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4화 (4/345)

# 4

머지않아 토끼는 축 늘어졌다. 호영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고양이를 죽이십시오.

토끼가 죽자 허공에서 무언가가 생성되었다. 이번에는 고양이였다. 그와 동시에 하늘의 문장도 달라졌다. 토끼를 죽이라는 문장이 사라지고 고양이를 죽이라는 문장이 생겨났다.

이미 토끼를 죽인 호영이었기에 고양이를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고양이는 토끼처럼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실제라면 발톱이나 이빨을 이용하여 거세게 저항하였을 것인데도 고양이는 그저 처량한 신음 소리만 내며 죽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퍼스트 유저들은 정신이상자가 아니었을까?’

8회 차까지 경험한 호영이라면 모를까, 1회 차의 유저들은 가상현실을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상현실은 가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토끼를 죽이고 고양이를 죽이는 것.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리 없었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제한 시간 내에 토끼를 죽이지 못하여 ‘초보자의 섬’으로 이동되었을 터. 즉, 튜토리얼에서 탈락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회 차의 유저들은 여러모로 비정상적이었다. 물론 가장 비정상적인 것은 호영 그 자신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영은 그 뒤로 개와 원숭이를 연이어 죽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젊은, 아니 어린 소녀였다.

다시 한 번 혀를 찬 호영이지만 그의 행동에 주저함이란 없었다. 이것은 튜토리얼. 만약 이조차도 하지 못한다면 본 게임은 시작조차 못 하리라.

소녀를 죽이고 소년을 죽였다.

그 이후 젊은 남성, 여성에 노인들까지 나왔다. 이럴 때만 세심한 모습을 보이는 센추리였다.

“이제는 죽음을 경험할 땐가?”

첫 번째 시험이 살인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면 두 번째 시험은 죽음을 견뎌 내는 것이었다. 다시금 호영의 앞으로 무언가가 생성되었다.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호영은 태도를 달리하였다. 눈앞에 생성된 들개를 향해 다짜고짜 공격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호영의 맹공에 들개는 크게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호영에게 죽은 이들과는 상반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반격’이라는 것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미 호영의 공격에 손해를 본 상황이었기에 전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깨갱.

‘고작 첫 번짼데 상당히 힘이 드는군. 무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항이 거센 터라 호영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역시 아무리 단련했다고 하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육체로 맹수를 살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그에게 질 좋은 창 한 자루만 있었다면 또 다르겠지만 말이다.

들개를 죽이니 이번에는 괴상한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센추리 세계 속 ‘몬스터’였다. 당연하겠지만 몬스터라는 존재는 그 이름답게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일개 짐승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호영은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입장에선 들개보다 눈앞의 몬스터가 10배는 낫다. 네 발의 짐승보다 두 발의 인간 형태가 상대하기 더 수월했던 까닭이다.

이런 호영의 자신감은 결과로 나타났다. 들개 때와는 달리 상처 하나 입지 않고서 몬스터, 고블린을 살상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창을 얻었다.”

호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고블린은 무려 창이라는 것을 남겨 주었다.

본래 고블린이 들고 있던 창으로 지금의 호영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무기였다. 이 창만 있다면 앞으로의 시험이 두렵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상대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무려 멧돼지였다. 몬스터인 고블린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렇지만 호영에겐 창이 있었다. 그가 익힌 체술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가 익힌 창술은 달랐다. 인간과 짐승을 가리지 않았다.

꾸에엑!

주인공이라면 악당의 변신을 기다려 줘야겠지만 호영은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으로 당황하고 있는 멧돼지에게 창을 내질러 절명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간이 튀어나왔다. 물론 첫 번째 시험처럼 불쌍한 표정을 짓다가 무기력하게 죽임을 당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강인한 기상이 엿보이는 ‘전사’였다. 손에는 도끼까지 들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인한 전사라 해도 기습에는 장사가 없었다.

“끄으윽.”

목을 부여잡은 채 죽어 버린 전사.

그다음 상대는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인간들이었다. 활을 든 이도 있었고 창을 든 이도 있었다.

하지만 1회 차의 튜토리얼에는 허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상대가 처음 등장할 때 잠깐 동안 무기력하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반사 신경이 빠른 상대는 호영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호영 같은 실력자에게 흐름을 뺏긴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

14회. 호영은 ‘공격하는 적’을 무려 열네 번이나 무찔렀다. 그중에는 ‘오크’라는 인간과 비교했을 때 월등한 육체를 가진 몬스터도 존재하였다.

평범한 유저라면, 아니 현실에서 특수부대나 무도가, UFC 선수라 해도 이만한 성과를 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경험’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에게 무슨 약점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쉽게 죽일 수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오직 호영만이 경험과 실질적인 무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 정도의 성과는 ‘초보자의 섬’에서 꾸준히 단련한 이들만이 내보일 수 있는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네.”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싸웠지만 열다섯 번째에 등장한 상대에게는 자신의 공격이 아예 먹히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무려 곰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곰이 아닌 센추리의 세상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곰이었다. 다행히 현실의 곰보다는 둔한 편이었지만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크게 의미는 없었다.

끝까지 맞서 싸운 호영이지만 결국 공격 한 번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로 싸움은 끝났다.

단 한 번의 공격조차 견뎌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무기력하게 쓰러진 호영에게 불곰이 다가왔고, 호영은 엄청난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였다.

‘현실의 죽음까지 합하여 모두 여덟 번의 죽음을 경험했는데, 죽음이라는 것은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군.’

호영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여덟 번이나 죽었다고? 어째서 내가 여덟 번 죽었다고 생각한 거지?’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워졌다. 무언가를 잊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갑자기 떠오른 의문을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문장 하나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본 게임에 들어서면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본 게임에 들어가시겠습니까?

두 번째 시험은 ‘죽음을 견뎌 내는 것’.

호영이 만약 불곰을 죽였다 해도 호영은 결국 죽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곰을 죽여도 이후에 더 무시무시한 적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튜토리얼의 의의는 죽음을 체험하는 것에 있었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다시 견뎌 낼 수 있는가.

튜토리얼은 바로 이것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미 여러 번의 죽음을 경험한 호영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Yes를 클릭하였다.

#아바타, 대준

어둠이 사라지고 새로운 광경이 호영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산으로 올라서는 남루한 차림의 원시인들이었다.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원시인들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다급하게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케케켈! 케렉!”

그때 호영의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 그중에서 고블린의 웃음소리였다.

‘하필이면 시작부터 쫓기는 상황인 건가?’

호영은 혀를 찼다. 물론 그에게는 아직 육체 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혀를 찬 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었다.

혀를 차며 인상을 찡그린 호영은 아바타를 동기화하기 전, 아바타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게임 기능을 확인하였다.

‘상태 창.’

좌측 하단에 떠 있는 동그란 원을 지긋이 응시하자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스텟 창이라는 것이 오픈되었다.

이름 : 대준

나이 : 25

근력 : 84

체력 : 79

민첩 : 65

지력 : 15

센추리는 게임적인 요소가 적기는 해도 분명 게임은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상태 창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는데, 그래도 이 상태 창은 게임치고 나름 현실적이었다.

일단 RPG 게임의 기본적인 요소인 레벨이라는 것이 없었다. HP 같은 것도 없었고 공격력이나 회피율 같은 것도 없었다.

이곳에서 상태 창이란, 그야말로 능력이 얼마인지 표기하는 용도로만 쓰인다는 것이었다.

‘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치야? 근력이 84라니. 체력도 거의 80에 가깝고 민첩도 60이 넘어? 지력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기적인 수치잖아?’

호영은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는 상태 창을 보고 경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준이라는 아바타의 능력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7회 차의 능력치도 처음 시작했을 때는 30을 넘긴 능력이 두 개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호영이 다른 유저에 비해 운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바타의 능력치가 20을 넘긴 게 하나만 있어도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준의 능력치는 20은커녕 60을 넘긴 게 무려 세 개였다. 대준의 능력치는 비범함을 넘어 괴물 같은 수준이었다.

‘아무리 1회 차의 아바타들이 다른 회 차의 아바타보다 우월했다고는 해도 이것은 지나칠 정도로군. 이 정도면 삼국지연의의 여포보다 더 우월한 육체일 텐데. 튜토리얼에서 선전한 결과일까?’

죽음을 시험하는 튜토리얼에서 호영이 발악하듯 악착같이 싸움을 이어 갔던 이유는 그래야 좋은 아바타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100% 운으로 뽑히는 것이 아니었다. 튜토리얼에서 똑같은 시험을 받았어도 그 시험을 어떻게 헤쳐 나갔느냐에 따라 더 좋은 아바타를 얻게 될 수 있었다.

호영 같은 경우는 유저로서 최고의 성적을 보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준비된 유저였다.

미래를 기억하고 있으며 육체 또한 극한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사용되는 육체 능력은 현실의 육체 능력과 90% 이상 일치하였기에 호영만큼 커다란 이점을 가진 유저는 얼마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할 존재의 약점이나 주의해야 할 점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1회 차가 끝날 때까지 호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유저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호영이 튜토리얼에서 보여 주었던 활약은 독보적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호영으로선 제아무리 성적이 좋다고 해도 대준만큼 사기적인 아바타를 가진 것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시간 제한이 존재하기에 이런 버그 같은 아바타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군.’

호영이 상태 창을 보고 스킬 창까지 확인하는 동안 그의 아바타, 대준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무언가에 쫓기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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