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그러자 일종의 부관이라 할 수 있는 수호가 피해를 종합하기 시작하였는데 두 명 사망에 두 명 중상, 세 명 경상이었다. 즉, 일곱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이었다.
“스무 명도 안 되는 전사를 상대하는 데 일곱 명의 사상자라…….”
“추장이 없어서 피해가 컸다.”
“피해가 큰 것이 내 탓이라는 말이냐?”
“그건 아니고…….”
사실 호영이 직접 전투에 나섰으면 피해가 아예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 부족의 전사들을 상대할 때도 거의 혼자서 정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솔선수범도 정도껏이지, 언제까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에게 의지하는 것은 좋지만 나만 믿고 아무것도 안 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호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위대를 키우려면 실전을 필수인 법.
무엇보다 지도자의 몸으로 사소한 전장에서까지 활약하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 부하들이 공을 세울 기회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시끄럽고. 다음부터는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라. 안 그러면 다른 놈을 네놈 자리에 앉힐 테니까.”
“끄응.”
그같은 으름장에 수호는 침음을 삼켰다. 친위대가 창설한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난 상황. 수호는 어느덧 ‘지휘관’이라는 자리에 매료된 상태였다.
호영과 초강 다음의 서열 3위라 할 수 있으니만큼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호영의 으름장은 수호로 하여금 가슴이 조이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게 하였다.
자칫하다간 지휘관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강, 너도 마찬가지다.”
“알았다. 다음부터는 피해를 줄여 보겠다.”
“혼자 앞서가는 것도 좋지만, 네가 누군가를 이끄는 자라는 사실은 잊지 말도록.”
초강은 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휘관이라는 자리에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호영의 말에는 충실하게 따랐다.
그런 만큼 수호 이상으로 전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호영이 바라던 대로 ‘지휘관의 자질’을 갖추게 될 터.
‘전투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질책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두 지휘관에게 채찍을 가했으니 이제는 당근이라는 것을 하사해야 할 때. 호영은 전사들에게 손을 까닥거리며 노예들을 불러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오장 한 명이 자신에게 소속된 전사들과 함께 포로로 사로잡힌 백 부족의 부족민들을 끌고 왔다.
“대략 서른 명인가. 다섯 살 미만의 아이와 갓난아기까지 포함하면 마흔 명은 되어 보이는군.”
“정확히 서른여덟 명이다.”
“수호, 그새 숫자를 파악한 것이냐?”
“물론이다. 추장이 숫자 세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나? 숫자 세는 거 별로 어렵지 않다.”
호영은 탄성을 내질렀다. 똑똑한 줄은 알았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는 속으로 ‘수호에게 노예 두 명을 더 줘야겠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초강이 비록 전사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였지만 가장 많은 적군을 벤 것은 분명하다. 하여 노예 다섯 명을 하사하기로 했다.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앞으로 나와 이야기하라.”
“…….”
“없는 것으로 알겠다. 수호 역시 전사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였으나 용맹하게 싸웠고 잡스러운 일들을 도맡았다. 하여 노예 세 명을 하사하기로 하였다.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앞으로 나와 이야기해라.”
“나 불만 있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호영은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왜냐하면 불만 있다고 외친 사람이 당사자인 수호였기 때문이다.
“뭐가 불만이지? 설마 너무 적다는 것이냐?”
“아니다. 나는 그냥 노예를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전투하기 전에 이야기했을 텐데, 활약에 따라 노예를 줄 것이라고.”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노예를 받는 게 더 안 좋은 거 아니냐?”
호영은 이마를 짚었다. 노예를 받는 게 오히려 안 좋은 것이라니? 호영은 수호의 천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의심하였다.
분명 똑똑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보 같이 보일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뭐, 바보라기보다는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것이겠지. 노예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것도 아마 노예들에게 들어갈 식량이 아까운 것일 터. 하지만 네놈은 지금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수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예상이 가지만 그거야 어쨌든 본인이 선택한 일이었다. 호영은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떠먹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네가 받기를 거부한다면 나도 굳이 줄 생각은 없다.”
그 말을 내뱉고서는 수호 다음으로 활약한 전사들에게 노예를 하사하였다. 이렇게 하사된 노예의 숫자는 열다섯 명.
나머지 노예는 당연히 호영의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노예만 잔뜩 얻었군. 친위대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노예만 받아들이고 있으니.’
노예가 늘어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나 전사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호영은 속으로 혀를 차며 다음 정복 때는 피 한 방울도 보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피를 한 방울이라도 봤다간 부족민으로 받아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니 말이다.
#예상치 못한 인연
부웅! 부웅!
호영은 언제나처럼 인적 드문 곳에서 봉을 휘두르며 창술을 수련하였다. 센추리에서 창술과 심법을 매일같이 수련하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도 봉을 놓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였지만 창술의 끝을 보겠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유저들 중에서 최고의 경지라 자신하지만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시간도 지금뿐이다. 회귀 전의 나는 S급은커녕 A급도 되지 못했던 하수 중의 하수였으니까.’
이를 강하게 물며 봉을 휘둘렀다. 그 맹렬한 기세는 결코 하수의 실력이라 볼 수 없었다. 하수는커녕 창술의 대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호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진짜 창술 실력은 고작 B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대로 정체한다면 언젠가 다른 이들에게 추월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수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는데 회귀한 지금은 더욱더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재능이 부족하다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다른 이들보다 위에 서고 마리라. 호영은 그런 다짐을 하며 창술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지만 사람의 육체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40분 넘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봉을 휘둘렀으니 제아무리 강건한 편에 속하는 호영이라고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사용하는 봉은 꽤나 육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3킬로그램쯤 되는데, 이만한 무게의 목봉을 평범한 사람이 휘둘렀다면 진즉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직 한참은 부족하다.’
그러나 호영은 자신의 체력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센추리가 오픈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이 말은 호영이 센추리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네 달 정도 되었다는 의미였다.
네 달 동안 하루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으니 실력이 늘었어야 정상이다. 심지어 대준이라는 최강의 육체로 창술을 수련했으니 더욱 정체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호영은 네 달 동안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가 익힌 창술은 여전히 난해하게 느껴졌고 A급이라는 벽은 너무도 높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차피 군주가 되기로 하였으니 창술에 너무 목매달 필요는 없을 터.
그렇지만 호영은 창술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누구의 밑에도 있지 않으리라! 회귀한 직후 그가 한 다짐이었다. 이 다짐대로 그는 창술 역시 누군가의 밑에 있을 생각이 없었다. 창술의 끝을 봐 최고의 고수가 되리라.
“하아. 하아.”
지쳐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한 빛을 잃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머릿속으로 수련하면 되는 일이었다.
제자리에 주저앉은 호영은 눈을 감고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였다. 그러자 그의 앞에 환도를 사용하는 문대영이라는 자가 환상처럼 나타났다. 갑자기 등장한 문대영이라는 사내는 호영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챙챙! 눈을 부라리며 묵직한 환도를 내리치는 문대영의 기세는 사뭇 대단하였다. 호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문대영의 공격을 피해 나갔다.
부딪치면 힘에서 밀릴 것이 분명하였기에 기교로 흘리거나 완전히 피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얼마간 피하는 것에 집중하던 호영은 불현듯 눈을 빛냈다.
문대영의 공격이 점점 눈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단조롭고 예측하기 쉬운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공세가 전환되었다. 밀리기만 하던 호영이 도리어 문대영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문대영의 전신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치명상은 피했지만 공격을 여러 번 허용한 것이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문대영이 비장의 수를 쓰려는 듯 근육을 팽창시켰다. 그의 팔과 손목에 마나가 밀집되는 것이 느껴졌다. 환도를 머리 위에 든 문대영은 그대로 내리찍었다.
회심의 일격이 맞기는 한지 그 공격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태연한 얼굴로 창을 내질렀다.
그의 창이 문대영의 환도를 미끄러지듯 타고 올라가 문대영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C급의 도법을 가졌다는 문대영은 그렇게 죽었다.
이번에는 활을 든 김성민이라는 사내가 튀어나왔다. 5회 차에서 만났던 적수로 호영에게 죽기 직전의 치명상을 안겨 준 상대였다.
김성민은 5회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등장해서는 예고 없이 활을 쏘았다.
휘이익!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김성민의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호영의 어깨를 꿰뚫었다.
호영은 으드득! 강하게 이를 악물며 고통을 버텨 냈다. 그러는 사이 화살은 쉴 틈 없이 날아왔다. 양 어깨에 한 발씩, 그리고 옆구리에도 한 발을 허용했다.
하지만 사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호영이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김성민은 화살을 마구 쏘아 댔다.
“이제는 피할 수 있다.”
김성민의 공격에 정신없이 당하던 호영이 갑자기 그렇게 중얼거렸다.
호영은 창대를 비틀며 날아오는 화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왔던 화살이 어느 순간부터 느리게 느껴졌다.
어떤 궤도로 날아올지 어떻게 피해야 할지,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5회 차의 그라면 절대 불가능했겠으나, 지금의 그는 가능하였다.
‘나는 모든 것이 애매했다. 무언가를 익히거나 외우는 속도도, 반사 신경도, 기술이나 경험도. 그래서 나의 한계는 명확했었지.’
센추리를 늦게 시작했기에 호영은 모든 것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재능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 번 본 것을 모조리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재능은 범재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수재 정도에 불과하였다.
수재 정도의 재능으로 무려 4년을 늦게 시작하였다. 당연히 모든 것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누구보다 경험이 많고 기술이 숙달되었어!’
챙! 챙!
호영의 창에서 불꽃이 튀었다. 한때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화살 공격이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