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20화 (120/345)

# 120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규모의 차이였다.

중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일본만 해도 2회 차가 시작할 때 이미 왕국이 존재하였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 개나 말이다.

그들은 호영과 비교했을 때 시작점부터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왕국인 만큼 인구도, 영토도, 군사력이나 경제력도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처음부터 압도적인 자원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4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호영의 경우는 역량이 부족하여 1분기 동안 힘을 비축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면, 일본의 경우는 1분기부터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차이는 2분기, 3분기 그리고 마지막 4분기가 되면 더욱 커지게 된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듯, 세력이 큰 사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물론 왕국의 국왕들이 모두 유저일 리는 없겠지. 중국이나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고. 세력이 크면 클수록 권력자가 되기는 더 힘들어지니 말이야.’

애써 위안을 삼아 보지만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호영이 반은 기대하고 반은 불안해하며 결산을 기다릴 때, 마침 업적 점수의 결산이 딱 끝났다.

-플레이어의 1회 차 업적 점수는…….

호영은 긴장한 눈빛으로 하늘에 떠 있는 문구를 노려보았다.

-39,725,300점입니다.

“……!”

무려 4천만에 가까운 점수! 그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점수였다.

‘3,900만이라니…….’

부르르, 몸이 떨렸다. 너무 놀랐기 때문인지 떨리는 몸을 순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이 정도면 영산 세 개 이상을 구입할 수 있다!’

업적 점수의 좋은 점은 1회 차 때와 마찬가지로 초보자의 섬에 있는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번 회 차의 경우 업적 점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이번 회 차에 ‘영산’이라는 가치 높은 부동산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1,000점의 가치는 354만 9,650원입니다.

1회 차보다 살짝 낮아진 환율. 하지만 호영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는 현금으로 환전할 생각이 없었던 까닭이다.

“업적 점수를 모두 코인으로 교환하겠다.”

곧바로 코인을 사들인 호영은 1회 차 때처럼 부동산을 매매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영산’들이었다.

‘순식간에 시세가 올라가는군. 역시 유저들도 현금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부동산을 사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가.’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현금으로 전환하느니 부동산을 구매하는 게 최소 100배 더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할 때는 또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다행히 한국 지역이나 영산들의 시세는 크게 오르지 않았어.’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자신이 매입하고자 하는 부동산을 모조리 매입하였다. 1회 차에 비해 시세가 크게 올랐지만 업적 점수 역시 천문학적이었기에 그가 원하는 부동산 전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임대업보다 영약과 포션으로 돈을 벌어들이겠네. 물론 2회 차 때 저렴하게 사 놓은 마정석으로도 어마어마한 이윤을 볼 수 있고 말이야.”

또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호영이었다.

* * *

1월 15일. 오늘이 바로 3회 차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나도 들어간다?

“들어가라니까.”

-이거 근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뉴스에서는 뇌사할 위험이 있다던데.

“헛소리야. 인터넷 봐 봐. 개나 소나 센추리 하려 하잖아. 그리고 위험한 거라면 내가 하라고 했겠어, 비싼 돈 주고?”

호영이 센추리에 접속하려는 찰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그의 매형이었다.

참고로 매형은 호영과 동갑으로, 현재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집을 선물하고 또 센추리 기기까지 선물해 주자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이다.

지금 통화를 하는 것도 센추리를 같이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의 매형은 초보자의 섬에서 활동할 것이지만 말이다.

-알았어. 그럼 진짜 들어간다.

“어. 나도 지금 접속해야 하니까, 이만 끊는다.”

-그래, 살아서 보자.

쓸데없이 비장하게 말하는 매형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저었다.

‘살아서 보기는. 오히려 현실에 돌아오는 순간 죽음이 찾아올 것인데 말이야.’

호영은 자신의 누나를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돌아왔건만 남편은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의 누나, 송효주의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드센 성격답게 일단 남편의 머리채부터 잡고 보겠지.

뭐, 은근히 마음 약해서 결국엔 용서해 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도 이제 슬슬 시작하자.”

얼마나 고대했던 순간인가. 호영은 곧바로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그러자 익숙한 풍경이 그를 반겼다. 광활한 초원이었다. 1, 2회 차를 시작할 때 보았던 광경.

하지만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문구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온갖 무기들이었다.

호영은 가장 먼저 하늘에 떠 있는 문구를 읽어 보았다.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언제나처럼 불친절한 문구였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무기들에 대한 설명도 없이 튜토리얼을 시작할 거냐고 묻다니.

그러나 호영은 개의치 않은 얼굴로 ‘Yes’를 선택하였다.

-코인 또는 현금을 지급하십시오.

3회 차의 튜토리얼은 1, 2회 차의 튜토리얼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널브러져 있는 장비도 장비지만 돈까지 지불해야 하다니. 그것도 5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호영은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선택을 망설일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의 장비를 선택하십시오.

호영은 장비들을 훑기 시작하였다.

원래라면 그의 주 무기인 ‘창’을 선택하는 게 맞겠지만 호영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영은 반색한 얼굴로 조그만 종이 하나를 집어 올렸다.

종이, 그 안에는 알약이 들어 있었다. 새까만 색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약이었다.

‘마법사의 알약!’

다른 유저들은 모를 것이다, 이 알약의 정체를.

하지만 호영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마나를 올려 주는 알약이었다.

물론 ‘검기’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마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검기는커녕 사실 알약으로 올라가는 마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올라가는 마력 수치가 고작 1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나가 중요하다고 해도 고작 1 올라간다고 무력이 강해지겠는가? 이 알약이 마법사의 알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마력이 1밖에 오르지 않아서였다.

무인은 마나가 많을수록 좋지만 마법사는 달랐다. 0만 아니라면 마나가 낮을수록 좋은 것이 마법사였다.

그렇다고 호영이 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법사의 알약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알고 있는 마법이 없었다.

다만, 그 역시 마법사만큼은 아니지만 마나의 유무를 중요시 여겼다.

‘마나가 1이라도 있으면 기감을 사용할 수 있다!’

마나를 다루는 것이 능숙한 무인들은 기감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스킬로는 ‘마나 감지’로 표기되는데 기감은 감각의 영역을 어마어마하게 확장시켜 준다.

한마디로 눈과 귀가 밝아지고 후각이나 촉각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감각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지.”

3회 차의 튜토리얼은 다른 유저들에게도 익숙한 유형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몇 년 전부터 유명해진 ‘배틀 로열 형식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산이나 암초 지대, 사막 등 랜덤으로 뽑힌 지역에서 혼자가 될 때까지 생존하는 것. 그것이 바로 3회 차 튜토리얼의 클리어 방식이었다.

물론 하늘의 문구에서는 그 정도까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불친절한 문구 한 줄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선택하신 장비로 최대한 오래 생존하십시오.

최대한 오래 생존하라! 문구의 설명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아마 이 문구를 보고 있는 유저들은 지금쯤 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누구를 상대로 생존해야 하는지를 몰랐으니 말이다.

‘정보를 알고 있는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번에는 1등을 할 수 있겠어!’

회귀 전, 1등은커녕 순위권 안에 들어 본 적도 없었던 그다. 10등 안에 든 것이 최고 등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등을 하여 가장 뛰어난 아바타를 차지하고 마리라!

그가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였다.

호영이 잠시 몸을 허우적거리다가 입술을 깨무니 그제야 시야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는 숨을 들이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형은 숲인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장소가 변해 있었다. 초원에서 숲으로 바뀌었는데, 튜토리얼 장소로 이동된 것이었다.

“일단 움직여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빠르게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 안으로 들어오니 뭔가 공기부터 다른 기분이었다.

싸늘하다고 해야 될까. 조금 긴장감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겪는 서바이벌 형식의 튜토리얼이어서 더욱 긴장되는 것 같았다.

호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뒤에서는 새까만 안개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그것은 바로 ‘죽음의 안개’였다.

말 그대로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안개였는데 마치 모 게임의 ‘자기장’처럼 유저들로 하여금 제한된 공간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하였다.

생존한답시고 한곳에서 버티는 유저들을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호영도 저 안에서는 생존할 수 없었다.

마물들도 버틸 수 없는 곳인데 호영이라고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남들보다는 오래 버티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기척을 죽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숲이라서 그런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호영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괜찮았다. 그의 육체는 충분히 단련되어 있었고 무술 실력도 대단하였으니까.

경험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지금 이 몸, 그러니까 현실의 몸은 삼류 무인보다 못한 몸이었다. 육체는 제법 단련되어 있다지만 어쨌든 마나는 1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유저들 역시 마나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애초에 마나 사용자도 별로 없는 시기였고 현실의 육체를 사용하는 튜토리얼에서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은 호영처럼 ‘마법사의 알약’을 먹은 사람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유저들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창, 검, 활, 도끼 등등. 호영이 아무리 무술을 오랫동안 수련했다지만 맨주먹으로 무기를 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호영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만용을 부려 부상을 입거나 죽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그에게 기감이 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무기를 포기하고 마법사의 알약을 선택했던 것도 기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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