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지금까지 파악된 유저의 숫자만 2만이 넘었다. 완전히 복속된 충청도 지역까지 합쳐 왕국의 인구가 100만이 조금 넘는다지만 무려 2만, 그것도 젊은 장정으로 2만이 농사를 포기했으니 풍작은커녕 평작이 되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해진 상황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유에 대해서는 그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책이다. 너희들은 각자 식량난을 해결할 대책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해라.”
호영이 대책에 대해 물으니 유저들 중에서 두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문사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직 전국에는 미개척지가 많습니다. 마물이나 야생동물이 곳곳에 널려 있는 미개척지 말입니다. 그곳에서 수렵을 한다면 식량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교역이 가장 효과적인 방도라고 생각합니다. 아국은 철이 남아돌지 않습니까? 그러니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위치한 부족국가들과 교역을 하여 철을 팔고 곡식을 얻어 오면 됩니다. 그들은 아직도 돌도끼나 흑요석 따위를 사용하니 교역은 어렵지 않습니다.”
“강원도의 수인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들과의 적대 관계가 청산되면 중앙군을 축소시킬 수 있고 교역도 가능해집니다. 중앙군을 반절만 줄여도 식량을 아끼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모험가들을 이용하십시오! 줄 것이 없다면 초보자의 섬에서 쓰이는 코인을 지급해서라도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야 합니다. 비록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조합을 통해 경제적인 활동들을 하고 있다지만 니트족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엄청 신묘하다고 느껴지는 의견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현실성 있고 실효성도 있을 법한 의견들이었다.
그중에서 전라도나 경상도의 부족국가들과 교역을 하자는 동휘의 의견이 호영으로선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식량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하다. 참모들이 낸 의견을 전부 수렴한다 해도 아사자 1, 2만을 줄이는 것이 최선일 거야.’
나쁘지는 않지만 식량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호영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다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자처럼 깊고 그윽한 눈빛을 가진 한 사내를 보며 눈을 빛냈다.
“군사는 따로 생각해 놓은 방도가 없느냐?”
호영이 돌연,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충구에게 물으니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2회 차 때까지만 해도 NPC를 연기하던 충구였다. 그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도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충구는 자타가 인정하는 호영의 지낭이었다. 간부들로서는 그의 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놓은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냐?”
호영이 반색하는 목소리로 묻자, 충구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전쟁입니다.”
그 답변에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호영뿐만이 아니었다. 장수든, 문사든 가릴 것 없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충구의 답변은 그만큼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비책이 전쟁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쟁 때문에 식량난이 생겼다. 그런데도 전쟁을 일으키자고? 도대체 누구와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1회 차나 2회 차 때도 그랬지만 호영이 가진 무력이라면 세력을 넓히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무력으로 타국을 정복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언제든지 세력을 넓힐 수 있음에도 마치 단계를 밟아 가듯 차근차근 계획에 맞추어 세력을 성장시켰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진 전력이라면 전라도건 경상도건 강원도건 언제든지 정복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충청도를 점령하는 것에 만족하였다.
이유야 단순하였는데 지금 겪고 있는 식량난처럼 역량 부족으로 낭패를 겪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많이 쓰이는 격언 중에 ‘나라를 세우는 것은 쉽지만, 나라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호영의 경우와 비유하자면 무력으로 나라를 넓히는 것은 쉽지만 그 넓혀진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막강한 무력을 가졌음에도 무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지금처럼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어마어마한 국력을 소모시킨다.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가능한 지양해야 될 행위라는 것이었다.
“현재 대한국의 군사력은 지나칠 정도로 비대해진 상황입니다. 중앙군이야 새로 점령한 충청도 지역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돌격대 같은 경우는 솔직히 저희의 처지에서는 과분한 전력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식량만 축내고 있습니다.”
“이사님! 지금 저희 돌격대가 쓸데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한국의 처지에서는 필요 이상의 군사력인 것은 분명합니다. 돌격대가 없어도 국방에 지장이 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김성근이 얼굴을 붉히며 외치니 충구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그러자 김성근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때 충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격대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아니, 없앨 수는 있어도 없앨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돌격대를 없앤다고 식량 사정이 나아질 일은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돌격대를 전장에 내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어차피 없앨 수도 없는 군사 조직이라면 전쟁에서 활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크하하하! 그런 말씀이었습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시지, 이제 이해했지 않습니까? 크하하하!”
대소를 짓는 김성근을 보며 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성근이 그리 단순한 성격이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단순 무식하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호영은 김성근을 잠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충구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세력과 전쟁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군사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도 전쟁이라니?”
“전쟁하는 것 자체는 문제없지 않습니까? 점령만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설마?”
“저희들이 전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식량이 부족하여 늘어난 인구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점령지를 원활히 통제할 자신이 없어서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구를 늘리지만 않는다면 전쟁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사람은 포기하고 땅만 빼앗자는 말이로군.”
“정확히는 땅보다 식량을 약탈하자는 겁니다.”
“…….”
충구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소란이 일었다.
장수들부터 문사들까지 웅성거리며 충구의 계책에 대해 장단점을 늘어놓았다.
‘점령전이 아닌 약탈전이라…….’
호영도 턱을 괸 채 상념에 잠겼다.
확실히, 지나치게 비대해진 군사력을 이용하여 식량을 약탈하자는 계책은 지금의 상황에서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일 것 같았다.
충구의 말처럼 돌격대는 어차피 있으나 마나였다. 그들이 부재한다고 해서 대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워질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격대를 해산시키는 것도 무의미하였는데, 무공을 익힌 유저들이 농사를 짓거나 따로 생산적인 일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충구의 계책대로 돌격대를 약탈에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분명 괜찮은 방법이야. 한 가지 문제를 빼면 말이지.”
“민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라고 약탈전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강자 입장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것만큼 손쉬운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대한국은 머지않아 한국 땅 전체를 지배하게 될 나라야. 조금 어렵다고 대한국의 백성이 될 이들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어.”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민심 같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지만 호영은 민심을 잃어 무너진 나라를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런 만큼 호영은 민심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가능한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식량난이 이보다 심했다면 민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 아니다.’
호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충구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회 차의 목표는 사실상 한강 이남이지 않습니까?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제주도는 힘들겠지만 강원도와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까지 정복하는 게 목표이긴 하지.”
“그렇다면 북한을 약탈하면 되지 않습니까? 4회 차라면 몰라도 어차피 이번 회 차에는 따로 정복할 계획이 없는 곳이니 말입니다.”
“……!”
“북한이라고요?”
“허…….”
북한을 약탈하라는 충구의 말에 호영을 비롯하여 모두가 놀라워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북한에 대해서는 2분기가 지나서야 관계를 정립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시점에 북한을 공격하자고 하다니.’
언제나처럼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충구였다.
충구의 계책대로 북한 지역을 약탈한다면 지금 겪고 있는 식량난 정도는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김성근에게 말했다.
“돌격대장.”
“예! 저하!”
“북한을 약탈해야겠다.”
“하하하하! 맡겨만 주십시오. 지금 당장이라도 빨갱이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돌아오겠습니다!”
김성근의 말에 호영은 피식 웃었다.
센추리에서 빨갱이를 찾다니, 뭔가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정색하는 얼굴로 명을 내렸다.
“이틀 뒤에 출정하여라. 출정 기간은 열흘이다.”
“지뢰만 없으면 걸어서 이틀 안에 도달할 거리입니다. 왕복해야 되니 나흘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안에 약탈을 끝내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뒤에서 윤수와 순현이 기겁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성근은 그렇게 호언장담하였다.
‘나흘이라……. 과연 그 김씨 놈들을 나흘 안에 어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이번 생에서 북한이 어부지리를 취할 일은 없을 것 같군.’
본래라면 3회 차 중반부터 경기도 지역은 북한 유저들의 약탈을 받게 된다. 경기도 지역은 패권 싸움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라 홀연듯 나타난 북한 유저들에게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북한의 약탈은 6회 차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 무려 3회 차 동안, 센추리 시간으로는 200~300년을 꾸준하게 괴롭혔다는 것이다.
센추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호영조차도 북한을 증오하게 될 정도로 북한의 만행은 엄청났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충구의 계책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식량을 얻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성장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 * *
왕이 힘에 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호영은 그런 왕의 물음에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하였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에도 순식간에 진압될 것이니 말입니다.”
“벌써 네 번째다. 반란이 벌써 네 번이나 일어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