
“바로 여깁니다.”
걸음을 조금 옮긴 수하가 바닥에 있는 대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대리석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달그락.
견고한 대리석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허술한 모습.
심지어 조금만 세게 만지면 부서질 것 같다.
수하는 그 대리석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하나의 작은 스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찾았어?”
“사실은···.”
수하는 이걸 찾기까지의 일을 천천히 설명했다.
다른 수하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이 길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살펴보는 수하들도 있었지만 성과가 없는지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반 포기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대리석 하나가 다른 대리석들과는 다르게 옆으로 밀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심지어 얇았기 때문에 조금만 세게 밟으면 깨질 정도라고.
운 좋게 얻어걸린 셈이다.
어쨌든 곧장 태현에게 보고했고, 지금 이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흐음··· 딱히 다른 부분은 찾을 수가 없었고, 이 스위치가 답이라는 소린데.”
일단은 눌러볼까? 싶어 망설임 없이 스위치를 눌렀다.
틱-
쿠구궁.
스위치를 누르자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대리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이거였어.”
대리석들은 옆으로 움직여서는 하나의 큰 원형 통로를 만들었다.
“오···.”
헌터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내려갈 수 있는 계단으로 보아 이것이 입구인 모양이다.
“몬스터들치곤 너무 지능이 높은데?”
프레드가 중얼거렸다.
그 말인즉슨, 이 게이트에는 몬스터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좋은 접근이야.”
태현은 씨익 웃으며 프레드를 칭찬했다.
“내가 좀 똑똑하잖아? 바로 내려갈 거지?”
“바로 내려가야지.”
이런 거대한 게이트가 열릴 정도면, 꽤 거물이라는 말이다.
물론 몬스터일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등급이 높으니 지능 역시 상당한 녀석일 수도.
하지만, 프레드의 말처럼 몬스터가 아닌 존재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일전에 등장했던 크라포스의 게이트처럼 말이다.
‘주군!’
태현이 내려가려던 찰나, 수하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무슨 일이야?’
‘이상한 괴생물체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스위치를 누른 직후에 나타난 건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져서는 주군께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힘으로 처리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상당한 놈이라는 뜻이다.
‘알겠다. 일단 놈에게 붙지 말고 떨어져서 내 쪽으로 합류해.’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태현이 한 발짝 걸친 계단에서 떨어졌다.
“지금 내려가는 건 패스.”
“갑자기 왜?”
프레드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잘 들어봐. 발소리 안 들려?”
“······.”
쾅! 쾅!
들린다.
그것도 조금씩 선명하게.
그 발소리는 자신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