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55화 (155/345)

# 155

그게 바로 송호영이었다.

엄청난 카리스마에 철인 같은 정신력과 절제력을 보유하였고 무력까지 범인을 아득하게 넘어선 사내.

구시대적인 낭만을 가진 윤원목에게 이보다 더 주군으로서 어울리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송호영을 자신의 주군으로 삼은 윤원목은 송호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였다.

센추리에서도 송호영의 명령에 따라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주군을 위해 일하는 순간은 센추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현실에 있을 때였다.

현실에서의 그는 주군인 송호영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비밀스러운 활동을 하였다.

지금 ‘주군의 적’인 남우영에게 징벌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조직과 주군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각종 은밀한 일을 도맡아 한 것이었다.

“마두식.”

주군의 정체가 적들에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 윤원목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마두식을 불렀다.

“예!”

“네가 책임지고 깔끔하게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잔인한 명령이었다. 남우영을 제거하라는 명령이었으니 말이다. 윤원목 그는, 주군을 위해 살인까지 감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살인이라니요!”

남우영의 발악에 마두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 명이 넘는 노동자를 때려죽인 놈이 할 말이냐? 납치와 협박도 밥 먹듯이 해 댄 주제에 말이야. 우리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헛소리는 하지 말자고.”

“마 회장님, 당신도 기업인을 흉내 내고 있으면서 저 사람이 누구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제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면서!”

“미안하지만 시대는 변해 가고 있어. 센추리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재벌이 아니야. 바로 여기에 계신 윤 이사님께서 소속되어 있는 세력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 뒤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재판받느라 정신없잖아?”

“세상이 변할 것 같습니까! 잠시 미친 대통령을 만나 위축되었을 뿐, 세상은 변함없이 재벌들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센추리? 그깟 가상현실을 믿고 저를 죽이겠다는 것입니까!”

“제법 조사를 했으면서 아직도 몰라? 매출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니 이제 그만 가자.”

“이, 이럴 수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고요!”

“거참, 시끄럽네. 애들아, 남 사장 좀 조용하게 만들어 줘라.”

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깨들이 남우영에게 달려들었다. 시끄럽던 남우영의 입이 조용해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녀석은 제 부하들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혹시,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두식아.”

“예.”

“네가 서울을 정복해야 될 것 같다.”

“……!”

그 한마디에 마두식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란 얼굴을 하였다.

난데없이 서울을 정복하라니? 제아무리 윤원목의 인맥이 대단하다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서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제,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기다려라,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 줄 것이니.”

마두식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윤원목은 그 이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주군의 적, 대기업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할 따름이었다.

‘일단 음지부터 확실히 장악해야겠어. 그 이후에는…….’

#대일본전

피바람이 멈추고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대한국에서 최고 간부 회의가 열렸다.

7인회라 불리는 최고 간부 전원이 참석한 회의였는데 폐관 수련을 하는 것처럼 무공 수련에만 집중하던 홍준기도 이날의 회의에는 참석하였다.

“감찰관.”

호영은 일곱 명의 최고 간부들 중 감찰 임무를 맡고 있는 간부를 가장 먼저 불렀다.

“예!”

“요즘 대한 길드도 그렇고, 조직원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관리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대한국에서, 아니 조직 전체에서 감찰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윤원목이었다. 호영은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윤원목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윤원목은 최근 들어 태만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태만해졌다기보다는 센추리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졌다.

하루에 고작해야 4시간 정도?

물론 윤원목이 접속하지 않아도 아바타가 대신 활동하니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아바타와 유저의 차이는 의외로 컸다.

현실의 정보를 얻지 못하는 아바타의 경우 아무래도 위기 대응 능력이나 정보 수집 능력 같은 것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윤원목의 아바타 같은 경우는 윤원목보다 성능, 즉 능력치가 많이 낮은 편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윤원목의 접속 시간이 줄어드니 호영으로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연애라도 시작했나? 차라리 그런 것들이라면 좋겠는데.’

윤원목은 7인회에 속해 있을 정도로 조직에서 서열이 높은 간부였다. 그리고 서열이 높다는 것은 호영에게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 되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주요 간부라 해도 센추리를 소홀히 한다면 서열을 강등시키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즉, 7인회에서 제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윤원목을 계속해서 최측근으로 두고 싶은 호영이었기에 가능하면 그런 조치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경고의 의미로 따끔하게 한마디를 해 주었다.

“숙청이 끝났다고 방심하지 마라. 얼마 지나면 정복 전쟁이 시작될 텐데, 내부 문제로 인해 발목 잡힐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믿겠다.”

“충! 감사합니다.”

윤원목과의 대화가 끝나자 호영이 부른 것은 돌격대장, 김성근이었다.

“돌격대장.”

“예. 말씀하십시오, 전하!”

“돌격대의 상태는 어떻지?”

“언제든 출전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대원들의 무공 수준은?”

그 물음에 김성근은 잠시 준기가 있는 방향을 힐끔 보았다. 참고로 준기의 직책은 친위대장이었다.

무공을 익힌 최정예 병사들이 소속된 부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위대와 마찬가지로 무공을 익힌 정예 병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돌격대의 김성근으로서 경쟁의식이 없을 수가 없었다.

김성근은 살짝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친위대만큼은 아니지만 2회 차의 친위대 수준은 될 것 같습니다.”

“D에서 E 사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는 아쉬워하였지만 3회 차, 그것도 초중반에 불과한 지금 시점에서 E급 이상의 무위는 결코 아쉬워할 수준이 아니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서울에 위치한 세력들만이 간신히 무공에 입문하였을 시기니까. 물론 지금은 역사가 바뀌어 충청, 경기는 물론이요,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무공이 퍼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영석은?”

“그냥, 평범한 수준입니다.”

돌격대에서 무공 수련과 더불어 세뇌 교육에 버금가는 정신 교육을 받고 있는 나영석.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사람이었기에 호영으로선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영석에 관련해서는 계속 보고하도록.”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아무튼 알겠습니다.”

호영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총애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김성근의 목소리가 조금 퉁명스러워졌다.

‘어울리지 않게 애정 결핍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적절하지 않은 비유일 수도 있지만, 집사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김성근의 몸집을 생각하면 고양이보다 호랑이가 더 어울리겠지만 말이다.

“출정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출정할 수 있겠지?”

“예, 전하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출정할 수 있습니다!”

“곧 있으면 출정할 것이니 대기하도록.”

그 한마디에 퉁명스러웠던 김성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전쟁광다운 반응이었다.

“근데, 지금 시기에 전쟁할 곳이 있습니까? 전라도나 경상도로 진출하는 것은 여름 이후라고 들었는데…….”

“북한을 친다.”

“또 빨갱이 놈들을 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완전히 초토화시켜라.”

호영은 좌중을 압도하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한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하라고 말이다.

“식량도 충분한데 굳이 그 보잘것없는 놈들을 칠 필요가 있습니까?”

전쟁이라면 명분도 실리도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김성근이지만 북한 지역을 공격하라는 명령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는 듯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지역은 이미 3회 차를 포기해야 될 정도로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김성근이 직접 쑥대밭으로 만들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북한을 공격한다? 잃을 것은 없겠지만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번 회 차에 북한 유저들과 오크족을 북방으로 모조리 밀어 버릴 계획이다. 그래야지만 다음 회 차가 되기 전에 한반도를 우리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으니까.”

“……그런 깊은 뜻이!”

호영의 설명에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지르는 김성근이었다.

‘북한 유저들을 만주로 밀어 버리면 이후에 만주 지역에 세워질 후금이나 고려 그리고 러시아의 세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약해 빠진 북한을 다시금 공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멀리 보면 무척이나 거창한 국가의 대계였다.

만약에 호영의 계획대로 된다면 그의 땅은 보다 안정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외부 환경도 더욱 유리하게 바뀔 것이었다.

“북한 유저들을 만주로 밀어 버리면 확실히 나중에 편해질 것 같습니다.”

“오, 일석이조군요. 거기에 오크까지.”

다른 간부들도 크게 감탄하였다. 그만큼 실리적인 계책이었던 것이다.

호영은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 간부들과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2회 차부터 행정관으로서 활약하여 3회 차에도 행정을 담당하게 된 신은규, 즉 안지호와는 전쟁을 대비하여 군량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즉위 이후부터 정식으로 비서실을 담당하게 된 우원재와는 그동안 지시했던 명령들이 어느 정도 완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상단주로서 활동하다가 이제는 대한국의 재무관이 된 동휘와는 모험가 조합이나 상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고로 모험가 조합 같은 경우는 현재 느슨하게나마 국가의 통제를 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즉, 호영이 왕자였던 시절처럼 완전히 민간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병사나 관리들처럼 국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평화기가 길어지면서 던전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마법이 가시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던전만 발견한다면 유저들은 마족에 버금가는 마법 실력을 갖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던전 탐험가들을 확실히 지원해 주도록. 지금 당장은 손해로 보일 수 있어도 마법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모험가들이 포획한 마물들은 어떻게 되었지?”

“지시하신 대로 빈 동굴이나 이미 탐험이 끝난 던전에다 가두어 놓았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사육에 성공할 가능성은 70퍼센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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