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군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 소왕국 동맹군의 군대를 모두 무찌른 상황이라 병력 운용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호영이 있다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호영을 중심으로 소수의 부대를 편성하여 군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뉜 의용군은 누가 통솔하느냐?”
“…….”
“내가 아니면 의용군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후방 지원이나 점령지의 치안을 NPC들에게 맡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않느냐?”
의용군의 병력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면 유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유저들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호영이 없으면 군기 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웬만한 오합지졸 군대보다 엉망이 될 터.
전쟁 초기에 행군에서 낙오된 병사들이 도적질을 해 댄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김성근 돌격대장이 있지 않습니까?”
간부 중 한 명이 그리 말하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돌격대장을 보내면 적보다 아군과 먼저 싸울 것 같은데?”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너희들도 알잖아, 장교들이 돌격대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도 돌격대는 돌격대장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습니까?”
“돌격대니까 따르는 거지, 다른 부대의 장교나 부사관들은 돌격대장이 통솔한다고 하면 바로 탈영할걸. 어쩌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김성근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2회 차 때 대부분의 유저들이 김성근을 싫어했던 것처럼, 3회 차인 지금도 로열패밀리나 돌격대를 제외하면 김성근을 좋아하는 유저는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김성근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애가 너무 강하단 말이지.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도 문제고.’
호영을 만나고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천성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상관에게 깍듯하고 위계질서는 지키지만 여전히 동료나 하급자들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돌격대의 부하들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하면 본국은 포기하는 겁니까?”
“포기하는 게 아니다. 그곳에 있는 동료들을 믿는 거지.”
“하지만 본국에 남아 있는 유저들 중에 전투 인력은 오백도 채 안 되지 않습니까?”
“그 오백 중 2회 차에 친위대 소속이었던 자가 삼백이다. 조합에 소속되어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도 쓸 만한 이들이 적지 않고, 무엇보다 본국에는 홍준기가 있다.”
“……!”
홍준기가 있다는 한마디에 간부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호영이 말하기를 자신보다 조금 약한, 어쩌면 이제는 비슷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강자가 바로 홍준기였다.
한마디로 또 하나의 만부부당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본국에 만부부당이 존재하는데 반란군 따위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간부들은 더 이상 회군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회군이 아닌 진격! 호영의 주장처럼 간부들 역시 진격을 주장하였다.
* * *
준기는 3회 차가 시작되고 오직 무공 수련에만 몰두하였다.
다른 로열패밀리 소속의 유저들이 음으로 양으로 호영을 지원할 동안 그 혼자만은 무공 수련에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전쟁에 출정했다면 호영과 같은 만부부당으로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을 그인데도 오직 무공 수련만 하였다.
물론 그가 자원해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다른 유저들처럼 자신의 신분이나 자신의 무공을 이용하여 호영의 일을 도우려고 하였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대한국에서 왕족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문이 바로 그의 초씨 가문이었다.
비록 그의 아바타가 관직을 가진 것은 아니어도 가문의 배경을 이용하여 지원한다면 호영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영이 준기의 지원을 막았다. 물질적인 지원은 필요 없다며 말이다.
대신 호영은 준기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였다. 그게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무공 수련으로서, 무력 그 자체를 키우라는 요구였다.
‘창법과 심법 모두 A랭크가 되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준기는 호영의 지시에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2회 차 끝날 무렵에 간신히 B랭크에 도달했으면서 3회 차가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호영의 랭크인 A랭크에 도달한 것이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A랭크가 재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준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는 형님이 바라는 것처럼 S랭크에 도달해야 한다. 형님도,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도 닿지 못한 바로 그 경지에!’
스스로의 실력 상승에 기뻐할 법도 하지만 준기는 침착하였다.
A랭크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전대미문의 S랭크!
호영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 그 경지에 닿아 S랭크의 심법과 창법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였다.
‘문제는 대창심법이나 대창창법이나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야. 마치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보완한 것처럼…….’
그는 적어도 무공에 있어서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천재였다. 더군다나 그의 경지는 호영이 회귀하기 직전인 8회 차의 기준으로도 ‘초절정 고수’ 또는 ‘절대 고수’라고 불렸을, 엄청난 경지였다.
당연히 그의 무공에 대한 이해도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창심법과 대창창법.
준기가 생각하기에 이 무공들은 ‘완벽’하였다. 조금도 수정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준기의 입장에서는 너무 완벽하기에 문제가 되었다.
그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고쳐야 할 점’을 알아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다. 심법의 안정성이 부족하다면 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나은 무언가를 찾았을 테고, 창법의 공격력이 부족하다면 공격력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나은 무언가를 찾았을 것이다.
하나 너무 완벽하기에 어떤 부족한 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솔직한 말로 준기로선 호영이 말하는 S랭크라는 것이 존재하다는 사실조차 의문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나 완벽한데 더 나은 무공이 어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준기는 호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이 완벽한 무공을 창시한 것도 결국 호영이었으니, S랭크가 존재한다는 호영의 말도 허황된 것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무협지에서 자주 나오는 깨달음 같은 게 필요하다는 건가?”
동생과 더불어 무협 영화나 무협 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준기였다.
어릴 적, 친구들이 대통령이나 경찰 같은 것을 장래 희망으로 삼았을 때 준기는 무공 고수가 되기를 희망하였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준기는 무공 상식에도 통달해 있었다. 좋아했으니 그만큼 관심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무공 상식에 통달한 준기가 보기에 대창심법과 대창창법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깨달음이라…….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대창심법이나 대창창법은 내가 보았던 무협지의 무공들과는 다르게 직관적이고 현실적이야. 은유법이나 비유법 같은 것은 일절 없이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상상의 영역, 그러니까 깨달음의 영역이 제한받은 것일지도 몰라. 무협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뜬구름 잡는 듯한 가르침도 필요하다는 뜻이지.’
순간 준기는 머릿속에서 번뜩하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수도자들이 고행을 통해 간혹 느낀다는 그런 영감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 느낌을 이용한다면 진짜 무협지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준기는 속으로 환희를 느끼며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아니, 이어 나가려고 했다.
“교두님! 홍 교두님!”
누군가의 부름에 준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번뜩이던 영감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협지에서처럼 주화입마를 당하거나 내공의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불쾌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기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였다.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받아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상대는 준기를 교두라고 부르는 인물이었다.
센추리에서 준기를 교두라 부르는 사람은 오직 로열패밀리 소속뿐.
즉, 그를 찾아온 손님은 호영의 최측근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준기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본래의 그와는 전혀 다른, 호영을 닮은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자 준기를 교두라 부른 사내가 한층 더 공손해진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준기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사내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준기는 당황하지 않았다.
‘나의 깨달음을 방해할 이유로는 충분하네.’
그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어디에서?”
“북부 지역입니다.”
“규모는…… 아니, 이건 딱히 물어볼 필요가 없겠구나.”
숫자가 얼마나 되건 모조리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A랭크인 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부를 수 있는 이들을 모두 불러라. 내가 직접 가겠다.”
“군사께서, 아니 강 이사께서 전투대 소속으로 서른 명을 데려가라 전하셨습니다. 그 이상은 왕세자를 견제해야 해서 안 된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유저는 아니지만 그의 가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무인의 숫자가 쉰 명 정도는 되었다. 유저 서른 명에 초씨 가문의 무인 쉰 명이면 반란을 진압하기에 충분할 터.
사실 그 혼자서도 반란군 따위는 얼마든지 소탕할 자신이 있었다. 창법과 심법이 모두 A랭크에 다다른 이상 무공도 익히지 않은 유저들의 경우 숫자가 얼마나 되건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이번 회 차에서는 아바타가 수십 년 동안 모은 마력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준기 혼자서 반란군을 소탕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아무리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어도 적군이 흩어져서 도망친다면 몸이 하나인 이상 쫓을 수 있는 적군의 수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실제 대한국과 소왕국 동맹국 간의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했던 ‘마장 대첩’에서도 호영이 막상 무찌른 적군의 수는 삼백 명 정도에 불과하였었다.
소왕국 동맹에서 입은 피해 대부분은 도주로 인한 피해였다는 말이었다. 그것만 봐도 혼자서 전과를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투대의 대원들이 도착했습니다.”
얼마 뒤, 로열패밀리 소속의 유저들이 준기의 장원에 도착하였다.
준기는 최소한의 물자만 확보한 채 서른 명의 대원들과 쉰 명의 무인을 동원하여 곧장 출정에 나섰다.
* * *
나흘 뒤, 마침내 반란이 일어난 지역에 도착한 준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폐허가 된 마을과 시체들이 보였다.
반란을 일으킨 유저들이 학살을 저지른 것 같았다.
“마치 2회 차 때의 혈맹을 보는 것 같군.”
“예, 하는 짓이 꼭 닮았습니다.”
대원들의 표정도 좋지 못하였다. 이 나라는 그들에게 있어 두 번째 조국이었다. 아니, 몇몇 대원들은 현실의 조국보다 센추리의 조국을 더욱 사랑하였다.
이 나라는 그들이 직접 세우고 키워 낸 나라였다. 애틋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호영을 따르는 이유 중 하나가 애국심일 정도였다.
그런 만큼 준기와 대원들은 눈앞의 참극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