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22화 (122/345)

# 122

인종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팀을 맺었다는 것은 나머지 일인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실제로,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동양인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혈투를 벌였는지 몸 곳곳에 상처로 가득하였지만 어쨌든 세 명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도 저 거구의 솜씨인 것 같았다.

“귀도 좋군. 싸움 중에 내 목소리를 듣다니.”

호영은 거구의 눈길이 잠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향한 것을 보았다. 세 명을 상대로 싸우고 있으면서도 주변을 빈틈없이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공만 없을 뿐이지, 정말 어마어마한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천재는 많이 보았지만 저렇게 현실에서까지 어마어마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천부적으로 타고 난 것인가?’

힘도 힘이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을 보며 호영조차 질려하는 기색이었다. 거구를 상대하는 세 사람도 운동을 꽤나 한 사람들 같은데 어렵지 않게 상대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오히려 수세에 몰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히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아니겠어. 저 정도의 실력자를 내가 모를 리는 없을 테니까.’

호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활을 들어 올렸다.

안개는 지척까지 왔고 세 사람 중 한 명은 거구를 당해 내지 못하고 죽었다. 나머지 두 사람 역시 위기에 몰린 상황.

이런 상황에서 호영이라고 언제까지 관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거구는 이만 사라질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휘이익!

연달아 세 개의 화살을 날리니 거구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였다. 복부와 어깨, 총 두 대의 화살을 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호영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가 난 것인지 거구는 더욱 맹렬하게 창을 휘둘렀고 백인과 흑인은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하였다.

서걱! 서걱!

지금껏 용렬하게 싸운 백인과 흑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거구와 호영, 단둘뿐이었다. 물론 호영처럼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안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숨을 수 있는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전투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이었다.

“우아아아아!”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맹렬하게 달려드는 거구의 사내!

아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거구의 사내에게서는 손도끼를 든 백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백이 느껴졌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맹장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2등만 해도 선택하고자 하는 아바타는 모두 선택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1등이고 싶다.’

호영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그 역시 거구의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만큼이나 저돌적으로 말이다.

그러자 두 사람 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호영은 맹렬하게 돌진하다가 돌연 고개를 숙였다.

파바박!

그가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들렸다. 호영이 다시 고개를 드니 무서운 기세로 창을 내지르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이번에도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사내의 공격을 피해 냈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거구의 사내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쉴 새 없이 창을 휘둘렀다.

콰아앙!

힘이 가득 실린 사내의 공격에 마치 공기가 터질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열 번을 연달아 내지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스치기라도 하면 뼈도 못 추릴 일격들.

호영은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수세에 몰렸다. 창술 실력은 그가 훨씬 더 뛰어났지만 상대의 피지컬은 마치 괴물 같았다.

사내의 피지컬 정도라면 맨주먹으로도 오크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쯤 되니 호영은 사내의 정체가 미치도록 궁금하였다.

저런 신체 능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이 최후의 승부에서 승리를 따내는 것만이 중요하였다.

다행히도 호영은 수세에 몰린 것일 뿐, 실질적으로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경미한 상처조차 허용하지 않고서 완벽한 수비를 보여 준 것이다.

‘단순하군.’

호영이 이처럼 완벽한 수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파악했기 때문이다. 피지컬이 부족해도 동작을 모두 파악했다면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거구의 사내가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격이 계속 통하지 않으니 나름대로 꾀를 쓰기도 하고 공격에 변화를 주기도 하였다.

웬만한 무술가들도 거구의 사내가 퍼붓는 공격을 보며 ‘단순하다’고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분명 위력적이고 변칙적인 공격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의 입장에서는 단순하게만 느껴졌다. 왜냐하면 살기로 가득한 사내의 공격은 오직 급소만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 아니면 심장. 뱀처럼 화려하게 움직인다 해도 목적지는 결국 둘 중 하나였다.

만약 호영에게 창술 실력과 단련된 육체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제아무리 급소만 노린다는 걸 알아도 피하기가 어려웠겠지만 그는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호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의 공격을 수월하게 피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호영에게 기회가 왔다.

‘지금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사내의 약점. 그러나 호영에게는 보였다.

파바박!

순간적으로 호영의 창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세 개로 늘어난 것이었다. 세 개로 늘어난 호영의 창은 전부 거구의 사내를 향해 내질러졌다.

일격필살!

거구의 사내는 흠칫하였다. 정신없이 공격을 퍼붓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반격을 받게 될 줄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내의 반응 속도는 남달랐다. 고개를 두 번 흔드는 것만으로 호영의 창을 피해 낸 것이었다.

푸욱.

하지만 그가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개가 끝이었다. 심장을 노리는 창 하나만큼은 피하지 못하였다.

“커헉.”

가슴을 부여잡은 거구의 사내는 호영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죽어 가면서도 어떻게든 반격하려고 손을 꿈틀거렸다.

‘나를 노려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호영은 사내의 눈빛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웃는 얼굴로 다시 한 번 창을 내질렀다.

확인 사살을 하기 위함이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던 거구의 사내도 두 번이나 급소를 꿰뚫린 상태에서 목숨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 * *

“죽었군.”

잠시 거구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호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사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웠다면 훨씬 이전에 끝났을 일이지…….’

호영의 실력이라면 사실 거구의 사내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수비에 집중하지 않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하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3분 이상을 싸운 이후에야 끝을 냈다. 일부로 시간을 끈 것이었다. 호영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내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해 보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본인의 실력을 최대한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자신의 창술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는 내심으로 천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만약 천재에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 주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빼앗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기가 그랬다. 보는 순간 이미 깨달았다고나 할까?

물론 보자마자 자신의 것으로 체득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체는 확실히 깨닫는다.

천재라는 족속들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존재들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수비에만 몰두한 채 공격은 단 한 번만 하였다.

무언가를 파악할 수도 없게끔 순식간에 죽이기 위함이었다. 아마 거구의 사내는 호영과의 대결에서 어떤 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호영이 우려하는 수준의 천재라 해도 말이다.

‘다만 이자에게 경각심을 주었으니 그것도 나름 문제라고 할 수 있겠어. 아까 보니 제 잘난 맛에 사는 놈 같았는데.’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인데 왜 찝찝함 같은 것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역시 천재들이 문제인 것인가?

하기야 초보자의 섬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봐도 찝찝할 만하였다. 심법도 없는 삼류 무공을 풀었을 뿐인데 무공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된 것을 보면 말이다.

아마 현실 시간으로 5개월 정도는 빠르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는 대략 3개월 정도 빠를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1등이다. 지금은 그것에 만족하자.”

호영은 고개를 회회 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마지막 생존자라는 문구가 보였다. 비로소 1등을 한 것이다.

1등의 혜택으로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아바타의 폭은 무제한이 되었다.

나이 제한부터 스텟 제한에 방계 제한까지.

2회 차의 아바타였던 ‘대왕’의 핏줄이라면 여자를 제외하고는 두 살짜리 아기부터 아흔 살 노인까지 선택이 가능하였다.

만약에 ‘대왕’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면 대왕도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호영으로선 굳이 다 늙은 아바타를 선택할 이유가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3회 차부터는 아바타 선택이 매우 제한적으로 변했을 것이기 때문에 1등의 혜택은 더욱 굉장하다고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이거지. 모든 아바타들의 능력치를 볼 수 있다는 것.’

친족에 한해서지만 아바타들의 능력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2회 차에서도 봉성과 봉하의 능력치를 미리 알고 있어 상당한 이득을 보지 않았던가.

특히 ‘지력’ 수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스텟이야 직접 알아보면 된다지만 지력은 그 역시 측정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호영은 흡족한 얼굴을 하고서 아바타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능력치만 보인다는 건 아쉽네. 1등이라면 아바타들의 신분이나 스킬 정도는 알려 줘도 좋았을 텐데. 볼 수 있는 게 왕의 권한 하나뿐이라니.’

수십여 개의 아바타들을 살펴보던 호영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능력이 좋은 아바타야 제법 보였다. 1회 차의 대준만큼은 아니지만 2회 차의 대왕만큼은 되는 이들도 두세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소수에게만 전해 주었던 ‘심법’을 익힌 이들도 있는 것인지 마력을 가진 아바타도 열 명은 되었고 말이다.

그러나 1회 차나 2회 차 때처럼 능력치만 보고 아바타를 선택하기에는 세력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버렸다.

능력치보다는 권력이나 신분 따위가 더 중요해진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으로선 망설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역시 왕의 권한을 가진 이 아바타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왕의 권한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 왕이라는 증거였다. 만약 아바타들의 능력치가 비등한 수준이라면 왕의 권한을 가진 아바타를 뽑는 게 합리적일 것이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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