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28화 (128/345)

# 128

“……강 이사의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과정이야. 유저로 유저를 제압한다? 그거야 원래 내 역할이니 어려울 것은 없지. 하지만 이것만으로 명성을 쌓는 게 가능할까? 왕위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명성을?”

“국내에서만 한정한다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왕국을 벗어난다면? 다른 나라의 유저들까지 제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

충청도 지역에는 무려 스물네 개의 소왕국이 존재하였다. 모두 대한국의 속국 비슷한 처지였는데 3회 차가 시작되면서 몇몇 왕국의 지도층이 물갈이되었다.

유저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유저가 주인이 된 나라들은 대한국에게 그다지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NPC에게 복종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었다.

‘만약 그들을 제압하고 소왕국을 아국의 것으로 삼는다면…… 문신들은 몰라도 무장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구의 말에 호영도 혹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충구의 의견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왕족들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텐데? 왕세자부터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방해하려 들 것이고.”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세자의 성향은 이미 파악을 끝마쳤습니다.”

뭔가 재수 없다고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확실히 믿음직스러웠다. 충구가 저 정도로 확신하였다면 100%까지는 아니어도 95%는 된다고 봐야 할 터.

“우선은 국내 진압부터 시작하십시오. 방법이야 우 팀장이 말했던 대로 하면 될 겁니다.”

“용병으로 쓰라는 거겠지?”

“예, 저는 모험가라 부르겠습니다. 아무튼 모험가들을 이용해 탈선하는 유저들을 제압하며 힘을 기른 뒤 적절한 시점에 외국으로 진출하면 될 겁니다.”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호영이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해 주는 충구였다. 그의 계획을 조금 더 다듬는다면 왕위를 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회귀 전에도 3회 차부터 유저들이 길드나 조합 같은 것을 만들었었지. 어차피 만들어질 것이라면 내가 체계를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덤으로 나의 기반으로 삼기도 하고 말이야.’

유저들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2회 차 때처럼 행동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해 주는 대신 임무를 주어 호영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보상으로 무공의 일부를 가르쳐 주는 식이라면 곧잘 따르겠군. 무공을 탐하지 않는 유저들은 별로 없으니 말이야. 물론 이에 대해서는 왕세자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회의를 파하였다.

더 이상의 회의는 의미가 없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유저, 아니 모험가들을 다루는 일이었다.

* * *

“인수인계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까닥.

호영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까닥이는 삼 왕자였다.

‘나의 군사력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통제하던 수도 방위군을 삼 왕자에게 인수인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군사력을 경쟁자에게 이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사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유일하게 왕세자 자리에 도전하던 왕자로서 정치적 몰락을 의미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호영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의 것을 빼앗으면 빼앗았지, 자신의 것을 빼앗길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도 방위군은 그의 것이었다. 대장의 자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수도 방위군 전체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갈이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쓸 만한 무장들은 전부 로열패밀리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수도 방위군은 그가 자리를 이탈했다고 해서 남의 것이 되는 그런 군대가 아니었다.

로열패밀리! 그들이 있는 한 수도 방위군은 영원히 그의 것이었다.

아니, 수도 방위군뿐만이 아니었다.

수도 방위군의 간부 대부분이 로열패밀리 유저들이듯이 치안대나 중앙군의 간부 대부분이 로열패밀리 소속이었다.

왕국의 군사력은 이미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럼 내 병사들을 잘 부탁한다.”

“내 병사?”

“수도 방위군의 병사들은 모두 내 병사니까.”

코웃음을 치는 삼 왕자를 뒤로하고 외성 인근에 위치한 공터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많이 모인 것 같군.’

그가 찾아간 공터는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명회.”

“부르셨습니까, 조합장님.”

조합장. 추장이나 전하, 저하라면 모를까, 조합장은 그에게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호칭이었다.

잠시 조합장이라는 단어를 곱씹던 호영은 명회에게 물었다.

“몇 명이나 왔지?”

그 물음에 명회는 현실의 우원재가 생각날 만큼 뚝 부러지게 대답하였다.

“삼백여든일곱 명이 왔습니다.”

“사백에 가까운 숫자로군.”

예상보다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호영의 입장에서는 유저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였다.

‘일단 조용하게 만들어야겠네.’

무려 사백에 가까운 유저들이 모였는데 통제가 될 리 없었다. 호영이 직접 나서서 통제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리라.

“모두 조용.”

단에 올라 마력을 일으키고서 목소리를 높이니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력의 힘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뿐이었다.

“이야, 잘생겼는데?”

“연예인 해도 되겠다. 키킥.”

“왕자라는데 조용해야 되는 거 아니야?”

“여기서야 왕자지 우리에게 왕자냐? 애초에 NPC 아니야, NPC!”

여전히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유저들. 호영을 보았으면서도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들에게 있어 계급이나 신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왕자 저하께서 말하는데 떠들어!”

호영이 고함을 치려던 찰나, 덩치 큰 거한이 뇌성벽력과 같은 호통을 터뜨렸다. 마력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강인한 기세가 그대로 느껴지는 호통이었다.

‘김성근이군.’

센추리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한눈에 알아보았다. 거한의 정체가 김성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저씨, 아저씨가 뭔데 우리한테 지랄이야?”

“맞아. 왕자 저하는 무슨. 충신 코스프레 오지네.”

이번에도 침묵의 순간은 짧았다. 김성근과 일대일로 마주했다면 쥐 죽은 듯 침묵하였을 유저들이 대중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열심히 입을 놀렸다.

하지만 김성근은 유저들 이상으로 무식하였다. 자신을 향해 입을 놀렸던 유저의 멱살을 잡고서는 재차 뇌성벽력을 터뜨렸다.

“내가 바로 김성근이다. 나에게 불만 있는 새끼들은 덤벼 보든가!”

멱살이 잡힌 유저는 기겁한 얼굴로 양팔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표시였다.

대중이라는 보호막 속에 숨어 있던 유저들도 그제야 조용해졌다. 센추리의 모든 유저가 김성근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본 게임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김성근을 알고 있었다.

만인적 장비!

평소에도 호쾌하고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김성근이지만 전장에서는 특히 더 빛을 발하였다.

전장에서의 김성근은 그야말로 야차 그 자체였다.

어느 면에서는 호영보다 유명할 정도였다.

“김성근이라 했나?”

“예, 그렇습니다. 저하!”

“나를 따라라. 내 너를 중히 쓰겠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왕자 저하!”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같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이계인들이여! 나는 대한국의 왕자 대진이다.”

“…….”

“너희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왕국의 지도부는 너희들을 불순분자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통제하기로 결정하였다.”

호영의 그 말에 유저들이 다시 웅성거리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김성근이 눈을 부라리며 발을 굴렸다.

콰앙!

마력이 담긴 그의 진각에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저들은 경악하는 얼굴로 침묵하기 시작하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국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희들이 등장하고 2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범죄를 일으킨 이계인이 무려 백여 명에 달한다. 살인, 강간, 방화까지. 심지어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만 전문적으로 강간하는 범죄자도 있었다.”

그 말에 대다수의 유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유저로서 창피함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로선 너희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너희들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설마 감옥에 가두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통제하기 전에 밥부터 먼저 주쇼. 재수 없게 소농 아바타 걸려서 빈털터리니까!”

통제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니 여기저기서 한숨과 불평이 들려왔다.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는지 질문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김성근이 있어서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분노 조절 장애’를 강제로 ‘분노 조절 잘해’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김성근이었다.

물론 호영을 상대로는 반대의 입장이 되는 김성근이지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지 지금부터 설명해 주겠다. 다만 그 전에! 이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사용하고 있는 육신은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동료다. 너희들의 진짜 목숨은 아니더라도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목숨이니 귀중하게 여겨 주길 바란다.”

“…….”

“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너희들을 통제할 생각이다. 하나는 나의 전속이 되어 내가 시키는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수하가 되는 것이지. 물론 나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거북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나는 상벌이 명확하고 능력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승 서열 두 번째의 왕자이기도 하다! 만약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를 따라라. 내가 중히 써 줄 것이다.”

“저 김성근이 충심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김성근의 대답에 호영은 피식 웃고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른 하나는 너희들 스스로 해야 할 임무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다. 즉, 왕국이 필요로 하는 일에 노동력이나 무력을 제공하는 것이지.”

“똑같은 거 아닌가요?”

“맞아. 수하가 되는 것과 무슨 차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유저들. 당연히 그들로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모두 명령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번째는 나를 이 왕자로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반면, 두 번째의 경우는 나를 조합장으로서 자의적으로 따르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참고로 조합은 너희들의 용어로 길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조합장은 길드장이라는 것이다.”

조합장과 조합. 어렵지 않게 길드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유저들에게 친숙한 단어였다. 그리고 조합의 용도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길드랑 비슷하였다.

특히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하면 거의 자유라는 점이나 마음에 드는 임무가 있으면 스스로 결정해서 계약을 진행하면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조합에 소속된다고 해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조합에 소속되지 않은 유저들을 발견할 시 신고해야 될 의무가 있고,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개 이상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왕국의 법규도 준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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