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24화 (124/345)

# 124

절대악의 존재로 그의 반란이 혁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3회 차인 지금은 반란을 일으켜도 그저 반란으로 남을 뿐이었다. 무슨 변명을 한다 해도 반란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의 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죠.”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일단은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왕의 건강이 안 좋다고 하니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겠죠. 물론 그 전에 착실히 힘을 키워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힘을 키우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군사력은 확실하게 장악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니 너는 나에게 명분만 만들어 주면 된다.”

그의 아바타는 현재 수도 방위군 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수도의 군사력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유저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군사력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명분만…… 오직 명분만 있으면 된다!’

지금 호영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명분뿐이었다.

* * *

3회 차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다. 호영은 어제 하루 동안 아바타의 내력과 스킬 그리고 대한국의 정세 등을 파악하였다.

물론 중간에 강충구를 만나 앞으로 대한국을 어떻게 장악할 지에 대해서도 의논하기도 하였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정상적으로 센추리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어제처럼 정보 조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아바타에 동기화하여 전면에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원재야.”

-예, 사장님.

하지만 호영은 센추리에 접속하기 전, 원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구가 행정적인 업무나 앞으로의 계획, 전략 따위를 담당한다면 원재는 정보 수집이나 인력 통제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원재 역시도 충구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충구처럼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통화로나마 간략한 지시를 내릴 필요성이 있었다.

“로열패밀리의 상황은 어떻지?”

로열패밀리!

왕족이나 재벌가를 칭하는 데 주로 쓰일 것 같은 이 단어는 현재 호영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즉, 호영의 빌라 단지에 입주하고 있거나 호영의 사업체인 ‘로열 가드’, ‘로열 엔터테인먼트’ 등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로열패밀리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로열패밀리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센추리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었다.

-일단 튜토리얼에서 10등 안에 든 이들이 많아 유저들의 무력은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바타 선택을 잘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스텟도 스텟이지만 중요한 직책이나 신분을 가진 이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군사력을 장악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원재의 말에 호영은 쾌재를 불렀다.

호영 그 자신은 어떻게 보면 아바타 선택에 실패했다고 봐도 좋았다. 아바타의 능력치 자체야 2회 차의 대왕보다 우수했지만 어쨌든 왕세자 아바타를 뽑는 것엔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로열패밀리, 즉 친위대 출신의 유저들은 아바타 선택에 성공한 것 같았다. 원재가 이 정도로 자신만만해할 정도라면 분명 그럴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지위들을 가지고 있지?”

-기사의 적자이거나 친족인 경우가 여섯 명이고, 친위대에 소속된 이는 스물네 명입니다. 그리고 향사나 종자 그리고 중앙군 간부 지위를 가진 이들은 모두 서른아홉 명입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대한국에서 국왕 다음으로 높은 신분이 기사인데 호영의 수하 중에 무려 여섯 명이나 기사의 친족이거나 자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기사 작위를 가진 유저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고작해야 열세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바타가 선택될 가능성은 애초에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사가 아니더라도 향사 또는 종자의 신분을 가진 유저가 적지 않다는 게 중요하였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기사가 도지사라 치면 향사나 종자는 군사나 이장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중앙에서의 힘은 약할지 몰라도 지방에서의 힘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게 향사와 종자라는 신분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향사와 종자가 대거 호영의 사람이 된다면 앞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중앙군 간부나 치안대 간부 같은 경우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군사부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는 없나? 비서실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들은 행정 계열이 많잖아?”

2회 차 때 충구의 아바타였던 이현기의 지위는 군사였다. 그리고 이 군사라는 지위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

아니, 남아 있는 것을 넘어 대한국을 다스리는 핵심 요직이 되었다. 왕의 지낭으로서 국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끼치는 지위였기 때문이다.

호영도 이 군사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 비서실에는 안타깝게도 군사의 지위를 가진 유저가 없습니다. 튜토리얼에서 활약을 하지 못해 능력치가 떨어지는 아바타들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군사부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는 전략실장 한 명뿐이로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군사부에 한 명이라도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강충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튼 알았다. 너의 말처럼 군사부는 몰라도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이네.”

-예,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일단 대기해. 로열패밀리 인원들에게도 대기하면서 힘을 기르라고 말해 주고.”

-거사는 언제쯤 일으키실 생각입니까?

“아직 계획된 게 없다. 나에게는 명분이 없으니까.”

-……시켜만 주신다면 명분은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왜, 독살이라도 하게?”

-가능성이 보인다면야 시도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저의 아바타가 왕실 정보부의 실력자입니다. 정보부를 잘만 이용하면 왕이나 왕세자를 암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군사력을 얼마든지 장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왕과 왕세자를 독살시킬 수 있다니.

의심은 받겠지만 이 왕자로서 왕위를 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왕족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왕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되더라도 내전이 일어나고 말 거야.’

패륜이라느니 비겁하다느니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호영은 왕이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통성이었다. 현재 그의 아바타는 이 왕자임에도 같은 왕족들에게 견제를 받는 상황이었다.

견제를 받는 이유야 단순했다. 호영의 아바타가 과거 공식 선상에서 왕세자 자리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왕족들은 왕세자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으니 호영의 아바타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국에서 왕족의 지위는 무척이나 높았다. 조선보다는 신라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것은 왕족들이 가진 권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현재 대한국의 왕족들은 국가의 핵심 요직들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었다.

중앙군 전체를 합친 것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친위대의 수뇌부도 왕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군사부, 감찰관, 행정관 등의 고위 관리직도 왕족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열세 명밖에 안 되는 기사들 중에 왕족 출신이 여섯 명이나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한국이라는 나라는 왕족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으로선 왕족들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왕족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왕이 된다고 해도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왕족들마저 힘으로 제압하면 문제 될 게 없기는 하지.’

일단 왕이 된 이후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왕족들을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왕족들 일부를 숙청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호영은 되도록이면 피를 적게 보고 싶었다.

인명을 중시해서 또는 안 좋은 사례를 만들기 싫어서, 뭐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왕족들의 피를 적게 보려는 이유는 그들이 왕족이기 이전에 호영의 혈족이어서였다.

혈족! 회귀 전, 혈통 전쟁이라고까지 불렸던 센추리에서 혈족이란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아바타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본 게임의 최종 목표인 업적 점수를 많이 얻기 위해서라도 혈족은 숫자가 많을수록, 또한 영향력이 강할수록 유리한 것이었다. 호영이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왕이 될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호영은 일단 ‘지켜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제 충구가 말했던 것처럼 왕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다.

노왕이 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니만큼 지금은 우선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좋은 의견이지만 지금은 세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해. 아직 수를 쓰기에는 이르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로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지금은 없다. 아, 정보를 모으는 것은 말 안 해도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준기에게도 수련에 집중해 달라고 전해 주고.”

-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재와의 통화를 끝마친 호영은 곧바로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 * *

남자다운 눈매에 오뚝한 콧날, 그리고 훤칠하면서 당당한 체격. 이 완벽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바로 호영의 아바타였다.

‘1회 차나, 2회 차 때도 여자들에게 저런 시선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현실도 그렇지만 센추리도 외모 차별이 엄청난 것 같군.’

호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흠모의 시선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 저런 시선들을 보내다니. 엄청난 위업을 세웠던 과거에도 이런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외모 하나만큼은 이번 회 차의 아바타가 단연 최고인 것 같았다. 애초에 1회 차 때의 대준은 산적보다 무서운 외모였고, 2회 차 때의 대왕은 뱀눈에 주먹코를 가진 추남이었으니.

뭐, 어쨌든 얼굴이 잘생겨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호영은 허리를 펴며 더욱 당당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우와, 우리 왕자님 너무 멋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왕자들보다 멋있어.”

“절 가져요, 왕자님.”

“왕자님과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나이와 신분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

도시 소녀들의 망측한 소리가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호영은 애써 자연스러운 얼굴로 소녀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센추리 시간으로 사흘 동안 지켜보기만 한 결과, 그의 아바타가 쇼맨십에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잘생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줄도 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정작 환심을 사야 할 왕족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지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뒤에서 갑자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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