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55화 (55/345)

# 55

그렇게 호영은 원재 덕분에 현리 부족에 있지도 않으면서 부족의 사정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그다음 날이 되어서도 호영은 현리 부족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더 이상 그는 현리 부족의 추장도 심지어 현리 부족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마치 비선 실세라도 되는 것처럼 막후 실력자를 자처하였다.

물론 원재와 준기의 권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족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였다.

원재와 준기의 권력이 정보력과 무력을 대변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호영이 현리 부족의 지도층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영의 비선 실세로서의 활동은 1회 차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 * *

‘드디어 1회 차가 끝났구나.’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루었기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었다. 호영은 1회 차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업적을 결산하는 시간이 오자 곧바로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센추리에 접속하니 거대한 초원이 그를 반겨 주었다. 마치 1회 차에 처음 접속했을 때처럼 하늘에는 문구 하나만 떠올라 있었다.

-플레이어의 업적을 결산 중입니다.

물론 처음 접속했을 당시의 문구와는 전혀 달랐다. 토끼를 죽이라는 문구가 아닌, 업적을 결산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너무 일찍 왔나?”

호영은 문구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너무 기대했기 때문일까? 업적 결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접속하고 말았다.

지금 시간에 센추리를 접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기다리자.’

로그아웃을 해서 밥이라도 먹고 올까, 잠시 생각했지만 호영은 그냥 기다리기로 하였다.

어차피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이곳에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깊은 생각들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호영은 마침내 업적 결산이 완료되었다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1회 차 업적 점수는…….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 따위를 느낀 채 자신의 점수를 보았다.

-22만 8,725점입니다.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예상보다 큰 점수였다.

1회 차, 그리고 한반도 지역의 한계상 10만 점을 넘겨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말이다.

‘거인을 죽였기 때문이겠지?’

그가 죽인 거인의 숫자는 무려 둘이었다. 다른 하나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는 데 영향을 끼쳤으니 적지 않은 점수가 되었을 터.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한국 유저의 경우는 지역 운이 안 좋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센추리에서의 한반도 지역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산악이 많았고 평야는 협소하였으며 인구는 희박하였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 비좁은 지역에 거인의 숫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았다.

한마디로 업적을 올리기에 최악의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워낙 불친절한 게임이라 8회 차까지 업적 결산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는지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호영이 아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가.’였다. 그리고 호영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고의 결과를 뽑아냈다.

1천 명도 안 되는 인구에서 시작하여 5천이 넘는 인구를 만들었고, 한계 문명까지 문물을 발전시켰으며, 심지어 두 마리의 거인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호영한테 주어진 환경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낸 것이었다.

미국, 아니 미국까지 갈 것 없이 한국과 가까운 중국이라면?

물론 호영보다 더한 악조건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부의 유저들 같은 경우는 너무도 쉽게 엄청난 업적 점수를 쌓을 방법이 존재하였다.

5천 이상의 인구를 가진 채 시작해서 주변을 차근차근 정복하는 것만으로도 호영의 20만 점에 가까운 점수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은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센추리에서도 인구가 무척 많은 편에 속하였고, 더군다나 ‘거인’이라는 자연재해도 의외로 적은 편에 속하였다. ‘정복 전쟁’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굳이 ‘전쟁’처럼 위험을 부담하는 쪽이 아니어도 괜찮다, 문명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킨다면 그것만으로 업적 점수를 엄청나게 쌓을 수 있을 것이니. 한국과는 파급력의 차이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차이가 있었기에 호영이 받은 20만이 넘는 점수는 무척이나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1회 차에서 20만 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업적 점수는 유저들 간의 순위를 매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순위나 랭커 시스템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 업적 점수라는 것은 현실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와도 같았다. 즉, 업적 점수를 원화로 환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센추리가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은 천문학적이었다. 초보자의 섬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 활동.

초보자의 섬 하나로 센추리는 다른 게임에서 캐시 충전하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이 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8회 차까지 무수한 음모론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센추리답게 그들은 자신의 수익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수익의 일부를 호영처럼 실력 있는 유저들에게 지급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실력을 증명하는 증표가 바로 ‘업적 점수’였다.

-1천 점의 가치는 376만 6,790원입니다.

호영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하늘에 떠 있는 문구가 업적 점수를 환전할 경우 어느 정도의 원화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점에 대략 4만 원에 달하는 원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호영이 가진 22만 8,725점의 경우 대략 8억 5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고작해야 게임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8억 이상을 벌어들인 것. 다른 유저들 같았으면 입을 떡 벌린 채 놀라워했을 것이다.

희열을 느끼며 곧바로 환전을 시도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오히려 ‘실망’을 하였다.

‘나 정도면 어느 정도 순위권 안에 들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고작해야 8억밖에 얻지 못하다니. 확실히 차이가 엄청나기는 하네.’

회귀하기 전, 세계는커녕 고작해야 한국의 경기도 지역에서 일개 유저로 있을 때도 최고 1천만 원 이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호영이다.

지금의 호영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업적 점수를 보유했을 터. 그런데도 8억밖에 못 얻는다는 것은 센추리의 인기가 아직 그리 대단치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뭐, 나에게는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일이지. 인기가 없으니만큼 선두 주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일단 환전부터 해 볼까?’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후 문구를 향해 말했다.

“업적 점수를 모두 코인으로 교환하겠다.”

원화가 아닌 코인으로 환전을 시도하는 호영. 한마디로 그는 8억 5천에 달하는 원화를 게임 머니로 교환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미쳤다.’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행동이었다. 100만 원도, 1천만 원도 아닌 10억에 가까운 돈을 게임에 투자한 셈이니까. 하지만 미래를 아는 호영으로선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센추리의 인기는 끊임없이 상승할 것이다. 그에 따라 센추리의 화폐인 ‘코인’의 가치는 더욱더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 그가 교환한 코인의 가치는 머지않아 2배, 아니 3배 가까이 상승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보다 큰 것을 노리고 있지만.’

호영이 업적 점수를 코인으로 환전한 이유는 단순히 코인의 시세 차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그건 바로, 부동산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센추리의 인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초보자의 섬의 인구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본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 어렵기만 할 것이고 반대로 초보자의 섬은 게임으로서나 여가 활동으로서나 심지어 사회 활동이나 교육 활동으로서 즐기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초보자의 섬의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부동산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센추리도 아예 관리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초보자의 섬은 회가 거듭할수록 땅이 넓어질 예정이었다. 1회 차인 지금도 거의 한반도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섬이 아닌 대륙이라 불려야 할 정도로 거대하게 바뀔 터. 하지만 땅이 넓어진다고 부동산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인구 밀집 지역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초보자의 섬에도 분명 도시라고 불릴 만한 지역들이 생기게 될 것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최초의 땅 전부가 머지않아 초보자의 섬을 대표하는 도시들이 될 테지.’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8억으로 10억, 20억 버는 수준이 아니라 수백, 수천 억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본 게임을 끝마친 유저들만이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애초에 부동산 거래가 막혀 있었고 말이다.

호영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그는 곧바로 지니고 있는 모든 코인을 털어 살 수 있는 모든 땅을 구입하였다.

눈치 빠른 몇몇 유저들이 부동산 거래를 하고 있었지만 업적 점수를 무려 23만 가까이를 받았던 호영과는 규모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신서울을 비롯하여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들을 일곱 개나 선점하였다. 3회 차쯤 되면 임대만 해도 웬만한 중견 기업 못지않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돈을 밝히는 성정은 결코 아니었지만 돈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았다. 더군다나 초보자 섬의 부동산을 얻었다는 것은 단순히 재화를 얻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세력을 기를 때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터.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센추리에서 로그아웃하였다.

이제 곧 시작될 2회 차가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졌다.

* * *

“센추리는 무조건 뜬다!”

업적 점수를 3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환전한 최진수는 로그아웃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는 그렇게 외쳤다.

처음에는 초보자의 섬에서 어물쩍거리느라 본 게임에 뒤늦게 합류했던 최진수다. 그런데도 무려 5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물론 최진수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돈이었지만, 그라고 300만 원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진지하게 플레이하였다면?

어쩌면 1억 가까이를 벌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억이라면 최진수에게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액수였다.

‘올해부터는 제대로 해 봐야겠는데? 잘만 하면…… 후계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어.’

처음에는 재미 삼아 센추리를 시작하였지만 업적 점수를 원화로 환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충 했는데도 300만 원이었다. 즐기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것이었다. 최진수가 생각하기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센추리를 하지 않을 사람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최대한 숨기자. 선점 효과는 되도록 오랫동안 누려야 하니까.”

최진수가 가진 힘이라면 센추리의 파급효과를 줄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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