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경악을 지우지 못하는 그녀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호영은 큰 소리로 초강을 불러들였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련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초강, 이번에도 부탁한다.”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오래 걸리나?”
“오래 걸릴 거야.”
“끙.”
앓는 소리를 내는 초강. 무뚝뚝하면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 주는 초강이라 해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일 터.
호영은 그런 초강을 보며 나중에 꼭 보답하리라,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어제 마나를 감지했던 장소로 향하였다. 장소에 도착하니 적막감이 흘렀다. 무언가를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원하던 장소에 도착한 호영은 곧장 바위에 책상다리로 앉고서는 호흡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외부의 기운을 감지하였다.
우웅…….
하지만 마나의 반응은 미적지근하였다. 분명 주변에 마나가 있음이 느껴졌고 이 마나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마나는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본래 마나라는 것이 이렇다. 감각을 열었다고 해서 마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마나 친화력의 등급이 낮으니 더 어렵단 말이지.’
센추리에서는 아바타의 ‘재능’조차 스킬로 표기되었다. 마나를 감지한 이후 ‘마나 친화력’이라는 스킬이 생겼는데 이것이 일종의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준의 마나 친화력은 E 등급이었다. F가 최하의 등급이니 E 등급이라면 거의 최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처럼 친화력의 등급이 낮은 경우 육체가 마나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다.
‘심법을 창시하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마나를 감지하는 것에만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경험이 있는데도 그만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마나를 움직여 단전을 만드는 것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에게 마력 30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특전이 없었다면 심법을 창시하는 데 24시간 이상 걸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흘은 족히 걸렸을 터. 마나라는 것은 그만큼 난해한 에너지였다.
하지만 현재 호영의 육체는 이미 마력을 30이나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게임 시간으로 대략 4시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호영의 마력 수치가 30에서 31로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의 문구가 나타나 호영을 축하해 주었다.
-최초로 마나를 다루는 기술을 창시하셨습니다! 계승 특전 ‘? 숙련도 A등급’를 드립니다!
-스킬 창시자로서 ‘?’의 스킬북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의 이름을 정하십시오.
-스킬, ‘마나 친화력’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연이은 시스템 문구에 호영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력 1이 늘어나서 기쁜 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계승 특전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었다.
계승 특전이란 당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회 차에도 유지되는 특전이다. 호영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유저들이 유입되는 3회 차 이후라 할 수 있으니, 계승 특전은 받으면 받을수록 이득이었다.
“이름은 대가심법으로 짓겠다.”
흡족한 얼굴을 한 호영은 가장 먼저 ‘?’의 이름을 정하였다.
심법의 이름은 대가심법. 본래 그의 성을 따 송가심법이라 지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곳에서 그는 대준이라는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 회 차에서도 계속해서 대씨 가문의 아바타를 사용할 예정이었기에 대씨를 강조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가문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호영이 배운 심법도 중국인이 만든 심법으로, 본래는 천가심법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심법의 이름을 대가심법이라 명명한 호영은 곧바로 스킬 창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호영의 시야에 대가심법이라 적힌 스킬이 보였다.
한번 스킬의 설명을 읽자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호영도 익히 알고 있는 설명이었지만, 창시자의 이름에 떡하니 ‘대준’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언제나 남의 것을 사용하던 자신이 심법의 창시자가 되다니.
뭐, 그 심법도 따지고 보면 다른 이의 것이라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시스템이 명시한 것은 호영이었다. 최초로 스킬의 창시자가 된 셈이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스킬의 창시자라는 명칭은 단순히 공명을 떨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킬북’을 제작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지는 대단한 위치였다.
스킬북이란 여느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손쉽게 새로운 스킬을 얻게 해 주는 시스템적 장치였다. 비록 몇 가지 제한이 있지만 그 가치가 결코 낮을 리 없었다.
‘하나 지금은 스킬북을 창조할 이유가 없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 익히기도 바쁠 때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대가심법의 숙련도가 A라고? 이것도 만만치 않은 사기로군.’
숙련도 A등급은 주력 스킬을 한 회 차 동안 열심히 키운다 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였다. 즉, 게임 시간으로 몇 년을 투자해도 숙련도 A등급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호영은 이것을 무려 ‘계승’으로 얻었다. 밸런스 붕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특전이었다. 냉철한 성격의 그조차도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호영은 고개를 홰홰 저으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생각해 보면 들뜰 이유가 없었다. 그가 받은 계승 특전들은 분명 엄청난 것이지만, 반대로 그가 받고 있는 불이익도 엄청난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의 불이익도 없었다. 주변 국가들은 하나같이 강대국이었고 그것은 센추리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 앞으로 이 세 나라는 한국 진영을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었다. 마치 조선 시대 때, 북쪽에서는 여진이 남쪽에서는 왜구가 침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 있을 그들과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특전으로도 부족하였다. 지금의 그는 어디까지나 개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창법을 만들자. 만약 창법까지 계승 특전을 얻는다면 상황이 보다 좋아진다. 어쩌면 나 혼자 그들과 대적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어.’
무려 4시간 넘게 심력을 쏟았으니 지칠 법도 하였지만 호영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창을 움켜쥐었다.
심법을 만들었으니 이제 창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오늘 그가 세운 목표이자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압!”
현실에서 꾸준히 창술을 연마한 까닭일까? 아니면 대준의 육체가 우월했던 결과일까? 호영은 어렵지 않게 대준의 몸으로 창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니, 발휘하는 것을 넘어 현실에서도 소화하지 못했던 고난도의 동작까지 펼쳐 보였다. 대준의 육체로만 할 수 있는 동작들이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놀라운 육체야. 만약 특전이 생기지 않더라도 숙련도 B까지 만드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겠어.’
스킬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유저가 직접 기술을 익혀 스킬을 만드는 것과 보통의 게임처럼 저절로 체화되는 스킬.
당연하겠지만 호영이 창조했던 심법과 지금 창조하려는 창법은 유저가 직접 개발하고 익히는 일종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유저의 기술이 스킬로 변하는 경우, 실제 그 기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상당히 중요하였다.
즉, 호영이 창법을 창조하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창법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창법의 고수는 스킬을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호영이 바로 그 창법의 고수였다. 스킬을 만드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창법의 고수라 해도 그의 육체가 평범했다면 스킬을 만들기가 꽤나 고단하였을 것이다. 그가 익힌 창법은 평범한 육체가 다루기에는 다소 벅찼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준의 육체는 그 어떤 아바타보다 우월하였다.
창을 휘두르고 1시간 정도가 흐르자 예의 시스템 문구가 호영의 눈앞에 떠올랐다.
-최초로 마나를 사용하는 무기술 ‘?’을 창조하셨습니다. 계승 특전 ‘? 숙련도 A등급’를 드립니다!
-스킬 창시자로서 ‘?’의 스킬북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의 이름을 정하십시오.
예상보다 빠른 성과. 더군다나 이번에도 ‘계승 특전’이었다. 호영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멍하게 눈앞의 문구를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이 축복해 주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행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그 행운들은 미래의 경험이 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래도 이쯤되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지금으로선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기회를 물었으면 끝까지 간다.’
다시금 마음을 단단히 먹은 호영은 곧바로 스킬의 이름을 대가창법이라고 명명하였다. 심법과 마찬가지로 대씨의 것임을 강조하는 스킬이었다.
“이것도 숙련도 A로 계승하는 것인가? 정말 무지막지한 특전이로군.”
숙련도 A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도만으로 부족하였다. 창법을 보조할 재능, 즉 보조 스킬이 있어야 했고 마나가 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일종의 ‘노가다’ 작업이 필요하였다.
기술 기반의 스킬들이 경험을 토대로 숙련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사실을 고려했을 때, 만약 호영이 특전 없이 창법을 숙련도 A로 만들려고 했다면 최소 몇 년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도 마력에 대한 특전이 있고 대준의 육체가 사기적인 수준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육체적 조건이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애초에 숙련도 A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리라.
실제로 호영은 대가창법을 A급으로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숙련도 A를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호영으로선 ‘사기’라고 생각될 정도의 특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호영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재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세력을 키워 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개인의 무력은 이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현실 시간으로 고작 이틀째에 이 정도의 성과를 냈으니 이제부터는 부족을 키워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센추리는 어디까지나 세력을 키우는 게 중점인 게임이니 말이다.
“오! 이번에는 일찍 끝났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추장이 말했다, 이곳을 지키라고. 나 이제 배고프다! 끝났으면 같이 밥 먹자.”
이번에도 초강은 호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초강의 모습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믿음직한 사내였다.
“그래. 같이 먹자.”
식사는 어제처럼 비린내 나는 육식이었다. 동굴 인근에서 잡힌 초식동물의 고기였는데 얼핏 썩은 내도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원시 시대에 가까운 1회 차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신선하고 맛있는 요리는커녕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현리 부족
빠르게 식사를 끝마친 호영은 일지와 대화 기록 따위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가 주로 확인한 것은 ‘폭군’이라는 이름의 거인에 대한 기록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거인을 죽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다른 부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니 거인을 어떻게든 죽여 부족을 다시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