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57화 (157/345)

# 157

“아니 되옵니다, 폐하! 동백 왕국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직접 들으셨지 않습니까!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것은 신라의 자멸을 가져올 뿐이옵니다. 차라리 대현 왕국 따위가 아닌, 대한국을 불러들이시지요. 한국에서 일본군을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대한국이 유일하옵니다!”

1강 3중 체제에서 유일하게 1강에 속하는 대한국을 불러들이자는 주장이었다.

그 영주를 시작으로 다른 영주들이 연이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불가하오! 늑대를 쫓겠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려 하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폐하, 차라리 일본과 동맹을 맺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비록 한반도를 침공하였지만 아직 우리 신라와는 적대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원교근공의 외교 전략을 이용하여 멀리 있는 일본과 동맹하여 가까이에 있는 대한국을 멸하시옵소서!”

“약탈자 무리에 지나지 않은 왜구와 동맹이라니요! 그들이 동백 왕국에서 저지른 패악을 듣지 못하신 겁니까? 폐하! 쳐들어갈 필요도 없고 동맹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수비에만 집중하시옵소서. 일본이 신라까지 진격한다는 확신도 없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그들이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신라에 닿기 전에 대현 왕국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옵니다.”

온갖 의견들이 나왔다.

대부분의 의견들이 최진수의 귀에는 옳은 말처럼 들렸다.

“누구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했다니! 도대체 짐 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신라를 통치하면서 그는 결단력 있는 모습만을 보여 주었다. 대한국과 맞서 싸우지 않고 경상도로 이동한 것부터가 그랬다.

그는 선택의 순간이 있을 때 옳고 그름을 떠나 언제나 신속한 결정을 내렸었다. 그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신라는 마침내 경상도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최진수가 보여 준 추진력이나 결단력은 사실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명확한 결정들만 해 왔기에 결단력 있는 사람처럼 비쳤던 것이다.

우유부단까지는 아니어도 최진수는 범인에 가까운 존재였다. 지금처럼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그 역시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맹은 필요 없습니다! 수성에 치중하시옵소서!”

“같은 처지인 대현 왕국과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대현 왕국과 동맹을 맺어 봤자 일본군을 어찌 상대하겠습니까? 대한국과 동맹을 맺으십시오!”

“오히려 일본과 동맹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최진수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영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세력의 특징이었는데, 여러 세력이 합쳐져 있어 그만큼 의견 통합이 어려웠다.

‘이 무능한 것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파벌의 안위만 위하고 있다니……!’

영주들로 하여금 당파 싸움에 열중하게 만든 것은 최진수였지만 자신이 행한 일은 생각지도 않고 분노만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등장한 관리의 외침에 최진수가 표출하던 분노의 방향이 옮겨졌다.

“대현 왕국의 사신이 전하기를, 만약 오늘 내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면…… 일본에 항복하겠다고 합니다!”

“……감히!”

자존심 하나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바로 최진수였다. 신라를 개국하여 스스로 왕이 된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의 위로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동등한 존재만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동등한 존재도 머지않아 굴종시킬 예정이었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는다? 대현 왕국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진수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다니.’

대현 왕국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 최진수가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늦어졌다고 쪽발이에게 항복하겠다는 헛소리를 해? 알아서 하라고 해라! 대현 왕국 따위 없어도 되니까.”

“하오시면, 일본군의 침공을 어떻게 대비할 의중이십니까?”

“우리 왕국의 힘만으로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최진수가 아쉬운 기색을 하며 물었다.

웬만하면 일본과는 자력으로 맞서 싸우고 싶었다.

그게 한국 유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좋고 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군은 신라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동백도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아무리 동백이 신라보다 못하다지만 저력이 있는 나라였지 않습니까? 사무라이들의 무공은 아무래도 대한국 수준인 것 같습니다.”

“대현 왕국이 일본군에 합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상했던 대로 영주들의 반대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최진수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대한국과 동맹하는 것뿐인가?”

“그렇습니다. 대현 왕국이 일본 편에 서지 않는다면 몰라도, 일본 편이 된다면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대한국과 동맹하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지원군을 보내 대현 왕국과 동맹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최진수의 노여움을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라도까지 거의 다 정복한 대한국이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우리일 것이 분명한데 일본군을 같이 무찌른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겠느냐?”

예전부터 그랬지만 최진수는 대한국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2회 차부터 대한국에게 당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국은 3회 차가 되고 연이어 전쟁을 벌였습니다. 충청도를 흡수하고 그 고생을 하였는데 이제 전라도까지 흡수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영악한 자들이라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굳이 저희까지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의 짐작이 틀리다면?”

“소신의 짐작이 틀렸다 해도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습니다.”

“…….”

최진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영주의 말처럼 지금은 딱히 방도가 없었다.

“결정했다. 짐은 대한국과 동맹을 맺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단! 그들이 짐의 나라를 속국 취급하려 든다면 짐은 대한국이 아닌 일본과 동맹을 할 것이다.”

“……!”

국력이 월등하게 차이 난다고 해도 최진수는 자존심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막말로 대한국이 마음에 안 들면 일본과 동맹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 * *

한때 일국의 왕이었던 자가 간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제 딸입니다.”

“호, 호희라고 합니다.”

“딸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호영은 가야 왕이었던 유저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미인계라……. 벌써부터 미인계를 노리는 유저가 생길 줄이야.’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는 대신, 정략결혼을 요구하였던 가야 왕.

참신한 계책이라 기대하며 요구에 응해 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때 가야국의 공주였던 호희라는 여인은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미인이었다.

화장 기술이 형편없는 시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후비들과 동등하게 대해 주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고, 고맙습니다.”

“수도로 상경할 준비를 하여라.”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물러나자 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이름이 조규원이라고 했던가. 재밌는 놈이로군. 현실의 나이는 고작해야 20대 초반이라 들었는데 말이야.”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영악한 자입니다. 만약 그의 딸인 호희라는 여인이 전하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후계가 돌아간다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도 있습니다.”

충구가 경계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야국의 왕이었던 조규원은 물론이요, 정략결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호영은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3회 차가 끝나기 전에 외척이 될 가문들을 모조리 정리할 것이다.”

“또다시 숙청을 하는 것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군요.”

“그보다, 일본군은 어디까지 진출했지?”

대한국이 가야국을 마지막으로 전라도 정복을 끝마칠 때, 갑작스럽게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수천의 병사를 끌고 와서는 경상도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던 것이다. 현재 일본군은 동백 왕국을 완전히 무너뜨리고서 경상도 전역으로 병력을 투입하는 상황이었다.

“대현 왕국이 1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결사항전에 나섰다는 게 최신 소식입니다.”

“1천이라……. 아무리 수비가 공격보다 유리하다지만 1천으로 일본군을 막아 내기는 불가능하겠군.”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는 이상, 신라가 대현 왕국을 지원한다 해도 일본군을 무찌르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나라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겠어.”

“예.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두 나라는 일본에게 투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호영은 신음을 흘렸다.

‘회귀 전보다 쳐들어온 병력이 최소 2배는 더 많단 말이지. 이것도 나비효과라고 봐야 하나? 하지만 한국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변할 줄이야.’

호영은 사실 일본의 침공을 오래전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해군 전력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확장하고 있는 것도, 대현 왕국의 해군을 포섭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일본군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회귀를 통해 일본군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던 호영조차도 일본군의 규모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에는 기껏해 봐야 1천 정도에 불과한 일본군이 쳐들어왔었는데 지금은 밝혀진 것만 최소 4천이었다.

본래라면 악전고투를 치렀어야 할 일본군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회귀 전과는 달라진 결과였다.

‘세 나라의 국력이라면 일본군을 무찌르지는 못해도 막아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기존에 세웠던 계획은 폐기할 수밖에 없겠군.’

호영은 경상도의 전력이 회귀 전보다 훨씬 강해진 만큼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세 나라의 군대가 일본군과 비등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호영의 생각처럼 세 나라의 군대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면 호영은 그들의 뒤를 공략할 계획이었다.

한마디로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욕먹는 것으로 경상도 전체를 점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호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호영의 계획은 일본군이 예상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본군의 상륙을 견제했어야 할 동백 왕국은 일본군이 상륙한 것도 모르고 있다가 수도를 빼앗기고는 급속도로 무너졌고 다른 두 나라도 갑작스러운 일본군의 등장에 당황하여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해 사태를 방관했다가는 경상도가 완전히 일본군에게 넘어갈 판국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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