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29화 (129/345)

# 129

호영이 제법 엄격한 목소리로 설명했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조합이라는 것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오히려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길드랑 비슷하다는 조합.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영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센추리에서 조합이나 클랜, 길드 따위를 어떻게 운영해야 효율적인지 회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호영은 잠시 동안 조합의 규칙, 설립 목적, 임무 방식 등을 설명하며 유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조합에 소속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설명은 여기서 끝내겠다. 이제부터는 병사들이 대신 통제할 것이니 그 통제에 따라 나의 수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조합원이 되어 모험가로서 활동한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사람은 오직 김성근뿐. 하지만 호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주일.

단 일주일만 지나면 저들은 자신을 공경하게 될 것이었다. 권세 높은 왕족이라서? 아니었다. 조합을 다스리는 조합장이어서 공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유는 보장해 주겠다. 그 대신 너희들은 오직 나의 말만을 따라야 한다.’

호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유저들을 통솔하였다.

“기사나 향사 가문이 있다면 이곳에 서라! 나머지는 이쪽이다!”

“지금부터 특기를 파악하겠다! 이계에서 무엇을 했는지 나에게 설명하라!”

“왕자 저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느냐!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4년 내내 감금시키겠다!”

여전히 미적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호영의 말이 있어서인지 갓 입대한 훈련병만큼은 따라 주는 유저들이었다.

호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 왔다고?”

3회 차가 되면서 외모가 많이 달라졌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저 조급한 태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사적인 이야기를 잘도 나누면서 나랑은 왜……?’

사내, 호영을 보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경선은 호영의 물음에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예.”

“이번 회 차는 아바타의 삶을 살아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경선은 그 물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10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여성의 인권은 최악이더군요. 아바타로 살아가면 할 수 있는 게 결혼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니까.”

“……그래서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요.”

“그게 모험가인가?”

“예.”

“나쁘진 않은 선택이야.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모험가 조합이 생김으로써 센추리의 콘텐츠가 풍성해졌다고 볼 수 있으니까. 유저들이 즐길 거리도 많아졌고.”

그의 말에 경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험가 조합!

게임이면서도 게임답지 않은 센추리 세상에 게임성을 첨가해 준 게 바로 이 모험가 조합이었다.

조합원이 되면 마치 RPG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듯 여러 임무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몬스터 사냥이나 포획, 약초 수집과 오지 탐험까지. 그 외에 마법사의 연구를 보조하는 것이나 누군가를 호위하는 임무도 있었다.

물론 청소나 짐 옮기기 같은 잡일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모험가라고 여자가 차별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차라리 2회 차 때 그랬던 것처럼 나의 밑으로 들어와라. 나의 밑에 있으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당할 일은 없을 거야.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어떻게든 응징해 주마.”

손을 내밀며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호영을 보며 경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외모의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니야?’

경선은 솔직히 호영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태도가 너무 무례하였고, 또한 아바타의 외모도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4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하면서 선입견이 조금씩 희석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3회 차에 그녀가 싱글 플레이를 하려 했던 것도 이런 감정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3회 차인 지금 ‘왕자’의 신분에 잘생긴 외모까지 곁들어지자 경선은 그의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뻔했을 정도였다.

“아니요. 저는 모험가가 될 거예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부여잡으며 경선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모험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즉, 호영과는 별개로 행동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이었다.

‘누구 밑에서 움직이는 것은 이제 지쳤어.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거야!’

그녀는 여자지만 독립성이 강했다. 그리고 무력에 대한 욕심도 무척이나 컸다.

2회 차 때처럼 호영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 4년 내내 행정 업무만 보며 시간을 허비하게 될 터.

경선으로선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혼자서 보다 유의미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모험가라면 적성에 맞으리라.

“……너의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죄송해요.”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호영의 말투에 경선은 저도 모르게 사과하였다.

“만약 중간에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와라. 너라면 언제든 받아 줄 테니.”

“알겠어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하고. 아, 활이 필요하려나?”

“고마워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야.”

그 말에 경선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호영이야 ‘동료’라는 생각에 그같은 말을 한 것이겠지만 왕자의 신분에 진짜 왕자 얼굴을 하고 있다 보니 경선으로선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모험이 지겨워지면…… 다시 돌아갈까?’

경선은 그녀답지 않게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잡지 못하였다.

* * *

모험가 조합은 순식간에 천 명이 넘는 유저들을 끌어모았다.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늘어났고 이제는 센추리 커뮤니티에서도 큰 화제가 될 정도로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고 있었다.

몇 달, 아니 몇 주만 있어도 왕국 전역으로 확장되어 대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유저들을 흡수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만사가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왕자 저하! 범죄자를 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치안대의 일입니다! 화재를 진압하는 것도, 거리를 순찰하는 것도 치안대의 임무라는 말입니다! 이 이상 권력을 남용할 시 국왕 전하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삼 왕자를 대신하여 치안대를 책임지게 된 초적이라는 인물이 호영을 향해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협박 내지는 경고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초적, 그는 왕세자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왕세자의 사람으로서 호영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금 호영을 찾아온 것도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순조롭게 영역을 넓혀 가는 모험가 조합의 행보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범죄자를 잡다니? 내가 잡은 이들은 전부 이계인인데?”

호영은 잠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하였다. 어차피 방해가 있을 것임은 진즉에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황당해 할 필요도 없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저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이계인이라고 거짓 진술한 것입니다!”

“증거 있나?”

“……저하!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것입니까?”

“뭘 말인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그리고 이건 왕세자 저하께서 시키신 일이지. 자네가 그토록 추앙하는 왕세자 저하께서 말이야.”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호영의 답변에 초적의 얼굴이 붉어졌다. 진심으로 분노한 얼굴이었다.

“이런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고작 명성을 얻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시다니……. 저하께서는 공권력이 무시당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알면서도 이같은 만행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아까부터 계속 무례한 행동을 하는군. 왕자인 내가 우습다는 것인가?”

“…….”

초적은 어찌나 분노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호영에게 분노를 토해 내기엔 왕자의 권위가 가볍지 않았다.

그는 결국 몸을 휙, 돌리며 문을 열고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나 역시 네가 그런 놈인 줄 몰랐다. 긍지 높은 초씨 가문의 일원이 주군을 배신하는 역적 같은 놈이었을 줄이야.”

멀어지는 초적의 등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이내 피식 웃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바타 대진의 수하들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호영 그 자신의 수하들은 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대진의 수하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수하들이 말이다.

“명회, 너의 말대로 되었군.”

호영은 그 수하들 중에서 한 명에게 말했다. 그러자 수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우연히 들어맞은 것입니다.”

그는 바로 호영의 책사이자 비서 역할을 맡고 있는 명회였다.

‘같은 책사여서 그런가? 명회가 충구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뭐, 충구보다 훨씬 겸손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다 명회에게 질문을 던졌다.

“치안대장이 왕에게 보고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왕에게는 모르지만 왕세자에게는 확실히 보고할 것입니다. 그는 왕세자 사람이니 말입니다.”

“보고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나?”

“왕성에서 저하를 호출할 것입니다.”

“이유는?”

“저하를 제재하거나 문책하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진즉에 제재를 가했어야 했다. 조합의 성장은 왕세자가 예측한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왕세자는 우유부단했고 뒤늦게 초적을 보냈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호영이 만든 모험가 조합은 이제 왕세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경고하거나 문책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왕세자, 똑똑하다더니 별거 아니군.’

왕세자에게 조소를 보내고는 명회의 말대로 왕성에서 호출하였을 때 어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다.

‘충구는 그저 강하게만 나가면 된다고 하였는데…… 과연 통하려나? 나의 군사력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왕세자도 완전히 숙맥은 아닌 거 같은데. 더군다나 지금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말이야.’

초적이 괜히 호영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호영은 초적이 자신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가 조합을 세워 유저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호영은 충구가 조언해 주었던 대로 조합을 앞세워 명성을 쌓는 것에 주력하였다.

유저들의 등장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조합에 소속된 모험가들을 동원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무법자처럼 행동하던 유저들을 진압한 것이었다.

역시 유저는 유저가 잘 상대한다고, 무법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검거되었다. 치안대가 보름 가까이 방치하였던 범죄자들을 순식간에 잡아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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