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50화 (50/345)

# 50

매복이 들켰다는 것!

그러나 이상했다. 정찰을 보내지도 않았고 아군의 성향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매복을 예상하다니.

‘우두머리의 감이 좋은 건가?’

어찌 되었건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

초강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였는지 병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화살과 돌멩이가 무더기로 날아와 오크들을 공격하였다.

“우아아아아!”

“취이익! 취이익!”

매복은 예상했을지는 몰라도 공격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기에 오크족의 선두는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전투 직전,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준기를 보며 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의 준기는 처음 봤을 때의 준기와는 전혀 달랐다.

유약하기만 한 사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싸움닭이었다.

‘그래도 사고는 안 치겠지.’

호영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준기에게 신호를 주었다.

오크족이 반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상황.

친위대는 예정대로 매복 공격을 감행한 뒤 곧바로 퇴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저들의 퇴각을 도우려면 호영과 준기가 후방에서 소란을 피워 줘야 했다.

“지금입니까?”

“그래.”

“먼저 나가겠습니다.”

준기는 그 말을 남기고서 풀밭을 뛰쳐나갔다. 삼백 마리의 오크들이 있는 곳을 향해 고작 창 한 자루만 가지고 뛰어가는 그의 모습은 용맹하기보단 무모해 보였다.

그렇지만 준기의 자신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었다.

연이어 들려오는 오크 전사의 비명 소리! 오크족의 후미가 단숨에 어수선해질 정도로 준기의 활약은 놀라웠다.

‘나도 움직여야겠어.’

제자의 활약이 기꺼웠지만 준기 혼자서 오크족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호영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

인간이라면 삼백은 물론, 1천 명까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호영이다. 물론 창술과 마력만으로는 그 정도의 활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아바타의 능력치가 워낙 사기적인 수준이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오크를 상대하는 것은 다르다.

오크족의 맷집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하여 한 마리를 잡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준기한테만 맡겨 둘 수는 없었다.

호영은 곧바로 오크족의 후미를 공격하였고 이미 준기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오크족은 더욱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부웅! 부우웅!

오크의 단단한 맷집도 거인의 노뼈로 만들어진 호영의 창에는 의미가 없었다. 호영이 공격하면 무조건 한 마리의 오크가 죽어 나갔다.

찌르기로든, 휘두르기로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가공스러운 활약에 오크족의 우두머리도 추격을 멈추고 발걸음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취이익! 취익!”

추격을 멈추고 반전하기 시작하는 오크족!

그 모습을 보고 호영은 곧장 준기한테 달려갔다. 그때 준기는 오크들에게 포위당한 채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호영처럼 공격 한 번에 오크 한 마리를 죽이지는 못하였지만 최소 치명상을 주기는 하였다. 지금도 사방에서 공격하는 오크족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내며 한 마리씩 처치해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지켜봐도 준기 혼자서 충분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준기의 체력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준기 아바타인 ‘상’의 능력치도 능력치지만 애초에 아직 준기의 실력으로는 체력 배분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여유롭게 보여도 저 상황이 지속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뜻.

그렇기에 호영은 준기를 도와주기 위해 준기를 포위한 오크들을 제거해 나갔다.

“추장님!”

“돌아가자.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어.”

“알겠습니다.”

평소라면 조금 더 싸워 보고 싶다는 이유로 고집을 부렸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좋지 못하였다. 준기는 곧바로 호영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서걱! 서걱!

겹겹이 포위된 상황. 하지만 호영에게는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크보다 발달한 신체, A급에 걸맞은 창술 실력, 심지어 간간이 사용되는 창기까지.

제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호영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그들이 전사의 종족 오크가 아니었다면 호영의 무력을 본 순간 진즉에 도주하였을 터.

그만큼 호영이 내보이는 실력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결국 수백 마리의 오크는 두 사람이 도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오크들로선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두머리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막아 낼 수 있는 무력이 아니었으니.

“내일도 딱 이만큼만 하면 되겠어.”

가까스로, 아니 여유롭게 오크족의 포위에서 벗어난 호영은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호영의 입가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처음 인간족이 오크를 기습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현군은 분노하기는 하였으나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다.

거인들 간의 세력 전쟁은 무척이나 흔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였는데, 세력은 거인에게 있어 일종의 유희거리였다.

그리고 타 세력과의 충돌 역시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게임과도 같았다. 그렇다 보니 세력 전쟁에서 거인이 직접 나선다는 것은 암묵적인 룰을 위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군은 더 이상 참기 어려워졌다.

“또 졌다고? 하루만 시간을 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고작 인간을 상대로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현군은 본래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현군이 냉철함을 잃은 이유는 오크족이 패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패전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대가 보잘것없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 것이었다.

늙고 쇠약하며 우악스러운 성정의 폭군. 심지어 그가 보유한 세력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폭군이 이끄는 인간 따위에게 패전을 거듭한다?

본인의 무력보다는 세력을 통솔하는 것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현군이니만큼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이이익!”

송구하옵니다! 대충 그런 의미가 담긴 오크 족장의 외침에 현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 족장에게 화를 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폭군, 준비는 꽤나 한 것 같다만, 그래 봤자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오크를 이겨 내는 인간이라니. 폭군의 노력이 가상하게까지 느껴졌지만 인간은 결국 인간이었다. 현군, 그가 나선다면 인간 따위야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속으로 출전을 결심한 현군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5미터, 6미터, 7미터, 8미터.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점점 커져 가는 현군의 체격.

마침내 9미터까지 성장한 현군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인간을 응징하고 말겠다는 의미가 담긴 포효였다.

* * *

오크와의 전쟁에서 전면전은 없었다. 치고 빠지거나 매복을 하거나. 당연하겠지만 이같은 전술은 상대에게 피해를 강요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오늘까지 열 번이 넘는 전투가 벌어졌지만 양측의 피해는 백 미만. 물론 인간 측의 피해는 거의 없었고 오크 측의 피해가 대부분이었다.

어쨌건 이 정도의 피해로 전쟁을 끝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반적인 전쟁에서야 병력의 30퍼센트가 궤멸당하면 그걸로 전쟁이 끝나겠지만 이 전쟁은 결코 일반적인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곧 오크족을 몰살시킬 기회가 찾아오겠지. 오크족도 이제는 지쳤을 테니까.’

사실 무리한다면야 지금 당장 오크족을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군의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었다.

삼백 대 이백? 숫자야 백이나 차이 난다지만 오크족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숫자 차이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영과 준기가 있어서 그나마 우세한 것일 터.

그렇기에 더욱더 장기전으로 이끌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아군이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크족의 식량 사정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이 또한 군대 조직과 전사 집단의 차이였는데, 오크들은 그야말로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종족이었다.

즉, 비상식량 따위를 일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동족의 사체를 포식하는 장면도 정찰병에게 포착되었으니 이백 마리의 오크가 해산되는 일도 머지않았다.

당연하겠지만 무리가 해산된다면 남은 것은 각개격파로 철저하게 말살시키는 일이었다.

‘문제는 중간에 거인이 참전하는 일인데…….’

호영이 우려하는 것은 오직 하나, 거인의 참전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호영의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추장님!”

“무슨 일이냐?”

“거인이 움직였습니다!”

정찰병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호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1회 차 최강의 종족, 거인!

마력의 도움 없이 오직 선천적인 힘으로 최강이라 자처하는 종족이었다.

호영으로서도 경계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능한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참전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하기야 거인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이었다. 그가 거인에 대해 완전히 파악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된다는 것인가.’

그가 생각하는 최악이란 별게 아니었다. 거인을 이기지 못하는 것. 즉, 거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과였다.

물론 그는 거인을 이겨 낼 생각이었다. 이미 현리 부족을 지배하였던 거인, 폭군을 죽인 적도 있었고 상승된 무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나 최악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현리 부족의 지도자였다. 당연히 지도자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지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내가 살아만 있다면. 그러나 내가 만에 하나 죽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후계 문제였다.

우선 고작 몇 번 가르쳤을 뿐인 대성. 그는 세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였다.

제아무리 비정상적으로 똑똑한 아이라지만, 왕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시대라면 모를까,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세력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준기나 원재 같은 유저들에게 후계를 맡긴다?

그것도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유저들은 정통성이 부족하였고, 무엇보다 1회 차가 끝나기까지 1년, 아니 6개월도 안 남았다.

그들에게 맡겨 봤자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미 결론은 나와 있는 문제였다.

“역시 초강밖에 없다.”

사실 후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 왔다.

물론 말 그대로 생각만 했을 뿐, 오크와의 전쟁이 거론되기 전까지는 아바타 대준을 믿고 맡기는 것으로 반쯤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오크와의 전쟁이 거론되고 나자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변수가 많았고 따라서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력이 있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존재가 호영의 뒤를 이어야 했다.

그의 후손이 권력을 계승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리 부족의 존속이었다.

부족이 존속해야지만 후손의 생존도 의미가 있는 법.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초강이었다.

무력과 인복, 심지어 지성까지 갖춘 초강. 호영의 뒤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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