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60화 (60/345)

# 60

머지않은 시일 내에 무언가가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큰일이라는 것은 호영이 추측하기에 일종의 쿠데타였다. 즉, 원재가 가담하고 있는 ‘반마족 혈맹’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들이 처음 노릴 대상은…….’

호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을 크게 떴다.

“나네?”

대씨 일족의 일원임에도 마법사들의 충견을 자처하는 대왕. 심지어 호위대라는 백 명이 넘는 병사들까지 지휘하고 있었다.

만약에 마족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반란을 일으키기 전, 대왕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저택 안에 있는 봉씨 일족들을 가만두려고 하였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네.’

잠잘 때 갑자기 암살하려 든다면? 평범한 일반인이야 감각 계통의 스킬이 발달한 대왕이 알아서 막겠지만, 진짜 암살범이라면 대왕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자신을 숨기려고 하였는데 위협이 바로 근처에 있는 이상 어느 정도는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센추리에 접속한 호영은 곧장 집사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족장님.”

“10년 전부터 올해까지 이 저택에 새로 들어온 노복들을 모두 다른 저택으로 옮기도록.”

“혹시 새로 들어온 놈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하였습니까?”

“이유는 알 거 없다.”

여느 때처럼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호영이었다. 그러자 집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써 혹시 모를 위협 요소를 배제할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따라 봉씨 일족에게나 아니면 사연에게나 의심을 받게 되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심을 받는 게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 * *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것일까?”

사내의 물음에 봉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

“하지만 눈치챈 게 아니라면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길 이유가 없잖아?”

“이유는 나도 몰라. 그렇지만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게 맞다면 대왕의 성격상 이렇게 조용히 처리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기야. 그 멧돼지 같은 놈이라면 당장에 우리를 죽였겠지.”

좌중에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고 있었다.

봉씨 일족과 대씨 일족은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아주 밀접한 관계였다. 선대 때부터 혈연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봉씨 일족은 현재 역적 신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리 긴밀한 관계라고 해도 역적 신분의 봉씨 일족을 감춰 주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대씨 일족이 저택에 봉씨 일족의 잔존 세력을 숨겨 준 것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대씨 일족이 바라는 것.

그건 바로 대왕을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봉씨 일족의 잔존 세력은 대왕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대씨 일족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해야 될까?”

“일단은 지켜봐야겠지.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근데 대왕 이놈 진짜 바뀐 것 같지 않냐?”

“어떻게 바뀌어?”

“그냥 나도 들은 이야긴데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아. 우리가 그놈 집에 있을 때도 느꼈잖아, 어느 순간 그놈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원래라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시끄러운 녀석인데 말이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인데.”

봉하는 턱을 쓰다듬었다. 대왕이 바뀐 게 맞다면 그것이 과연 봉씨 일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생각을 거듭하던 봉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일단 지켜봐야겠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어차피 대왕을 죽일 방법도 없었다. 그들은 대씨 일족에게 통제받는 상황이었고 대씨 일족은 대왕의 암살을 잠시 미루어 둔 상황이었으니까.

* * *

“오크 토벌이라…….”

여느 때처럼 창술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호영에게 추장 측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일전에 성문에서 보았던 추장의 시종이었는데 그는 호영에게 추장의 명령을 전해 주었다. 그 명령이란 다름 아닌, ‘오크 토벌’ 명령이었다.

‘나는 분명 호위를 담당하는 사람인데 또다시 토벌 명령이라니. 그것도 추장이 직접 명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종을 시켜?’

본래의 호위대는 부대 이름처럼 추장을 호위하는 역할을 갖고 있었다. 내성에서 숙직 근무를 서기도 하고, 추장이나 추장의 혈족이 내성 밖을 나갈 때면 호위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추장으로 바뀌면서 호위대의 용도는 많이 달라졌다. 추장을 호위하기는커녕 근처에도 가지 못하였고 바깥 임무, 즉 파견 임무만 도맡아서 하게 된 것이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제아무리 대왕 같은 충견이라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겠지.’

호영은 혀를 찼다. 그나마 마법사와 사이가 좋다는 것이 대왕의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썩 그렇다고 볼 수도 없었다.

배상이라는 마법사와 접속했을 때도 느꼈지만 특권 의식에 찌든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애초에 대왕을 신뢰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새로운 충견이 생긴다면 마법사들은 언제든지 호영을 토사구팽하려 들 것이었다.

호영은 속이 쓰렸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마족에게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일단 토벌 명령에 따르되, 기회를 엿보리라.

“출정을 준비시켜라.”

연병장에 도착한 호영은 곧바로 십장들을 불러 모아서는 이같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십장 중에 선임으로 보이는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물음을 던졌다.

“이번에는 어디입니까?”

“오크다.”

호영의 대답에 십장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물론 호영을 향한 불만이 아닌, ‘마법사’들을 향한 불만이었다.

“이야, 고블린에 이어 오크? 마법사님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딱히 피해를 주는 종족들이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처럼 무식한 놈들이 뭘 알겠냐? 까라면 까야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기랄. 하필 오크라니.”

“근데 마법사들은 아예 참전하지 않는 겁니까?”

“하겠냐! 고블린 때 봤잖아, 마법도 못 하는 쥐새끼 놈이 으스대기만 했던 거. 차라리 없는 게 나아.”

“나도 없는 게 낫긴 해. 하지만 마법사는 원래 우리 감시하려고 따라오는 거잖아?”

“이제는 우리가 믿을 만한가 보지. 뭐, 내가 생각하기엔 썩 좋은 판단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예전에도 느꼈지만 호위대는 마법사들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기야 지금처럼 마구 부려 먹는데 좋아할 수는 없겠지. 막상 받는 것은 얼마 없고 말이다.

‘그래도 저들 중에는 분명 마법사의 끄나풀이 존재하겠지.’

모두가 불만으로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호영은 그 모습에 속지 않았다. 그가 아는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의심이 많았다.

대왕이 충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 봤자 마법사들에게 있어 대왕이란 믿을 수 없는 ‘원주민’ 출신에 불과하였다.

오직 자신들의 혈통만을 신뢰하는 마법사들이었기에 대왕 같은 원주민 출신은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호위대에 끄나풀을 두어 대왕을 감시하고 있을 터.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호위대조차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잡담은 그만하고 출정 준비를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대장!”

호영의 일갈에 십장들은 잡담하는 것을 멈추고 뿔뿔이 흩어졌다. 호영이 내린 명령을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저녁이 되기 직전, 마침내 출정 준비가 완료되었다.

“곧 어두워질 것인데 지금 출발합니까?”

“추장님이 직접 내리신 명령이다. 오늘 안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장.”

“뭐지?”

“갑자기 너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십장, 장훈의 말에 호영은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다.”

“죄송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장훈.

호영은 잠시 장훈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내가 대왕을 완전히 따라 할 수는 없어.’

그는 연기자가 아니었다. 특히 대왕처럼 유별난 개성의 소유자를 따라 하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첫날처럼 되도 않는 연기를 하려고 했다간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받게 될 터.

차라리 ‘어떤 계기로 성격이 변했다.’라고 연기하는 게 마음 편하기도 했고 속이기도 쉬웠다.

물론 의심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정도의 의심은 추장과 마법사들에 대한 충성심을 내비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참고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굳이 출정하는 것도 추장에 대한 충성심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충견을 연기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무력도 어느 정도 키웠으니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해.’

호위대를 이끌고 북진하는 동안 호영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라 볼 수 없으니만큼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마법사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불온 세력들이었다.

대씨, 이씨, 수씨, 중씨, 유씨 그리고 이제는 몰락해 버린 봉씨 일족까지. 호영으로선 아군이라 해야 할지, 적군이라 해야 할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그들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그들에게 자신의 본심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자신 역시 마법사들을 적대하고 있노라고!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세간의 대왕에 대한 인식은 ‘마법사들의 충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본심을 보인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 봉씨 일족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

결국 그가 내린 결정은 이것이었다. 봉씨 일족. 그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리라.

* * *

오크와의 전쟁은 고블린과의 전쟁보다 훨씬 치열했다.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몰락했다고 볼 수 있는 북변의 오크족.

하지만 오크는 아무리 약해져도 오크였다. 숫자의 차이가 압도적인데도 물러섬이 없었고 전투력 또한 상당하였다.

호위대는 무려 나흘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다.

“대장이 아니었으면 위험했겠어.”

“솔직히 대장 혼자 했지, 이번 토벌은.”

십장은 물론 일반 병사들까지 감탄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하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왕은 이번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었다.

그의 활약은 일개 개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는데,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번 토벌의 승산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근데 대장, 더 강해지신 것 같지 않냐?”

“그러게. 원래도 최고셨는데 이제는 진짜…….”

“성격도 조금 달라지신 것 같아. 많이 누그러졌다고나 할까? 막내가 대장에게 안 맞은 지도 제법 되었잖아?”

“뭐, 좋은 일이지. 욱하는 성질만 없다면 대장만큼 믿고 따를 사람은 없으니까.”

호영을 향한 십장들의 뒷담(?).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호영은 듣지 않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듣고 있었다.

‘일단 호위대 안에서의 평판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네. 딱히 무언가를 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점점 좋아지는 평판. 이것만 봐도 대왕의 행실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었다.

호영은 속으로 피식 웃은 뒤, 십장들에게 다가가서는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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