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게이트의 정체(3)
*헌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뒤에는 시민들이 바짝 붙어서 대피소로 이동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각자 불만의 빛이 서려 있었다.
“게이트가 사라졌는데 굳이 대피해야 되나?”
이전 사태에서는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게이트가 존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으니 군 말없이 대피했다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확실히 뉴스에서 다룬 게이트 사진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함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게이트.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피하는 것이 불만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끙···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있었는데.”
불편함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개인사정으로 인해 그렇다.
“어이, 대피하는 게 불만이야?”
헌터들의 귀는 아주 밝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 아닙니다.”
언제 불만을 제기했냐는 듯, 고분고분해지는 태도에 헌터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게이트가 다시 열려서 몬스터가 쏟아지면 그 때는 어떡하시려고?”“······.”
“우리들도 저런 게이트에 쏟아지는 몬스터··· 상대할 수 없다 이 말이야. 구해줄 사람이 없다고.”
최소 G급 게이트.
A급인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헌터들의 뒤를 따랐다.
“쯧, 그냥 얌전히 대피하면 되지.”
고분고분하게 따라갔던 시민들은 그런 이들에게 일침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뭐 인마?”
“조용!”
“······.”
서로 으르렁거리던 시민들이 헌터들의 말 한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후우··· 쉽지 않네.”
A급 헌터 하나가 중얼거렸다.
간혹 불만을 제기하는 시민들 때문에 없던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시민들을 해할 수도 없고.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아라. 어쩔 수 없잖아.”
“참고 있잖아.”
서로 같은 길드원임을 증명하는 로브를 입은 이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게이트가 사라진 것도 한 헌터님이 들어갔기 때문이라는데.”
“그래?”
건너 건너들은 소식이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지만, 태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하다.
“기다려보자고. 갓 급 헌터들이 들어갔다고 하니까 무사히 끝이 날 거야.”
닫혔던 게이트가 다시 열리면 승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희망은 갓 급들에 있다.
A급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 때였다.
위잉-
헌터들 너나할 것 없이 손목에 차고 있는 헌터 워치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시민들이 긴장의 끈을 부여잡았다.
“뭐지?”
“잠시만!”
헌터들이 급히 헌터 워치를 조작했다.
-S급 게이트 대거 출현. 개중에서도 G급 게이트가 있는 것으로 보임.
“젠장!”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G급 게이트가 사라진 것으로 모자라서 S급 게이트가 대거 출현했다고?
“빨리 움직여요!”
A급 헌터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있었다.
“저··· 저기 게이트가!”
시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S급 게이트가 떡하니 자리했다.
“괜찮아요! 아직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도열을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하세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서로 엉켜서 시간이 지체될 겁니다!”
이들 모두 대피경험이 많다.
헌터들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들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도열을 맞춰서 이동했다.
“제발 앞에 빨리 좀 움직여요!”
물론 뒤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다그쳤지만 말이다.
*발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진다.
태현의 손에는 어느새 신괴가 쥐어져있었다.
‘별로 위험한 놈은 아니지만.’
자신은 괜찮지만, 갓 급 헌터들은 전투의지를 상실할 정도의 강적이다.
“무슨 놈의 기운이···.”
갓 급헌터들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린 상태다.
“괜찮으니까 뒤에 계세요.”
태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만약 가오스의 힘과 벨루아의 힘이 없었다면, 그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리나의 눈이 살짝 빛났다.
‘눈앞의 기운을 마주하고서도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구나···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
당장 주저앉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임에도 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태현이 그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
애초에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니 그의 강함에 척도를 재는 건 불가능하다.
쿵! 쿵!
발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저 멀리 실루엣이 보인다.
거대한 석상이다.
웃긴 건, 그 등에 푸른 날개가 2쌍이 달려있다는 점이다.
쿵! 쿵!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석상의 높이가 5m는 거뜬히 넘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독수리얼굴이었는데, 그 눈이 붉게 빛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쿵!
어느덧 독수리 얼굴을 가진 석상이 태현의 앞에 섰다.
“꿀꺽···.”
갓 급헌터들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누구냐.”
-당신은 누구인가? 가오스인가? 벨루아인가?
독수리 석상의 입에서 음성이 들린다.
그 모습에 헌터들의 입이 벌어졌다.
“말을 하는 군. 그보다 알아들을 수 있어.”
태현의 권능으로 헌터들은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진 상태다.
그러나 독수리 석상의 음성까지 직접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나한테 그 둘을 왜 찾는 거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군. 어째서 냄새가 당신에게서 나는 거지? 에우렐님을 뵈러 온 것인가?
목소리에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에우렐? 설마 상위 존재라고 말한 놈의 이름이 에우렐인가?’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단서.
태현의 눈이 빛났다.
“뵈러 왔는데, 에우렐님은 어디 계시지?”
-지하 50계층에 계신다. 그보다 에우렐님의 명령으로 온 것인가? 그 뒤에는 침입자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석상은 자신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뒤에 있는 갓 급 헌터는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으려는 모습에 태현이 질문이 던지는 것으로 시간을 끌었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럼 에우렐님께 안내해줄 수 있나?”
이번 대답에 태현의 결정이 달라진다.
만약 가능하다고 답한다면, 아쉽지만 갓 급 헌터들을 도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게이트를 도로 여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뒤에 게이트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지만.
-불가능하다.
하지만, 독수리 석상은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지?”
-나는 지하1계층을 수호하는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태현은 들고 있던 신괴를 가볍게 쥐고, 독수리 석상의 머리 위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독수리 석상의 반응이 한 박자 느렸고, 태현은 신괴를 가볍게 휘둘렀다.
콰직!
-어째서···.
“쓸모없으면 죽어야지.”
독수리 석상은 머리가 박살나면서 그대로 허물어졌다.
아쉽지만, 이 정도 단서를 얻은 것만 하더라도 충분하다.
[지하 1계층 수호자를 처치하셨습니다. 지하 2층 입구의 결계가 해제됩니다.]
‘결계가 있었구나.’
결국에는 수호자를 죽이고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납득했다.
“이제 내려갈까요?”
“···역시 넌 최고의 친구!”
프레드가 태현의 팔을 둘러 팔짱을 꼈다.
물론 그는 손 쉽게 프레드의 손을 떼어냈지만.
“징그럽게 왜 그래.”
“장난이다. 그만큼 굉장했으니까. 그보다 힘이 장난이 아니네.”
엄살을 피우는 모습에 태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살살했다. 아픈 척은 그만해.”
“쯧.”
냉랭한 반응에 프레드가 혀를 찼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신 겁니까?”
“와···.”
진진과 팡 린은 태현의 무위에 혀를 내둘렀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특히 진진의 눈은 크게 뜨이다 못해 터질 정도였는데, 일전에 비무장에서 상대했던 그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소환수가 갓 급을 뛰어넘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거늘, 태현은 상상을 초월했다.
“저기··· 당신 레벨이 몇인가요?”
알리나 역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글쎄요? 몇으로 보여요?”
태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반면, 갓 급 헌터들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건 묻지 말라는 겁니다. 흠··· 그보다 우리는 이제 어쩔까요?”
눈치가 빠른 프레드가 화제를 돌렸다.
진진은 그 말을 바로 받았다.
“프레드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 이제 겨우 지하 1계층입니다···. 아마 저희들이 계속 따라간다 해도 도움은 되지 못할 거예요.”
지금 눈앞에 뜬 메시지는 다른 헌터들에게도 보일 것이다.
그리고 방금 상대했던 수호자는 겨우 지하 1계층 수준.
그런데도 불구하고, 태현이 없었으면 여기서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태현을 제외한 갓 급 헌터들은 이후에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 자명하다.
“화나지만 사실이네.”
팡 린 역시 인정하는 눈치다.
이 게이트를 클리어 하려면 지하 50계층까지는 내려가야 된다는 말이다.
“······.”
알리나는 말이 없었다.
어지간히 분했는지 주먹을 세게 쥔 채로 태현과 시선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후우··· 이걸 어쩐다.”
태현도 고민했다.
솔직히 이들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게이트를 열어 돌려보낸다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차원을 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게이트와 지구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좌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변명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주군! 게이트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때마침 하나의 보고가 들려왔다.
‘게이트?’
안식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이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구를 제대로 파괴하려는 모양인데.
태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저희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해도 되겠습니까?’
수하들이 물었다.
‘현재 나이가 대륙 상황은?’
‘나이가 대륙은 문제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잠잠합니다.’
마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지금 상위 존재가 노리는 것은 바로 지구.
‘좋아. 그러면 나머지는 전부 게이트를 맡아서 닫도록 해라! 마족 너희들도 지구의 게이트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태현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소환수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마족들까지 합세했으니 일단 걱정은 없다.
나머지는 여기 있는 갓 급 헌터들인데···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아니요. 같이 갑시다.”
“네?”
“?”
태현의 결정에 헌터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 괜찮겠어?”
프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정말 자신들이 따라가도 되겠냐는 물음에 태현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확신에 찬 대답에 헌터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최선을 다해볼게요.”
어차피 돌아갈 길도 없었다.
태현이 거부했다면, 그가 클리어할 때까지 가만히 서서 1계층을 지키고 있었어야 할 노릇.
그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지만, 태현의 결정이 고맙게 다가왔다.
알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하죠?”
태현은 말이 없는 알리나를 보며 재차 되물었다.
그제야 알리나의 입이 열렸다.
“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내려가죠.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게이트 사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괜히 걱정거리를 늘릴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