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54화 (154/345)

# 154

그렇다 보니 현실에서나 센추리에서나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호영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제아무리 충구가 호영의 최측근이라 해도 말이다.

“아마 다른 간부들도 불만이 조금씩은 있을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시골의 조그만 땅을 받고 만족해야 하는가. 뭐 대충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이상 바랄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공으로 따진다면 전하의 공적이 절대적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정말 거침없는 입담이었다. 친위대 소속의 유저들이 충구의 경솔한 발언을 지적하려 했던 게 무안스러울 정도였다.

‘예상은 했지만 나도 순간 흠칫하고 말았군.’

충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호영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흠흠, 호영은 헛기침을 하고는 다른 간부들에게 물었다.

“경들은 장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소신 역시 대군사의 말처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 차는 고하를 가리기 어려운 공신이 많기 때문에 장원을 하사해 준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따름입니다.”

“소장은 오히려 장원도 지나친 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수여식이 끝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금전적인 보상으로 끝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원이 비록 봉토에 비해 특권이 적다지만 100년이 지나면 결국 봉토와 다를 게 없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중국의 제갈 세가나 남궁 세가처럼 변질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니 장원은 될 수 있으면 다시 회수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이어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이 충구여서 그런 것일까?

장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분명 이 중에서 포상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도 분위기에 휩쓸려 불평 한마디조차 얹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호영은 그 같은 분위기를 이용하여 종지부를 찍었다.

“장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는 거지?”

“그렇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럼 포상에 관련된 논의는 여기서 마치는 걸로 하겠다.”

이로써 최대의 쟁점으로 급부상하였던 포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더 이상 봉건제나 공신들의 논공행상으로 골머리 앓을 일은 없으리라.

‘이제 남은 것은 본격적으로 내년에 있을 정복 전쟁을 준비하는 일인가?’

1분기 때 해야 할 일은 전부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호영은 곧장 2분기에 있을 정복 전쟁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아, 그 전에 숙청부터 해야겠군.”

예정해 두었던 피의 숙청.

왕이 된 이상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내부 정리를 완전히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리라.

* * *

‘엄청난 능력자야. 카리스마도 어마어마하고. 더군다나 무공 실력도 가장 뛰어나다고 했나?’

남부여의 추한빈은 국왕과의 접견을 마치고 난 후 속으로 국왕의 인물평을 해 보았다.

1회 차부터 지금까지 쌓았던 업적도 업적이지만 사신들과의 접견 당시 좌중을 압도하던 카리스마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추한빈조차 생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인해 대한국을 경계하던 몇몇 나라들조차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대한국 같은 강대국의 주인이면서 주색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사치나 향락에 빠지지도 않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야.’

국왕의 사생활을 직접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풍문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가 있었다.

대한국의 국왕은 가진 권력에 비해 지독하리만치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추한빈으로선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전라도나 경상도에 위치한 부족국가의 주인들은 그 알량한 권력으로도 온갖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첩을 열 명 이상 두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어떤 군주는 주색잡기에 눈이 멀어 부족의 모든 재산을 탕진했을 정도였다. 지역의 패권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한국의 국왕은 가진 권력도 막강하고 나라를 위협할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라도의 여러 군주들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본 추한빈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대한국의 국력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지. 무공을 익힌 사람만 천 명에 가깝다니. 대한국은 그야말로 괴물들이 살아가는 나라였어, 한반도쯤은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는.’

추한분은 이리저리 탐문한 결과, 대한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한 지역을 약탈한 것만 봐도 그렇다.

충청도를 점령하고서 식량난에 허덕인 것이 얼마 전인데 북한 지역을 약탈함으로써 식량난을 해결하였다.

쉽게 할 수 있는 생각도 아니었지만 군사적으로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인간의 호적수, 오크족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북한 지역의 오크족을 역으로 약탈하고 지금껏 역습을 당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대한국의 군사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만큼은 인정해야겠어, 센추리에서는 결코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대한국이 과연 대기업들의 힘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남부여의 힘으로 대한국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비밀리에 모의하고 있는 연합이 실현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본 대한국의 국력은 경상도와 전라도가 힘을 합친다고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한국의 군대 전체가 나설 필요도 없이 그 ‘무인’이라는 자들만 움직여도 경상도와 전라도는 순식간에 정복되고 마리라.

솔직히 지금 그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한국의 식량에 여유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니 추한빈은 센추리에서 대한국과 다툴 생각이 없었다.

추한빈이 소속되어 있는 남부여의 홈그라운드는 현실이었다.

천화그룹.

한국에서 대기업이라 불리는 바로 그 회사가 남부여의 진짜 힘이라는 뜻이었다.

‘처음 시작은 돌격대가 될 것이야. 무공을 익혔다는 돌격대를 우리 편으로 만든다면 너희들도 타격이 크겠지?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한국에서 대기업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체험해 보라고.’

대한국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들이 현실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벌들의 힘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리라.

* * *

‘쥐새끼들이 너무 많아.’

윤원목은 목석같은 얼굴을 구겨 뜨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3회 차가 되면서 호영의 휘하에 있는 단체들은 모두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본 게임에서의 대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고, 초보자의 섬에 있는 대한 길드나 현실의 로열사는 그야말로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규모부터 시작해서 자본이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팽창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가 꼭 긍정적인 면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파벌이 생겨나고 내부 다툼이 늘어난 것은 약과에 불과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조직의 존재가 한국의 정치가나 재벌들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위정자나 재벌들이 센추리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3회 차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센추리가 현실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들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온갖 날파리들이 로열사나 대한 길드, 대한국을 노리기 시작했다.

지금 윤원목의 눈앞에 있는 사내도 바로 그 날파리 중에 한 명이었다.

“왜 그랬지?”

윤원목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날파리, 남우영은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부하들이 피를 흘린 채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은 진짜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미동이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이 조폭 영화의 촬영장으로 변모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현실성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남우영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몰래카메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냉혹한 현실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 새끼야. 윤 이사님께서 지금 이유를 묻고 계시잖아. 왜 그랬냐고!”

남우영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강북에 있어야 할 사람이……. 그리고 왜 윤원목이라는, 국정원 같은 곳에서 일할 것같이 생긴 사내의 말을 들고 있는 것일까?

“저,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마 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언제나처럼 윗사람들의 지시를 이행한 결과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지만 저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충실하게 답변하는 남우영이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윤원목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하기만 하였다.

“두식아.”

“예, 이사님. 말씀하십시오.”

“이놈도 조폭이지?”

“조폭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단순한 깡패 놈들입니다.”

“어쨌든 너희만의 법칙대로 처벌할 수 있는 놈들이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깡패 놈들을 다루는 것도 저희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두식아, 내가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에게 맡겨 주시면 깔끔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우영은 마두식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필사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어떤 것이든 물어보기만 하신다면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의뢰인들의 신분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비밀을 지켜야 했다. 그만큼 의뢰인들의 신분은 어마어마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강북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두식이파의 보스 마두식이었다. 분위기를 봤을 때 입을 다물었다간 그의 목숨이 사라질 판이었다.

“대현, 천화, 북양, SJ, 모성에서 시켰습니다. 대한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라고. 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역이나 하는 제가 재벌들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길드원들을 납치하고 협박을 했나?”

“시, 시간이 없었습니다. 독촉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남우영의 변명이 길어지자 윤원목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다시 물었다.

“어떤 정보를 넘겼지?”

“그…… 대한 길드와 대한국 그리고 로열사가 하나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또 조직을 운영하는 자가 송호영이라는 사실도 그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으드득.

윤원목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주군의 정체를 밝히다니!’

호영을 향한 윤원목의 충성심은 정도를 넘어섰다. 그의 충성심은 고대의 장수들이 왕에게 바치던 충성심에 버금갈 정도였다.

21세기 기준으로 무척이나 비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윤원목은 본래부터 구시대적인 낭만을 가진 사람이었다.

40대가 다 될 때까지 자신이 충성할 만한 사람을 찾아다녔을 정도였는데, 그는 센추리에서 비로소 충성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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