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03화 (103/345)

# 103

“새로운 부족민들과 수인들은 어때?”

“친위대가 백여든여 명이나 주둔하고 있어서 분란을 일으킬만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수인들의 경우는 몇 명이 어젯밤에 도주하였습니다. 여전히 저희를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점령지의 치안은 안정적인 것 같았다. 하기야 조폭 출신의 유저들에게 노예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니 현리 부족의 지배를 오히려 환영할 것 같기는 했다.

장훈의 말처럼 막강한 무력을 보유한 친위대가 백여든여 명이나 주둔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고 말이다.

수인들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종족이 다르다 보니 도주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과의례와도 같았으니까.

그래도 이 통과의례만 잘 넘어간다면 앞으로 수인들은 부족을 위해 헌신할 것이었다.

“그런데 추장님, 이 마을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으시겠습니까?”

“이름?”

잠시 고민하던 호영은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마포현. 이곳은 앞으로 마포현이라 부르겠다.”

“마포현이라……. 알겠습니다.”

호영이 마을의 이름을 정하자 김성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현실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런 김성근의 모습을 보며 호영도 가볍게 웃었다. 방화현과 양평현에 이어 마포현까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성의 없는 이름들이었다.

더군다나 마포현 같은 경우는 강서구의 방화동과 영등포구의 양평동과 달리 마포구의 ‘구’라는 ‘동’ 위의 행정구역의 이름이었으니 더욱 성의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름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있는 곳도 아니니까.’

현리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명이라면 100년이 지나든 200년이 지나든 계속 써야겠지만 지금 점령한 부족의 이름은 ‘강북제패’였다.

역사적 가치라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관하였다.

유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익숙한 지명이기에 적응하기도 한결 수월할 것이고 말이다.

“친위대장.”

“말씀하십시오.”

“마포현의 인구를 4천까지 만들어야겠다. 현재 인구가 어느 정도지?”

“수인들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1,400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인구 4천을 만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일이 걸릴 것 같으냐? 참고로 오크족은 머나먼 북방으로 몰아내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호영이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마포현을 장훈에게 완전히 맡긴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었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최초의 군정 통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유저가 아닌 NPC가 마을을 관리한다는 것이 컸다.

지금 두 마을을, 즉 양평현과 방화현을 관리하는 것은 모두 유저였다. 방화현은 여성 유저, 봉영이 관리하고 있었고 양평현은 현기 휘하에 있었던 유저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마을을 유저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추후 왕국이 건국되어 봉토를 하사할 때 유저들 위주로 하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호영의 생각은 그렇지 않더라도 유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훈에게 마포현을 맡긴다면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들에게 내려질 봉토를 빼앗긴 격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유저들의 불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유저만을 편애할 생각이 없다.’

NPC 역시 공을 세우면 그에 마땅한 상을 내려야 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었고 무엇보다 유저가 빠지는 100년이라는 공백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저만을 편애한다면 NPC들은 결국 불만 세력으로 남게 될 터. 호영이 간섭하지 못하는 100년 동안 현리는 내부적인 문제로 분열되거나 몰락할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호영은 중립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신상필벌의 공정성을 유지한다고나 할까.

“열흘을 주십시오. 이틀 안에 치안대 서른 명과 경비대 스무 명이 지원을 올 것이니 그들이 도착하는 즉시 친위대를 출정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출정하자마자 8일 안에 주변 부족을 모조리 정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호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마포현을 맡겼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뚝뚝하게 말하는 장훈이었다.

너무도 한결같은 모습이었기에 호영은 오히려 기분 좋게 웃었다. 이렇게 믿음직하니 NPC라고 차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 *

현실로 돌아온 호영은 평소 스케줄대로 움직이다가 센추리에 접속해야 할 시간에, 잠시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점령지인 마포현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그의 무력이 필요한 일도 없었기에 급할 게 없었다.

지금 그가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것은 현실의 안전이었다.

‘그 조폭들이 바로 나를 찾지는 못할 거다. 나의 신상에 관한 것은 공식적으로 조금도 알려진 것이 없으니까.’

마포현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적대하게 된 강북제패라는 이름의 부족. 그 부족의 구성원 대부분은 직업이 조폭이었다.

조폭이라 해서 두려울 것은 없지만 솔직히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두목이라는 자도 대놓고 협박하지 않았던가?

죽을 준비를 하라면서 말이다. 물론 제아무리 조폭이라 해도 게임에서 당한 일로 살인까지 저지를까 싶기도 하였지만 호영으로선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되었다.

센추리가 품고 있는 가치도 가치지만 거기서 죽으면 기분이 정말 더럽게 나쁘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낼 가능성은 적다. 원재를 제외하고는 내가 대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야. 그리고 굳이 조폭들이 아니더라도 위협은 어디에도 있어.’

이럴 때는 지구에 마나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마나만 있다면 현실에서도 무쌍을 찍을 수 있을 텐데…….

아무튼 현실의 안전을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의 결론을 결국 이거였다.

집을 사자!

호영에게 가장 위협적인 순간은 센추리에 접속해 있을 때였다. 조폭이 아니라 80대의 노인이라도 호영을 해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추리를 하고 있을 때 말고도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나 잠시 외출할 때도 위험이 존재하였지만 호영은 솔직히 그때는 어떻게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센추리에서만큼은 아니지만 현실의 육체도 충분히 단련되어 있었고 무술 실력도 누구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집이라고 생각했다.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집말이다.

‘하지만 왠지 내 자신만을 위해 집을 사는 것은 아깝게 느껴지는데…….’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주식으로 벌어들인 돈도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센추리에서 임대료만으로 수십억에 해당하는 코인이 월에 한 번씩 입금되고 있었다.

1회 차 끝날 때 샀던 초보자의 섬에 있는 부동산의 가치가 100배 이상 올라갔던 것이다.

그러니 돈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코인은 쓸 때가 있어서 전부 환전하기는 어렵지만 집 살 돈은 충분히 환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호영이 고민하는 것은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였다.

“이번 회 차가 끝나면 친위대 소속의 유저들과 함께 빌라에서 살 생각이었었지. 전부는 같이 못 살더라도 김성근이나 민건우 같은 유저라면 쉽게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그걸 꼭 내년으로 미뤄야 될 필요가 있나?”

기업이나 단체를 소유하지 못한 호영으로선 조직력이라는 것을 갖추기 위해 특별한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특별한 수단이란 다름 아닌 ‘합숙’이었다.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하여 조직력과 소속감을 극대화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합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전적으로 호영이 감당하고 말이다.

‘그래. 마침 원재의 노트도 있으니 지금부터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모아 보자. 회귀 전에 나를 따라 주었던 애들도 이참에 모으는 게 좋겠어.’

결정을 내린 호영은 곧바로 책장에서 노트 하나를 꺼냈다. 얼마 전 원재가 직접 작성하여 호영에게 주었던 노트인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배신웅

이름 : 파악 ×.

성별 : 남성.

나이 : 24세.

직업 : 대학생.

가족 : 외아들, 편모.

재능 : 센추리에서는 마법사인데 아직 마법은 쓸 줄 모름. 그 외의 재능 파악 ×.

집 주소 : 강서구 등촌동 등촌역 인근.

성격 : 놀기 좋아하는 한량 같은 성격을 가짐. 의외로 눈치가 좋고 말재간도 뛰어남.

재산 : 부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측됨. 하지만 그렇다고 궁핍한 정도는 아닌 듯.

봉영

이름 : 박경선.

성별 : 여성.

나이 : 27세.

직업 : 전직 양궁 선수, 현 무직.

가족 : 파악 ×.

재능 : 양궁 선수 출신답게 엄청난 활솜씨를 가지고 있음. 그리고 행정적인 능력과 군사적인 능력이 뛰어남.

집 주소 : 파악 ×.

성격 : 처음 본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많고 의심이 많은 성격. 그러나 리더십이 상당하여 남자든 여자든 잘 따름. 여장부의 기질을 가지고 있음.

재산 : 자세히는 모르나 딱히 어려움이 없는 것 같음.

정각

이름 : 김종우.

성별 : 남성.

나이 : 28세.

직업 : 대졸, 현 무직.

가족 : 1남 1녀, 양친.

재능 : 행정 능력도 나쁘지 않고 끈기도 가지고 있어 양평현을 나름대로 잘 다스리고 있음. 무공은 소질이 없는 듯?

집 주소 : 강서구 등촌 영일 고등학교 인근 저택.

성격 : 대체로 무난함. 유한 성격으로 살면서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 본인이 직접 말함.

재산 : 궁핍. 현실을 포기하고 센추리에만 집중하는 중. 적지 않은 빚까지 있다고 하니 돈을 지원해 준다면 환심을 살 수 있을 듯?

원재의 노트에는 수백 명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주소부터 시작하여 현실에서 쓰는 이름과 가족이나 직업에 대한 내용까지.

모두 호영 휘하에 있는 유저들의 인적 사항이었다.

‘정말 꼼꼼하군. 경제 형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적다니. 한두 명도 아닌 이백 명이 넘는 숫자인데 말이야.’

호영은 새삼스레 감탄하였다. 원재가 엄청난 노력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수백 명에 대한 인적 사항을 혼자서 적어 내다니? 단순히 글을 적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일일이 정보를 파악해야 됐으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끈기라면 누구 못지않은 호영이라 해도 이것만큼은 쉽지 않을 터.

‘이러니 내가 원재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짓는 호영이었다. 그런데 원재도 양반은 못 되는 것인지 때마침 호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원재냐?”

-예, 팀장님.

“무슨 일로 전화했어?”

-팀장님, 서둘러 접속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호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원재는 결코 농담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면 무척이나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뜻.

하지만 호영은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한 채 물었다.

“왜? 사고라도 났어?”

-아무래도 반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호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실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일단 지금 코앞에 닥친 위기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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