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42화 (42/345)

# 42

전투를 지켜보던 호영이 나직하게 말하니 여기저기서 ‘충’을 외쳤다. 워낙 유리한 상황이다 보니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이사, 네가 보기엔 어떤가?”

“무엇이 말입니까?”

“친위대의 전투력과 견인족의 전투력.”

“그야…… 저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견인족의 날렵함과 용맹도 놀랍지만 그런 견인족의 공격을 슬기롭게 대응하는 병사들이 특히 놀랍습니다.”

이사는 특이하게도 병사 개개인의 무력이 어떠한지를 평가하기보단 병사들의 대응 방식을 높이 평가하였다.

현재 친위대 병사들은 서넛이 힘을 합쳐 견인족 한 마리씩을 상대하였는데, 톱니가 맞물리듯 서로를 보완해 주며 쉴 틈 없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참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전투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같은 전투 방식으로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되었는데 반대로 적군의 피해는 극대화되었다. 지금까지 아군의 사상자가 다섯 명도 나오지 않은 것만 봐도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개성 넘치는 전사들이 전장을 지배하는 1회 차에서는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는 전투 방식이지.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히 강력한 종족들이 수두룩 존재하는 1회 차이기에 가장 적합한 전투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어.’

당연하겠지만 이런 전투 방식, 일종의 진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은 호영이었다.

호영이 진법을 가르친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친위대가 최강의 군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최강이 아닌, 모든 종족을 통틀어 최강이라 할 수 있는 군대가 되기를 말이다.

물론 심법이나 창법을 가르친다면 최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심법은 수백 년에 걸쳐 발전을 거듭한 심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호영에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심법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가능성 때문에 초강에게조차 무공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아군의 전력이 강해진다는 사실보다 유저들, 즉 경쟁자가 강해지는 것이 호영의 입장에서는 더욱 피해야 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호영이 심법을 유출시키지 않더라도 대준이 유출시킬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였다. 스킬로 만들어진 이상 대준도 심법과 창법을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그 경우에는 호영이 강제할 방법이 있었다. 로그아웃할 때 자신의 아바타에게 행동을 설정시킬 수 있는 것처럼 회 차가 끝나기 전에 몇 가지 행위를 강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아바타의 성정이나 지능 그리고 환경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제한이라는 것이 존재하였지만 아바타의 자체 스킬이 아닌, 호영이 만들어 낸 스킬이라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작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런 이유들로 심법이나 창법을 가르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영이 선택한 것이 진법이었다.

진법. 잘만 사용한다면 호영의 도움 없이도 다른 종족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견인족과의 전투에서 진법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앞으로 진법을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오크나 호인족처럼 강력한 종족과의 전쟁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할 터.

대준이 죽고 난 이후 갑작스러운 외부의 침략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진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줬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저는 그런 것들을 잘 모릅니다만.”

“그 또한 앞으로 공부하면 될 일이다. 너는 무언가를 배우는 속도가 남다르잖아.”

호영의 말에 이사는 눈을 크게 떴다. 느닷없이 진법을 연구하라는 호영의 말에 당황한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애초에 호영이 그를 전장에 데려온 것은 바로 진법 때문이었다. 물론 그를 부족에 남겨 두기가 마음 한편으로 불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추장의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않아도 된다. 네가 못한다면 너의 자식이, 너의 자식이 못한다면 자식의 자식이 하면 되는 것이니까.”

“…….”

“그새 전투가 끝났군. 나는 병사들을 통제하러 가 보겠다.”

오랜만에 보는 이사의 멍청한 얼굴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병사들에게로 향하였다. 다행히 병사들은 그의 명령을 듣고서 포로를 남겨 둔 상황.

호영은 곧바로 포로들을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심문은 제법 길어졌는데 견인족의 투지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멸종’을 거론하며 협박하자 그들도 무거운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전력은 이미 친위대에 의해 몰살당한 상황.

견인족의 본거지가 은밀한 곳에 있다면 모를까, 결국 언젠가는 찾아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숨기려 든다면 친위대에 의해 멸종하게 될 터.

자신들이 죽음은 각오할 수 있더라도 부족의 멸망만큼은 피하고 싶은 견인족 전사들은 순순히 심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쉰 명 넘게 있다고?”

“다른 종족들에 비교하면 적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함부로 인간을 시식하지 않았다. 죽거나 반항하는 인간 노예만 시식했다.”

“그렇게 변명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서걱!

들어야 할 이야기는 대충 다 들었으니 더 이상 견인족들을 살려 둘 필요가 없었다. 호영은 거침없이 견인족 포로들을 죽이고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바로 출정 준비를 해라. 가까운 곳에 저들의 부락이 있다.”

“충!”

견인족은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육체 자체는 인간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기에 습득할 수 있는 전리품도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전장을 정리하는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었다.

호영은 부상자들의 응급 처방과 전리품 획득이 대충 끝난 것처럼 보이자 출정을 명하였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호인족에 사로잡혀 있는 홍준기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다른 인간들을 구해 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홍준기라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견인족을 상대하는데 오랜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위대 병사들이 호영에게 견인족의 본거지를 찾아냈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제 견인족을 멸종시키고 인간들을 구해 낼 일만 남은 것이었다. 호영은 곧장 견인족의 본거지로 향했고, 10분 정도 걸은 끝에 인간의 마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견인족의 부락을 발견하였다.

그때였다. 이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호영에게 다가오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추장님, 설마 저들을 모두 죽이실 생각입니까?”

“견인족이다. 후환을 남겨 둘 필요는 없지.”

“하지만 추장께서는 견인족 전사들에게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종족을 멸종시키지 않겠다고.”

“그깟 견인족 따위와 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호영이 딱딱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이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하였다.

“추장께서 현재만 보시는 분이라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장께서는 머나먼 미래를 보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미래를 보기 때문에 멸종시키려는 것이다. 후환은 제거해야 하는 법이니까.”

센추리라는 게임은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특히 ‘아바타 계승’이라는 센추리 특유의 게임적 요소 때문에 유저들은 더욱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후환을 제거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센추리 유저들의 가장 큰 힘이 바로 아바타 계승이었다. 특히 시간이 지나갈수록 신분제 사회가 공고해지기 때문에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다면 아바타 계승을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호영 역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일단 피를 보았으면 완전히 끝을 봐야 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미 견인족의 피를 본 상황. 그들을 노예로 삼기는 힘들 것이니 멸종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견인족이라면 맹목적으로 복수를 꿈꿀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두려우십니까?”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것이냐? 두렵고, 두렵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현리 부족의 추장으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일 뿐. 그러니 더 이상 나를 말리지 말거라.”

호영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차갑게 대꾸하였다. 하지만 그런 호영의 모습에도 이사는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저들이 살아서 복수하는 것보다 추장께서 잃으실 명성이 두렵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추장께서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뭐라?”

“추장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은 사내가 아니라고! 견인족을 멸종시킨다면 추장께서는 한 입으로 두말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앞으로의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질 터!”

“인간이 아닌 상대에게까지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왕국을 건설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추장께서 건설하실 왕국은 오직 인간만을 포용하는 나라입니까?”

“……!”

발칙하다고 볼 수 있는 이사의 외침에 호영은 어떤 반론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마치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얼굴이었다.

이사가 왕국을 거론하여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사에게 왕국 건설을 이야기한 것은 호영 본인이었으니 놀랄 것도 없었다.

그는 이사를 설득하기 위해 왕국 건설이라는 청사진을 알려 주었고 덕분에 이사는 호영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가 될 수 있었다.

호영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오직 인간만을 포용하실 것입니까?’라는 이사의 물음에 당황한 것이었다.

‘왜 나는 인간만을 포용하려고 했던 것이지?’

물론 회귀를 경험한 그였기에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회귀하기 전,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은 인간의 적이었다.

몬스터부터 시작하여 수인족을 포함한 이종족까지. 그들은 인간과 분쟁하고 때로는 전쟁하며 적대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이종족에게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나라, 아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종족, 심지어 몬스터로 분류되는 고블린이나 오크와 공생 관계를 가지기도 하였다.

오직 한국만이 모든 이종족을 배격하며 하찮게 대하였다.

‘한국을 좀먹었던 우월주의. 그 쓸모없는 사고방식이 나에게도 있었을 줄이야.’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대한 나라를 만들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깟 우월주의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니.

호영은 1회 차에 이 이상 부족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다. 1회 차의 인간족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사의 말대로 이종족을 포용하게 된다면 부족의 크기를 더욱 키울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이종족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실수를 했었군.”

“……아닙니다! 제가 감히 불충을 저질렀습니다.”

“너의 조언으로 나는 현실을 일깨울 수 있었다. 충언이었으면 충언이었지, 불충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고개 숙일 필요 없다.”

“감사합니다, 추장이시어!”

“하지만 물어볼 것이 있다. 너는 우리 부족이 정녕 이종족을 포용할 수 있으리라 보느냐? 그들은 인간을 열등 종족이라 생각하며 경멸하는 족속들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입니다. 저들을 인간과 똑같이 대우하십시오. 추장께서는 저항하는 자에겐 엄하고, 순종하는 자에겐 너그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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